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장르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아끼는 음반들이 몇 장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플라멩코 기타리스트이자 보컬리스트인 마니타스 드 플라타(Manitas de Plata)의 음반입니다. 2014년에 93세를 일기로 타계한 플라멩코 음악의 거목이지요. 1921년에 남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 지역인 세테(Sete)의 집시 거주촌에서 태어났는데, 그야말로 기타 한 대와 애절한 목소리로 한 시절을 풍미했던 낭만 가객이었습니다. 집시 혈통을 오롯이 간직한 그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로부터 플라멩코 기타를 배웠지요. 카페를 전전하면서 노래하다가 1960년대부터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일설에는 자식이 스물 여덟 명이라는 이야기도 있지요.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은 전혀 없지만, 어쨌든 거의 평생을 떠돌이 연주자로 살면서 수많은 여자들을 만났다는 뜻일 겁니다. 스페인 출신의 화가인 파블로 피카소는 플라타를 가리켜 “나보다 더 위대한 가치를 지닌 사내”라고 말했는데, 이 말이 단지 그의 음악을 향한 칭송에만 국한되는 것인지 알쏭달쏭하기도 합니다.
제가 소장하고 있는 음반은 1964년 남프랑스의 아를(Arles)에서 있었던 실황입니다. 바로 이 연주회가 끝나고 나서 피카소가 ‘위대한 사내’ 운운하는 말을 했던 것이지요. 한데 더 재미있는 것은 플라타와 함께 무대에 올랐던 인물이 한 명은 사촌동생, 또 한 명은 아들이었다는 점입니다. 아홉 살 아래의 사촌동생 호세 레예스(Jose Reyes)와 1940년생인 아들 마네로 발라르도(Manero Ballardo)가 함께 노래를 불렀던 것이지요. 그러고보니 열아홉 살에 낳은 아들이로군요. 플라타의 본명은 리카르도 발라르도(Ricardo Ballardo)이니 진짜 아들이 맞습니다. 하여튼 이 음반은 그렇게 플라멩코 음악과 집시의 혈통적 인과관계를 보여주는 듯해서 들을 때마다 묘한 느낌에 빠지곤 합니다. 고급스러운 이국 문화로 포장된, 비싼 입장료를 내야 볼 수 있는 요즘의 상업적인 플라멩코와는 맛이 다른, 그야말로 플라멩코의 오리지널리티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음반이지요.
물론 플라멩코는 음악뿐 아니라 춤까지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노래(cante), 춤(baile), 연주(toque, 주로 기타), 거기에 박수로 리듬을 맞추는 팔마스(palmas) 등이 어울려 플라멩코라는 하나의 양식을 이루는 것이지요. 마니타스 드 플라타의 음반에 담긴 것은 그중에서도 노래와 연주입니다. 악기는 딱 두 대뿐이지요. 기타 한 대와 카혼(Cajon)이라고 부르는 나무통 하나가 전부입니다. 나머지는 오로지 세 사람의 목소리뿐입니다. 아버지가 부르다가 지치면 아들이 받고, 그러다가 또 삼촌이 받아 노래합니다. 한 사람이 노래를 부르면 다른 두 사람이 들썩들썩 추임새를 넣기도 합니다.
이렇듯이 집시에게서 발원한 플라멩코는 스페인의 근대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글을 읽으면서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오늘은 드디어 스페인 음악으로 들어섭니다. 플라타 패밀리의 노래와 연주를 언급한 까닭은 스페인 음악에 녹아들어 있는 플라멩코적 요소를 기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칸테 혼도’(cante jondo)라고 부르는 탄식과 절규의 노래는 스페인의 민요적 양식으로 오랫동안 계승됐고, 그것은 스페인 근대음악의 빼놓을 수 요소로 자리잡습니다.
일단 스페인 근대음악의 계보를 한번 더듬어 보지요. 가장 먼저 스페인 국민음악의 대부로까지 추앙받는 펠리페 페드렐(1841~1922)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스페인 고유의 민속음악을 자신의 음악 속으로 끌어들인 선구자였습니다. 그래서 유럽 다른 나라의 음악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른, 스페인적 근대음악의 첫단추를 꿴 인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스무 살쯤 연하인 스페인의 또 다른 작곡가들, 이를테면 알베니즈(1860~1909)와 그라나도스(1867~1916) 등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또 한 명의 음악가가 등장하지요. 바로 이번 글의 주인공인 마누엘 드 파야(1876 ~1946)입니다.
파야는 안달루시아 남부의 항구도시 카디스에서 태어났는데, 열일곱 살에 교향악단의 연주를 처음 듣고는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시 들은 곡이 베토벤의 교향곡이었다고 하지요. 파야는 “겁이 털컥 날 정도로 강렬했던 그날의 감흥 때문에 음악가로 살기로 결심했다”는 말을 생전에 여러 차례 한 적이 있습니다. 이후 마드리드로 가서 피아니스트 호세 트라고에게 피아노를 배웠고, 마드리드 왕립음악원에 입학해 정식으로 음악을 공부합니다. 당시 음악원의 교수가 바로 페드렐이었지요. 파야도 그렇게 페드렐의 영향을 받은 제자 가운데 한 명입니다.
