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고 외국은 ‘재미없는 천국’이라고 말한다. 외국으로 떠나서 살다보면 안정적이고 조용하고 애들 키우기는 좋은데, 너무너무 지루하고 따분해서 재미없는 천국같단다. 그렇다고 한국에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니 그 안에서의 마지막 땀 한 방울까지 마른수건 쥐어짜면서 지내야하고, 극심한 경쟁의 세계와 불공평한 롤러코스터의 삶을 무한쳇바퀴돌아야하는 지옥을 떠올리는 순간 딱 멈추게 된단다.
외국 같으면 한 달은 이슈가 될 큰 사건들도 한국에서는 더 큰 새 사건에 의해서 묻힌다. 하루하루를 살얼음판위를 걷듯이 살다보니 한국이 싫어지는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 씩 드는 사람이 한국을 즐기는 수혜자들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한국이란 내가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는 나라, 어떻게 봐야하고 또 정말 떠나는 것이 정답일까? 여기에 대해서 최근 나온 두 권의 흥미로운 책이 해법까지는 아니지만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첫 번째 책은 한국의 대기업 엘지전자의 프랑스 법인에 취직해서 법인장까지 역임하며 10년간 일을 했던 프랑스인 에리크 쉬르데주가 회사를 그만두고 난 후 프랑스인의 눈으로 한국인의 일하는 모습, 회사에서의 일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쓴 『한국인은 미쳤다』(북하우스)다. 저자는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엘지전자에서 일을 했다.
그는 한국인의 일하는 방식에 처음에는 적응하기 어려워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한국에서 본부장이 방문을 하기로 하자, 모든 회사의 업무는 스톱이 되었고 비행기에서 내려서 호텔에 도착해서 여장을 푸는 시간, 이동하는 시간에 교통상황이 어떤지에 대해서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어야했다. 거기다가 그가 방문할 프랑스의 전자제품 매장은 엘지제품이 모두 전면에 배치되어 있어야했다. 실제로는 소니와 삼성 제품에 밀리고 있지만 본부장이 볼 때에는 그래보여야만 했던 것이다. 현실적이지 않고, 프랑스인의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었지만 결국 그걸 실현해 내면서 그도 서서히 한국식 일처리 방식에 적응을 하기 시작했다.
식사시간도 천천히 사적인 대화를 하면서 먹기보다 짧은 시간동안 순서대로 먹고 잠시 담배 한 대 피우는 것이 고작이다. 언제나 야근은 당연하고, 필요하면 토요일에 출근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주말에도 일을 하거나, 아니면 비즈니스 관계자들과 골프를 치는 것같이 업무의 연장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식으로 개인을 조직에 통째로 내주고 살았다. 저자는 짧은 시간안에 엄청난 경제발전을 해낸 한국인이 갖는 특징을 이전에 그가 일본기업에서 근무한 것과 비교했다. 일본 기업인들은 일본인적 특성을 많이 서양인의 그것과 희석시켜서 섞었다.
한국인은 그래서 일본이 쇠락했다고 생각하고, 서구의 매력에 도취되지 않고 한국식 일처리 방식을 세계 최고라고 여긴다고 봤다. 한국인은 지치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세우고 전진하는 맹목적인 자기확신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처음 법인에 합류한 이후 몇 배의 매출 신장을 경험하면서 저자는 한국인식 일처리 방식에 호의적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장에 대한 능력치는 서양인의 생각의 한계를 초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시스템과 무한 경쟁에 의해 통제된다. 간부사원 1만 8천 명중 4백 명을 제외한 1만 7천 600명이 하위 4개 층에 있고, 위로 올라가서 4백 명의 임원그룹안에 들어가기만을 바라면서 한계를 넘어서는 성과를 낸다.
그 과정에 거슬리는 모든 것은 장애물일 뿐이다. 그래서 한국인 사원들은 프랑스인 직원을 게으르고 소송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볼 뿐이고 서로가 서로에 대해 선을 긋고 살아간다. 그 가운데에서 중재를 하려고 노력을 하던 그는 드디어 법인장이 된다. 그러면서 더욱 더 한국에서 임원교육을 받으면서 한밤 중까지 이어지는 교육과 술자리, 파도를 타는 폭탄주를 마시는 것까지 경험을 하면서 그 안에 녹아들려 노력을 했다. 그러나, 외국인 임원을 개방적으로 뽑는 정책을 폈던 부회장이 순식간에 해고가 된 이후, 그를 포함한 외국인 임원들도 모두 한 번에 사라져버렸다.
