이날 북토크 행사는 평소 정바비와 친분이 있었던 영화감독 윤성호의 사회로 진행됐다. 평소 정바비의 음악을 사랑하는 여성 팬들을 많이 있는 만큼, 이날 북토크에 참석한 300여 명의 관객들 중 대부분이 여성 독자였다. 행사 내내 관객들은 정바비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열정적인 호응으로 분위기를 달궜다.
사실 그동안 정바비의 글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만큼 꽤 회자됐다.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가사, 그리고 잡지 기고나 그의 개인 블로그를 통해 올라오는 글, 그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 아마 많이 있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몇 년 동안 책을 내자는 제의가 간간히 있었다며 정바비는 이번 책을 출판하기까지 어떤 과정과 고민을 거쳐왔는지, 조심스러우면서도 분명한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출판 제의가 사실 몇 년 간 간헐적으로 있긴 했었어요. 대부분이 잡지나 블로그에 끄적이던 글들을 모아서 에세이집 형태로 내자는 제의였는데, 저는 사실 그땐 그렇게 첫 책을 내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계속 거절을 해오다가, 지금 이 책의 편집자님에게 제안을 받았을 때가 제가 갖고 있던 책에 대한 생각이 바뀔 무렵이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언니네 이발관으로 데뷔를 했었는데 그땐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정신 없이 앨범을 만들었거든요. 제가 그나마 음악 활동을 하면서 다른 뮤지션들에 비해 메리트가 있었다면, 음반이란 것을 일찍 경험했다는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왜 그 기준을 책에는 못 적용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출판이란 것을 경험하고, 저자로서 내 글을 다시 보는 경험을 하고, 만약 이런 경험들을 늦게 하게 되면 더 좋은 책,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꽉꽉 담겨 있는 책을 내는데 있어서 오히려 더 큰 기회를 놓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의 개인적 취향이 묻어 있는 책
간단한 소개와 이번 책을 출간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마치고, 윤성호 감독과 정바비는 『너의 세계를 스칠 때』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갔다.
윤성호: 『너의 세계를 스칠 때』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왜 정바비의 ‘Evernote’를 보고 있어야 하느냐’ 같은 불만도 있다고 해요.
정바비: 그 말을 하신 분의 의도를 사실 잘은 모르겠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제 ‘Evernote’를 본 기분이 들었는지. 일기장을 훔쳐보는 느낌이라는 말이었을까요?
윤성호: 책을 사면 뒤부터 보는 버릇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솔직히 말씀 드리면 아직 앞쪽을 다 못 읽었는데, 질문하고 싶은 게 있어요. 정바비 씨가 하고 있는 여러 가지 카테고리의 음악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이 책도 챕터마다 어떤 구분이 되어 있나요?
정바비: 책을 만들면서 사실 글은 3분의 2 정도 이미 나와있는 상태였고, 새로 쓴 글은 3분의 1 정도였어요. 완전히 목차부터 새로 쓴 책은 아니긴 해요. 책이 어떤 형태로 나와야 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계약 초기부터 가능했던 상태였는데요. 편집자님이 챕터를 많이 제안해 주셨는데, 일단 연애와 사랑에 대한 것이 한 챕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저의 예술적 취향과 관련된 것이 한 챕터, 나머지 두 챕터는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하나, 그리고 제 밖에서 예를 들면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것이 하나. 이렇게 목차에 관한 이야기가 아주 초기부터 나왔는데, 제가 추린 글들을 쭉 분류해봤더니 희한하게도 비율이 거의 1:1:1:1 정도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건 굉장히 자연스럽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윤성호: 일관적으로 흐르는 점이 있는 게, 정바비 씨가 사랑이라든지 연애에 관한 것에 대해 깊이 꺼풀을 벗기면서 탐구하시잖아요. 가령 ‘나는 그 사람을 사랑했다’가 아니라 ‘과연 사랑이면 무엇일까’라고 쓰는 편이신데, 깊이 들어가는 대신 또 한편으론 자기에 대해서 약간 관조적이에요. 살짝 떨어져서 자기 스스로를 쥐어 박거나 놀리는 듯한 말투가 많아요. 그런 방어적인 심리는 어디서 나오나요?
정바비: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편집자 분도 제 개인적인 부분에 대한 솔직한 얘기가 좀 부족하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좀 더 본인에 대한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후반부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추가했어요. 제 생일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이름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그런데 책을 내고 모니터링을 받다 보니까, 굉장히 솔직한 이야기가 많아서 재미있었다는 얘기도 들어서 저도 좀 혼란스럽긴 하더라고요.
