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4시간. 8시간을 잔다고 하면 16시간을 깨어 있는 건데, 우리는 16시간 동안 어떤 생각을 가장 많이 할까. 직장인이라면, 아침에 출근하면서 커피를 마실까? 오늘 상사한테 보고서는 통과될까? 거래처 미팅은 괜찮을까? 점심은 뭐 먹지? 등을 떠올릴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생각을 하면서 산다. 그런데, 16시간 중에 딱 5분만 쪼개서 평소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면 어떨까. 960분 중에서 딱 5분 만이라도 말이다.
김진혁 PD가 독립 언론 <뉴스타파>에서 만드는 미니 다큐 <5분>은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고 있지만, 기존의 다큐와는 다르다. 가장 최근에 제작한 ‘아들의 추도사’ 편에서는 갖가지 해석이 쏟아진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모식을 다루며, 노건호 씨를 ‘아버지를 잃은 한 명의 아들’로 바라봤다. “다른 대통령들의 아들들과 달리 평범한 삶을 선택했기 때문에 평범한 아들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뉴스타파>의 해석이다. 5월 20일에는 “전염병 퇴치 방법으로 ‘정치를 똑바로 해야 한다’는 처방”을 내린 독일의 병리학자 ‘루돌프 피르호’를 다뤘다. 같은 날 한국에서 발병된 메르스를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미니 다큐 <5분>은 현재 시점에서 사회적으로 대두되는 문제들을 놓고 합리성과 상식을 되짚어볼 것을 제안한다. 2013년 11월 ‘친일연구의 선구자 임종국’ 편을 시작으로 저널리스트 에드워드 머로, 복지국가 스웨덴의 에른스트 비그포르스, 주교 지학순, 안녕하십니까 대자보, 4만 7000원의 노란 봉투 캠페인 등을 다뤘다. 책으로 엮인 『5분』은 각 방송의 주요 키워드와 함께 방송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개념들을 심도 깊은 해설로 덧붙였다.
김진혁 PD는 책을 펴내며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문득 발걸음을 멈추는 5분을 마련해주고 싶었고, 동시에 나 자신에게도 그런 시간을 마련해주고 싶었다. 『5분』이 많은 분들에게 5분의 행복, 작은 컬러 픽셀 하나 자연스러운 생각의 고리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우리사회에서 구조적으로 고민해야 할 지점
최근 개봉한 영화 <위플래쉬> 이야기를 하면서 “생각거리가 강요 받은 느낌 없이 자연스러워서 좋았다”고 밝히셨는데요. 『5분』을 연출하면서 제작자로서 특히 신경 썼던 부분과 비슷할 것 같습니다.
독자가 생각의 자극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이에요. 특히 기존에 무심하게 지나쳤다거나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굳이 다시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던 부분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려고 애쓰죠.
아무래도 시청자들은 <지식채널e>의 연장선으로 <5분>을 보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슷한 시스템으로 만들어졌어요. EBS에서 퇴사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으로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뉴스타파>에 계셨던 이근행 PD님이 제안을 하셨어요. 다큐 하나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계속 영상을 만들 생각은 있었지만 <지식채널e>와 비슷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있었거든요. 너무 똑같은 포맷을 오래한다는 게 좀 걸리더라고요. 하지만 <뉴스타파>에서 제안을 주신 거고, 조금이라도 <뉴스타파>에 기여할 수 있다면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식채널e>이라는 특화된 포맷이 있었기 때문에 제게 제안을 주셨으니, 이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죠.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편을 요구하셨는데, 그건 무리였고. (웃음) 2주에 한 편씩 만들게 됐어요.
아이템 선정은 어떻게 하시나요?
이게 참 어려운데요. <지식채널e>는 아이템 제한이 거의 없었거든요. 그런데 <뉴스타파>라는 타이틀이 붙으니까 약간의 한계가 있어요.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지식채널e>의 소사이어티 채널’만 다루자는 거예요. 그 안에서 자유롭게 주제를 선정하고 있어요. 작가 분들의 의견도 많이 듣고요. <지식채널e>를 만들 때,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시대정신, 소프트하게 말하면 트렌드를 다룬다고 했는데요. 겉으로 드러나는 시사적인 아이템을 끌어오지 않고, 그 이면에 있는 사람들의 직간접적인 사고패턴이나 우리사회에서 구조적으로 고민해야 할 지점들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어요.
