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회동 저택
사랑채의 윤형만 자작은 아내의 산통이 시작된 줄 까맣게 모른 채 잠들어 있었다. 주인의 새벽잠을 방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30여 명에 이르는 붙박이 하인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행동 수칙 중 하나였다.
글ㆍ사진 이금이
201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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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4월 29일 새벽, 드디어 곽 씨의 진통이 시작됐다. 두부 장수나 물장수도 겨우 일어나 눈곱을 떼고 있을 시간이었다. 가회동 저택의 집사 박 서방이 전등 불빛이 미치지 않는 구석구석 남포등을 내걸어 짙푸른 고요 속에 잠들어 있던 안채 사람들을 깨웠다. 안채가 환해지자 담장 너머의 사랑채와 별채를 감싼 어둠이 더 짙어졌다. 너른 집 안팎의 경계를 서던 사내 하나가 안을 기웃거리다 박 서방의 지시에 물러갔다.

 

박 서방댁은 안채 살림을 맡고 있었다. 그녀는 출산 수발을 구실로 며칠 전부터 와 진 치고 있는 마님의 친정붙이들이 참견하기 전에 자신이 할 일을 해 나갔다. 삼신할미는 물론 성주신과 조왕신, 터주신 그리고 측간신에게까지 첫 우물물을 바쳤다. 그런 다음 미역을 꺼내 물에 담갔다. 혹여 꺾이거나 부서질세라 찬방 시렁 위에 조심스레 모셔 두었던 것이다.

 

안채의 행랑어멈들은 박 서방댁의 지휘 아래 예행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찬모 술이네만이 그 일에서 제외된 채 가회동 저택 사람들의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는 숨통을 틔우려는 듯 가끔씩 가슴을 탕탕 쳤다. 굴뚝에서 피어오른 연기는 새벽안개 사이로 흩어졌고, 장작 타는 냄새는 축축한 대기에 스며들었다.

 

사랑채의 윤형만 자작은 아내의 산통이 시작된 줄 까맣게 모른 채 잠들어 있었다. 주인의 새벽잠을 방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30여 명에 이르는 붙박이 하인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행동 수칙 중 하나였다. 새로 온 사람이 있다면 첫날이 다 가기 전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안채든 바깥채든 신입 교육을 명목으로 또다시 이야기판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은 일이라 언제든 새로운 이야기가 덧보태질 준비가 돼 있었다.

 

“새 자작 나리는 밤마다 귀신이 괴롭혀서 첫닭 운 다음에나 겨우 잠이 든대. 그러니 새벽잠을 방해하면 경을 치는 거지.”

 

“귀신이오? 무슨 귀신요?”

 

“작년에 돌아가신 헌 자작 나리 귀신이라는구먼.”

 

“아버지가 왜 아들을 해코지한대요?”

 

“왜겠어? 이 많은 재산에, 벼슬에, 이쁜 첩들을 죄다 두고 비명횡사했으니 원통해서겠지.”

 

“그래서가 아니여. 아들이 괘씸해서 그라제. 벼슬도 물려주고, 재산도 물려줬더니만 백 일 만에 탈상을 해치워 버린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거야 왜놈덜이 못 하게 하잖어. 나라님도 삼년상을 못 치르는 판인디.”

 

“그기 핑계가 되나. 누가 뭐라캐싸도 맘만 있으믄 얼마든지 하는 기제. 그기 아이고 남사시러바서 일찍 탈상을 한 기다. 그 냥반이 보통 우세스럽게 죽었나.”

 

이 대목이 되면 자작 나리는 그 양반으로 강등됐다.

 

“어떻게 죽었는데요?”

 

“경성 천지가 뜨르르하게 소문났구만 귀가 어둔갑네. 복상사라 안 허든가.”

 

“복상사요? 그게 뭐래요?”

 

나이 든 하인들은 조롱 섞인 얼굴로 옛 상전의 죽음에 대해 수군거렸고, 아직 어린 하인들은 못 알아들은 척하면서도 눈을 반짝였다.

 

“내 보기엔 별채를 저대로 비워 두니께 귀신이 기웃거리는 거 같어. 집은 날마다 쓸고 닦어 사람 온기를 채워 줘야 하는 건디.”

 

“그러게. 그 좋던 별채가 일 년도 안 돼서 흉가가 되고 말았어.”

 

수목이 어우러진 작은 동산과 다리 놓인 연못까지 갖춘 별채 정원은 궁궐 후원 못지않다는 평을 듣던 터였다.

