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끝내주는 명언이다. 읽은 책보다 읽지 않는 책이 더 많은 상황에서도 또 다시 예스24를 뒤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내가 이 책을 샀는지 안 샀는지 가물가물해서 한참을 고민하고 있을 때, 그리고 또 샀냐며 아내의 잔소리를 들을 때에도 나는 이 말을 떠올린다.
글ㆍ사진 전건우
2014.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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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쟁이 우후훗!


욕심이 많다는 건 삶의 욕구가 강하다는 뜻이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이런 구절이 담긴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말이었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사고 싶고, 먹고 싶고, 소유하고 싶다는 건 어쩌면 그런 것들을 통해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내가 유독 욕심을 부리는 대상은 책이다. 가난하고 또 가난했던 시절(지금도 별반 달라진 건 없지만), 내 꿈은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사는 것이었다.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도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나는 그야말로 내 몫의 책을 소유하고 싶었다. 책장에도 다 들어가지 못할 만큼 많은 책, 그래서 집안 구석구석 바벨탑처럼 아슬아슬하게 쌓아올린 책 더미 속에서 살아갈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을 듯했다.

 

취직을 하고, 결혼 후에 내 몫의 방이 생기면서 나는 그 꿈을 위해 맹렬히 돌진했다. 조금이라도 관심이 가는 책이라면 무조건 사 모았다. 매일매일 예스24를 들여다보면서 책 구경하는 게 일과 중 하나였다. 재미있겠다 싶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장바구니에 담는다. 그런 식으로 일주일만 지나면 백 권이 훨씬 넘는 책이 쌓인다. 한 번에 몽땅 주문할 정도로 간 큰 남자가 아니기에, 나는 나름의 우선순위를 정해서 책들을 산다. 일주일에 서너 권 씩. 신혼 때 마련한 3단짜리 책장 두 짝은 금세 다 채워졌다. 결국 이곳저곳 빈틈만 보이면 쑤셔 넣기 시작했고 회사에 다니던 시절에는 내 개인 책상 아래 박스째로 쌓아두기도 했다.


문제는 사기만 하고 읽지는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책 읽는 속도가 제법 빠른 축에 속하지만 그 어마어마한 양을 따라잡기는 불가능했다. 공급은 넘쳐나는데(더불어 통장 잔고는 줄어들고) 수요는 따라가지 못하는 아주 곤란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때쯤에는 아내의 잔소리도 극에 달했으니……. 게다가 잦은 이사를 할 때마다 책들은 걸림돌이었다. 아니, 이사 비용을 증가시키는 주된 요인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요즘도 꾸준히 책을 사 모은다. 백수 작가인 관계로 예전처럼 왕성한 ‘지름’을 선보이지는 못하지만 대신에 각 출판사에서 주는 책들의 양이 또 만만치 않다. 이제는 내가 무슨 책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를 지경에 처했지만 이놈의 욕심은 바닥을 드러낼 줄 모른다.

 

그러던 중에 결국 사단이 났다. 똑같은 책을 세 권이나 구입한 것이다. 그것도 2권짜리 시리즈 중 1권만. 같은 책 세 권을 앞에 두고 나는 스스로를 향해 혀를 차고 말았다. 그리고 문득 인터넷을 돌아다니는 유명한 ‘짤방’을 떠올렸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끝내주는 명언이다. 읽은 책보다 읽지 않는 책이 더 많은 상황에서도 또 다시 예스24를 뒤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내가 이 책을 샀는지 안 샀는지 가물가물해서 한참을 고민하고 있을 때, 그리고 또 샀냐며 아내의 잔소리를 들을 때에도 나는 이 말을 떠올린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에이, 인간이 그런 것을 어쩌겠는가. 그래서 인간인 걸. 원래 산다는 게 욕심으로 가득한 일. 한때 유세윤이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게스트의 성공가도를 쭉 나열하다가 마지막에 ‘욕심쟁이 우후훗’하고 덧붙였던 말이 괜히 유행어가 된 게 아니다. 욕심은 삶의 원동력이 되어 찬란한 결실을 맺게 도와주기도 한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지만.