한국식 기업에서는 다시 한국적 문화만이 중요해졌고, 외국인들은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었을 뿐이다. 그가 보기에 한국인은 매우 독하고 빠르고 성장지향적이며, 자신을 잃어버리더라도 성공을 위해서 달려가기만 하는 사람들이다. 수십년전 변방의 작은 기업에서 짧은 시간에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한국 기업은 장점이 있다. 놀라운 효율성, 전략이행과정의 통제능력은 세계최고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그 안에서 일을 하는 개인도 그럴까? 하루 10시간의 근무, 맹목적 헌신, 경직된 명령체계, 불안정한 고용은 노동자의 가정생활을 좀먹고 가치있는 삶의 즐거움을 놓치게 한다고 저자는 조언하고 있다. 그의 관점에서 한국인은 제 정신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최소한 저자가 경험한 ‘한국인은 미쳤다’라고 하고 있다. 그가 경험한 에피소드다.
“모범적인 한국인은 온몸과 마음을 바쳐 회사에 충성한다. 한국인 과장 한 사람이 어느 수요일엔가 오후에 접어들 무렵 찾아와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와도 될지 허락을 구했다. 그는 월요일부터 쭉 회사에서 일을 했던 것이다. 그의 부인은 군소리 없이 남편의 빈자리를 참아냈다. 그녀에게는 남편을 곁에 두는 만족감보다 엘지가 더 중요했다.”
유럽인이면서 동시에 일본의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일을 했기에 동양인의 정서도 어느 정도 이상 알고 있는 양식 있고 사회경험이 많은 외국인 보기에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닌 것 같은 한국인의 삶의 방식, 그 안에서 다른 것은 경험해보지 못한 채 주어진 과제를 꾸역꾸역 해내면서 살아가고 있는 한국인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 에리크 쉬르데주가 만난 한국인은 그래도 나름 한국인으로서는 그 과제를 잘 해내고 성공한 사람들이라 할 만하다. 어쨌든 대기업에 입사를 하는데 성공했고, 프랑스 법인에 파견을 나갈 수 있을 정도의 능력치를 본국에서 보였고, 또 그가 만나서 관계를 맺은 이들은 간부들이었으니 말이다.
그가 만난 이들은 지금 한국의 시스템에서 바라볼 때 한국인적 삶의 방식에 잘 따르고 있는 사람이거나 그 안에서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모든 한국인이 다 그럴 수는 없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삶의 방식을 따라가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 흐름에 올라타기를 허락받지도 못한 사람이 사실은 훨씬 더 많다. 또한 그 흐름에 얼추 올라타기는 했지만 하루하루 자아가 타들어가서 소모되어버리는 것 같다고 느끼면서 힘들어하는 사람도 매우 많을 것이다. 하물며 에리크 쉬르데주가 만난 한국인 직원들도 겉으로는 열심히 성실하게 맡은 바 임무를 다 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이나, 속으로는 번아웃 되어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몸바쳐 충성을 해도 언제 떨려날지 모르는게 현실이다. 이런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한국을 떠나는 것이다. 이유는? 바로 『한국이 싫어서』다. 소설가 장강명은 『한국이 싫어서』라는 소설을 통해서 오늘날 한국을 사는 아주 보통 젊은이가 회사를 다니다가 지긋지긋해서 한국을 떠나 호주로 가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렸다. 종합금융회사에서 일하던 계나는 몇 년간 돈을 모아 과감히 한국을 떠난다. ‘여기서는 못살겠다’는 마음에 오랫동안 차곡차곡 준비를 했다.
그녀는 자신이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뭘 치열하게 목숨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은 개뿔도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는 더럽게 까다롭다’. 그녀는 자신을 톰슨 가젤에 비유한다. 사자가 올 때 꼭 혼자서만 까탈스러운 성격으로 무리에서 떨어져 있다가 표적이 되는 이상한데서 뛰다가 잡히는 한 마리가 바로 자신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한국을 뜨기로 결정했다. 캠퍼스 커플인 남자 친구가 있었고 오랫동안 사귀었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그녀의 집안을 보고 떨떠름해할 뿐이었고 그런 식으로 하는 결혼이라는 것도 그녀를 힘들게 하는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두 사람의 만남으로 끝나지 않고 확대 가족 간의 맞대기가 된다는 것도 그녀의 배경으로는 결혼이라는 나름의 성취, 혹은 삶에서 해야 한다 생각했던 숙제를 만족스럽게 하기에는 핸디캡이 될 뿐이었다. 그러니, 떠오르는 것은 하루 빨리 떠나야한다는 것이었다. 호주에서의 삶도 녹녹치 않았다. 거기서도 한국인은 한국인스럽게 악착같이 동포들을 착취하고 속고 속이면서 살고 있었다. 또 관광청 포스터에 나오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호주가 막상 살러가서는 전혀 아니라는 것은 금방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계나는 결국 영주권에 이어 시민권을 따고 또 건설업체에서 회계사라는 나름 꽤 안정적인 직장을 갖게 되었다.
