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로 가는 제멋대로 펜』은 내용뿐 아니라 편집과 외양도 기존의 책과 다른 파격이다. 일부러 멋있게 만들려고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고 했다.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한 땀 한 땀 장인이 수공한 것 같은 책을 펴면 그 안에 또 책(들)이 있다. 그림과 글이 나눠져 있다. 그림책에는 90년대 초부터 문훈이 그렸던 그림이 있다. 몇몇 출판사에서 그림과 함께 글을 써달라는 주문에 그는 책 내기를 고사해왔다. 그러다 이번에는 그림마다 한 줄만 쓰는 조건으로 승낙을 했다. 그러나 쓰다 보니 글이 길어졌다는 것이 문훈 작가의 설명이다. ‘문훈만의 몽유도원도’라고 불러도 좋을 이 책을 놓고 지난 7월 3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저자와 독자가 만났다. 시인이자 건축가, 건축평론가인 함성호 작가가 문훈 작가의 이야기손님으로 함께 했다. 문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꺼냈다.
헛것을 보는 기술
“헛것을 보려면, 술을 많이 먹거나 아프거나 마약을 하면 된다(웃음). 현실이라는 것을 인식하지만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다른 욕망을 투사하는 버릇이 생겼다. 9?11테러 때문에 생긴 그림이 있다. CNN에서 월드트레이드센터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는데,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런 한편으로 소수의 사람들이 미국과 싸우고 있다고 여겼다. 당시 개인이 큰 것과 싸우기 위해서는 창의적이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바벨탑도 떠올랐고.”
“지나치게 먼 거리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거의 모든 장면들이 다 아름답다. 설령 그 안에서 피가 튀고 살이 찢겨나가는 상황이라도. 우주에서 바라보는 지구가 그 위의 아비규환과는 관계없이 언제나 푸른색 아름다운 별이듯이. 현실의 한계를 넘어가는 순간, 그 장면 또한 하나의 바벨탑처럼 느껴졌다.”( 『달로 가는 제멋대로 펜』19쪽)
그는 신기한 모양의 자동차 그림을 선보였다. 차의 외양에는 창이 없다. 모자 같은 모양새를 갖고 있다. 되도록 자동차처럼 안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그린 그림이라고 했다. 2006년에 그린 그림인데, 그가 보기에 요즘 자동차들이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즉 창은 없는데, 밖을 볼 수 있는 구조. 참고로 차에 타고 있는 사람은 고구려 여자라고 설명했다. 그가 선호하는 시대의 여인상이라는 부연도 따랐다.
이어 구름 위에 설계된 도시 같은 그림이다. 구름 위에 뭔가 떠 있으면 좋겠다고 상상하면서, 『재크와 콩나무』를 떠올릴 수 있는 그림이다. 인터넷 시대의 네트워크 스페이스를 떠올리며 그린 그림도 있다. 공간과 공간이 연결되고 사이가 사라지는, 링링(Rinf-Ring)이라는 그림과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도 선보였다. 그는 “의도하지 않지만 서로를 돕는 것이 세상”이라며 “도시의 미래는 농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투 머치의 역설
“내가 살이 찌는 건 분명 많이 먹어서다(웃음). 사무실을 다섯 번을 옮겼는데, 세 번째 사무실에는 정자가 있다. 두 번째 사무실은 완전 빨갛기도 했는데, 빨간색을 좋아한다. 이 색을 쓰다 보니 좋은 점이 있더라. 다른 건축가들이 빨간색을 잘 안 쓰려고 한다. 나 때문에(웃음).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내게 빨간색 뭔가를 사준다.”
그러면서 건축계에서 ‘투 머치’라고 얘기를 듣는 건축을 보여준다. 그가 설계한 정선에 있는 펜션이다.
“현대 건축 교육은 추상성을 가르치지, 즉물적이면 수준이하라고 본다. 그래도 나는 예술가와 건축가의 경계인이어서 괜찮다(웃음). 건축주가 스페인 투우가 인상적이어서 그것을 연상하게끔 만들어달라고 하더라. 그것 외엔 알아서 하라고 해서 뿔 달린 펜션을 만들었다. 뿔은 무게가 400kg에 달한다. 우리나라가 재밌는 게, 서양에선 모든 걸 결정해서 설계도에 표현하나 우리는 그렇지 않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즉흥적이고 자발적인 참여가 이뤄진다. 장단점은 있다.”
