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센치(10cm) < 3.0 >
현재 십센치라는 밴드를 찾게 만드는 키워드는 무엇이 있을까. 일단 「아메리카노」는 아니다. 인디와 청춘이라는 두 가지 소재가 지금에서는 큰 설득력이 없다. 이들이 대중화시키고 인디 포크음악의 상징처럼 만들었던 젬베와 기타는 정규 앨범 속 십센치의 이미지와는 별로 조응하지 않는다. 「아메리카노」 열풍을 어떻게든 설명해보고자 끌어다 쓴 청춘이라는 단어도 이번 앨범의 「아프리카 청춘이다」를 들어보면 딱히 이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딱히 인디 같지도 청춘 같지도 않은 2014년의 이들은 「아메리카노」같은 반짝 흥행과는 거리가 멀다.
신보에서는 이들의 키워드가 야한 음악도 아닌 것 같다. 「Dreams come true」같은 노래는 전작의 「오예」나 「오늘밤에」보다 대담하지도 농하지도 않다. 한심하고 찌질한 남자의 속마음을 건드려보는 「스토커」도 「Fine thank you and you?」에서 느껴지는 허탈감만큼의 위력은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능글맞게 잘하지만 3집은 여러모로 전작들에 갇혀있다. 십센치의 확실한 아이덴티티인줄 알았던 청춘 감성 혹은 찌질하고 야한 노래들이 다른 곳이 아닌 예전의 그림자에서 뒷걸음치고 있는 것이다. 눙치는 노랫말과 달달하고 얄미운 권정열의 보컬으로만 귀를 사로잡자니 은근히 허전한 구석이 많다. 이렇게 되니 이들은 그럴듯한 엄살 혹은 고충을 털어 놓기 시작한다.
첫 곡 「3집에 대한 부담감」의 이야기가 이제 이해된다. 「아메리카노」 같은 노래를 하면 사람들이 좋아할지 야한노래를 하면 좋아할지 대놓고 묻는 이들의 심정을 이제야 헤아릴 수 있다. 소재 고갈도 노력도 너무 부담스러우니 스리슬쩍 넘어가자고 한다. 돈 벌고 싶다는 이야기를 쉽게도 한다. 그냥 겉으로 듣기엔 십센치다운 농담인데 의도치 않게 이 노래가 < 3.0 >을 요약하는 한 마디가 되었다.
어디나 항상 수사가 좋은 사람이 있다. 말 한마디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온갖 곤경도 피해나가던 그들, 그 모습에서 십센치가 보인다. 벌써 이들의 만담도 삼세번을 넘게 들은 지금, 그냥 넘어가기 위해서라도 쉽게 쉽게 살기 위해서라도 계속 걸어야하는 시기가 왔다. 이미 대중적 영향력까지 적잖이 떠받치고 있기 때문에 고민은 더 커질 것이다. 제2의 「아메리카노」가 나온다 한들 4집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질 리는 없다.
글/ 이기선(tomatoapp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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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5.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