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사운드 소속 힙합 듀오 라임버스의 피제이(Peejay)는 이제 프로듀서 피제이로 더욱 유명하다. 빅뱅, 투애니원, DJ DOC 등 YG 소속 아티스트와의 협연으로 이름을 쌓은 그는 현재 힙합 씬에서 가장 트렌디하면서도 폭넓은 음악을 선보인다. 결정적인 「Dali, van, picasso」는 두 말 할 것도 없고, 최신으로는 자이언티와 크러시의 히트 콜라보 「그냥」이 있다. 그런 그가 솔로 커리어를 시작하려 한다. 정력적인 작업을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고 있는 피제이를 연희동에서 만났다.
< Walkin' Vol.1 >은 여러모로 첫 발걸음입니다. 새로운 레이블에서 나온 개인의 첫 앨범인데요.
워킨 레코즈 (Walkin' Records)라는 이름의 레이블을 세웠어요. 아무래도 타 회사, 타 아티스트와 작업하다 보면 제가 가진 생각을 100% 표현하기는 어렵거든요. 새 아티스트 받을 생각 없이 편하게 음악 하고 싶어서 만든 레이블이에요. 1인 기업, 사업자 등록증 같은 개념이랄까요?
현재 가요계, 특히 힙합 씬에서 가장 핫한 프로듀서임에도 솔로 커리어를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음악을 할 때, '더 늙기 전에 많은 것을 만들어놓자'는 생각이 있어요. 하루하루 습관적으로 노래를 만들고, 작업에 재미가 붙게 되면 계속 뭔가를 하고 있어요. 이를테면 집에 쌓여있는 습작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보관하기보다는 이 결과물들을 정리해서 솔로 앨범으로 만들어보고 싶었죠. 피제이의 스타일로요.
Vol. 1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도 '작업 정리'인가요?
그렇죠. 평소에 써놨던, 작업했던 (Walkin') 곡을 추려서 볼륨 시리즈로 콘셉트 화한 거에요. 앞으로도 볼륨 투, 볼륨 쓰리 계속 나올 텐데 정리 형식이 될 것 같아요. 볼륨 투는 거의 다 완성됐고 마무리만 하면 되는 상황이고요.
원래는 2014년 가을쯤이 발매 예정일이었습니다. 작업 과정이 오래 걸렸나요?
앞서도 언급했지만 꾸준한 작업선 상의 결과라 따지고 보면 2012년이나 2013년에 다 만들어졌어요. 제 성격이 좀 느긋한 편도 있고… 마무리 작업과 피쳐링 등에서 시간이 걸렸네요.
피제이의 스타일이라면?
앨범을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사실 좀 어려워요. 확 와 닿진 않죠. 소속사와 함께 작업할때도 이런 류의 곡을 전달하면 '난해하지 않을까'하는 반응이 오더라고요. 힙합 기반의 네오 소울, 약간은 몽환적이면서도 다양한 소스(Source)가 이리저리 합쳐진 상태라고 해야 할까요.
작곡가 피제이가 다채로운 색이 자랑이라면 솔로 피제이의 앨범은 일관됨이 있습니다. 2010년의 마인드 콤바인드(Mind Combined)가 그 출발점같은데.
마인드 콤바인드는 라임버스 이후 첫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였어요. 그룹 시절에는 아무래도 대중 친화적인 음악을 하고자 했다면 그 이후로는 고유의 방식을 확립하는 과정이었던 거죠. 마침 진보(Jinbo)를 만났는데 스타일이 완전히 맞았어요. 전부터 제가 구상해오던, 평소에 가장 많이 쓰는 형태를 진보도 하고 있었죠. 이 앨범도 그 작업의 긴 연장선상이라 봐도 될 것 같아요. 아주 긴.
독특한 앨범 자켓도 그 뜻을 어느 정도 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앨범 속지를 보셔야 해요. 빈지노와 함께하는 크루 IAB 작품이에요. 처음 디자인하는 분들과 이야기했을 때 앨범에 관한 이야기를 했죠. 평소에 썼던 습작들의 모음집 콘셉트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씀드리니 그 과정을 '나무'로 만든 거에요. 정말 깎고 사포질하고 나무 옮겨서 만든 실제 조형물이에요. 촬영은 서울대 목공 사무실에서 했고요.
