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경제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은 “예술과 경제를 움직이는 ‘공통된 힘’이 있다”고 말한다. 다섯 가지로 집약된 비결은 현상 너머의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투시력’, 상황을 새롭게 정의하는 ‘재정의력’, 근원적인 형태인 원형을 파악해 활용하는 ‘원형력’, 항상 성장하고 소용돌이치는 ‘생명력’, 무거움과 가벼움이 충돌하는 ‘중력과 반중력’이다.
책은 다양한 예술작품을 통해 이들 다섯 가지 힘이 예술과 경제를 관통하며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화가, 조각가, 건축가들이 문제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던지는 기발한 질문과 경이로운 대답은 위기에 처한 경제와 기업경영에도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저자인 김형태 조지워싱턴대학 객원교수는 이것이 바로 “저성장이 고착화된 위기의 경제가 예술에 길을 물어야 하는 이유”라고 힘주어 말한다.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금융과 재무학을 전공한 김형태 교수는 자본시장연구원 원장과 IMF 객원연구위원을 거쳐 현재 조지워싱턴대학에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미국의 ‘글로벌금융혁신연구원’ CEO 겸 원장이기도 한 그는 예술적 관점에서 경제 이슈를 풀어내는 강의로 학계와 기업에서 명성을 얻고 있다. 전공은 경제와 금융이지만 그는 28년 차 미술작품 콜렉터이기도 하다.
『예술과 경제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은 세 가지 놀라움을 안겨준다. 예술과 경제가 “서로 다른 힘에 의해 움직이는 전혀 다른 세계”가 아니라는 사실에서 한 번 놀라고, 오랜 시간 경제경영을 연구해 온 저자가 놀라우리만큼 깊은 예술적 식견을 보여준다는 데에서 두 번 놀란다. 무엇보다, 따로 떼어 놓고 보아도 어려운 경제와 예술의 이야기를 쉽고 흥미롭게 들려준다는 점이 가장 놀랍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경제의 원리, 예술의 역사, 두 분야를 가로지르는 통찰력까지 엿볼 수 있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 책이기도 하다.
고민을 거듭할수록 글은 쉬워진다
<조선일보 위클리비즈>에 연재하셨던 칼럼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입니다. 새로 추가된 내용들도 있나요?
‘예술과 금융’이라는 제목으로 2년 반 정도 연재했던 칼럼이 기본이 됐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새로 고민해 새로 쓴 것들입니다. 미국의 대학들과 연구소에서 강의했던 내용들이나 미국에서 CEO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이야기했던 내용들도 포함되어 있고요. 이번 책을 준비하면서 새롭게 쓴 내용들이 많습니다.
예술과 경제는 서로 상반된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둘 사이에 접점이 있을까요?
근본적으로 들어가 보면 예술과 경제를 움직이는 힘의 원리, 작용되는 에너지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는데 책에서 예로 들고 있는 미술가, 조각가, 건축가들 대부분이 비주류로써 인정받지 못하던 시기에 처절한 몸부림을 통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했습니다. 그 가운데 성공한 사람들의 비결을 생각해 보면, 그들에게는 다섯 가지 힘이 있었다고 생각돼요. 새로운 아이디어로 판을 뒤집는 능력, 즉 ‘재정의력’이 있었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투시력’이 있었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래된 전통 속에 있는 뿌리, 그로부터 파생되어 나오는 새로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원형력이 있었습니다. 생명력 또한 가지고 있었죠. 생명이란 일종의 에너지흐름입니다. 에너지라는 건 힘과 힘이 부딪힐 때 용솟음치면서 소용돌이치는 건데 예술의 거장들은 그 과정을 보고 흐름을 탈 수 있었어요. 마지막으로 항상 끌어당기는 관습과 편견이란 중력으로부터 떨쳐나가는 반중력의 힘이 있었죠. 반대로 가볍고 피상적으로 떨쳐나가는 걸 잡아주는 중력의 힘도 있었고요. 이 다섯 가지의 힘은 성공한 예술가들과 성공한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힘’이라고 봅니다.
경제경영 전문가이신데 예술적 안목도 무척 뛰어나세요. 『예술과 경제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을 보면 예술사의 흐름이 명료하게 정리되어 있고, 각 시기별 특징과 예술가들에 대한 분석까지 들려주시더라고요.