계나는 말한다. 요새 젊은이들이 호주에 오는 이유가 ‘접시를 닦더라도 사람 대접을 받으려고’라고, 그러나 한국에서는 대학의 순위로 서로를 차별하고, 서울대 안에서도 과별로 순위를 매기는 근성이 있는데, 그것을 버리지 않으면 여기 와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말한다. 교민이 유학생 무시하고, 유학생은 워킹 홀리데이를 무시하는 식으로 행복을 갉아먹을 뿐이니 매일매일 조금이라도 적당한 양이 들어오는 현금의 흐름이 중요한 현금흐름성 행복을 늘리려고 노력해야한다고 조언한다. 자산 7억 원을 가진 사람이 이자가 느는 것을 바라보며 즐거워하듯이 큰 성취를 하고 나면 그 기억이 계속 잔상으로 남아 행복감을 주는 것이 ‘자산성 행복’이라면 그럴 성취가 이자가 발생해서 행복을 느낄 정도의 자산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그보다 매달 백만 원이라도 따박따박 들어오는 현금흐름이 좋은 현금흐름성 행복을 추구해야한다는 것이다.
계나는 심리학적으로 하자면 ‘지금-여기’의 하루의 만족을 하루하루 쌓아나가는 것, 작지만 소소한 기쁨들을 누릴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가기로 결정한 것이고, 그 터전을 한국이 아닌 호주로 정한 것이다. 하루의 ‘해브 어 나이스 데이’가 쌓이면 그의 인생도 행복하다고 여길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을 오랜 호주 이민 시도 끝에 깨달았다. 이 소설의 메시지는 ‘더럽고 아니꼬우면 호주가라’는 아니었다. 그보다 우리가 지금 지향하는 삶의 목표가 정말 맞는 것일까, 그게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 묻고 있다. 사회적 지위, 대형 주택, 아이의 좋은 학교 입학이란 자산성 행복이란 큰 덩치만을 위해서 현재의 즐거움을 모두 포기한 채 전국민이 일제히 경쟁을 하고 있는 곳이 우리나라 대한민국이다.
한편에서는 이 경쟁에서 이겨 승리의 기쁨을 느끼고 싶지만 동시에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는 마음이 있는 양가감정 속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프랑스인의 눈으로 보면『한국인은 미쳤다』라고 보고, 계나와 같은 젊은이들은『한국이 싫어서』떠나고 싶어한다. 실제로도 20-30대의 이민은 늘어나고 있다. 한 뉴스에서 이민 컨설팅 업체 대표는 "지금은 삶의 질을 찾아가는 이민이 주된 이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어권 국가로 가는 이민들은 대부분 복지가 잘되어있는 나라고 시간당 최저임금이 거의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들입니다."라고 말한다.
떠나지 못하고 남은 우리들이 그들이 떠날 이유가 없게 이 사회를 바꾸려고 노력을 해야하지 않을까? 그것은 정치적인 혁신을 통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우리가 지금 이런 식의 삶의 허망함을 뼈저리게 깨닫고 서서히 조금씩 삶의 방식을 개선하려는 실천들이 차곡차곡 쌓여나갈 때 가능할 것이라 여긴다. 우리 모두가 ‘이건 아니야’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면서도 ‘먹고 살려면 할 수 없지. 남들도 다 이러잖아’라면서 비교와 경쟁 속에 속도를 늦추지 못하고 있는 모순을 깨달아야하지 않을까. 이러다가 국가는 흥할 지 모르지만, 국민은 다 망가지고 무너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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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미쳤다!에리크 쉬르데주 저/권지현 역 | 북하우스
이방인의 눈에 비친 우리의 기업 문화는, 사실 한국인에게는 매우 익숙한 풍경이다. 그러나 외국인의 시선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본 한국의 기업 문화가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냉혹하며, 우습기까지 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한 편의 블랙코미디 같지만 엄연한 현실을 담아낸 이 책을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던 ‘일’에 대한 관점도 새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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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장강명 저 | 민음사
등단작 『표백』이 청년 문제를 생산하는 ‘사회’의 한 단면을 통찰하고 최근 호평을 받은 『열광금지, 에바로드』가 사회와 거리를 둔 채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오타쿠라는 ‘개인’의 영역을 통찰했다면, 『한국이 싫어서』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사회에서 살아가는 개인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취할 수 있는 가능성의 한계를 모색한다. 깊이 있는 주제를 장강명 특유의 비판적이면서도 명쾌한 문장과 독자를 끌어당기는 흥미로운 스토리로 표현했다.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