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파노라마
거침없는 대자연 속에서 스스로에게 확인한다. 내가 여기에 있었다고. 자신의 눈과 카메라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여행의 순간. 스위스, 그 기막힌 풍경의 단면을 만난다.
글ㆍ사진 론리플래닛매거진
2014.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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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고르너그라트 정상에서 조망하는페닌 알프스.

정면에 피라미드 형태로 우뚝 솟은 봉우리가 바이스호른이다.

 

Gornergrat, Zermatt
체어마트 고르너그라트

 

해발 3,089미터. 철도역이 있기엔 조금 과하게 높다. 그래도 고르너그라트 철도(Gornergrat Bhan)는 스위스 여행 산업의 태동기인 1898년부터 지금까지 여기에 올라왔다. 지금껏 소요 시간만 조금 빨라졌을 뿐이다. 체어마트를 출발한 기차가 천천히 고도를 높이면 몸을 숨긴 봉우리들이 하나 둘씩 등장한다. 단지 마터호른(Matterhorn)을 보기 위해 이 기차를 탔다는 생각은 버리자. 종착역에 다다른 후 마주하는 광경은 가슴을 단번에 내려칠 만큼 강렬하니까. 역에서 조금 더 올라가 고르너그라트 정상(3,135미터)에 서면, 마터호른과 서유럽 최고봉 몬테로사(Monte Rosa), 피라미드를 닮은 바이스호른(Weisshorn) 등 페닌 알프스(Pennine Alps)의 4,000미터 급 봉우리가 360도로 펼쳐진다. 발아래에서는 운무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고르너그라트 빙하(gornergrat glacier)마저 보인다. 아마 수백 장의 사진을 찍게 될 테니, 여분의 카메라 배터리를 꼭 챙기자.

 

+고르너그라트 철도는 체어마트 역 바로 앞에 자리한 전용 역에서 출발한다. 고르너그라트 역까지 약 33분 걸린다. 편도 42프랑, 스위스패스 소지 시 50퍼센트 할인, gornergratbahn.ch


고르너그라트 쿨름은 페닌 알프스를 그냥 두고 내려갈 수 없는 여행자를 위한 호텔이다. 1907년 처음 문을 열었고, 최근 레너베이션을 거쳐 내추럴하고 깔끔한 객실을 갖췄다. 운이 좋으면 아침에 눈떴을 때 창밖에 걸린 마터호른을 볼 수 있다. 저녁 식사 포함 2인 355스위스프랑부터, gornergrat-kulm.ch

 

스위스

후기 바로크의 화려한 장식을 자랑하는 장크트갈렌 수도원 도서관.

 

St.Gallen Abbey Library, St.Gallen
장크트갈렌 수도원 도서관

 

오라(Aura). 이 단어를 알고 있기에, 장크트갈렌 수도원 도서관을 미약하게나마 표현할 수 있어 다행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아름답고, 유려하고, 심오한 후기 바로크 양식의 도서관은 그 어떠한 공간과도 비교하기 어렵다. 마치 이곳은 인류 문화의 대뇌피질(이라는 게 있다면) 중 일부를 옮겨놓은 듯하다. 수도원과 도서관은 총 17만 권의 고서를 소장하고 있으며, 심지어 그중 2,100여 권은 10세기 이전에 제작한 필사본이다. 고대 독일어나 아일랜드어로 쓴 책 중 가장 오래된 것, 음악을 언어와 기호로 표기한 최초의 문헌,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도시 설계도 등 유럽의 법학, 문학, 의학, 음악을 아우르는 방대한 지식이 이 도서관에서 숨 쉰다.


아일랜드 출신의 수도승 갈루스(Gallus)는 612년 현재 장크트갈렌 수도원이 있던 자리에서 은거하며 신앙을 이어갔다. 그후 8세기 초 성인이 된 그를 기려 수도원을 지었는데, 이것이 장크트갈렌의 시초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 도시가 ‘책과 섬유’로 이뤄졌다고 말한다. 실제로 장크트갈렌은 중세 시대 때 서유럽 종교와 학문의 중심지 중 1곳이었다. 그리고 16세기부터는 리넨 산업으로 큰 부를 축적했다. 즉 책은 장크트갈렌의 문화이고 섬유는 자본인 것이다. 다행스러우며 부럽게도 섬유 산업의 발전은 문화 발전에도 크게 기여해 장크트갈렌 수도원과 도서관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도서관에 처음 발을 들여놓는 순간, 뭔가 중요한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제 삶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겠네요.” 도서관 사서의 말이 정답이다. 라틴어 “ψγxhσ Iatpeion(영혼을 치유하는 곳, The house if healing for the soul)” 이라고 써 있는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형언할 수 없는 기운이 온몸을 휘감는다. 2014년에서 단숨에 500년쯤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것 같다. 도서관은 고서와 균형을 맞추려는 듯 안에 존재하는 무엇 하나 슬쩍 넘어가지 않았다. 천장의 프레스코화와 벽토, 천사 조각상, 세공한 마룻바닥, 난간과 기둥 등은 각각 정교한 예술품과 다름 없다. 이 모든 요소가 인류의 지식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자리를 완벽하게 보조해준다. 한마디로, 이 도서관은 걸작이다.