지난 5월 20일 <뉴스타파> 미니다큐 ‘5분’에 ‘전염병에 정치를 처방한 의학자’ 편이 올라왔습니다. 마치 메르스를 예언이라도 한 듯싶었는데요.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전혀 예상하지 않았어요. 전염병같이 정치와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부분조차 정치와 매우 밀접하단 얘기 정도를 하려고 했던 것인데, 메르스 사태가 발생되면서 그게 정말 현실로 증명이 됐네요.
주교 지학순, 천국의 집, 다메, 모독 등 다양한 이슈를 다뤘습니다.『5분』에 소개된 내용 중에,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이 좀 더 깊이 생각했으면 좋겠다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어느 하나 다 그러길 원해서 특별히 하나를 꼽기는 어려워요. 다만 개인적으로 복지국가 ‘스웨덴의 비밀’이 현재 대한민국에게 가장 큰 시사점을 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정치도 문제지만 빈부격차를 포함한 문제가 보다 더 심각해 보이고, 정치 문제 역시 그러한 경제적 문제 위에 놓여 있다고 보기 때문인데요. 특히 스웨덴을 포함한 서구 복지국가의 현재 모습은 여러 매체를 통해 이미 수없이 많이 소개가 된 반면, 정작 현재 모습에 이르게 된 과거의 실질적인 어려움들, 경험들은 잘 알려져 있지 않거든요. 그래서 그냥 카피(?)해대는 경향이 있는데, 스웨덴의 과거를 보면 현재 우리 상황과 닮은 점이 적지 않아서 이 부분에 대해 알게 되면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좀 더 많이 회자됐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았던 영상은 무엇인가요?
세월호 유가족 분들 이야기를 다룬 '세월호 유가족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 편이에요. 세월호 사태와 관련된 담론들이 너무 '극적인 상황' 자체에 치중되어 있는데, 오히려 그분들이 가장 원하는 건 평범한 일상 그 자체라고 생각했고, 그 부분에 대해 사람들이 생각해 봤으면 했습니다. 다만 세월호 참사에 대한 해결이 정부의 무성의함으로 인해 지지부진해지다 보니, 아이템 자체에 시청자들 역시 많이 지치신 것 같네요.
한 독자가 『5분』을 읽고, “적나라하다. 뜨겁다. 아름답다. 뭉클하다”고 표현했더라고요. PD님이 생각한 『5분』의 감정은 무엇인가요?
'어?' 하는 느낌이랄까요? 아주 큰 생각 혹은 감정의 변화는 아니지만, 그 단초가 될 수 있는 작은 지적 균열을 느낄 때의 쾌감이라고 생각합니다.
『5분』을 특히 어떤 분들이 읽으면 좋을까요?
사회 정치를 포함한 세상의 문제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거나, ‘그들만의 리그’라고 생각하거나 ‘그 놈이 다 그 놈’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보셨으면 해요. 그렇다고 무슨 대단한 거시 담론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는 건 아니고요. 그저 가볍게 한번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정의로움을 이뤄낼 수 있는 중요한 도구
『5분』에서 <시 잇 나우(See It Now)>, <히어 잇 나우(Hear it Now> 등 기념비적인 프로그램을 만든 최초의 종군 기자 ‘에드워드 머로’를 다뤘는데, TV에 대한 PD님의 생각이 담겨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에드워드 머로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언론인이에요. 매카시와 맞서 싸울 만큼 용감하고 정의로운 것도 물론 대단하지만,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보여줬던 의제 설정 능력, 언어 구사 능력 등이 무척이나 놀라웠거든요. 용기에 더해 실력마저 출중한 것이죠. 하지만 무엇보다 TV를 오락의 도구가 아닌 정의로움을 이뤄낼 수 있는 중요한 도구로 보는 그 파격적 관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자칫 이렇게 말하면 '프로파간다 도구'로 보느냐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는데, 머로는 오히려 대 놓고 얘길 한 거지요. 사실 TV는 그 매체적 속성상 어떻게 활용하든 프로파간다적 요소를 없앨 수 없기 때문에, 머로처럼 어떠한 목적으로 위한 프로파간다적 도구로 쓸 것인가를 정확하게 밝히는 것이 차라리 솔직한 것입니다. 이건 어떤 면에선 권력과 맞서는 것보다, 더 많은 적을 만들 수 있는(동료들마저 적으로 만들 수 있는) 관점이자 발언이기 때문에 굉장한 용기라고 생각하고 동시에 통찰이라고 봅니다.
