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강제로 강제로 위인전을 읽어내야 했던 안 좋은 기억 때문인지 개인적으로 평전의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기타 잇키』를 읽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평전이란 성공한 사람의 자랑하고 싶은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다면 저 책은 그러한 생각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점을 일깨워줬다. 기타 잇키는 젊은 시절에는 공산주의자로 혁명을 꿈꾸다, 중국에서 혁명이 좌절되는 걸 본 뒤 귀국해서는 천황 국체론을 내세우며 우파의 사상적 기반을 마련했고 노년에는 불경에 빠졌다. 그리고 끝에는 실패로 끝난 2.26 군사 쿠데타의 주동자로 지목되어 사형에 처해진다. 이렇듯 복잡한 삶을 산 기타 잇키의 삶 자체도 매력적이었지만 책을 읽다 보니 자연스레 20세기 초반의 복잡한 동아시아 정세도 알게 되었다. 개인과 사회, 이들이 만들어가는 역사를 읽을 수 있다는 게 평전의 큰 매력일 테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인은 어떤 인물에 관심이 많았을까. 그 관심이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재는 기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채널예스에서는 예스24에서 2004년 1월부터 2015년 2월까지 판매된 외국 인물 평전 판매량을 1위부터 10위까지 확인했다. 평전이 여러 종류일 때는 중복으로 계산하지 않고 가장 많은 책을 기준으로 했다.
[외국 인물 평전 판매량 순위 TOP10]
1위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저/안진환 역 | 민음사
1위는 많은 사람의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2011년 10월 5일, 애플의 공동 창업자이자 전 CEO인 스티브 잡스가 타계했다. 그가 죽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발간된 이 책은 두께가 어마어마했지만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저자인 아지작슨은 잡스 평전을 쓰기 위해 2009년부터 40여 차례 인터뷰했고, 그의 주변 인물 100여 명을 취재했다고 한다.
2위 체 게라바 평전
체 게바라 평전
장 코르미에 저/김미선 역 | 실천문학사
피델 카스트로와 달리 혁명을 위해 죽음마저 불사한 체 게바라의 삶은 여전히 혁명의 아이콘이다. 30대 이상이라면 세계적으로 알려진 전기 작가 장 코르미에가 쓴 『체 게바라 평전』을 읽어보진 않았더라도 책 표지를 한 번쯤은 봤을 확률이 높다. 대학에서 운동 열기가 식은 뒤에도 『체 게바라 평전』은 선배들이 권하거나, 대학 구내 서점에서 가장 보기 좋은 곳에 진열된 책이었다.
3위 덩샤오핑
덩샤오핑
벤저민 양 저/권기대 역 | 황금가지
20세기 후반부터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현대 중국을 있게 한 덩샤오핑을 향한 관심도 높아졌다. 이를 반영하듯 덩샤오핑 평전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이 책은 1981년 미국으로 건너가 동아시아를 연구해 온 벤저민 양이 쓴 평전이다. 1위인 스티브 잡스과 2위인 체 게바라보다는 두껍지 않은 분량이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덩샤오핑 이전의 중국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장칭 : 정치적 마녀의 초상』도 읽으면 좋을 평전이다.
4위 예수
예수
조철수 저 | 김영사
세상에서 가장 많이 읽힌 책이 ‘성경’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4위라는 성적은 조금 낮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나 체 게바라에 비해 예수를 평전으로 다룬 책 종류가 많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여하튼 예수 평전 중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이 책은 국내 앗시리아학 권위자인 조철수 박사가 집필했다. 고문학을 꼼꼼하게 분석해 역사적 예수를 복원해낸 평전으로, 예수 활동 당시의 시대상도 알 수 있다.
5위 호찌민
호찌민
윌리엄 J.듀이커 저/정영목 역 | 푸른숲
3위인 덩샤오핑에 이어 5위인 호찌민은 사회주의 국가를 지향했던 지도자라는 점이 흥미롭다. 호찌민은 유교적 교양을 쌓은 인문주의자이자 공산주의 혁명가이며, 베트남 독립을 설계하고 프랑스와 미국에 대항한 투쟁에서 승리한 민족주의자이다. 20세기 국제정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정치적 인물 중 한 명이다. 이 책 역시 두께가 상당한데 1,000쪽에 약간 못 미치는 분량에 호찌민의 모습을 담았다.
6위 조조
조조
장쭤야오 저/남종진 역 | 민음사
삼국지 연의에서 간사하게 묘사되는 조조는 실제 역사에서는 유능한 군주였다. 다양한 분야에 조예가 깊었으며 신하를 이끄는 리더십이 탁월했다. 이 책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조조의 유년 시절에서부터 천하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청장년기의 삶을 그렸다.
7위 레오나르도 다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
찰스 니콜 저/안기순 역 | 고즈윈
상위권에 위치한 사람 대부분이 정치 지도자인 데 비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르네상스 중흥을 이끈 사상가이자 예술가였다.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굴곡이 심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정치 지도자에 비해 조금은 덜 극적인 삶일 것 같지만, 이 책은 그 동안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아닌 인간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조명하려 노력했다.
8위 비트겐슈타인
비트겐슈타인
레이 몽크 저/남기창 역 | 필로소픽
7위에 이어 비트겐슈타인 역시 사상가다. 소쉬르와 더불어 20세 언어철학을 대표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깔끔하고 단순함을 지향한다. 하지만 개인의 삶은 안정, 평온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시대상이 그랬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생과 사를 고민한 게 비트겐슈타인의 청년기였고 안정되는 듯 보였던 생활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흔들린 게 노년의 일이었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사상을 발전시킨 비트겐슈타인의 삶을 따르다 보면 러셀, 포퍼, 프레게, 무어, 케인스, 스라파, 프로이트, 튜링, 릴케, 루스, 오토 바이닝거, 브람스, 클림트 등을 만날 수 있는데, 20세기 문화사를 볼 수 있다는 점은 비트겐슈타인의 다른 매력이다.
9위 나폴레옹
나폴레옹
조르주 보르도노브 저/나은주 역/이용재 감수 | 열대림
짧은 시간에 영광과 실패를 동시에 맛본 나폴레옹. 그는 프랑스 혁명을 수호하려는 지도자였을까. 아니면 전 유럽을 삼키려 했던 독재자에 불과했을까. 확실한 점은 나폴레옹은 복잡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나폴레옹에 관한 당대인의 회고와 역사가의 연구서, 추종자들의 추모글, 반대파의 비방문, 정부 공문서와 정치 책자에서 떠도는 소문과 민중의 노랫말 등 다양한 자료를 이용해서 나폴레옹의 진면목을 복원하려 했다.
10위 이탁오
이탁오
옌리에산 저/홍승직 역 | 돌베개
이탁오는 예수, 스티브 잡스, 나폴레옹 등보다는 덜 알려진 인물이지만 극적인 삶으로 치자면 결코 그들에 뒤지지 않는다. 지방 관리로 시작해 학문에 뜻을 둔 뒤로는 불교와 도교를 넘나들며 다양한 학문 세계를 탐했다. 공식적인 가르침이 유교인 명나라 말기 이탁오라는 존재는 주류에서 보기에 껄끄러운 존재였는데, 그는 결국 옥에서 자결하고 만다. 자유분방한 이탁오의 학문은 조선에도 영향을 줬는데, 허균와 이언진 등이 이탁오를 선망한 대표적인 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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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규(인문 PD)
티끌 모아 태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