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평론가 정만섭이 추천하는 ‘클래식 LP’
LP 판의 아날로그 감성을 추억하는 이들을 위해 예스24와 예술의 전당이 특별한 시간을 준비했다. 음악평론가 정만섭과 함께하는 ‘클래식 LP 감상회’를 마련한 것. LP 음반을 감상하기 위한 준비부터 결코 놓칠 수 없는 작품들까지, 클래식으로 가을밤을 채우고 싶은 당신을 위한 정보들을 한 데 모았다.
글ㆍ사진 임나리
2015.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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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 구하기 힘들다면 리이슈 음반에 주목하세요


클릭 몇 번 만으로 손쉽게 음악을 소비할 수 있는 시대에도 기꺼이 수고로움을 감내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LP 마니아다. 그들에게 음악은 흘러가 버리는 것도 죽어있는 것도 아니다. 끊임없이 약동하는 생명력을 간직한 채 잠들어 있는 무엇이다. 앰프와 스피커의 최상의 조합을 찾아내려 애쓰고 오래 전 발매된 음반을 찾아 중고 LP 가게를 찾아가는 것도, 사그라지지 않는 호흡을 믿기 때문이다. 그들의 손끝에서 음악은 다시 꿈틀댄다. 시간의 더께 속에서 한층 더 깊어진 울림을 선사한다.

 

지난 28일 저녁, 예스24와 예술의 전당은 LP 마니아들을 위한 시간을 마련했다. 작가와의 만남 ‘책 읽는 풍경’의 일환으로, 음악평론가 정만섭과 함께하는 ‘클래식 LP 감상회’를 준비한 것이다. KBS 1FM에서 <명연주 명음반>의 진행자로도 활약하고 있는 정만섭 평론가는 “무언가를 사랑하면 혼자 간직하고 싶으면서도 같이 나누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법”이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LP를 사랑할 수 있기를, 그들과 더 많은 정보들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클래식 LP 감상회’의 진행을 맡게 되었다는 의미였다.

 

“LP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즐기지 못하시는 분도 많은 것 같아요. 턴테이블을 장만해서 음악을 듣는다는 자체가 어렵게 생각되는 건데요. 사실은 무척 간단해요. 턴테이블과 앰프, 포노 이퀄라이저, 그리고 스피커만 있으면 즐기실 수 있습니다. 그 외의 것들은 마니아들이 잔재미를 느끼는 부분들이지, 실제로 어려운 건 없습니다.”

 

이 날 감상회에서 정만섭 평론가는 독일의 리이슈 LP 레이블인 ‘스피커스 코너(Speakers Corner)’의 타이틀을 소개했다. 음질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혹은 음반 자체를 구하기 어려워서 아쉬워했던 LP 마니아들에게 새로운 해법을 제시해준 것이다.

 

“흔히 초반이 더 좋다고 해서 비싼 값을 주고 구하기도 하는데요. 초반이 있으면 좋겠지만 대부분 많이 마모되어서 깨끗한 상태의 앨범을 구하기 어렵잖아요. 그렇다면 리마스터링 되어서 발매된 LP를 듣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스피커스 코너’ 같은 회사들의 LP를 이용하는 거죠. 물론 세운상가나 용산에 가서 중고 LP를 고르는 재미도 있지만, 어느 정도 공력이 있어야 그 안에서 진주를 뽑아낼 수 있잖아요. 사실 그렇게 되기까지가 힘들고요. 그럴 바에는 차라리 깨끗한 음질의 새 LP를 통해서 음악을 듣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스피커스 코너’에서는 과거의 명연들만 추려서 LP로 발매했기 때문에 어떤 앨범을 고르더라도 실패하는 법이 없다는 장점도 있어요.”

 

‘클래식 LP 감상회’의 첫 번째 앨범은 루지에로 리치(Ruggiero Ricci)의 바이올린 소품집이었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이 앨범에는 ‘비제: 카르멘 환타지’ ‘사라사테: 지고이네르바이젠’ ‘생상스: 하바네즈’가 수록되어 있다. 정만섭 평론가에 따르면 이 음반은 “LP의 아날로그 시스템을 점검할 때 가장 많이 쓰는 앨범 가운데 하나”일 정도로 의미 있는 앨범이다.

 

이어서 그는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Sviatoslav Richter)가 연주한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선택했다.

