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간 올리버를 치료하느라, 잘하면 대학에 입학해서 몇 학기 다닐 수도 있을 만한 돈이 들었다. 내 돈을 모조리 쓰고, 친구들이 모아 온 돈도 쓰고, 우리 엄마의 돈까지 조금 더 쓰고 갔다. 그 대가로 그 애가 온몸에 온갖 관을 붙인 채로 누워 있다가 호두나무 유골함에 들어갔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그 애가 평생 햇볕 속을 뒹굴고 뛰어다니며 만들어낸 에너지를 나눠 받은 모든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을 지금 필요한 자원으로 환산해 보탠 것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낫다.
아무튼 나에게는 돈이 조금 남았다. 나는 그 돈으로 올리버의 사십구재를 치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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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사별한 뒤 집에 돌아올 용기를 내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12회 상담을 받을 수 있게 미리 예약해 두었다. 나에게는 내가 울면서 하는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그 이야기를 12회에 걸쳐 늘어놓는 내내 기다려 줄 사람이 필요했다. 가능하면 단기적으로는 슬픔이 주는 통증을 누그러뜨리는 방법을, 장기적으로는 올리버의 부존재를 감당하며 계속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면 더 좋고.
그러나 위험에 처했을 때, 사라지고 싶었을 때, 해로운 사람이 곁에 있을 때, 공동체가 와해됐을 때, 지하철과 버스를 타지 못하게 되었을 때, 나는 꼬박꼬박 상담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오랫동안 받았다. 상담은 늘 도움이 됐다. 내가 내 문제들을 연결해서 그림을 그려내고 그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배웠다. 그러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상담의 어느 시점에서 밝히는 게 옳을까?
(우리에게 너무 희소한 자원인) 돈을 내고 상담을 받아야만 하는 가장 취약한 상태에, 아직 어떤 유대도 형성하지 않은 낯선 상대에게 나와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가진 소수성을 처음부터 밝히는 건 어쩐지 눈을 질끈 감고 뭔가를 집어던지는 기분이다. 물론 나는 매일 그런 일을 한다. 말해도 상관없는 상대도 있지만 말해야 편리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말해야 하는 상대도 있다. 나는 우리 아빠도 결코 받아들이지 못한 진실에 관해, 마치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당연한 것처럼, 하나도 두렵지 않은 것처럼, 상대가 무슨 수로도 나를 상처줄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이러나저러나 상관 없는 것처럼 말한다. 어떤 상담사들은 그것이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내 말을 못 들은 것처럼 다음 이야기로 넘어간다. 다른 상담사들은 노트패드에 무언가 적던 속도를 높이며 어째서 그것을 이 시점에서야 말하게 되었는지 설명을 듣고 싶어 한다. 일상에서도 그렇듯이, 둘 다 완전히 틀린 반응이지만, 일상에서도 그렇듯이 나는 상대방의 반응에 맞춰 다음 말을 이어가고는 한다. 그 모든 게 나한테는 너무 익숙하다. 나는 여태 굵은 결혼반지를 낀 중년 남성 앞에 앉아서 또는 맞은편 벽에 걸린 십자가를 바라보면서도 잘만 이야기했다. 충분한 자격을 갖춘 의사나 상담사와 내가 미리 정한 약속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었고, 더 나은 상담사를 찾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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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로스 전문 상담을 제공하는 센터는 얼마든지 있었지만, 나는 노트북 앞에 앉아 한참 고민하다가 다른 센터를 찾았다.
내가 겪은 것이 동물과의, 친구와의 사별이라는 사실을, 사별이라는 말이 충격을 과장하거나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원뜻 그대로의 사별임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상대가 있다면?
우리가 온 힘을 다해 서로를 돌본 나머지 그 삶을 내 삶에서 끊어내고 싶지 않다면?
그리고 이런 감정과 경험이 어떤 공동체 내에서는 너무나 일반적이지만, 공동체 바깥의 경험과 묶어 버릴 수 없을 정도로 특수하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는 상담사가 있다면?
나는 지금의 내가 취약한 감정을 조금도 가리지 않아도 되는 센터를 찾으려고 평소보다는 공을 들였다. 그다음에는 내가 고양이와 친구를 잃었으며, 성소수자의 삶을 이해하는 상담사를 만나고 싶다고 신청서를 작성했다. 오래지 않아 내게 배정된 상담사가 연락해 주었다. 실은 나를 이미 알고 있고, 그래도 괜찮은지 물었다.
그게 괜찮다는 사실은 그 순간에 알았다. 나는 오랫동안 익명성이 나를 가장 안전하게 해준다고 믿었지만, 내가 가장 취약하고, 반복되는 애도를 해결하지 못한 채로 시간을 보내다가, 그 애도를 최소한 이해하기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 내가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건 완벽하게 괜찮게 느껴졌다.
