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회 ‘역대급’인 그야말로 ‘역대급’ 프로그램
‘역대급’이라는 말이 있다. 엄연히 잘못된 표현인데 요즘은 텔레비전이나 신문 기사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면 ‘○○ 영화 역대급 반전’ ‘탤런트 ○○ 역대급 노출’ 뭐 이런 식이다. 그 용례에서 짐작할 있듯이 ‘역대급’이라는 ‘틀린’ 표현은 주로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좋거나 혹은 나쁜 어떤 것들을 지칭할 때 사용되는데, 전자의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니까 주로 칭찬의 의미로 많이 쓰이는 것이다.
토요일 심야시간 대의 절대강자인 <그것이 알고 싶다>는 네티즌들 사이에서 ‘역대급’ 방송이라 불린다. 매 주마다 ‘역대급’ 사연이 어이지는 통에 제목 자체를 아예 ‘그것이 역대급이다’라고 바꾸라는 재미있는 의견도 있다. 물론 나도 <그것이 알고 싶다>의 열혈 애청자이다. 매 회 ‘역대급’인 이 ‘역대급’ 프로그램은 그야말로 ‘역대급’이라는 표현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는 기막힌, 그리고 한편으로는 섬뜩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웬만한 스릴러 영화나 추리 소설 못지않은 이 사연들이 죄다 실화라니, 참으로 ‘역대급’이라 할밖에.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고 있으면 세상에는 참으로 ‘역대급’ 아니, 이제 이건 그만하자, 아무튼 기기묘묘한 사건들이 넘쳐나고 미궁에 빠진 사건들 또한 수두룩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제작진들은 때로는 경찰들보다도 뛰어난 수사력을 보여주지만 정확한 결론을 내리는 건 아니다. 공중파 프로그램이라는 특성 상,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사건이 많은 만큼 결론을 내리는 것이 위험한 일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연들은 도무지 뭐가 결론인지 알 길이 없는 경우가 많다. 사실인 듯 사실이 아니고, 거짓인 듯 거짓이 아니며, 진상 또한 확실하지 않지만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점점 퍼져나가는 이야기들. 이건 마치 지금 이 시대의 ‘도시전설’이 생성되는 시스템과 비슷하다.
오원춘 사건이 일어났다. 2012년이다. 오원춘이 인육 밀매를 한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그보다 일 년 쯤 앞서 <그것이 알고 싶다>는 중국에서 암암리에 유통되고 있는 ‘인육캡슐’에 대해 다뤘다. 인육에 대한 괴담은 예전부터 존재해 왔다. 인육으로 만든 만두 같은 이야기는 벌써 몇 십 년 전부터 떠돌아 다녔다. 뜬소문, 혹은 허황된 괴담 정도로만 치부되었던 이야기가 방송을 통해 실체를 얻은 것이다. 그리고 급기야 ‘진짜 사건’이 터졌다. 이쯤 되자 인육에 관한 이야기, 혹은 괴담은 도시전설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도시전설은 현대 사회에 떠돌아다니는 기이한 이야기나 음모론, 혹은 소문들을 통칭한다. 사실에 기반을 둔 채 허구의 요소가 붙은 것들도 있지만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유행했던 ‘김민지 괴담’처럼 아예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있다. 물론 그런 이야기들조차 당시의 사회 현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 도시전설을 연구하는 사회학자들의 견해이다.
미제 사건을 주로 다루는 <그것이 알고 싶다>는 바로 이 부분에서 도시전설을 생산해 내는 주 매체가 된다. 비교적 근래에 벌어졌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거나 이슈가 될 만 한 사건들의 미스터리함을 건드리기에 그 파급효과가 큰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것이 알고 싶다> 자체가 도시전설에 기댄 구성을 보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문경 십자가 사건’이나 ‘24번 나들목의 미스터리’ 혹은 ‘사라진 약혼자’나 ‘청테이프 살인 사건’ 등 이른바 <그것이 알고 싶다> 중에서도 가장 ‘역대급’이라 불리는 에피소드들은 소름 끼치는 괴담의 현실 판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언뜻 사건의 진실을 찾으려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보다 더 공을 들이는 것은 사건의 ‘전시’이다. 시청자들은 그 ‘전시’된 사건 속에서 공포감과 혐오감, 그리고 때로는 분노를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감정들은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봤는데……’로 시작하는 소문의 진원이 된다.
도시전설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낱낱이 보여주는 『도시전설 세피아』
슈카와 미나토의 단편집인 『도시전설 세피아』는 그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도시전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2007년에 한국에 출간돼 대중 소설 마니아들에게는 꽤 입소문을 탄 이 단편집에는 스스로가 괴담의 주인공이 된 사내,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공원, 수상쩍은 전시물을 보여주는 의문의 남자, 죽은 이를 사랑하는 두 여자, 전철을 타고 지나가는 길에 마주치는 죽은 엄마의 얼굴 등 어딘가에서 들었을 법한 기이하고 섬뜩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그야말로 도시전설 모음집이라 할 수 있는데, 특히 시작을 장식하는 ‘올빼미 사내’는 평범한 이야기가 어떻게 도시전설로 만들어지는지를 아주 적나라하고 예리하게 보여준다.