 

“리히터의의 앨범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이 앨범을 선택하겠어요. 일반 오디오 테이프가 아니라 영화 테이프에 녹음을 한 것이거든요. 냉전의 장벽이 무너지고 난 다음에 리히터가 서방 세계에서 연주하면서 녹음한 앨범 가운데에서 각별히 뛰어나다고 생각됩니다. 그만큼 신경을 많이 썼고 음질이 오디오 파일에 가까운 음반이에요. 프로듀서는 연주자의 연주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귀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많은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거든요. 이 음반은 상당히 묵직하게 녹음을 했어요. 리히터의 특성을 많이 살렸고 저음에도 각별히 신경을 썼습니다.”

 


정만섭의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클래식 LP’


세 번째 감상 앨범이었던 ‘그리그 : 페르귄트 모음곡 (Grieg: Peer Gynt)’에서 지휘를 맡은 에이빈 피엘스타트(Oivin, Fjeldstad)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리그와 같은 북유럽의 작곡가들에게는 스페셜리스트로 여겨졌던 지휘자다. 정만섭 평론가는 이 음반에서 ‘산속 마왕의 전당에 (In der Halle des Bergknigs)’ ‘솔베이그의 노래(Solveigs Lied)’를 소개했다. 그리고 “클라리넷 협주곡을 스테레오로 녹음한 음반 가운데 단연 최고”라는 찬사를 보내며 페터 마크(Peter Maag)가 지휘한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을 함께 감상했다.

 

“드보르작(Dvorak)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는 정말 빼놓으면 섭섭할 음반이죠. 아마 ‘스피커스 코너’에서 나온 음반 중에서 가장 많이 팔렸을 거예요. 이전에 발매된 음반들은 너무 많이 들으셔서 음질이 좋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요. 그럴 때 새로 나온 LP의 깨끗한 음질로 들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음반에는 교향곡 5번으로 적혀있는데, 슈베르트 교향곡도 8번과 9번을 바꿔서 써놓기도 하거든요. 출판 날짜와 작곡 날짜가 다르기 때문이에요. 지금은 8번 교향곡이 미완성이지만 이전에는 9번 교향곡이 미완성이었던 적이 있었거든요. 이 음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스트반 케르테스(Istvan Kertesz)가 지휘를 맡은 이 앨범은 음질도 좋고 연주도 좋고, 설명이 따로 필요 없죠.”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중 4악장을 감상한 후, 턴테이블 위에는 브람스(Brahms)의 피아노 협주곡 1번과 베를리오즈(Berlioz)의 환상 교향곡 음반이 차례로 놓여졌다.

 

“베를리오즈는 약학을 전공했어요. 당연히 약물에 대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죠. 당시에는 아편을 약으로도 많이 사용했는데요. 실연을 당한 베를리오즈가 아편을 먹고 죽으려 했는데 치사량에 미치지 못했어요. 그래서 비몽사몽 상태에 빠졌는데 그 때 쓴 곡이 환상 교향곡이에요. 첫 번째 악장에서 꿈의 전경을, 두 번째 악장에서 연인이 춤추는 무도회의 전경을 그리죠. 세 번째 악장에서는 들판에서 헤매는 모습을 보여주고, 네 번째 악장 ‘단두대로의 행진’은 애인을 살해한 후 단두대로 끌려가는 장면이고요. 4악장과 함께 제일 드라마틱한 부분은 역시 5악장 ‘마녀들의 밤의 향연과 꿈’이죠.”


‘클래식 감상회’를 마무리하며 정만섭 평론가는 차이코프스키(Tchaikovsky)의 교향곡 5번과 바흐(Bach)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의 2번 샤콘느를 선물처럼 남겼다. 특히 므라빈스키(Jewgenij Mrawinskij)가 지휘하고 ‘스피커스 코너’에서 발매한 LP를 두고 그는 “상징적인 음반”이라 단언했다.

 

“냉전 시대에는 군사적 경쟁만큼이나 문화적 우위를 차지하려는 대결이 치열했는데요. 므라빈스키는 서방 세계에 가서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을 지휘함으로써 철의 장막 안에 있었던 오케스트라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거예요. 저는 므라빈스키가 레닌그라드 필하모닉과 같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 직접 연주를 감상했었는데요. 그 날은 공연 끝나고 충격을 받아서 바로 집에 갔을 정도예요(웃음). 이 음반은 므라빈스키가 서방 세계에 갔을 때의 역사적인 기록이에요. 이후에는 므라빈스키가 서방 세계의 메이저 레이블에서 음반을 발매하지 않았거든요. 그는 한 오케스트라를 40년 동안 독재 지배를 했는데, 사회주의 체제 내에서만 가능한 일이죠. 그 결과 일사분란하게 포효하는 듯한 연주가 탄생했고요. 차이코프스키 교향곡은 4번 5번 6번이 다 좋지만 5번 교향곡의 전주가 제일 좋아요. 특히 므라빈스키가 지휘한 5번은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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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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