 

장크트갈렌 수도원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수도원의 성당은 에메랄드색 코린트 장식과 어두운 천장화가 특징이다. st.gallen-bodensee.ch


장크트갈렌 도서관 입장료 12스위스프랑(스위스패스 소지 시 무료), 10am~5pm(월~토요일), 10am~4pm(일요일,공휴일)

 

스위스

호텔 필라투스 클룸과 전망대.
스위스의 전망 좋은 산 위에는 이미 100여년 전부터 호텔이 들어섰다.

 

Pilatus, Luzern
루체른 필라투스

 

루체른 시내에서 주변 산을 올려다볼 때면, 유달리 회색 운무에 자주 뒤덮인 봉우리 1개가 눈에 띈다. 그것이 바로 필라투스다. 정상부의 산세가 기괴하고 날씨도 변화무쌍해서 옛날부터 용이 사는 곳이라고 여졌고,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명령한 로마제국의 총독 폰티우스 필라투스(Pontius Pilatus)의 영혼이 갇혀 있다는 전설 때문에 산 이름을 필라투스라 불렀다. 오늘날에는 정상에서 바라보는 광활한 대지의 풍경과 100년이 넘은 산악 호텔 그리고 톱니바퀴 기차가 필라투스의 전설이다.

 

경사도 48퍼센트의 세계에서 가장 가파른 각도를 올라가는 톱니바퀴 기차를 타면, 행여나 반대편에서 오는 기차가 나를 향해 엎어지지 않을까 걱정마저 든다. 몇 마리의 아이벡스(ibex, 산악 염소)를 지나쳐 도착한 정상에서는 1시간에도 몇 번씩이나 시야가 변한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용의 새끼가 살았을 법한 산악 동굴을 통과해 이런저런 트레킹 루트를 돌아보자. 희한하게도 어느 한쪽은 시야가 트여 있을 것이다. 루체른 주의 평원과 호수가 윤슬처럼 빛나는 황홀한 풍경을 마주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호텔 필라투스 클룸(Hotel Pilatus Klum)은 영화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에 등장하는 호텔과 무척 비슷하다. 1890년에 오픈했고, 2010년 대대적 레너베이션을 거쳐 외관은 유지한 채 최신 시설을 추가했다. 지하에는 호텔의 역사를 알려주는 작은 전시실도 있다. 저녁 식사 포함 2인 370스위스프랑, pilatus.ch


필라투스 정상으로 가는 일반적인 루트는 알프나흐스타드(Alpnachstad)에서 톱니바퀴 기차를 타고 올라가고, 내려올 때는 케이블카로 크리엔스(Kriens)에 도착하는 것이다. 68스위스프랑(스위스패스 소지 시 50퍼센트 할인), pilatus.ch

 

스위스

그라우뷘덴(Graub?nden) 주,
알불라 계곡의 다리와 터널을 통과하며 점차 고도를 높이는 베르니나 익스프레스.

 

Bernina Express, Alp Grum
알프 그륌 베르니나 익스프레스

 

스위스에서 초특급열차를 논하는 건 좀 쓸데없는 일이다. 더불어 기차의 공학적인 우수성을 두고 어느 나라가 낫다고 말하는 대화도 마찬가지다. 시속 300킬로미터로 달리는 열차가 360도로 급격히 회전하며 터널과 다리를 들락날락하는 묘기를 부리기란 애당초 불가능한 것 아닌가. 스위스에서 기차는 정교하게 산을 타고 넘으며 계곡을 휘저어야 한다. 출도착 시간을 정확히 맞추는 것은 기본이고, 대도시건 해발 2,000미터에 위치한 마을이건 어디나 갈 수 있어야 한다. 기차를 중심으로 버스, 배, 케이블카 등이 조합된 교통 체계인 스위스 모빌리티(Swiss Mobility)는 스위스산 명품 시계의 무브먼트를 꼭 닮았다. 그 때문에 기차에 관해서라면, 이 나라를 믿을 수밖에 없다.