 

몽환화

 

노란 나팔꽃, 『몽환화』


대부분의 대중소설은 인간의 욕망에 의한 갈등을 중심 소재로 다룬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특히 그 방면에 탁월하다. 베스트셀러가 된 『용의자 X의 헌신』은 사랑의 욕망을 다뤘고 『방황하는 칼날』은 복수에 대한 욕망을 다뤘다. 최근에 국내에 소개된 『몽환화』역시 비슷하다. 인간의 욕망과 욕구, 그리고 그에 따른 끔찍한 사건이 등장한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가 될 법한 소재들을 제법 괜찮은 요리로 만들어 냈다. 나는 소설이란 요리와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인데, 그 때문인지 각 나라별 소설가는 그곳 특유의 음식 문화와 비슷한 작품을 남긴다는 인상을 받는다.


히가시노 게이고를 비롯해 일군의 일본 미스터리 작가들은 덮밥이나 스시 같은 일본 전통 음식의 특징을 소설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낸다. 여러 소재와 장르가 들어있으나 그 재료의 맛 하나하나가 살아있다. 반면 우리나라 작가들은 비빔밥처럼 재료들이 뒤섞여서 새로운 맛을 내는 소설을 쓴다. 같은 면 요리라도 그 안에 들어간 식재료 고유의 맛이 살아있는 일본의 우동과 모든 고명을 양념간장으로 휘휘 섞어 구수하고 시원한 맛으로 재창조해내는 잔치 국수는 얼마나 다른가? 그런 의미에서 요 몇 년 간 일본 대중소설이 각광을 받는 것과 일본 요리가 인기를 끄는 것에는 상관관계가 있어 보인다. 뭐, 순전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이다.


다시 작품 이야기로 돌아가서, 『몽환화』는 앞서 주절거린 특징이 고스란히 반영된 작품이다. 그러니까 인간의 욕심이라는 큰 소재 아래, 에도 시대에는 있었으나 이제는 사라져버린 전설의 노란 나팔꽃, 꿈을 포기한 전직 국가대표 수영 선수, 가족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대학원생, 1962년에 일어난 무차별 살인 사건, 심지어 원자력에 대한 문제까지 다양한 재료들이 딱 먹기 좋은 형태로 담겨 있다.


할아버지 죽음의 비밀을 파헤치는 리노, 그런 리노를 도우면서 자기 가족과 관련된 수상한 사건들을 짚어가는 소타,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사건을 파헤치는 형사 하야세, 그리고 소타의 배다른 형이자 모든 비밀을 손에 쥔 채 은밀히 행동하는 요스케까지, 히가시노 게이고는 네 명의 인물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차츰차츰 밝혀나간다. 물론,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작품이 그렇듯 이야기는 술술 읽히고 갈등은 금세 해소되며 진상은 비교적 빨리 드러난다. 책을 한 번 손에 들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는 점도 전작들과 똑같다.


이 작품 속 이야기의 중심에는 몽환화라 불리는 전설의 노란색 나팔꽃이 있다. 모든 사건이 몽환화로 연결되는 이야기의 결말 부분에 이르러서는, 인간을 멸망으로 이끈다는 이 꽃의 정체가 궁금해진다.몽환화는 인간의 욕심을 밑거름으로 자란다. 저주받은 이 꽃이 에도 시대를 넘어 현재에도 유력을 발휘해 잔인한 사건을 만들어낸 것도 바로 욕심이 개입되었기 때문이다.


『몽환화』는 비뚤어진 욕망과 욕심에 사로잡힌 인간이 어디까지 떨어질 수 있는지를 아주 잘 보여준다. 그저 최선을 다해 자랄 뿐인 이 신비로운 노란색 나팔꽃이 ‘인간을 멸하는 꽃’으로 불려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 것도 욕심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꽃을 되살려 낸 것 역시 욕심이 원인이었으니, 그야말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다.