 

“낮에도 어쩌다 가까이 갈라치면 냉기가 돈다니께. 자네들, 사람들이 어째서 이 집을 가회동 저택이라고 부르는 줄 알어?”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집이 크니까 그렇게 부르는 거지. 경성에서도 손꼽히잖어.”

 

“그게 아니라 저주받은 집이라 저택(詛宅)이라고 부르는 거라네.”

 

이쯤 되면 무리 중 가장 연장자가 나서서 마무리를 지었다.

 

“하여간 말 만들기 좋아하기는. 우리야 배 안 곯게 해 주는 주인이 최고 아닌가. 누가 뭐래도 여기가 다른 집들보다 편한 건 사실이잖아. 그러니 우리라도 이 집이 잘되기를 빌어야지. 아무튼지 간에 자작 나리 기침하실 때까지는 방귀 소리도 내면 안 되네. 그러다 쫓겨난 사람들 많으니까 명심해.”

 

하지만 마님의 산통이 시작된 그 새벽, 안채 사람들만큼은 무쇠 솥뚜껑을 기운차게 열어젖히고 우물에 두레박도 마음껏 내리 던졌다. 오히려 누군가 소리 내지 않으려 굼뜨게 굴면 핀잔이 쏟아졌다. 평소에는 윤 자작 눈에 뜨일세라 그림자처럼 드나들던 곽 씨의 친정붙이들도 제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양 목청껏 사람들을 부렸다. 10년 만의 경사인 것이다. 누구보다 기뻐할 사람이 자작 나리일 테니 오늘만큼은 잠을 깨우는 게 잘하는 짓이란 생각이 암묵적으로 퍼지고 있었다.

 

소문의 사실과 거짓은 뼈와 살 같아서 말끔하게 분리하기 어렵다. 사랑채의 형만이 밤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것은 아버지 귀신 때문이 아니라 언제 담장을 넘어 들어와 자신의 목에 칼이나 총을 겨눌지 모를 도적들 때문이었다. 독립군이거나 강도거나 또는 독립군을 빙자한 강도거나 그는 크게 구분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모두 자신의 재산을 축내려는 도적으로 보였다. 따지고 보면 원인은 죽은 아버지한테서 비롯된 것이니 귀신 때문이라는 말이 아주 틀리지만은 않았다.

 

형만이 잠을 깬 것은 창호를 뚫고 들어온 눈부신 햇살 때문이었다. 기척을 내기 무섭게 문밖에서 사랑채 심부름꾼 갑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리, 마님의 산통이 시작되셨습니다요.”

 

형만은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어젖혔다. 갑수의 표정엔 나리가 기침하길 조바심치며 기다린 기색이 역력했다.

 

“언제부터더냐?”

 

“벌써 한나절은 됐습니다요.”

 

“뭐야? 그럼 깨우지 않고. 그래, 지금 상황이 어떻다더냐? 당장 안채로 가서 누구든 설명해 줄 사람을 오라 해라.”

 

저라고 안 깨우고 싶었겠습니까요. 깨웠다간 무슨 경을 치려구요. 갑수가 하고픈 말을 얼굴에 드러낸 채 잰걸음으로 물러갔다. 형만은 잠옷 차림으로 마루에 나와 응접 의자에 앉았다.

 

윤 자작이 일본 옷인 유카타를 잠옷으로 입는 것을 두고 사람들은 자기 식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평가했지만 그로서는 편해서라는 게 이유의 전부였다. 가문을 세우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던 아버지의 그늘 아래서 형만은 이른 사람들은 손주도 볼 나이인 서른여섯 살이 되도록 보기 좋고, 입에 달고, 몸에 편하고, 마음이 내키는 것만 탐하며 살아왔다. 그의 인생 최대 목표는 생을 다할 때까지 그런 삶을 유지하는 거였다.

 

벽시계의 시침이 아홉 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무르익은 봄 햇살이 마루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형만은 옷 갈아입을 생각도 잊은 채 벌떡 일어나 마루를 서성거렸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가회동 저택에 찾아온 경사는 그 의미가 자못 컸다. 형만은 얼결에 물려받은 많은 것들에 당당할 수가 없었다. 경성 전체가 수군거리며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새 생명이 찾아온 이유가 세상에 가회동 저택의 주인은 이제 윤형만 자작임을 알리기 위해서인 것만 같았다.

 

안채에서 불려 온 사람은 술이네였다. 형만은 뜰아래 서 있는 아낙을 마루 위로 올라오게 했다. 평소라면 얽은 자국이 얼굴 가득한 찬모에게 말을 걸기는 고사하고 눈길 주는 일조차 없었을 것이다. 술이네는 2년 가까이 행랑살이를 하면서도 형만과 독대하는 게 처음이었다. 걷어 올렸던 저고리 소매를 펴며 황급히 마루 위로 올라온 술이네는 무릎을 꿇고 앉았다. 주먹 쥔 손을 허벅지에 단단히 괴었는데도 어깨가 달달 떨렸다.