베르니나 익스프레스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철도 구간을 달린다. 스위스의 유명한 여러 철도 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창밖 풍경을 자랑한다고 할 수 있다. 스위스 동부 지역의 중심 도시 쿠어(Chur)에서 이탈리아 티라노(Tirano)까지 연결하며 55개의 터널과 196개의 다리를 지나가니 얼마나 다이내믹한 여정이 될지 쉽게 상상이 된다.
쿠어를 출발한 기차는 초반에는 라인 강 상류를 따라 느긋하게 달린다. 그러다가 튀시스(Thusis)를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알불라(Albula) 계곡에선 흩어진 터널과 다리를 거침없이 통과하며 경사를 오르는데, 만약 당신이 기차의 맨 앞칸에 탔다면 맨 뒷칸에서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민 여행자와 눈이 마주칠 수도 있다. 가장 높은 해발 2,253미터의 오스피지오 베르니나(Ospizio Bernina)를 넘어설 때는 천상 같은 풍경 아래서 호박색으로 빛나는 해빙 호수가 시선을 끈다. 그 후 기차는 2,091미터에 자리한 알프 그륌에서 잠시 정차. 이때 어서 내려 협곡을 따라 서서히 내려가는 기차를 촬영하거나 알프스를 친구 삼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겨보자. 날씨가 좋으면 저 아래로 펼쳐지는 이탈리아의 진녹색 영토까지 볼 수 있다.

 

베르니나 익스프레스는 쿠어를 출발해 오스피지오 베르니나를 넘어 이탈리아의 티라노까지 운행한다. 여름철에는 티라노에서 스위스 루가노(Lugano)까지 전용 버스를 운행해 스위스 기차 여행을 이어갈 수 있다. 쿠어에서 티라노까지 2등석 편도 63.4유로(예약비 포함, raileurope.co.kr), 스위스패스 소지 시 유료 예약만 하면 된다(예약 14스위스프랑, rhb.ch).

 

스위스

스탄저호른 정상 전망대에서는 목가적인 스위스 풍경이 가깝게 보인다.

 

Stanserhorn, Luzern
루체른 스탄저호른

 

명소를 가본 여행자도 스탄저호른은 잘 모를 것이다. 일명 ‘레이지 마운틴(lazy mountain)’이라는 별칭을 가진 스탄저호른은 재미있게 올라가서 널브러진 채 쉬다가, 다시 재미있게 내려올 수 있는 그런 산이다. 루체른 선착장(Luzern Bahnhofquai)에서 페리를 타고 루체른 호수를 가로질러 헤르기스빌(Hergiswill)에 도착한 다음 기차로 갈아타고 스탄스(Stans)에서 하차, 거기에서 또 5분 정도 걸어야 스탄저호른 역(Stanserhorn Bahn). 얼핏 듣기에 출발조차 고단할 것 같으나, 막상 떠나보면 멋들어진 호수 풍광이 24부작 드라마처럼 줄을 잇기 때문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스탄저호른 철도는 1893년 첫 운행을 시작했다. 이 또한 100년이 넘은 것. 스위스의 유명 산악 휴양지를 오르는 철도는 최소 백 살은 되어야 명함을 내밀 수 있겠다. 옛날 외관을 그대로 재현한 목제 기차를 타고 야트막한 초원을 오르다가 경사가 급해지면 케이블카로 갈아탄다. 그것도 보통 케이블카가 아니라, 스위스 전역의 약 260개 케이블카 중 유일무이한 개방형 2층 케이블카 카브리오(CabriO)다. 각종 케이블카를 타봤다고 자부하는 이도 처음 보는 순간 약간의 충격을 받을 것이다. 2년 전 첫 선을 보였으니 아직 신인 축에 속한다. “너 그거 타봤어?”라고 뽐내기에 좋은 소재라는 말이다. 실제로 카브리오는 자랑할 만하다. 지붕 없는 2층 데크에서 내려다보는 루체른 일대는 시원함을 넘어서 막 뛰어들고픈 감정마저 유발한다.