 

욕망한다, 고로 존재한다


여섯 살 아들의 소원은 장난감 가게를 가지는 것이다. 집안에 차고 넘치는 장난감으로는 성에 안 차는 것이다. 녀석은 하루에도 몇 번씩 자기 생일이 되면(아직 까마득히 멀었는데도!) 뭘 사 달라고 구체적인 요구를 한다. 문제는 가지고 싶은 게 매번 바뀐다는 사실. 일주일 전만 해도 또봇이었다가 며칠 전부터는 장수풍뎅이를 사 달라고 하더니 어제는 또 파워레인저가 좋단다. 그러면서 결론은 늘 그거다.


“장난감 가게를 통째로 가지고 싶어.”


짜장면을 좋아했던 나는 중국집 사장이 되고 싶었다. 치킨집을 해서 매일 마음껏 치킨을 먹었으면 하고 바랐던 적도 있었다. 지금의 내 욕심은 나이가 들었을 때 아주 작은 서점 하나를 갖는 것이다. 그러면 마음껏 책을 사고 읽을 수 있을 테니까. 과연 그때까지 이 땅에 서점이라는 게 남아있을지 의문이긴 하지만…….


『몽환화』 속 인물들은 각자의 욕망에 충실하다. 그래서 누군가는 살인을 저지르고 누군가는 자살을 한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사건을 해결하기도 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지만,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만 그럼에도 이 세상이 별 탈 없이 돌아가는 건 대부분의 욕망과 욕심이 선한 쪽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 믿는다. 사건의 중심에 뛰어든 『몽환화』의 네 주인공이 바로 그런 인물들이다.


백 원짜리와 오백 원짜리, 그리고 천 원짜리와 만 원짜리를 잘 구분하지 못하면서도 아들은 늘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단다. 그게 꿈이란다. 장난감 가게를 차리려면 돈이 많이 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구나 싶어 그 이유를 물어보면 녀석은 이렇게 대답한다.


“엄마 아빠 맛있는 거 사주려고.”


오냐. 그런 욕심은 마음껏 품으렴. 아빠는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인기 작가가 되어서 네가 그토록 좋아하는 소고기를 많이 사주겠다는 욕심으로 살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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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화 히가시노 게이고 저/민경욱 역 | 비채
“장장 10년, 이렇게 긴 시간과 많은 공을 들인 작품은 여태껏 없었습니다.” _히가시노 게이고, 월간 〈역사가도〉에 연재가 끝나고 수차례 개고를 거쳐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기까지 장장 십 년이 걸렸다. 에도시대에는 존재했으나 지금은 볼 수 없는 노란 나팔꽃을 추적하는 고품격 미스터리극 《몽환화》는 “수면 아래 한없는 저력을 감춘 빙산과 같은 작가”라는 상찬과 함께 슈에이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제26회 ‘시바타렌자부로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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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화 #전건우 #히가시노게이고
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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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보석

2014.07.15

저도 책 욕심이 많아서 한때는 엄청 많은 책을 갖고 있었는데 이사를 1년마다 하다보니, 그것도 작은 집으로 가다 보니 책이 다 짐이 되어 울면서 버린적이 있었어요. 엄마 아빠 맛있는거 사주려고 돈 많이 벌고 싶은 대견한 아들이 있어 참 좋겠네요.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어도, 선한쪽의 욕심은 빛이 나겠지요? 꼭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인기 작가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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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ryberry

2014.07.14

전 같은책을 두번이나 도서관에서 빌린적이 있죠. 다 읽어놓고 또 제목만 보고 재미있겠다 그러면서 빌린 책. 외과의사. 결국 두번 다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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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건우

남편, 아빠, 백수, 소설가, 전업작가로 살아간다. 운동만 시작하면 뱃살이 빠지리라는 헛된 믿음을 품고 있다. 요즘 들어 세상은 살 만하다고 느끼고 있다. 소설을 써서 벼락부자가 되리라는 황당한 꿈을 꾼다.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3』,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에 단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