“적극적으로 수동적으로 살기. 규칙을 따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경계 타기. 세상의 룰을 깨뜨리는 속도위반자 되기. 아주 많이, 너무 많이, 엄청 많이, 투 머치(too much), 먹고 마시고 말하고 표현하기. 금욕 대신 지나친 극단을 통해 중심으로 돌아오기. 세상과 주변에 덜 민감하게 반응하기. 이를 테면, 내 인생의 목표는, 울퉁불퉁하게 균형 잡힌 존재가 되어가는 것.”( 『달로 가는 제멋대로 펜』9쪽)
아름다움에 대한 입장들
문 작가는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미국 샌디에이고에 있는, 지금은 박물관으로 쓰고 있는 ‘미드웨이’라는 항공모함 사례로 들었다. 그가 가족을 데리고 미국 건축기행을 갔었다. 유명한 곳들을 데리고 갔는데, 가족들은 시큰둥했다. 건축이 학습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여기며 미드웨이로 향했다. 의외로 가족 모두가 다른 유명 건축과 달리 반응을 했다. 왜 그럴까. 전쟁 기계는 일부러 아름답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떠올렸다. 기능적이기만 해서, 아름답기 위해 애쓰지 않아서 아름다운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 항공모함 박물관을 보고 몇 달 동안 열심히 그린 그림을 공유했다. 그는 특히 땅의 건축물보다 더 복잡하고 견고한 것이 배 건축, 네이비 아키텍처라고 덧붙였다.
“샌디에이고에 정박되어 있는 은퇴한 항공모함 미드웨이(‘중도’로 읽히는 건 나뿐인지?). 기능 외엔 다 버린 형태가 주는 엄청난 괴력. 거대한 전쟁기계는 그렇게 무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중략) 아름다움을 추구하니 아름답지 아니하고, 기능을 추구하니 아름다움이 나온다.”( 『달로 가는 제멋대로 펜』93쪽)
그의 아버지는 지질학자였다. 그는 탄광 도시에서 자랐다. 돌과 건축을 합치고 싶어서 그린 그림을 보여주며 폐광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기능적으로 버려졌지만, 자연스럽게 매력이 있을 수 그런 곳.
“기능과 역할에서 완전하게 탈피한 장소. 역할에 매여 있지 않은 폐광은 순수하게 아름답다. 광산이나 공장 같은, 온전히 기능에만 집중한 공간엔 아름다움이 끼어들 틈이 없다.”( 『달로 가는 제멋대로 펜 』109쪽)
‘케이팝타워’라는 얼마 전 지은 연애기획사 건물 사진도 있다. 부근의 다른 건물들은 코너에 대한 생각이 없지만, 이 건물은 코너를 생각하면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상상의 쾌감
상상을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지난 6월 한국 건축사의 쾌거를 이룬, 처음으로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탄 제14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 그의 그림들도 선보였었다. 그가 베니스비엔날레에 선보였던 그림은 한옥의 형태를 차용한 새로운 정자였다. 개구리처럼 생겼다. 팬이 돌면서 전기에너지가 생기고, 환경을 생각한 정자였다.
“건축은 대개 영원하고 안정적인 것을 주제로 삼는데, 나는 청개구리처럼 걸어 다니는 건축을 생각한다. 반대의 지점에서 생각하면 건축이 넓어진다. 어떻게 이 그림이 나왔느냐면, 당시 영덕 게를 먹었을 거다(웃음). 그날 했던 소소한 일이 그림에 자연스럽게 투영된다. 또 조개류를 좋아해서 ‘조개 건축’에도 관심을 가진다. 겉은 드센 듯 보여도 나도 여리다. 외롭다고 하면 방이 나를 안아주는(웃음). 이것을 꼭 건물로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 그림에 전망대가 자주 나오는데, 번지점프, 피안 등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조개 건축 시리즈를 종종 그렸는데, 개인에게 세밀하게 다가가는 그런 건축도 상상하고 있다.”
‘바람의 집’이라는 그림도 보여준다. 어렸을 때 동네에 살던, 제 정신이 아닌 듯 눈을 부릅뜨고 다니던 동네 아주머니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을 떠올리며 그렸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제주도에 집을 지어달라는 주문을 받고 현재 만들고 있다고 했다. 다만 움직이는 메커니즘은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포기했다는 ‘윈드 하우스(Wind House)’의 모습.
“건축가는 자신이 설계한 도면이 완성되어 건물로 체험될 때 비로소 성취감을 느낀다. 건축물은 지어질 때, 체험될 때 비로소 완성되는, 역동적인, 살아있는, 의미를 만들어낸다.”( 『달로 가는 제멋대로 펜』27쪽)
모든 것은 가능하다
그는 자신의 삶과 건축의 태도를 ‘무한긍정’이라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긍정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살다 보니 그리 됐다. 어릴 때 장난감을 갖고 노는 마음으로, 휴대전화기를 우주선이라고 생각하면서 그것을 갖고 놀 수 있는 마음과 태도. 함성호 작가의 말이 이어졌다.