상담 센터에 간 첫날, 대기실에 내가 번역한 책1이 꽂혀 있는 걸 봤다.
안전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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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게 사십구재를 예고한 날짜는 12회 상담이 끝나는 바로 다음 날이었다. 우연은 아니고, 올리버가 떠난 날부터 날짜를 세어서, 그 전날까지 상담을 마칠 수 있도록 계획했다. 나는 올리버와 아주 가까웠거나 치료 기간에 기도해 준 열 명 조금 넘는 친구들을 초대했다. 장소는 우리 집이었다. 올리버가 평생 살았던, 그래서 그곳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외로워지는 이곳이 아니면 우리는 방문할 곳이 없었다.
나는 12주간 슬픔을 차근차근 해결했고, 많이 울었고, 울지 않을 때는 사십구재의 손님들을 위한 답례품을 준비했다.
- 누워 있는 올리버 스티커 3종
- 올리버 사진 마그넷 3종
- 사진 3종
- 엽서 3종
- <프라이드 네 컷> (물루와 올리버가 프라이드 플래그를 배경으로 엎드려 있는 사진들)
- <아기 네 컷> (올리버가 갓 우리 집에 와 있을 때 찍은 사진들)
- 올리버와 똑같이 생긴 고양이 모양 핸드타올
그 모든 것을 포장해 리본으로 묶고 <팀 올리버> 스티커를 붙였다. 내 친구들은 대부분 서로 몰랐지만, 우리는 올리버의 죽음을 맞이한다는 어려운 과제를 함께 해냈다. 그 과제를 앞장서서 이끌어야 했던 것은 나지만, 나는 내가 올리버의 유일한 유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슬픔을 나누었고, 조금이라도 기쁨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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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언장을 쓰거나 내가 원하는 장례 방식을 생각할 수 있는 워크숍에 몇 번이나 갔었다. 나의 죽음에 관하여 써 두지 않으면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르는 당연한 소망들이 몇 가지 있었다. 나는 믿을 만한 친구들을 유언집행자로 지정했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유산을 누가 상속받기를 강하게 바라는지도 써두었다. 그러나 심지어 조부모의 장례식에서조차도 손주도 사위도 아닌 내가 달려가 영정사진을 빼앗아 들고 걷는 게 파격이었는데, 비건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편육과 육개장을 먹고, 내가 이해한 것과 다른 성별의 영정사진을 보며 빈소를 찾아가는 일은 너무 잦았고, 그럴 때마다 나는 언젠가의 미래에 나의 유족이 읽게 될 문서를 작성하고, 그 속에서 누가 내 진짜 가족인지, 누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지, 나를 위해 반드시 해 주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읍소하고는 했다.
나는 올리버에게만큼은 좋은 장례식을 치러 주고 싶었다.
그의 친구들이 모여서 오로지 그를 위한 시간을 보내주기를 바랐다.
아니, 나는 올리버를 잘 보내주기 위해 이런 일을 기획한 게 아니었다.
우리가 서로를 힘껏 돌보았으니, 이번에도 힘껏 기운을 내서 그 녀석이 좋아할 만한 일을 만들어 보고 싶은 게 다였다.
내가 올리버를 보내야 하나?
그것도 잘?
내가 그 애를 깨끗이 잊어야 하나?
올리버 없는 삶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나?
그 애의 죽음이 내게 어떤 구멍도 내지 못하게 막아야 하나?
굳이?
물론 올리버는 유언장을 남기지 않았으니 어떤 방식이 가장 좋은지는 내가 열심히 생각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생각이 끝난 뒤에는 우리가 함께 살던 삶을 계속 살 것이다.
고양이 모양의 구멍이 커다랗게 뚫린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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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주 동안 나는 주로 흑흑 울었다. 올리버의 하얀 앞발 사진으로 만든 엽서를 가져다 둔 상담실에서, 상담사는 슬픈 표정으로 “죽음에는 사실 위계가 있어요,” 했다. 나는 나를 이토록 억울하고 비통하게 하는 그 사실을 다른 누군가가 말해주기를 바랐다.
내가 느끼는 슬픔을 말이 되게 만드는 건 예상대로 12주로는 부족했지만, 그사이에 나는 서서히 덜 울게 되었다. 상담사를 믿을 수 있었고, 무언가를 누락하는 기분 없이 떠오르는 것을 뭐든 이야기할 수 있었다. 죽음 말고 다른 것에 관해서도 슬슬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십구재 날이 다가오자 점점 초조해졌고 전날이 되자 모든 게 실패할 것 같은 마음에 미칠 것 같았다. 내가 정말 친구들을 만날 준비가 됐을까? (그때까지 나는 거의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실은 매주 상담을 받는 것 외엔 거의 외출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올리버가 한없이 내놓던 환대 없이 내가 손님을 치를 수 있을까?
