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번째 문제
<문제>
2015년 8월 30일 세상을 떠난 뇌신경학자 올리버 색스는 죽음을 앞두고 몇 편의 에세이를 썼습니다. 그 중에는 마치 철학자 데이비드 흄과 대화를 나누는 듯한 대목이 있습니다. 빈칸에 어울리는 말을 골라보세요.
그(데이비드 흄)는 예순다섯 살에 자신이 곧 병으로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1776년 4월의 어느 날 하루 만에 짧은 자서전을 쓴 뒤 그 글에 ‘나의 생애’라는 제목을 붙였다.
흄은 이렇게 썼다. “이제 나는 빠르게 사멸할 것이다. 그동안 질병으로 인한 통증은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보다 더 이상한 사실은 육신이 병약해지는데도 기상은 한순간도 수그러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공부할 때 전과 다름없이 열성적이고, 사람들을 만날 때 전과 다름없이 유쾌하다.”
운 좋게도 나는 여든을 넘길 때까지 살았다. 흄에게 주어졌던 65년을 넘어서 내게 추가로 주어졌던 15년은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풍요로운 시간이었다.
(중략)
흄은 이어서 말했다. “나는 성격이 온건하고, 성질을 잘 다스리는 편이고, 개방적이고 사교적이고 쾌활하고 유머가 있으며, 애착을 느낄 줄 알지만 앙심은 거의 품지 않고, 어떤 열정에 대해서든 대단히 절제하는 사람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흄과 조금 다르다. 나도 사랑과 우정의 관계를 즐겼으며 진짜 앙심이라고 할 만한 것은 품지 않았지만, 차마 내 입으로 (나를 아는 다른 누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성격이 온건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나는 격정적인 사람이다. 격렬하게 열광하고, 어떤 열정에 대해서든 극단적으로 무절제한 사람이다.
그러나 흄의 에세이에서 발견한 다음 문장만큼은 내게도 정말 합당한 대목으로 느껴진다.
( 문제 )
1) 살아 있다는 것은 참으로 비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 나의 모든 생애가 눈앞에 지나가는 순간, 나는 혼란스러웠다.
3) 죽음이 삶보다 나을 것이라는 희망이 내 앞에 떠올랐다.
4) 지금 나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삶에 초연하다.
5) 내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지식들이 안타까워 견딜 수 없었다.
<해설>
자신이 곧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변할까.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죽음이라는 개념을 스스로에게 어떻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다.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사람들은 거기에 또 다른 차원의 삶이 있을 거라고 얘기하지만 도무지 믿을 수 없다. 과연 그런 게 있을까. 그냥 모든 게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게 아닐까. 죽음에 대한 여러 가지 글을 보았지만,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만큼 공감되는 게 없었다.
“죽은 후에도 나의 무언가는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고 싶군요. 그렇게 많은 경험을 쌓았는데, 어쩌면 약간의 지혜까지 쌓았는데 그 모든 게 그냥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집니다. 그래서 뭔가는 살아남는다고, 어쩌면 나의 의식은 영속하는 거라고 믿고 싶은 겁니다.”
그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냥 전원 스위치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딸깍!’ 누르면 그냥 꺼져 버리는 거지요.”
그는 또 한 번 멈췄다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마 그래서 내가 애플 기기에 스위치를 넣는 걸 그렇게 싫어했나 봅니다.”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안진환 옮김)
처음에는 죽음을 또 다른 차원의 삶으로 생각했다가, 완전한 소멸로 바꿔 생각했다가, 유머로 마무리하는 이야기 방식이 스티브 잡스답다. 스티브 잡스는 죽음을 전원 스위치에 비유했지만, 나는 죽음을 떠올릴 때마다 카메라의 페이드 아웃을 떠올린다. 모든 게 조금씩 희미해지다가 완전한 암흑으로 바뀌는 게 죽음이 아닐까. 누구에게나 죽음에 대한 각자의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대학교 연설에서 죽음을 발명품에 비유한 적도 있다.
“죽음을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사람도 그곳에 이르기 위해 죽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죽음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운명입니다. 누구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또 그래야만 합니다. 죽음은 삶이 만들어낸 최고의 그리고 유일한 발명품이니까요. 죽음은 삶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입니다. 죽음은 오래된 것이 새로운 것에 길을 터주도록 합니다.” (『미친듯이 심플』, 켄 시걸, 김광수 옮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쉽지만, 죽음 앞에서 품위를 지키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목숨이 유한하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나는 죽음이 무서워 견딜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죄와 벌』의 라스꼴리니코프는 삶을 갈망하며 이런 문장을 떠올린다. “사형 선고를 받은 어떤 사람이 죽기 한 시간 전에 이런 말을 했다던가. 생각했다던가. 겨우 자기 두 발을 디딜 수 있는 높은 절벽 위의 좁은 장소에서 심연, 대양, 영원한 암흑, 영원한 고독과 영원한 폭풍에 둘러싸여 살아야 한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평생, 1천 년 동안, 아니 영원히 1아르신밖에 안 되는 공간에 서 있어야 한다고 할지라도, 그래도 지금 죽는 것보다는 사는 편이 더 낫겠다고 했다지!”
