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전시] '다원적 예술 경험' 하반기 가장 주목받는 전시
파스텔로 그림을 그리는 니콜라스 파티는 말한다. “공기 속 먼지가 되어버릴 수 있는 예술 작품에는 시적인 면이 있다”고. (『Nicolas Party』, Phaidon Press, 2022)
글ㆍ사진 안동선 (미술 전문기자)
2024.10.25
작게
크게

니콜라스 파티. 사진 : 이우정

지난 8월 31일 개막하여 내년 1월 19일까지 용인 처인구 호암미술관에서 열리는 《니콜라스 파티: 더스트》는 올 하반기 가장 주목받는 전시다. 니콜라스 파티는 스위스 로잔 외곽,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라 뉴욕에서 활동 중인 화가다. 그는 40대 초반이며, 하우저앤워스, 카르마, 더 모던 인스티튜트 등 다섯 곳의 갤러리에 소속되어 있다. 국제적으로 높은 인기는 지난 9월 4일부터 7일까지 열린 ‘프리즈 서울 2024’에서도 확인했는데, 페어 첫 날 하우저앤워스 갤러리에서 그의 파스텔화 (2021년)가 아시아 컬렉터에게 2백5십만 달러(33억 4천여만 원)에 팔려 그날 최고 기록을 세웠다.

니콜라스 파티는 무엇으로 미술계를 사로잡았을까? “작가에게 미술사는 ‘보물창고’와 같아요. 그는 고대부터 근현대를 아우르며 폭넓게 연구하고, 방대한 아카이브에서 발견한 양식, 재료, 테크닉 등을 샘플링해 자기만의 독자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죠.” 8월 2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전시를 기획한 곽준영 전시기획실장이 말했다. 다시 말해 작가는 회화라는 유구한 매체를 다루면서 (서양) 미술사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알아차릴 수도 있는 요소를 매력적으로 섞고 거장의 기술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되살렸다. 이 방법은 성공적이었다.

또한 작가에게는 그림에 대한 학구적인 열정에 버금가는 반항아의 면모도 강했는데, 십 대 시절에는 고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할 정도로 그라피티에 몰두했다. 대학에서는 처음에 영화를 공부하다가 그래픽 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꾸고 결국 3D애니메이션 전공으로 졸업했고, 아티스트 그룹을 결성하여 융복합 전시와 공연을 만들기도 했다. 그와 같은 이력은 2011년 글래스고의 모던 인스티튜트 갤러리에서 열린 첫 번째 개인전 에서 유감없이 발휘했는데, 작가는 24명의 손님을 초대해 코끼리 엉덩이가 그려진 의자에 앉히고 직접 그림을 그린 접시에 담아낸 7코스 음식을 대접했다.

이번 전시 제목에서 ‘더스트’는 작가가 ‘먼지로 이루어진 가면(mask of dust)’에 빗대는 파스텔을 말한다. 니콜라스 파티가 18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이후 잊힌 파스텔화를 현대미술계로 소환하게 된 건 운명 같은 만남에서 비롯한다. 2013년 작가는 스위스 바젤에 있는 바이엘러 미술관에 갔다가 파스텔로 그린 피카소의 여인 초상화를 보고 “굉장히 깊이 감동하여 테크닉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바로 다음 날 파스텔을 구매해 파스텔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파스텔로 그림을 그릴 때면 작품과 아주 깊게 연결된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사실 이런 감정은 모든 예술가가 고대하는 것이기도 하지요.”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니콜라스 파티가 행복한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작가의 기존 회화 및 조각 48점, 신작 회화 20점으로 이뤄진 이번 전시에서 파스텔이 지닌 “시적인 면”을 유감없이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은 작가가 “6주 동안 용인 시민이 되어” 미술관의 로비와 전시장 벽 위에 직접 그린 벽화 5점이다. 큐레이터가 “가까이에서 ‘후’하고 세게 불면 정말 날아갈지도 몰라요.”라고 할 만큼 연약한 파스텔화는 전시 동안에만 존재하고 사라진다. 작가는 “인류 초기의 동굴벽화부터 중세 시대 프레스코화까지 미술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형식인 벽화에 유년 시절 체험한 그라피티의 역동성과 현장성을 더해” 다양한 벽화를 그려왔다. 짙은 잿빛 구름을 그린 벽화(<구름>, 2024년)에 겹쳐 건 다섯 마리의 부엉이와 서늘한 표정의 여자가 관객을 쳐다보는 그림(<부엉이가 있는 초상>, 2021년)은 모종의 경고를 하는 듯 섬뜩함이 느껴졌고, 초록 색조의 <동굴>(2024년) 앞에서는 생명과 예술의 근원 같은 심오한 주제를 골똘하게 생각했다.