기본적으로 저는 글을 쓸 때 저의 사생활이라든지, 저와 친한 사람이라든지 혹은 저의 내밀한 얘기를 잘 안 하는 편인 것 같아요. 특히 활자 매체에서 더 그런 게, 텍스트라는 것이 사실 바이트로 이뤄진 거잖아요. 어떻게 보면 가벼운 매체에 제 얘기를 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기본적으로 있는 것 같고, 제가 다른 사람들 글을 읽을 때에도 너무 자신의 절절한 사생활 이야기를 써놓은 것을 보면 저는 좀 그렇더라고요. 이런 저의 개인적 취향들이 묻어있는 책인 것 같습니다.
대화 중간엔 윤성호 감독과 정바비가 이번 책의 일부를 낭독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윤성호 감독은 ‘여름의 문’을, 그리고 정바비는 관객 한 명과 함께 ‘Queer As Cock’을 낭독했다.
“내가 기다리는 계절은 단 하나뿐이다. 여름. 그 안에서, ‘햇살이 강렬해 사람을 쏴죽였다’는 이의 이야기를 읽고, 죽은 노인들이 손자의 결혼식장에서 되살아나는 영화를 보며, 맥주를 화제로 맥주를 마시는 것이다. 더 이상 시간의 죽음 따위는 아쉬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츠다 세이코의 <여름의 문>을 들어야 한다.” (‘여름의 문’ 322~323쪽)
낭독이 끝난 후, 정바비와 평소 친분이 있다는 밴드 ‘짙은’의 ‘성용욱’이 게스트로 등장했다. 그가 나온 후 세 사람의 유쾌한 이야기가 이어지며 북토크의 분위기는 더욱 달아올랐다. 북토크 중간 중간 짙은은 관객들에게 특유의 목소리로 담담하면서도 감성적인 노래를 들려줬고, 정바비가 직접 가사를 번안한 ‘스피츠’의 ‘체리’를 정바비와 함께 부르기도 했다.
세 사람의 토크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관객들의 질문에 답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행사가 시작하기 전 관객들에게 미리 받은 질문들에 답을 하기 이전에, 정바비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받은 질문들이 몇 가지 있다며 그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작가로서 첫 발걸음을 뗐는데 감회가 어떤지?
낯설기는 하지만 사실 그렇게 큰 느낌은 없어요. 대학교 때 보면 모두가 사귀는 줄 아는데 사실 커플은 아니고 되게 친한 남녀 동기 있잖아요. 근데 졸업하고 나서 둘이 결혼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아 역시 결국 그렇게 됐구나’ 하게 되는. 책을 낸 과정도 사실 그런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책을 좀 더 일찍 내는 게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늦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가장 좋아하는 소설과 에세이는 무엇인지? 그리고 이번 책에서 특히 마음에 드는 글은?
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처녀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제일 좋아해서 여름이 오면 꼭 한 번씩 읽는 편이에요. 그 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구절은 ‘항상 무언가에 대해서 배운다는 자세를 가지고 있으면 나이를 먹는 것도 그렇게 힘든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고요. 에세이는 특별히 좋아하는 건 없지만, 이런 자리를 통해서 하나 소개해 드리자면 맛 칼럼니스트로 알려져 계신 황교익 씨의 글을 굉장히 좋아해요. 사실 식생활이라는 것도 정치적인 것과 밀접하게 연계돼있잖아요.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인문학적인 면도 있고, 특히 문장이 너무 좋아요. 그리고 제 산문집에서 좋아하는 글을 꼽자면 아까 낭독한 ‘여름의 문’도 좋아하고요. 쓰고 나서 뿌듯했던 글은 ‘불편의점의 점장이 되고 싶다’였어요.
“불편의점에 들어가려면 일단 좁고 낮은데다 굉장히 뻑뻑한 미닫이문을 열어야 할 거다. 몸의 반동을 이용하여 있는 힘껏 밀어제쳐야 쇠가 긁히는 굉음을 내면서 겨우 반쯤 열리는 그런 문 말이다. 하지만 문이 열린다면 그날은 운이 좋다. 불편의점의 알바생은 당신이 방문한 그 순간 십중팔구 가게 문을 닫고 근처에서 식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의 세계를 스칠 때』 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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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의 세계를 스칠 때 정바비 저 | 알에이치코리아(RHK)
언제부터인가 이 사람의 글은 여러 곳에서 회자가 됐다. 인생의 사이드에서 보편적 감성을 특별하게 들려주는 그의 글은 착하지도, 따뜻하지도, 친절하지도 않다. 오히려 비딱하고 때론 불편하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의 그런 시선은 수많은 사람에게 파장을 일으켰다.매일 몇 편씩 읽어도 좋고, 마음 가는대로 아무 페이지나 드문드문 읽어도 좋다. 온갖 망상과 몽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늦은 밤, 바람 맞으며 미로 같은 길을 산책하고 싶을 때, 연애에 실패해 바닥을 기고 있을 때, 이 책은 각각의 용도에 맞게 꽤 적당한 안내자가 되어줄 것이다. 시크(한 척)하지만 은근히 배려 깊은 유쾌한 친구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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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예원
재미있는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책과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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