 

형만은 선물 받은 장난감을 빨리 펼쳐 보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 같은 얼굴로 질문을 쏟아 냈다. 술이네는 마님의 상황이 해산하기 위해 세상 모든 여자들이 겪어야 하는 절차임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결국 자신이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형만이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만일을 대비해서 의원에도 왕진을 청하라 이르거라. 마님께는 내 아무 데도 출타하지 않겠다고 전하고. 이제 그만 가 보아.”

 

살았다 싶은 얼굴로 일어선 술이네는 뒷걸음질해 물러났다. 마루 끝에 다다라서야 돌아서는 찬모에게 자식의 탄생을 앞두고 마음이 한껏 너그러워진 형만이 선심 쓰듯 물었다.

 

“아들이었던가? 어린애는 잘 크지?”

 

형만은 오가다 술이네 등에 아이가 매달려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느닷없는 질문에 화살에라도 맞은 듯 술이네는 움찔했다. 흩어지는 정신을 간신히 모으고 그대로 선 채 대답했다.

 

“예, 나리. 애는 얼마 전 고향으로 떼어 보냈습니다.”

 

“그랬군. 수시로 갑수를 들여보낼 터이니 마님 상황을 보고하게.”

 

술이네의 아이가 조금도 궁금하지 않았던 형만은 건성으로 대꾸한 뒤 지시 사항을 말했다. 허겁지겁 사랑채를 빠져나온 술이네는 바깥마당에 와서야 막혔던 숨을 틔우기 위해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두 눈 가득 피눈물이 고였다.

 

가회동 저택에 들어오는 조건은 아이 때문에 일에 지장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것과 아이가 두 돌이 되는 즉시 고향으로 떼어 보내는 것이었다. 인력거꾼이었던 남편은 지난해 만세 사건 때 일경의 총에 맞아 숨졌다. 술이네는 혹시 해코지라도 당할까 싶어 남들에게는 사고사로 둘러댔다.

 

졸지에 과부가 된 술이네는 3남매를 성환에 있는 시어머니에게 보낸 뒤 젖먹이만 데리고 가회동 저택에서 행랑살이를 시작했다. 드난살이로 일하는 동안 술이네 음식이 형만의 아버지 윤병준 자작 입맛에 맞은 덕이었다. 병준이 세상을 떠나고 곽 씨가 임신을 하고부터 찬모의 역할이 더 커졌다.

 

보름 전 아침 술이네 아들은 눈을 까뒤집을 정도로 열이 끓었다. 그날따라 곽 씨는 아침부터 화전이 먹고 싶다, 만두를 내놓아라, 청요리가 먹고 싶다, 두부를 쑤어라, 시시각각 변덕을 부려 술이네의 혼을 빼놓았다. 술이네는 곽 씨에게 아들을 의원에게 보일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아이 때문에 성가시게 굴 거면 당장 나가라는 매몰찬 대답만 돌아왔다. 술이네는 열이 끓는 아이를 행랑방에 뉘어 놓은 채 들여다볼 새도 없었다. 술이네가 부엌데기들을 이리저리 심부름 보내 놓고 땀을 뻘뻘 흘리며 두부를 쑤는 사이 두 돌을 앞둔 아이는 저 혼자 까무러쳤다 깨어났다 하다 짧은 명줄을 놓았다. 술이네는 시퍼렇게 굳은 막내아들을 안고서도 혀를 깨물며 울음을 삼켜야 했다.

 

“죽은 목숨은 어쩔 수 없고, 당장 쫓겨나지 않으려면 정신줄 똑바로 잡고 있어야 혀.”

 

박 서방댁 말이 아니더라도 마님의 출산을 앞두고 안채에서 아이가 죽어 나간 일이 알려졌다가는 무슨 경을 칠지 몰랐다.

 

술이네에겐 아비 없는 3남매가 남아 있었다. 박 서방이 조용히 아이의 작은 몸뚱이를 수습해 주었다. 박 서방댁은 아이가 때가 돼 시골집에 보낸 것으로 소문을 내 주었다. 천안 태생인 박 서방댁은 고향이 비슷한 술이네를 동기간처럼 여겼다. 자식 잃은 어미의 슬픔 앞에서 안채 행랑 사람들은 한마음으로 입을 다물었다.

 

“부정 탈지 모르니께 마님 출산 수발에는 알아서 빠지도록 햐.”