유년 시절부터 다원적인 예술 경험을 해온 니콜라스 파티는 이번 전시에서 호암미술관의 1층과 2층을 연극 무대처럼 탈바꿈했다. 유럽 중세 건축인 회랑과 넓은 방으로 연결된 파스텔 색조의 공간에서 아치문을 통과할 때마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고, 기분 좋은 생경함은 파티의 작품과 병치한 고미술품에서 배가됐다. 전시 기획 초기부터 한국 미술 작품과의 ‘샘플링’을 핵심으로 둔 작가는 리움미술관의 고미술 컬렉션을 면밀히 살펴본 후 몇 점을 자신의 작품과 짝지었다. 의미를 끼워서 맞춘 듯한 조합도 있지만 전시 막바지 작자 미상의 18세기 조선 민화 ‘십장생도 10곡병’과 함께 전시한 파티의 사계절 풍경화 4점은 보는 이를 잃어버린 낙원으로 데려가는 듯했다. 이윽고 전시장을 나오면 한국을 대표하는 1세대 조경가 정영선이 설계한 한국적인 정원 ‘희원’이 펼쳐진다. 정원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는 산국을 비롯한 각종 국화가 만개하는 작은 연못과 그 연못에 발을 담근 정자 ‘관음정’, 그리고 장미셸 오토니엘의 <황금 연꽃>이 어우러지는 풍경이다.


작가가 미술관 로비 벽에 직접 그린 거대한 <폭포> 벽화 ©니콜라스 파티. 사진: 김상태

회랑과 아치 문 등으로 탈바꿈한 1층 전시 전경 ⓒ니콜라스 파티. 사진: 김상태

〈구름〉 ©니콜라스 파티
〈부엉이가 있는 초상〉©니콜라스 파티. 사진: Adam Reich,  전경 사진: 김상태

사진 : 이우정

“벽화를 그리는 몇 주 동안 나는 안료 구름 속에서 춤을 춘다. 그것은 정말 멋진 기분이다.” -니콜라스 파티 『Pastel』, The FLAG Art Foundation (2020)

〈동굴〉 ©니콜라스 파티, 〈백자 태호〉 이건희 회장 기증. 전경 사진: 김상태

왼쪽부터  〈여름 풍경〉 〈가을 풍경〉 〈겨울 풍경〉 〈봄 풍경〉 ©니콜라스 파티. 사진: Adam Reich

호암미술관의 정원에 설치된 장 미셸 오토니엘의 <황금 연꽃>


《니콜라스 파티: 더스트》 

●    장소: 호암미술관 (경기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에버랜드로562번길 38)

●    기간: ~2025년 1월 19일

●    가격: 성인 14,000원



*필자 | 안동선

인천에서 나고 자라 대학에서는 사회학과 심리학을 공부했다. 패션지 『코스모폴리탄』, 『바자』 등에서 15년간 피처 에디터로 일했다. 퇴사 후에는 프리랜서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바자』에서 펴내는 미술 전문지 『바자 아트』를 비롯해 여러 매체에 미술에 관한 글을 기고한다. 1인 콘텐츠 제작사인 ‘식신술’을 운영하며 유니클로, 이솝, 현대백화점 등 클라이언트의 요청에 따라 인쇄물 기반의 콘텐츠를 만든다. 영국 런던 소재의 포엣츠 앤 펑크스에서 출간한 『안주와 반주』(2021년),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2023년)의 책임 편집을 맡았다. 전시 《MCMXDahahm Cho-AIR》(2017년), 《MCMXHyunjun Lee?Solitary》(2017~2018년), 《The Art of Yellow》(2019년), 《노들기록 건축의 기억》(2021년)을 큐레이팅했다. 미술가들의 다채로운 미학적 실천을 좇으며 몸과 정신의 확장을 꾀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추천 기사





0의 댓글
Writer Avatar

안동선 (미술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