정상에는 전망대와 360도 회전 레스토랑, 노천카페 등이 모여 있어 게으르게 쉬기에 알맞다. 산 주변에 점점이 자리한 시골 마을은 햇살을 담뿍 받은 탓에 3D 영화처럼 선명하게 보인다. 오묘하게 펼쳐진 주택과 오솔길을 세어보는 일이 지루해질 때쯤, 마멋(marmot)에게 먹이를 주거나 짧은 하이킹으로 몸을 점검해보자. 현지인의 말에 따르면, 이렇게 게으르게 시간을 때우다가 마지막 케이블카를 타고 석양 아래로 내려갈 때가 제일 환상적이라고 한다.

 

스탄저호른 정상에는 목제 기차와 개방형 케이블카 카브리오(CabriO)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 물론 체력 부담이 없다면, 도보 등정도 해볼 만하다. 시원한 자연환경과 흥미로운 액티비티뿐 아니라 친절한 스태프 덕분에 현지인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열차와 케이블카 이용 왕복 74스위스프랑, stanserhorn.ch

 

스위스

하이디 마을을 방문한 가족 여행객의 즐거운 한때.
하이디를 만나러 전 세계에서 매년 약 8만 명이 찾아온다.

 

Heididorf, Maienfeld
마이엔펠트 하이디 마을

 

하이디를 좋아하는 사람은 마이엔펠트가 동화 속 동네라는 생각을 할 것이고, 하이디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은 마이엔펠트가 정말 아늑한 동네라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두 부류의 사람 모두 하이디를 보고 깜짝 놀랄 것이다.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창조한 하이디의 얼굴을 보고 말이다.


요한나 슈피리(Johanna Spyri)가 1881년 발표한 소설 속 여자아이는 명실상부한 세계적 스타다. 스위스는 예술과 건축 분야에 위대한 인물을 다수 배출했지만, 엔터테인먼트 쪽에서는 아직까지 하이디를 따라갈 자가 없다. 다카하타 이사오가 연출한 일본의 장편 애니메이션은 하이디를 스위스의 아이콘으로 올려주었다. 그래서 마인펠트의 많은 것이 하이디로 통한다. 하이디 호텔, 하이디 레스토랑, 하이디 마을의 하이디 집과 하이디 박물관, 하이디 트레일, 하이디 와인 등등. 특히 100년 전 산골 마을을 재현해놓은 하이디 마을에만 매년 8만 명에 가까운 여행자가 찾아온다. 더 나아가 마인펠트를 포함한 인근 지역 일대를 하이디란트(Heidiland)라고도 부른다. 구글 지도 상에도 없는 하이디의 나라가 이곳에 자리 잡은 셈이다.


아시다시피, 하이디는 실존 인물이 아니다. 그 알프스 소녀의 친구나 할아버지도 실존 인물이 아니다. 작가 슈피리는 취리히에서 살다가 친구가 사는 마을 예닌스(Jenins)에서 여름휴가를 보냈는데, 그때 옆 동네 마이엔펠트를 산책하며 시골에 온 프랑크푸르트 출신 아이를 상상했다고 한다. 마치 취리히에서 온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 이야기였다. 과연 이곳에 와보면, 동화 1편쯤은 문제없이 써 내려갈 수 있을 것 같다. 마이엔펠트가 자리한 스위스 동부 자르간저란트(Sarganserland) 지역은 창연한 그림 같은 자연환경이 매력. 날씨마저 화창한 여름날에는 눈이 부실 만큼 깨끗한 풍경을 선보인다. 그 정점은 역시 하이디 마을이다. 멀리 눈 덮인 산군을 배경으로 펼쳐진 초지와 마을, 포도밭, 거기에 점점이 누워 있는 염소와 젖소 몇 마리가 어우러진 모습은 보기만 해도 신심이 맑아질 것이다. 이렇게 완벽한 자연환경과 더불어 살아가니, 하이디의 친구 클라라가 두 다리로 일어설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이디 마을은 하이디의 집, 하이디 할아버지의 집, 하이디 박물관, 하이디 트레일 등으로 이루어졌다. 박물관에서는 초기 하이디 판본과 세계 각국에서 발행한 번역본을 전시하는데, 오리지널 하이디의 얼굴은 역경을 이겨낸 남자아이를 닮았다. 다행히 대부분의 기념품에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귀여운 하이디의 얼굴을 새겼다.  heididorf.ch

 

스위스

몬테벨로에서 바라본 벨린초나 구시가와 카스텔그란데.
도시는 오랫동안 이탈리아의 지배를 받았다.

