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영회 “방황은 타고 넘어야 한다”
아무리 여건이 고달프고 버겁더라도 인생은 단 한 차례 흘러갈 뿐입니다. 제 아무리 부자도, 제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단 한 번의 인생을 살 뿐입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15.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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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날들은 벽이 아니라 문이다』는 일자리 경쟁, 연애 포기, 결혼 지연 등 열악한 사회 진출 환경에 지친 청년들을 위로하는 푸근한 에세이다. 기성세대의 ‘처세술’ 또는 ‘무용담’이 아닌 단 한 번밖에 없는 소중한 인생을 과연 어떻게 살아가는 게 바람직한 것인지에 관한 진심 어린 조언을 간결하면서도 깊이가 느껴지도록 들려준다.

 

저자 구영회는 섬진강 근처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지리산과 인연을 맺었다. 숨 가쁘게 일하던 현역 시절에도 틈만 나면 지리산으로 달려가 그곳의 자연과 사람들을 오랫동안 접한 지리산 마니아. 그는 MBC에서 33년에 걸쳐 방송기자와 보도국장, 경영본부장, 삼척MBC 사장, MBC미술센터 사장 등을 지낸 방송 언론인이다. 은퇴 후 지리산 자락에 거처를 얻어 서울과 지리산을 오가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은퇴 후 모든 걸 벗어 던지고 고향 지리산으로 내려가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이 있듯이 저에게도 지리산으로 간 배경과 흐름이 있습니다. 그곳이 꼭 고향이기 때문도 아니고 지리산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굳이 설명하자면 한반도 절반 아래 이 땅에서 지리산이 가장 큰 대자연이기 때문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은퇴 후 남은 제 여생을 모든 인간의 근본 고향인 ‘자연’의 품 안에서 보내다가 마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원래의 나 자신’을 되찾고 싶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곳이 제게 적절한 곳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여러분은 도시의 번잡한 거리 보도블록 위를 걸을 때 마음과 의식을 이렇게 무한하게 확장해 본 경험이 있는지요. 제가 지리산에 놓인 까닭은 평생 도시에서 치열하게 질주해 온 저의 삶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묵은 때’를 벗기고 원래 ‘맑고 밝은 자신’에게 눈을 뜨기 위해서입니다. 다만 30년 가까이 끊임없이 지리산 일대를 찾아 다녔던 이런저런 인연들도 작용했습니다. 저는 거기가 좋았습니다. 거기에 놓이면 시끄럽던 제 자신이 평화로웠습니다. 저는 제 삶에 ‘눈을 뜨려는’ 사람입니다.

 

60대이신데 왜 청년들을 위한 책을 쓰셨는지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 또래의 기성세대가 요즘 청년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낡은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청년기를 보냈습니다. 그 시절은 온 나라가 배고픔을 벗어나 보려고 몸부림쳤던 이른바 ‘산업화’ 시대였습니다.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처럼 저마다 아등바등 살았던 과거의 청년들은 이제 저마다 나이가 들어 노년층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한마디로 모질고 씩씩하고 굳셌습니다. 이런 기성세대가 요즘 젊은이들을 보며 툭하면 내뱉는 표현들은 격려는커녕 핀잔에 가깝습니다. ‘요새 젊은이들은 유약하고 감투 정신이 희박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성세대가 놓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회 구조와 조건이 크게 바뀌었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개천에서 용’이 꽤 나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개천에서는 용이 나올 수 없습니다. 과거처럼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는 ‘계층 사다리’가 형편없이 부서지고 무너졌습니다. 사다리 자체를 올라가거나 바꿔 탈 수가 없습니다. ‘열악한’ 조건이나 ‘뛰어난’ 조건은 마치 고정적인 운명이 된 것처럼 그대로 ‘대물림’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멋진 꿈을 꾸고 아무리 애를 써 봐도 출발선상에서부터 ‘스펙 공화국’의 양극화된 잣대는 바뀔 줄 모르고 철벽 같기만 합니다. 여론조사에선 ‘노력해 봤자 이미 글렀다’라는 응답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크게 ‘고장 났다’는 강력한 신호입니다. 비상벨이 울리고 경고등이 켜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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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본인 역시 힘겨운 청년기를 보냈지만, 성공담이나 요령 같은 일종의 과시나 훈수를 자제한 느낌이 글에서 묻어납니다.


인간은 누구나 지구상에서 단 한 명밖에 없는 고귀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악기처럼 저마다 고유한 음색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특정한 개인의 삶이 다른 사람에게 강요된다면 그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입니다. 다만 삶의 기본 얼개와 이치는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공평합니다. 이런 점에서 저의 글에 절제가 느껴진다면 무척 다행한 일입니다.