앨범 자켓을 거대한 프로젝트로 만든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무식한 짓이라 할 수도 있죠. 그래도 제 작업 방식을 가장 잘 나타낸 것 같아요. 굳이 무식해도 의미 있고, 과정이 있는 결과라면 좋아요. 그냥 완성본 볼 때랑은 꽤 큰 차이죠.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고 싶었어요.
수록곡을 살펴보면 우선 이국적인 「Time」을 꼽아보죠. 스페인어 나레이션이 독특하네요.
본래는 포르투갈 어로 하고 싶었어요. 브라질 느낌을 살리려고요. 그런데 한국에 포르투갈 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요. 아쉬워하다가 그래도 브라질 빼면 다른 나라들은 다 스페인 어를 쓰니까, 스페인어로 진행했죠.
라임버스의 「Senorita」라는 노래가 있어요. 그 인트로에도 스페인어가 나오는데, 그 녹음을 도와준친구와 새로 섭외한 여성 한 분의 목소리에요.
브라질 느낌이라면 노래에 녹아있는 보사노바 풍의 리듬 때문인가요?
맞아요. 남미 음악도 많이 좋아하는 편이라 다양한 시도를 끌어와서 이것저것 넣어보기도 해요.
남미 음악에는 언제부터 영향을 받으셨는지?
중 고등학교 한창 음악 듣는 시절이잖아요. 저는 흑인 음악이 좋아서 레코드 판 표지에 흑인만 있으면 그냥 다 샀어요. 록, 재즈, 힙합, 가리지 않고 그냥 흑인이면 샀어요. 그렇게 모르고 많이 들은 이유도 있고… 제가 자주 가던 레코드점 주인아저씨가 추천해준 앨범 중에 보사노바 스타일 노래가 많았어요.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다가 본격적으로 찾아 들으면서 빠지게 되었어요. 화성 면에서나, 리듬 면에서나.
곡의 내용도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데,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만들고 나서 떠오른 생각은 '주문'이었어요. 좋은 일이 있어도 나쁜 일이 있어도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된다는, 그러니 걱정 말고 맥주나 한잔 하러 가자는. 이런 내용의 일상적인 대화에요. 사실 굉장히 당연하고 일상적인 표현인데, 반복되는 리듬이나 멜로디를 듣다 보니 일종의 기복, 주문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괜찮아 잘 될거야.
「Reborn」에서는 YG의 작곡가, 초이스37의 랩도 들을 수 있습니다.
원래 초이스 37은 LA에서 비트 만들고 랩하던 친구였어요. 저랑 포지션도 비슷하고 음악 성향도 비슷하죠. 저랑 합이 잘 맞겠다 싶어서 같이하게 되었는데, 그 전에도 초이스랑은 한번 꼭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사실 랩 메이킹이 쉽지 않아보였는데, 결국 4, 5년 전 써놓은 가사를 바탕으로 했죠. 비트만 바꾸고.
에픽하이 < 신발장 > 앨범에 수록된 피제이씨의 비트 「Life is good」, 「Lesson 5」가 많이 생각났는데요.
그 스타일로 빚은 비트에요. 「Lesson 5」같은 경우는 너무 작업이 빨리 이뤄져서, 그냥 금방금방 비트 만들고 금방금방 녹음하고, 여유롭게 만든 노래에요.
그런가 하면 트랩 비트의 「Out Of My Mind」는 앨범에 어우러지면서도 다른 느낌인데요. 대세의 키스 에이프와 G2가 참여했습니다.
Keith Ape가 Kid Ash 라는 이름을 쓸 때, G2와 같이하던 팀 'G2 & Kid Ash' 때부터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어린 친구들이라 자극도 많이 받았고요. 원래는 BPM 90 정도, 지금 스타일과 완전히 다른 비트였는데 조금 더 트렌디함을 넣어야겠다는 의견을 받았어요. 본래는 붐뱁이었다면 이제는 21세기형 트렌드라 할 수 있죠.
키스 에이프가 주목받기 전 싱글로 공개된 곡이기도 합니다.
키스 에이프같은 계속해서 같이 작업해보고 싶은 친구에요. 아이디어와 활력이 넘치죠. 다만 지금은 활동한다고 미국에 있으니까요.
콜라보레이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뭐니뭐니해도 피제이씨의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는 역시 빈지노같습니다. 「I get lifted」에서 또 참여해주셨죠.
빈지노는 이제 많이 작업하다 보니까 서로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었죠. 「I get lifted」 비트를 처음 짰을 때 빈지노를 처음 떠올렸어요. 그래서 노래는 빈지노와 그 크루 IAB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빈지노와의 첫 만남에서 특별히 다른 점이 있었는지?