 

Castelgrande, Bellinzona
벨린초나 카스텔그란데

 

그리 크지 않은 도시에 3개의 견고한 성을 지은 이유는 무엇일까. 스위스 속의 이탈리아, 그러니까 스위스 남부 티치노(Ticino) 주의 주도인 벨린초나를 지키는 3개의 성, 카스텔그란데, 몬테벨로(Montebello), 사소 코르바로(Sasso Corbaro)는 이 도시의 운명을 대변해준다. 알프스 끝자락에서 움푹 들어간 평탄한 지형에 자리해 고대 로마 시대부터 어쩔 수 없이 교류의 길목이 되어야만 하던 운명 말이다.


벨린초나는 대대로 이탈리아와 유럽이 충돌하던 곳이었다. 이탈리아 군은 이 도시를 지나면 고타드 패스(Gotthard Pass) 등의 주요 알프스 루트를 넘어 단숨에 스위스와 유럽 중심부까지 진격할 수 있었다. 그 반대로 스위스 군이나 서유럽의 군대는 고타드 패스를 넘어 벨린초나까지 손에 넣으면 이탈리아 밀라노까지 거침없이 갈 수 있었다. 전쟁에 별 관심이 없다면, 그냥 벨린초나를 차지해서 중부 유럽과 이탈리아를 오가는 상인에게 막대한 세금을 받을 수 있어 좋았다.


도시로서 전성기를 구가하던 14~15세기에 벨린초나는 밀라노 왕국의 지배를 받았는데, 오늘날 남아 있는 3개의 성은 모두 당시 제대로 완공한 것이다. 여기서 ‘제대로’라는 단어를 쓴 이유는, 카스텔그란데는 무려 4세기부터 같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카스텔그란데는 벨린초나의 상징과 같은 유적이다. 도시 한복판에 있는 성체는 평지보다 약 50미터 높은 곳에 자리해 한층 웅장해 보인다. 망루까지 오르면 나지막하게 펼쳐진 구시가가 보이고, 벨린초나의 지정학적 특징을 단번에 확인 가능하다. 시선을 멀리 두고 보면, 양옆으로 산을 낀 2개의 계곡이 북쪽으로 이어진다. 바로 알프스로 넘어가는 길이다. 남쪽으로 보이는 길은 당연히 이탈리아 방향. 세 갈래의 길이 카스텔그란데에서 절묘하게 만나고 있다. 수천 년 동안 무수한 상인과 군인이 바로 여기를 지나갔다니, 역사책의 한 단락을 고스란히 간직한 성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카스텔그란데는 연중무휴로 개방하는데 내부 관람 시간은 계절과 요일에 따라 다르다. 올라갈 때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고 내려올 때는 도보로 성벽 넘어 구시가까지 가보자. 성안에는 레스토랑과 박물관 등도 자리하고 있다(입장료 무료, 성 내부 정원 개방 시간은 9am~10pm, bellinzonaturismo.ch). 카스텔그란데를 포함해 몬테벨로, 사소 코르바로 등 벨린초나의 모든 성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그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소 코르바로를 갈 때에는 택시가 편하다.

 

 

허태우는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 편집장이다.

 김주원은 좋은 사진을 위해서라면, 극한의 환경까지 주저 없이 찾아가는 사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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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ely planet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 : 7월 안그라픽스 편집부 | 안그라픽스
외국에서 지내다 보면, 일정이나 비행기 탑승 시간 등 때문에 본의 아니게 나 혼자만 현지에 남는 경우가 생긴다. 이미 오랜 외유로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진 터라 귀국한다는 마음으로 들뜬 사람을 혼자 배웅하는 기분은 썩 좋을 리 없다. 혹시 현지인에게 박대라도 받는다면, 너덜너덜해진 마음이 다 찢어질 때까지 목에 핏대를 세우고 싸울 마음이 가득한,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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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리플래닛 #스위스 #해외여행 #스위스여행 #루체른 #취리히 #산타마을 #알프스
5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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샨티샨티

2014.08.19

자연적인 힘이 영혼 속으로 파고들어오는 듯한 차각에 빠져듭니다. 100년 전에 세워진 호텔에서 하룻밤 묵으며 목가적인 풍경을 내려다보는 일이 소중한 일처럼 여겨지네요. 꿈 많은 소녀 하이디 마을을 방문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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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치

2014.08.18

너무 멋져서 눈물이 나네요. 저도 직접 저런 풍경을 눈에 담아보고 싶어요. ㅠㅠ 엉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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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신

2014.07.31

스위스의 자연은 압도적이면서도, 뭔가 친근한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동화적 색채가 강해서일까요... 아름다운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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