소심하게 살아온 주인공 남자는 도시전설에 집착하던 끝에 스스로가 ‘올빼미 사내’라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처음에는 한 커뮤니티에 올린 그저 그런 괴담이었지만 점차 살이 붙어가면서 ‘목격자’들마저 생겨난다. 남자는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가 생명력을 얻어가는 과정을 보며 희열을 느끼고 마침내 스스로가 진짜 ‘올빼미 사내’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슈카와 미나토는 차분하고 단정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야기의 전개와 배경 자체도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는 경우가 많다. ‘어제의 공원’처럼 사뭇 눈물샘을 자극하는 에피소드도 있다. 하지만 그 속에 깃든 내용 자체는 섬뜩하다. 그를 두고 ‘노스탤직 호러’의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도시전설 세피아』 속 이야기들은 대부분 누군가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방식으로 전개가 되는데 이런 작법 또한 ‘전설’이라는 제목에 어울린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보여주듯 전설은 다른 이에게 전달 혹은 전파되어야 비로소 그 힘을 갖게 된다. 예전에는 오로지 입에서 입으로만 전달되었지만 요즘은 뉴스, 메일, 광고, SNS 등을 통해 끊임없이, 그리고 빠르게 전해진다. 그것도 확대와 재생산을 거듭하면서. 슈카와 미나토가 ‘올빼미 사내’로 데뷔한 2002년보다 지금은 훨씬 더 빠르게 도시전설이 만들어진다. 장기밀매를 일삼는 일당들의 승합차가 밤거리를 누비고, 납치범들은 노인들이나 아이를 이용해 젊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며, 북한의 땅굴이 서울 지하를 가로지르고, 초인종 밑에는 의문의 부호와 숫자들이 적혀 있다. 대부분은 허구의 소문들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시사프로그램들에서 다룬 실제 사건이 깔려 있다. 실제 사건에 살과 힘줄이 붙고 마침내 팔다리를 얻게 되면서 뚜벅뚜벅 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이다. 사람들 사이를, ‘이건 진짜로 있었던 일인데……’라는 전제를 달고.
우리가 <그것이 알고 싶다>에 열광하는 이유, 그리고 도시전설에 매달리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그것’이 알고 싶기 때문이다. 왜 멀쩡한 여객기가 그깟 땅콩 하나 때문에 회항을 해야 했을까? 정치권에서 굵직한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연예인의 열애 기사가 쏟아지는 이유는 뭘까? 배가 차디 찬 바다에 가라앉았는데 수색이 더디게 진행된 이유는 무엇일까? 담뱃값을 올리는 진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왜 누군가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왜 누군가는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갈까?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들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는 걸까?
<엑스 파일>의 격언처럼 진실은 언제나 저 너머에 있다. 마지막으로 사용하자면, 정말로 역대급인 <그것이 알고 싶다> 조차도 끝내 진짜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려주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진실 대신 전설이라는 이름의 괴물을 대신 믿으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야 위안을 얻으니까. 우리가 끝내 가 닿을 수 없는 진실의 뒤를 쫓느니 그럴싸하게 포장된, 심지어 흥미진진하기까지 한 소문을 믿어버리는 쪽이 몇 배는 더 마음이 편하다. 그런 시스템 속에서 이 사회는 돌아간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두려운 도시전설일지도 모르겠다.
-
도시전설 세피아슈카와 미나토 저/이규원 역 | 노블마인
이 책은 도시전설에 매료된 남자가 스스로 전설의 주인공이 되고자 하는 이야기, 친구의 목숨을 구하러 하루 전날의 공원으로 시간 이동을 하는 신비로운 이야기 등, 고즈넉한 도시의 그늘을 배경으로 써내려간 애틋하면서도 섬뜩한 이야기 다섯 편을 담고 있다
[추천 기사]
-무릇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유다의 별』
- 노래 속 전파 찾기
- 소설 『64』 밥벌이의 지겨움
- 우석훈, 세월호 참사를 말하다
전건우
남편, 아빠, 백수, 소설가, 전업작가로 살아간다. 운동만 시작하면 뱃살이 빠지리라는 헛된 믿음을 품고 있다. 요즘 들어 세상은 살 만하다고 느끼고 있다. 소설을 써서 벼락부자가 되리라는 황당한 꿈을 꾼다.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3』,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에 단편을 실었다.
yogo999
2015.02.11
앙ㅋ
2015.02.10
rkem
2015.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