당시 빈지노는 재지팩트 스타일 대신 혼자 할 수 있는 음악을 구현할 프로듀서를 찾고 있었어요. 빈지노와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니 음악도 그렇고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서로 취향도 겹치고 말도 잘 통하더라고요. 느낌이 너무 잘 맞아서 계속 만나서 작업하는 경우가 생겼어요. 보통 집에서 주로 혼자 작업을 하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말을 더 많이 나누게 되었죠.
몇 가지 예를 들어주신다면.
< Up All Night > EP 전체가 대화를 통해서 콘셉트를 짠 거에요. Wooyoungmi라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파리 컬렉션 음악을 총괄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EP 전체를 구상했어요. 「How do I look」같은 경우도 기존 작업물을 엎어버리고 새로 만든 거에요.
빈지노 씨의 경우도 있지만 보통 콜라보레이션을 할 때는 어떤 과정으로 이뤄지나요?
음반을 구상할 때 피쳐링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리고는 바로 연락하죠. 연락처 알아서 문자 보내거나 전화하는 건 당연하고, 트위터 DM도 활용해요. 크러시가 아메바랑 계약하기 전에도 트위터 쪽지로 처음 만났었어요.
그리고는 일단 무조건 만나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대화를 통해 작업을 풀어나가요. 빈지노도그렇고, 진보도 만나서 작업했죠. 업무관계 대신에 사람 대 사람으로 감정을 통하고 싶어요.
콜라보레이션에 있어 피제이 씨는 굉장히 장대한 장르 폭을 자랑하고 계십니다. 가요부터 힙합, 일렉트로닉 모두 아우르는 스펙트럼의 비결이 있을까요?
저는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우진 않았어요. 그래서 일단 좋은 귀가 중요한 것 같고. 자연스럽게 체득하려면 한 장르만 듣는 대신에 넓게 두루두루 음악을 들어야 해요. 장르 얘기가 나왔지만 사실 하나만 파기에는 세상에 좋은 음악이 아주 많아요. 제 결과물이 그날그날 다른 이유도 이것 때문 같아요. 어떤 날엔 발라드가 좋고, 어떤 날엔 멜로디가 들리고. < Walkin' > 시리즈가 힙합을 표방하고는 있지만 사실 다른 콘셉트로 나올 수도 있어요.
본래 라임버스라는 힙합 듀오 팀을 하다 프로듀서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꿈은 작곡가였어요. 그게 어떻게 하다 보니 DJ DOC의 이하늘 형을 알게 되었고, 함께 라임버스를 만든 거에요. 그 때도 재밌었지만, 계속 작업하다 보니 랩보다는 비트 메이킹에 더 흥미가 가더라구요. 딱히 프로듀서나 비트 메이킹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이렇게 흘러온 것 같아요. 다른 얘기긴 하지만, 지금은 힙합이 대세기 때문에 랩을 해도 유행이 되는데 과거에는 랩이 비주류였죠. 저는 또 랩을 그렇게 잘하진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잘하는 사람이 해야 멋있죠.
예전 랩 하던 시절 생각해보면 공연을 하고 싶기도 해요. 그래도 다시 생각해보면 프로듀서로써의 커리어가 제 성격에 가장 잘 맞는 것 같아요. 이제 가사는 안 쓰지만, 노래는 유명해지길 바라죠. 당연한 모순같아요.
그렇다면 프로듀서 피제이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평소에 내가 뭘 만드나, 뭘 하나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 Walkin' > 시리즈 앨범을 만들었어요. 마감일에 안 쫓기고, 내가 만들어서 내가 낼 수 있는 시스템. 레이블도 그래서 만든거고요. 지금처럼 다른 이들과 같이 협연도 하고, 공연이나 솔로 활동도 생각하고 있어요. 솔로 활동이라면 제가 나서서 공연을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제 음반 공연이 좀 더 인상을 남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죠. 라이브 셋 밴드 공연도 지금 구상 중이에요.
마지막으로 < Walkin' > 시리즈를 정의한다면.
작곡가 피제이가 아니라, 프로듀서 피제이가 '평소에 해왔던 흔적'이라고 봐 주시면 편할 것 같아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스타일로 만든, 제 음반입니다.
인터뷰 : 김반야, 김도헌
정리 : 김도헌
사진 :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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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