 

청년들을 위한 책을 쓰셨는데 청년들에게 가장 중요한 자세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청년이 청년인 것은 그리고 기성세대와 확연히 구별되는 특색은 ‘무한한 재생 에너지’를 가졌다는 점입니다. 청년 시절은 인생의 ‘모색기’입니다. ‘방황’을 기본 특성으로 지닌 것입니다. 따라서 청년들은 방황 자체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방황을 타고 넘어야 합니다. 청년과 청춘은 엄연한 삶의 과정입니다. 청년이 처음 맞이하는 주변 환경은 마치 단단한 장애물 같고 ‘문’이 보이지 않는 ‘벽’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벽’이 아닙니다. 삶이 삶을 깨우치도록 설계된 일종의 위장된 ‘장치’입니다. 숨 막힐 것 같은 상황은 언젠가 반드시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면 인간의 일생을 관통하는 이치는 ‘변화무쌍’이기 때문입니다. 삶은 변화무쌍합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상황만 있을 뿐 운명처럼 고정된 상황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도 과거 한때 청년이었습니다. 하지만 붙들래야 붙들 수 없는 그 상황은 어느 새 막을 내리고 노년의 단계로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증거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청년들은 힘을 내야 합니다.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안에 내재된 무한한 에너지와 가능성을 제 풀에 깎아내리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젊은 당신에게는 놀라운 재생 능력이 있습니다. 자신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생이란 몸뚱이로 사는 일이 아니라 ‘마음’ 하나를 가지고 살아가는 일입니다. 삶은 젊을 때 부정적인 것들을 먼저 겪음으로써 결국 긍정으로 나아가는 조화로운 방식을 구사합니다. 어둠을 겪어야 밝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에 가로놓인 갈등의 문턱을 낮출 방법은 없을까요?


이번 책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대상은 ‘보통 서민들’의 자녀인 ‘보통 청년들’입니다. 사회 기본구조가 크게 망가지고 고장 나니 나라의 미래이자 희망인 수많은 젊은이들이 사회로 나가기 위한 출발선상에서부터 아예 불평등한 여건과 극심한 취업 경쟁에 부닥쳐서 이중 삼중으로 짓누르는 압박감과 불안감에 사로잡혀 매우 힘겨워하면서 거의 대다수가 ‘풀 죽은 청년’이 되어가는 지친 모습을 지켜보면서 너무나도 안타까운 심정이 들었습니다.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살았던 시대와 요즘 시대가 사회 구조와 다양성 측면에서 그리고 정신문화적인 관점에서 크게 다르다는 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기성세대는 요즘 젊은이들이 발을 딛고 서 있는 토양이 과거와 많이 다르다는 점을 깨우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요즘 청년 세대는 그래도 기성세대가 한때 세계적으로 가장 가난했던 나라를 이만큼 눈부시게 가꾼 견인차였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존경심과 좋은 덕목을 배우려는 자세를 갖추는 게 바람직할 것입니다. 이런 상호 이해의 토대 위에서 세대 간의 간극을 좁히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양쪽 상대방의 문제가 좀처럼 풀리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서로 자기 입장에서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서로 신발을 바꿔 신어 보는 역지사지의 발상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저자께서 은퇴 후에 쓴 두 권의 책은 공통적으로 지리산을 치유의 배경으로 삼으면서 결국 사람들의 상처 난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앞으로 또 글을 쓰게 된다면 어떤 책이 될지 궁금합니다.


저는 직업적인 작가가 아닙니다. 그냥 제가 신세 지며 살아 온 사회와 세상에 대해 제 나름대로 빚진 것을 되갚는다는 심정으로 글을 썼고, 세상이 좀 더 따듯해지기를 바라는 염원에서 책을 통해 여러분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겁니다. 특별한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지만 다시 글을 쓴다면 ‘일하는 삶’이 끝났거나 끝나가는 제 또래와 저의 인생 선배들을 마주하면서 ‘여생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책에 관심을 가질 청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아무리 여건이 고달프고 버겁더라도 인생은 단 한 차례 흘러갈 뿐입니다. 제 아무리 부자도, 제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단 한 번의 인생을 살 뿐입니다. 인생에는 연습이나 되풀이가 없습니다. 인생은 힘든 것들, 부정적인 것들을 통해 눈을 뜨고 긍정적 조화를 발견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병을 앓아 봐야 건강을 알 수 있고 어둠 속에 놓여야 밝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형편이 넉넉하지 않더라도 삶 그 자체는 손상된 적이 없습니다. 고달픔에 무릎 꿇은 그 사람의 생각이 손상되었을 따름입니다. 지리산 천왕봉은 사람들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오르는 것을 포기할 뿐입니다. 먹구름 뒤에는 항상 밝은 해가 빛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삶의 기본 이치는 ‘변화무쌍’입니다. 그 어느 것도, 그 누구도 고정적으로 제자리에 지속하는 일은 없습니다. 상황은 언제나 바뀌게 마련입니다. 그 누구의 인생에도 바람은 붑니다. 방황을 두려워하지 말고 실컷 방황한 뒤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가출해야 귀가가 가능합니다. 벗어나야 보입니다. 당신의 인생은 우주가 부여한 것입니다. 당신의 삶은 우주가 추는 춤입니다. 당신이 비록 빈털터리여도 당신이 유쾌한 삶을 사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부디 유쾌하고 호쾌한 청춘을 보내기 바랍니다. 인생은 조건이 아니라 마음 하나를 가지고 사는 일입니다. 마음을 재충전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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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날들은 벽이 아니라 문이다구영회 저 | 나남
이 책은 일자리 경쟁, 연애 포기, 결혼 지연 등 열악한 사회 진출 환경에 지친 청년들을 위로하는 푸근한 에세이다. 기성세대의 ‘처세술’ 또는 ‘무용담’이 아닌 단 한 번밖에 없는 소중한 인생을 과연 어떻게 살아가는 게 바람직한 것인지에 관한 진심어린 조언을 간결하면서도 깊이가 느껴지도록 들려준다. 치열했던 방송 언론인으로서의 33년 삶을 마감한 후 지리산에서 지내며 우러나온 저자의 필치는 ‘스펙 경쟁’이 판치고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무너진 요즘 세태 속에서 청년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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