 

박 서방댁이 미리 일렀다. 술이네가 삼신할미에게 바칠 쌀이나 미역에 손도 못 댄 이유였다.

 

술이네는 아들이 두 돌이 되도록 줄어들 생각을 않는 젖을 말리려고 엿기름 삭힌 물을 들이켰다. 그동안은 젖이 흔해 부러움을 샀지만 아이를 잃고 나니 그보다 고통스러운 게 없었다. 보름이 지나서도 아들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 돌덩이처럼 딱딱해진 가슴에 젖이 돌았다. 흘러내린 젖으로 저고리 앞섶과 치마허리가 뻣뻣해질 때면 슬픔이 칼날처럼 심장을 저몄다. 그러면 이 집에서 버텨야 하는 이유가 목구멍에 풀칠하기 위해서 말고 더 있을 것만 같아 저절로 이가 앙다물어졌다.

 

형만은 갑수가 대령한 대야 물에 세수를 했다. 늦은 아침은 간단했다. 콩고물을 노랗게 입힌 인절미 몇 쪽과 커피 한 잔이면 족했다. 떡 종류는 계절에 따라 바뀌었다. 도쿄 유학 때 커피에 맛을 들인 형만은 아예 집에 커피 만드는 도구를 갖춰 놓고 진고개의 일본인 잡화점에다 커피 원두를 주문해 직접 내려 마셨다.

 

갑수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게 만석지기 주인 나리의 간소한 아침이었다. 곳간에 쌀이 그득한데 고작 떡 몇 쪽에 쓰디쓴 양탕국 한 잔으로 아침을 때우다니. 시커먼 커피를 보고 사람들은 서양 탕약 같다고 양탕국이라 불렀다. 냄새가 그럴듯해 언젠가 몰래 맛본 커피는 말 그대로 탕약처럼 썼다.

 

“우리 나리는 쌀이 넘쳐 나니 안 먹어도 배가 부른가 봐요.”

 

그 쌀이 자기 것이 아닌 갑수는 숟가락 놓기도 전에 벌써 배가 고파 행랑채 부엌을 기웃거렸다.

 

술이네가 조금도 해소해 주지 못한 조바심을 커피로 달래며 형만은 미처 보지 못한 어제치 신문을 펼쳤다. 그는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와 창간한 지 얼마 안 된 동아일보를 구독했다. 두 신문 모두 머리기사로 도쿄에서 있을 대한제국 황태자인 이은과 일본 왕실의 공주 마사코의 혼혈 결혼 소식을 보도하고 있었다. 형만은 지난 밤 총독부에서 주최한 혼례 축하 만찬에 참석하느라 늦게 귀가했다.

 

매일신보가 조선 왕실과 일본 왕족 간의 혼인을 일본과 조선이 융화하는 좋은 전례라고 떠들썩하게 선전한 반면 동아일보는 얄궂게 결혼 기사 아래 이은과 약혼했다 파혼당한 민갑완의 삶을 더 크고 상세하게 다루고 있었다.

 

“좋을 때로군.”

 

아침부터 환한 햇살이 쏟아지고 온기 품은 공기가 청랑한 요즘 날씨는 혼례식을 치르기에도, 한 생명이 태어나기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의 눈은 신문 하단의 광고에 머물렀다. 은단, 구두, 영양제 들이었다. 분유 광고에 이르자 다시 형만의 생각은 태어날 아이에게로 향했다.

 

‘아들일까? 딸일까?’

 

강휘와 형제가 될 아들이면 더 좋겠지만 지금은 어느 쪽이든 순산이 급선무였다. 형만은 진즉부터 아들과 딸, 두 개의 이름을 지어 놓았다.

 

형만은 그 전까지 자식의 출생에 무심했다. 자신보다 아버지와 더 상관있는 가문의 일이며, 안채에서 벌어지는 여자들의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자식의 출생이 이리 큰 기쁨과 설렘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아서인가?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얼마나 기뻐했을 것인가! 형만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자식의 도리를 다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은 아버지다.

 

 

[연속 기사]

-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 연재를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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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이 시대 최고의 아동청소년문학 작가’로 꼽히는 이금이는 1984년 ‘새벗문학상’에 동화가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한 이후, 30여 년 동안 진한 휴머니티가 담긴 감동적인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 왔다. 소천아동문학상과 윤석중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초등학교와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여러 편의 작품이 실리기도 한 그는 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나이를 초월하여 폭넓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보기 드문 작가이다. 대표작으로 『너도 하늘말나리야』, 『밤티 마을 큰돌이네 집』, 『유진과 유진』, 『사료를 드립니다』, 『청춘기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