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얼떨떨함 속에서도 시간은 흘러갔다.
나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다가 이따금 배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가만히 쓸어보았다. 의사는 아기집이 생겼고 자리도 잘 잡았지만 일주일 뒤에 심장 소리를 들어봐야 한다고 했다. 아직 아무런 신체적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나는 틈날 때마다 검색창에 임신 6주, 7주 증상, 같은 단어를 입력해보곤 했다. 그리고 거무스름한 초음파 화면 한구석에 강낭콩처럼 박혀 있던 작고 하얀 아기집에 대해 생각했다.
검색 때문에 8주 이전에는 아직 태아(胎兒)가 아니라 배아(胚芽)라고 부른다는 글을 보았고 배아를 생명으로, 그러니까 사람으로 볼 것인가 하는 논쟁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의학적 지식도 없고 도덕관념이나 종교적 신념이 남다른 사람도 아니지만 씨앗은 자리를 잡아 움이 트면 그것으로 이미 생명을 증명한 셈이 아닌가 싶었다.
일주일이 지나 7주차가 되었을 때 병원에 갔다. 기다리는 동안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것은 불길한 징조 같기도 하고 아직 병원이나 진료에 익숙하지 않아서인 듯도 했다. 의사가 초음파 화면을 보며 현재 상태와 앞으로 받아야 할 검사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심장 소리를 들어볼까요? 하며 기계의 볼륨을 키웠다.
쿵쿵, 쿵쿵, 쿵쿵, 쿵쿵
심장 소리는 규칙적으로 힘차게 울렸다. 그 소리는 어떤 망설임도 없이 불길함과 두려움을 잠재우며 자신을 드러냈다. 나는 내 안에 또다른 심장이 있으며 그것이 힘차게 뛰고 있다는 사실에 압도당했다. 그리고 그것은 배아인가 태아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온몸으로 쿵쿵거리는 순간 ‘너’라는 존재가 된다는 걸 깨달았다.
병원 밖으로 나오며 나는 한 손을 왼쪽 가슴에, 다른 손을 배에 얹었다. 엄마라는 이름이 낯설었지만, 엄마는 두 개의 심장을 품고 사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관련 기사]
- 그렇게 엄마가 되는 여자들 (1)
- 겁 많은 ‘어른아이’였으니까
- 달콤한 시간은 빨리 흐른다
- 그렇게 엄마가 되는 여자들 (2)
서유미(소설가)
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
앙ㅋ
2014.09.19
라는 마지막 문장에 다음편도 궁금해지네요.
샨티샨티
2014.09.17
감귤
2014.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