“오늘 문훈 소장이 보여준 것은 ‘나의 건축’이라기보다 ‘나는 이렇게 상상한다’고 보는 게 좋겠다. 이 그림들이 지어질 수 있느냐 없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건축은 건축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협동 작업을 해야 한다. 건축과 물리학, 건축과 생물학 등 이렇게 결합한다. 미래의 건축은 콘크리트 아닌 세포나 생물의 똥으로 지어질 수도 있겠지. 지금도 그런 시도가 있다. 박테리아 조직을 활용해 콘크리트를 보호하는 시도도 있고. 그런 것들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다양한 상상이 가능하다.”
문훈의 그림과 건축을 보면 복잡하지 않은 도시와 떨어진 공간에 만들어야 할 것 같다(웃음).
문훈 : 연예기획사 건물은 내가 설계한 곳 중에 가장 얌전한 편이다. 우리나라에서 튄다는 말은 부정적으로 주로 인식되는데, 나는 선명하게 해준다는 의미로 접근한다. 빨간색 장미가 숲에 있으면 튀는데, 빨간색이 있음으로써 초록이 더 돋보인다. 그렇다고 주변과 어울리느냐, 어울리지 않느냐를 고민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림 안에 들어갔을 때 이야기도 상상하나?
문훈 : 건축은 공간이 경험되는 곳이다. 건축가는 밖에서 바라보는 것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 간과하지 말 것은 건축가는 밖을 그리지만 안도 생각한다. 건축은 이미지로 결정될 수 없다. 공간을 경험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곳을 경험할 수 없어서 사진에 의존하기도 하다. 한옥은 사진으로 공간감이 잡히지 않는다. 많은 건물을 가봐야 느낄 수 있다. 학습이 되면 훨씬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프랑스에는 건축가가 익숙하고 나쁜 건물을 금방 파악한다. 그러니 건축 환경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물론 그런 건축이 마냥 좋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함성호 : 안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상상하는 게 중요하다. 조선시대의 경우, 사대부 남편과 아내가 같이 자는 건 상놈이 하는 짓이었다. 남편은 사랑채, 아내는 안채. 사는 게 그랬다. 그래서 찌개 하나에 숟가락을 함께 넣는 게 우리의 전통문화는 아니다. 한 상을 들고 마루에 차려보라. 굉장히 어렵다. 옛날 우리는 독상을 받았다. 찌개에 함께 숟가락을 담그고 그러지 않았다. 건축이 안에 있는 어떤 것을 상상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문훈 소장의 건축물에 가봤는데, 그렇게 튀는 것 같지 않더라. 함성호 시인은 시도 쓰고 건축비평도 하는데 문훈 소장의 건축물을 어떻게 보나?
함성호 : 내 시를 보고도 많은 사람들이 어렵다고 한다. 어렵다는 게 뭘까?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원리를 아는데도 풀 수 없는 게 어려운 거다. 원리를 모르는데 어렵다고 하면 안 된다. 모르는 만큼 어두워진다. 모르는 것을 어렵다고 말하면 안 된다. 모르면 그 모르는 것이 뭔지 찾아 나선다. 그러나 어렵다고 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문훈이 튄다는 것으로 느껴지는 건, ‘상징’ 때문이다. 상징의 어휘를 많이 쓰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상징을 부여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튄다고 여기는 것도 그래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상징을 만들어나가고 상징을 붙여나가는 모습이 튀게 보일 수도 있다. 문훈이 튄다는 것은 상징의 작업으로 튀는 것인데, 자세히 보면 낯설지 않은 풍경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옛날부터 알고 보면 상징을 붙이는데 익숙하고 능했다. 고건축 답사를 봐도 그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 달로 가는 제멋대로 펜 문훈 저 | 스윙밴드
고정관념이나 자기검열, 타인의 시선에 얽매여 살면서 잃어버렸던 세상 만물에 대한 호기심이 되살아나고, 갑갑하고 단조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껏 상상하고 꿈꿀 수 있는 기운이 샘솟는다. 펜으로 요술을 부리는 유쾌한 요정의 초대장을 받아든 순간, 우리는 그의 상상과 더불어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으며 삶의 모든 순간순간이 기쁨의 연속이라고 느끼게 된다. 놀랍고도 신기한 마법 여행이 시작된다. 요정은 이야기한다. 진짜 흥미진진한 상상은 현실을 바꾸려 억지로 애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자유자재로 변신시키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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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메롱
2014.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