하지만 정작 스승인 페드렐은 젊은 시절의 파야를 그다지 인정하지 않았다고 하지요. 이에 대해서는 국내에도 번역돼 있는 <음악의 기쁨>(북노마드)에서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음악학자인 롤랑 마뉘엘이 재미있는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2014년에 돌아가신 번역가 안동림선생이 일부를 발췌 번역해 30년 전쯤에 <음악의 정신사>라는 제목으로 출판한 적이 있었는데, 최근에 다시 전편이 새롭게 번역돼 나왔습니다. 책에서 마뉘엘은 이렇게 말하지요. “페드렐은 이 제자를 그리 예뻐하지 않았어요. 그는 결코 파야를 간파하거나 이해하지 못했죠. 그래도 파야는 페드렐의 작품과 가르침이 자신에게 길을 밝히 보여주었노라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말했었지요. (페드렐은 파야에게) 작법을 정련하고 진짜 중요한 것만 남기는 요령을 가르쳤어요. 스페인 민족의 소리에 부응하는 형식들을 제외하면 나머지 정형들을 다 무시하라고 말입니다.”
말하자면 파야는 ‘음악에서 스페인적인 것의 중요함’을 페드렐에게서 배웠다는 뜻입니다. 한데 그 스페인적인 것의 핵심에는 뭐가 있을까요. 그렇지요. 바로 플라멩코입니다. 특히 스페인 사람들이 오래도록 불러왔던 노래의 원형질, 바로 안달루시아의 집시들에게서 발원한 ‘칸테 혼도’입니다. 그렇게 스페인을 가슴에 품은 파야는 1907년에 프랑스 파리로 유학해 듀카, 드뷔시, 라벨 등과 교유하고 동향의 음악가인 알베니스도 그곳에서 만납니다. 파리에서 약 7년간, 그러니까 1914년까지 머물면서 새로운 음악의 세례를 받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드뷔시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파야에게 내재해 있던 스페인적 요소에 드뷔시가 주도했던 프랑스풍의 인상주의가 스며들어 미묘하고도 매력적인 음악이 탄생하는데, 그것이 바로 1911년부터 약 4년간에 걸쳐 작곡했던 <스페인 정원의 밤>(Noches en los jardines de Espaua)입니다. 이에 대해서도 롤랑 마뉘엘이 흥미있는 언급을 남기고 있습니다. “파야는 드뷔시를 보면서 페드렐의 가르침대로 민속적인 자료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고 깨닫습니다. 또한 자료를 있는 그대로 사용하기보다는 자유롭게 영감을 받고 정수만 남기면 된다는 것을 알았지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음악 <스페인 정원의 밤>은 모두 3부로 이뤄져 있습니다. 1부는 ‘헤네랄리페에서’(En el Generalife), 2부는 ‘먼 곳의 춤’(Danza lejana), 3부는 ‘코르도바 산의 정원에서’(En los jardines de la Sierra de Cordoba)입니다. 피아노가 매우 중요한 악기로 등장하지만 그렇다고 협주곡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피아노가 관현악의 한 부분으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지요. 스페인풍의 이국적 분위기가 마치 한 편의 회화처럼 펼쳐지면서 인상주의풍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산하고 있는 음악입니다. 제목에 등장하는 ‘밤’에서도 느껴지듯이, 신비하고 몽환적인 야상곡풍의 느낌도 물씬하지요. 하지만 동시에 플라멩코의 본능적인 격렬함도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특히 2부와 3부에서 더욱 그렇지요. 피아노가 연주하는 선율은 때때로 집시의 노래 ‘칸테 혼도’를 연상하게 만듭니다. 앞서 언급한 책 <음악의 기쁨>에서 롤랑 마뉘엘과 대담을 펼치는 피아니스트 나디아 타그린은 “안달루시아의 온갖 향기가 진동하는 느낌”이라고 말하고 있지요. 참으로 적절하면서도 멋진 표현입니다.
▶ 알리시아 데 라로차, 세르지우 코미시오나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1970년/Decca
스페인의 피아니스트 알리시아 데 라로차(1923~2009)는 파야를 비롯한 스페인 작곡가들의 음악을 거론할 때 언제나 1순위로 떠오른다. 물론 그의 모차르트 연주도 훌륭하지만, 파야에 관해서라면 가장 먼저 들어봐야 할 피아니스트로 꼽힌다. <스페인 정원 밤>을 연주한 음반으로는 두 종의 걸출한 녹음을 남겼다. 1983년에 프뤼벡 데 부르고스가 지휘하는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연주한 음반도 훌륭하지만, 오늘 이 지면에서는 세르지우 코미쇼나가 지휘하는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와의 연주를 권한다. 본문에 등장하는 표현, “안달루시아의 온갖 향기가 진동하는 느낌”을 이만큼 섬세하게 구현하고 있는 연주는 아직까지 찾아보기 힘들다.
▶ 알리시아 데 라로차, 라파엘 프뤼벡 데 부르고스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1983년/Decca
같은 피아니스트의 음반을 한 종 더 권한다. 라로차는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어 다시 한번 <스페인 정원의 밤>을, 역시 스페인 태생의 지휘자인 브루고스와 녹음했다. 앞의 음반보다 좀더 화려한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이 음반 역시 호평을 들어왔다. 국내 매장에서는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의 음반을 구매하는 경향이 많은데, 이 지면에서는 라로차의 음반들을 먼저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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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