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텔>, TV가 인터넷의 문법을 수용한 순간 - 스스로 외연을 한계 짓지 말라 (1)”에서 이어집니다.)
태생부터 MBC
좌측은 미국 ABC < Ripley’s Believe it or not! >(1982~1985)의 진행자 잭 팔란스.
우측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초대 진행자 문성근.
태생부터 남들과는 달랐던 프로그램
새로운 시도를 꺼릴 이유가 없었다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 건 2010년대 초반이었다. 정치적인 이유로 MBC의 분위기가 본격적으로 흉흉해 질 무렵, 제일 먼저 철퇴를 맞은 건 시사 프로그램들이었다.
그 시기 젊은 PD들로 팀을 교체한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프로그램을 더 새롭게 만들어보자는 결의를 다졌다. 시간대는 심야 예능과의 경쟁을 피할 수 없고, 각종 해외 수사물과 추리물에 길들여진 젊은 시청자들의 눈높이는 더 세련된 프로그램을 원하고 있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택한 길은 미스터리 콘셉트를 밀었던 초창기의 정신으로 돌아가되 영상은 더 세련되게 다듬는 길이었다. 더 이상 귀신이나 저주 받은 집과 같은 오컬트적 소재를 다루진 않지만, 비리나 사건 사고를 다루면서도 스토리텔링 적인 요소를 강화한 것이다. 다른 시사 프로그램들이 사건 자체를 직관적으로 다루는 방식으로 서두를 뗄 때, <그것이 알고 싶다>는 추리소설이나 스릴러물이 그렇듯 사건의 주변부 일상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불온한 균열로 변곡점을 그리는 과정을 속도감 있게 보여주는 것으로 서두를 뗐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가장 흥미로운 부분을 전진배치 시킴으로써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TV 앞에 붙잡아 두는 전략이었다. 정통 시사 프로그램이라면 쉽게 택하기 어려운 길이었을 테지만, 애초에 미스터리를 다루는 프로그램으로 출발한 <그것이 알고 싶다>였으니 딱히 피할 이유도 없었다.
시사 프로그램 아닌 장르물 벤치마킹
과감한 시도가 외연을 넓혔다
화면 구성이나 미스터리 검증 방식도 철저하게 젊은 감각으로 재무장했다. 사건이 발생한 장소의 도면을 구해 고스란히 세트로 구현하고, 연극적인 재연이 일어나고 있는 한 구석에서 관찰자 김상중이 걸어 나와 화면 너머에 말을 건네는 식의 연출은 강력한 흡인력으로 시청자들을 사건 한 가운데로 끌어당겼다. 필요하다면 직접 전문가들을 섭외해 실험도 해보고 범죄심리학자들에게 범죄자의 프로파일링을 의뢰하는 검증 방식은 설득력을 높였다. 전문성을 높여 신뢰도를 확보함과 동시에, 정통 시사 프로그램에선 좀처럼 쓰지 않는 세트와 장치들을 동원해 젊은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셈이다. 결과는 효과적이었다. 제작진이 직접 사건 현장과 동일한 조건을 만들어 실험을 해 자살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던 ‘사각 맨홀에 갇힌 진실- 오창 맨홀 변사 사건’(2010년 3월 13일. 제749회)은 아직도 <그것이 알고 싶다> 팬들 사이에선 회자되는 에피소드가 됐고, 영화 <도그빌>처럼 바닥에 도면을 그려 넣은 마을 세트를 만들어놓고 사건의 시간 순서대로 재연을 진행했던 ‘이백리 실종 미스터리 - 기억, 소문 그리고 거짓말’(2013년 6월 1일 방영. 제896회)는 시청자들의 주목도가 극에 달했다.
이백리 실종 미스터리를 다룬 <그것이 알고 싶다>.
보는 이들을 사건이 일어난 그 순간 그 거리로 끌어당기는 듯한
과감한 세트 활용이 압권이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 ⓒ SBS. 1992~2016.
물론 <그것이 알고 싶다>가 오늘날의 위치에 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진실된” 프로그램을 만들려는 제작진의 노력일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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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