올해 1월에 ‘꼰대 vs 선배’ 편을 <5분>에서 다뤘는데, 젊은 독자들의 큰 반향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20대에게 선배세대가 쥐어주는 건 ‘자기계발서’와 ‘힐링 도서’라고 지적했는데요. 현재 대학교수로 재직 중인 PD님께서 학생들에게 자주 하게 되는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시는지.
나름 애는 씁니다. 그렇다고 꼰대가 안 되려고 하는 건 아니고요, 그보다는 선생으로서 적절한 역할을 하려고 애쓰면 그게 자연스럽게 꼰대가 안 되는 길이라고 봅니다. 중요한 건 꼰대가 안 되는 게 아니라, 선생이 되는 것 아닐까요.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남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 이런 걸 속된 말로 ‘꼰대질’이라고 한다. 그렇게 보면 꼰대는 꼭 나이가 많아야 하는 건 아니다. 정치성향과 이념성향이 특정한 쪽에만 꼰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하루 하루 버텨내기 어려운 20대 들에게 선배가 되어줄 자신이 없으면 꼰대질은 하지 않는 게, 현재 20대가 겪는 불안감 가득한 세상을 만든 선배 세대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다. (꼰대 vs 선배, 278쪽)
EBS에서 직업탐구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도 하셨는데요. 만약 직업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다면 다른 일을 해보고 싶으신가요?
PD가 되지 않았더라도 영상 제작 혹은 창작과 관련한 일을 어찌됐든 했을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이 제 적성에 잘 맞고, 그 이외에 다른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요. 제 머릿속에 있는 것을 창작해 내는 게, 즐겁습니다.
현재 해직언론인 관련 영상을 만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 건가요.
이 분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소소한 면들을 담고 싶어요. 그래서 대단한 투사로서의 면모가 아닌 상식적인 언론인이 되고자 하는 평범한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알리고 싶습니다.
만약 일간지 1면을 통으로 쓸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과연 나쁜 대통령이었나? 그걸 한 번 쓰고 싶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재임기간의 주요 프레임이 개인적인 캐릭터나, 발언과 같은 부분으로 짜여 있었는데, 이제는 국가경영이라는 실질적인 프레임으로 바라볼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생각해서요. 단순히 노 전 대통령을 이제는 좋게 봐주자거나 하는 식의 접근이 아니라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이라는 본질적 접근을 이제라도 해야, 현재의 대통령 나아가 앞으로 새로 뽑을 대통령에 대해 국민들이 유의미한 관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2011년에 『지식의 권유』를 집필하셨는데, 후에 쓰고 싶으신 책이 있다면.
현재로선 이미 다 쏟아낸 것 같아서 특별히 추가로 쓰고 싶은 책은 없어요. 다만 예전부터 기회가 되면 극영화 시나리오처럼 완전히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지식채널e>에서 일부 시도해 보기도 했고요.
현재 제작 중인 미니 다큐는 무엇인가요?
메르스 관련 내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윤곽이 잡힌 건 아니고요.
피디님께 지금, 자유시간 ‘5분’이 주어지면, 무슨 일을 하고 싶나요?
지금 만들고 있는 해직 언론인 다큐멘터리를 생각할 거 같아요. 완성되기 전까지는 주로 그럴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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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김진혁 저/뉴스타파 기획 | 문학동네
『5분』은 [지식채널ⓔ]를 기획하고 연출한 김진혁 피디가 EBS를 퇴사한 후, 독립언론 뉴스타파를 통해 선보인 [김진혁의 5minutes]를 엮은 책이다. ‘감성지식’이라는 방송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장르를 선보이며 ‘5분’ 간 전해지는 강렬한 메시지와 영상을 시청자들에게 제시했던 그가, 이번에는 사회적인 이슈를 중심으로 도망갈 수도 없고, 포기할 수도 없던, 진실에 관해 이야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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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혜
eumji01@naver.com
kokoko111
2015.06.17
인상깊은 답변이네요. 좋은 영상 많이 만들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