올리버 색스의 경우로 돌아가서 답을 풀어보자. 그는 생애를 돌아보는 글을 쓰면서 ‘내 삶을 마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일종의 풍경처럼’ 바라보게 되었다고 한다. 죽기 전이면 삶의 모든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간다고도 하는데, 내게는 풍경처럼 보인다는 올리버 색스의 표현이 더 와 닿는다. 아마도 삶은 아주 먼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정답은 4번이다. 초연하다는 것은, 풍경을 더 널찍한 비율로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무관심과 초연함을 어떻게 구분 지을 수 있을까? 죽음이 우리에게서 너무 멀리 있으면, 우리는 삶에 무관심하게 될 것이다. 죽음이 우리 곁에 너무 가까이 와 있으면 우리는 삶에 초연하게 될 것이다. 죽음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때, 우리는 삶과 죽음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죽음은 우리들의 등에 붙어 있는 그림자 같은 것이다. 잘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함께 있고, 손으로 더듬거려보면 미묘한 흔적을 만져볼 수 있지만 실체를 확인할 길은 없다.
올리버 색스는 마지막 에세이를 쓰면서 데이비드 흄을 거론했다. 흄이 1776년에 쓴 글을 인용한 후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65세에 죽은 흄과 80살이 넘은 자신을 비교하면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곱씹어보았다. 책이란, 대화의 시작이다. 우리는 책을 통해 죽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오래된 문장을 읽고 생각을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대화를 시작하고 있는 셈이다. 책이 묻고 내가 대답한다.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이 책 속에 숨어 있다. 글쓰기는 가장 적극적으로 죽은 사람과 대화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수많은 책들을 읽은 후 자신의 생각을 책에다 적는다.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에 내 이야기를 섞는 것이다. 올리버 색스의 자서전에 있던 문장이 생각난다.
“글쓰기는 잘 될 때는 만족감과 희열을 가져다 준다. 그 어떤 것에서도 얻지 못할 기쁨이다. 글쓰기는 주제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나를 어딘가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잡념이나 근심걱정 다 잊고, 아니 시간의 흐름조차 잊은 채 오로지 글쓰기 행위에 몰입하는 곳으로 좀처럼 얻기 힘든 그 황홀한 경지에 들어서면 그야말로 쉼 없이 써내려 간다. 그러다 종이가 바닥나면 그제야 깨닫는다. 날이 저물도록, 하루 온종일 멈추지 않고 글을 쓰고 있었음을.
평생에 걸쳐 내가 써온 글을 다 합하면 수백만 단어 분량에 이르지만, 글쓰기는 해도 해도 새롭기만 하며 변함없이 재미나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하던 거의 70년 전의 그날 느꼈던 마음처럼.” (『온 더 무브』 올리버 색스, 이민아 옮김)
올리버 색스의 글을 좋아하는 팬의 입장으로서 그의 죽음이 무척 안타깝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책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올리버 색스가 흄을 언급했듯, 나 역시 올리버 색스의 글을 읽으면서 그와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살아 있지 않지만, 이미 수많은 대답을 책에다 남겨두었다. 세상에 책은 얼마나 많은가. 내가 대화를 나눌 사람은 무한하다. 질문을 던진 다음 책에서 답변을 찾을 것이고, 책에서 읽은 질문의 대답을 찾기 위해 오랫동안 생각할 것이다. 대화에 완전 정복은 없다.
그동안 대화완전정복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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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소설가)
소설 쓰고 산문도 쓰고 칼럼도 쓴다. 『스마일』, 『좀비들』, 『미스터 모노레일』,『뭐라도 되겠지』, 『메이드 인 공장』 등을 썼다.
tsy81
2016.07.10
maum2
2016.06.30
susunhoy
2016.06.29
방 안에 들어오는 가볍디가벼운 몸을 보고
저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 눈물조차도 송구스러웠습니다
침대위에 털썩 내려진 쇠약한 모습..
그녀를 버티게 하고 있는
마지막 희망의 본질조차
슬픔이라고 짐작 할 정도였지만
그 눈빛만큼은 공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결코 생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어떤 다짐이 우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영과 혼이 썩어 가는 냄새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사람에게서 나는
악취가 아니라 한 줌 사랑이든
향기 잃은 증오든
한 가지만 오래도록 품고
가슴 썩은 것들은,
남의 손 빌리지 않고도
속에 맺힌 서러움 제 몸으로 걸러서,
세상에 거름 되는 법 알게 되는 것이어서요
-박규리 시인이 말하는
'늙은 변소의 장엄한 마음'처럼
이미 세상의 거름이 되어가는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_()_
.
.
https://www.youtube.com/watch?v=PqtF7ttfMcM
>>G선상의 아리아_바흐_바이올린-정경화_피아노-정명훈
작가님의 마지막 인사를 읽다가 떠올랐던 음악입니다
하루하루 아니 매 순간의 평화와 행복은
분명 그냥 얻어지는 게 아니라
그 누군가 진심으로 바치는 작은 기도 덕택 이였습니다
저는 작가님께서 쓰시는 [글]이
세상을 향한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대화에는 정복이라는 게 없으며
선선한 바람이 부는 저녁과 같은 것
하늘에 그림처럼 걸린 반달과 같은 것이겠지요
외롭고 아파하는 사람들을 위해
(아마 앞으로 점점 많아질 겁니다)
꾸준히 연두빛 [글]을 쓰시길 바랍니다
작가님 덕분에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르니까요
정말 감사드려요..늘 건필하세요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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