세계는 죽음으로 가득하고 그 중에는 더 무고하고 불의에 찬 죽음도 있는데 그 중에서 작고 작은 내 고양이의 죽음을 위해 거창한 행사를 준비하는 것은 모든 면에서 과잉인 게 아닐까?
내가 만든 답례품을 손님들이 좋아할까? 죽은 고양이의 얼굴이 담긴 물건들을 갖고 있기 싫어하면 어쩌나?
그러나 이미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이미 올리버의 사진을 인쇄한 마카롱을 스무 개쯤 주문 제작해 두었고, 엄청난 양의 꽃을 사서 꽂아두었으며, 해외직구해 산 파티용품으로 (약간 내가 한심하다고 생각하면서) 집을 장식했다. 집이 작으니 한 번에 모두가 들어올 수 없으므로 모두에게 방문 시간을 정해 알려준 뒤였고, 요리를 담당한 가족은 이미 ‘부족해서는 안 되고 잔칫상 같은 분위기도 나야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거창해서도 안 되며 전부 비건인’ 십 몇 인분 식사를 구상하느라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냥 계획대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상담사는 만약 너무 고통스러우면 언제든 전화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 중 하나다. 내가 친구들에게 가능한 자주 하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 일을 같이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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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의 조문객들은 잘 차려입고 왔다. 꽃을 가져온 사람들도 있어서 집에 향기가 진동했다. 약속한 것도 아닌데 내가 준비한 것도, 친구들이 가져온 것도 전부 올리버를 닮은 노란 꽃이었다. 냉장고에 쭉 붙여놓은 올리버의 사진들을 구경했다. 올리버의 뼈가 들어 있는 유골함도 구경했다. 하얗고 커다란 올리버에게서 하얗고 커다란 돌들이 나왔다는 사실을 모두 애틋해하면서도 우스워했다.
재료를 정갈하게 손질해 만든 따뜻한 비빔밥과 올리버의 얼굴이 있는 마카롱을 모두가 나누어 먹었다. 올리버와의 기억을 이야기했다. 그러다 누군가 울컥하면 옆에 앉은 사람들이 따라 울기도 했다.
하지만 사진을 찍을 땐 모두 웃었다. 고양이가 아프기 직전에 내가 새로 산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여태까지 아픈 고양이 사진 말고는 찍은 것이 없었다. 우리는 그것으로 모두의 사진을 찍어 나누어 가졌다. 유행하는 구도로 찍기 위해 의자를 밟고 올라가 높은 데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찍었다. 떠들썩하게 즉석 사진을 찍고, 나누고 있자니 올리버가 있었더라면 정말 재미있어 했을 거라는 생각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애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빠지는 법이 없었다. 둥글게 모여 앉은 사람들 한가운데로 들어가 털썩 드러누웠을 것이다. 자기가 주인공인 걸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올리버의 친구들을 모아 놓고 보니, 올리버가 여기 있다고 착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이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친구들이 떠나고, 또 다른 친구들이 찾아왔다. 어떤 친구들은 일찍 자리를 떴고, 어떤 친구들은 밤늦게까지 남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가 올리버에게 편지를 쓰고, 폴라로이드 사진과 답례품 꾸러미와 작은 꽃다발을 가지고 떠났다.
마침내 싱크대에 가득한 설거지거리,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가 빠진 우리 가족이 남자,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말했다.
- 올리버는 오늘 진짜 재미있었을 거야.
-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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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가족과 나는 불광천으로 산책하러 갔다. 겨울이 진작 끝난 바깥은 환한 봄날이었고, 개들이 주인을 끈에 매달고 신나게 앞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 건강한 동물들이 오랜만에 밉지 않았다. 나는 개들을 실컷 구경했고, 올리버 닮은 구름, 올리버 닮은 새, 올리버 닮은 풀도 찾았다. 집에 돌아온 뒤에는 엄청나게 웃긴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웃다가 눈물까지 줄줄 흘렸다. 내 친구의 집에서, 내 고양이의 집에서, 나는 계속 있다.
1 엘리엇 페이지, 『페이지보이』, 반비.
지금까지 ‘송섬별의 이 삶을 같이 살자’ 연재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연재는 추후 반비에서 책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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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 반비

송섬별
읽고 쓰고 옮긴다. 매일 일기를 쓰고 자주 시를 쓴다. 용감하게 살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다. 물루와 올리버라는 치즈 고양이의 식구다. 옮긴 책으로 <페이지보이>, <자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