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성격이 살갑지 못해서 가족들은 물론이고 좋아하고 친한 사람들에게도 자주 연락하는 편이 아니다. 마음으로 십의 분량만큼 궁금해 하고 그리워한다면 실제로 전화하고 안부를 묻는 건 이나 삼쯤 된다고 할까. 먼저 전화를 거는 일은 이상하게 부끄럽다.
임신을 한 뒤로는 모든 연락의 빈도가 조금 잦아졌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거나 가방에 넣어둔 휴대전화를 꺼내면 부재중 전화 표시가 떠 있곤 했다. 가족과 지인들은 나와 뱃속 아기의 안부를 궁금해 했고 병원에 다녀오면 초음파 사진을 찍었는지 묻곤 했다. 덕분에 내가 휴대전화에 대고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잘 지내, 괜찮아, 건강해, 고마워, 가 되었다.
두 딸을 키우는 후배, 그리고 나보다 삼 개월 먼저 임신한 후배와는 자주 통화하고 오래 이야기했다. 출산보다 육아의 세계에서 활동 중인 후배는 임신 기간을 느긋하게 즐기라고 독려했고, 먼저 임신한 후배는 생생한 경험담을 전한 다음(모든 걸 나보다 한 발 앞서 겪은 터라 그녀와의 통화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코너 같았다) 늘 예고편을 남겼다. 이제 이런 증상이 나타날 거예요. 앞으로는 이걸 조심해야 돼요.
“언니, 태동 경험했어요? 보통 20주 넘으면 느껴지는데”
늦은 임신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느긋함 때문에(사실 게으름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 임신과 관련된 책을 사보거나 강의를 들으러 다니지 않았던 나는 태동이 뭔지는 알았지만 그걸 겪을 때가 된 줄은 몰랐다. 태동? 기분이 어떤데? 라고 묻자 후배는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언니.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몰라요. 직접 느껴봐야 해요. 그건 정말, 어메이징 그 자체예요.”
전화를 끊고 나서 나는 제법 볼록해진 배를 쓰다듬어봤다. 온 몸의 감각을 배와 손에 집중해봤으나 아무 느낌이 없었다. 20주가 지났는데 왜 움직임이 없지? 내가 둔한 건지 이 녀석이 둔한 건지 모르겠지만 슬그머니 걱정이 됐다. 20주 태동, 하고 검색해서 관련 글을 읽으며 시기나 느낌 모두 개인차가 크다는 걸 알게 된 뒤 나는 예전의 느긋한 나로 돌아갔다. 태동과 상관없이 아기는 뱃속에서 계속 꼬물거리며 움직일 것이다. 아직 나에게 전해질 만큼 활발하지 않지만 곧 쿵쿵거리며 안부를 전할 거라고 생각하니 설렜다. 나는 조심스레 그 첫 인사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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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미(소설가)
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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