사실 고등학생 때 건축가가 되고 싶었어요. 멋지고 경이로운 건물을 짓고 싶어서였죠. 결국 부모님의 중력을 벗어나지 못해 건축과 진학의 꿈을 접고 경영학을 전공하게 되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그림과 건축에 대한 애정이 있었죠. 책에서 생명과 뇌에 대한 이야기도 했지만, 우리 뇌는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집중하게 되어 있잖아요. 저 역시 그림을 좋아하니까 집중하게 됐고, 흥미를 느끼니까 스스로 공부하게 된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보는 눈도 생긴 거고요. 아무래도 제가 경영학을 전공했고 금융 공부를 계속 했으니까, 예술 작품을 보면서도 비슷한 부분들이 눈에 띄더라고요. 마이너스 금리 이야기를 들으면 비잔틴 성상화가 생각나고, 양적 완화 이야기가 나오면 드레이퍼의 ‘오디세우스와 세이렌’ 그림이 생각나는 거죠. 복잡한 경제이슈를 보면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 생각나고요. 그러면서 경제와 예술이 관련이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굉장히 비슷하고, 그 안에서 작용하는 힘의 원리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들이 축적돼서 이번 책도 나오게 된 거고요.
경제와 예술 모두 쉽지만은 않은 분야잖아요. 그런데 작가님의 책은 술술 읽혀서 놀라웠습니다.
경제와 예술은 저를 받치고 있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두 분야예요. 좋아하니까 흥미를 갖게 됐고, 그렇게 공부를 하다 보니까 점점 깊이 이해하게 됐죠. 제가 이해를 하지 못하면 글이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조금 더 곱씹으면 뿌리가 보이면서 쉬워지고요. 이렇게 저렇게 고민을 거듭할수록 글은 쉬워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투시력’과 관련해서 마우리츠 에셔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에셔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가 생각하기에 에셔의 작품은 서로 다른 이질적인 것과 갈등을 포용해서 조화를 이끌어냈습니다. 에셔의 그림 중에는 모순적인 것들이 많죠. 책에 실려 있는 「하늘과 바다」를 보면 아래쪽에 그려져 있는 물고기가 위로 갈수록 새가 되잖아요. 「천사와 악마」라는 그림에서도 악마가 천사가 되고 천사가 악마가 돼요. 에셔의 작품에는 이렇게 이질적인 것을 하나의 프레임 속에 넣어서 조화를 이룬 것들이 많아요. 어떻게 보면 현재와 같이 이해관계 집단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시대에 우리가 나가야 할 길을 가르쳐주는 화가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기업일 수도 있고, 국가 경제일 수도 있고, 어떤 조직일 수도 있고, 세계 경제일 수도 있는 거죠.
말씀하신 작품 「하늘과 바다」에 빗대어 월마트와 아마존의 관계를 분석하기도 하셨죠.
월마트는 오프라인 유통업의 최강자잖아요. 아마존은 최고의 전자상거래회사고요. 책에서는 아마존을 에셔의 물고기로, 월마트를 에셔의 새로 비유했는데요. 물속(온라인 시장)에 잠겨있던 아마존이 독수리처럼 하늘(오프라인 시장)로 비상하려고 하니까 월마트는 비상이 걸린 거죠. 그래서 월마트도 온라인을 강화하는 거예요. 아마존에서 조금만 수수료를 지불하면 48시간 내에 주문한 물건을 받을 수 있게 하니까, 월마트도 경쟁하기 위해서 36시간 안에 배송이 가능한 시스템을 도입했어요. 그러자 아마존은 24시간 안에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했고요. 서로의 사업 영역이 다른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 따져보면 본질은 같은 거죠. 그 본질을 꿰뚫고 볼 수 있는 화가가 에셔였고, 사업의 본질을 볼 수 있는 기업은 성공하는 거예요. 서로 다른 걸 하나로 볼 수도 있고, 같은 걸 분리해낼 수도 있으니까요.
새로운 답을 찾으려면 새로운 질문을 던져라
‘재정의력’의 핵심은 ‘질문을 달리하면 전혀 다른 대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인가요?
우리가 어떤 문제를 풀 때, 대부분은 그 프레임 안에서 문제를 풀게 돼요. 문제가 특정하게 주어져있다는 것은 이미 우리의 사고방식과 솔루션을 제약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죠. 그러니까 문제가 달라지면 즉 색다르게 질문할 수 있으면 해답이 달라지는 겁니다. 책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어떻게 하면 식량을 많이 생산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하면 식량을 더 많이 생산하는 방법에만 몰두하기 마련이죠. 그런데 동일한 경작지에서 생산량이 2배 늘어났다고 하더라도 가뭄 때문에 전세계에서 생산 가능한 면적이 1/4로 줄었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거잖아요. 그럴 때에는 ‘어떻게 하면 물 없이도 살 수 있는 식물을 만들까’라고 질문하면 전혀 새로운 답이 보이게 됩니다. 질문을 달리 한다는 것은 사고의 프레임을 완전히 바꾼다는 겁니다. 새롭게 상황을 재정의하고 새로운 질문을 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답을 끌어내는 거죠. 우리 기업이나 경제에 제일 필요한 게 바로 그런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에서 던롭사의 창업자인 존 보이드 던롭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요. ‘재정의력’의 중요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던롭은 자전거 타이어를 재정의했죠. 예전에는 나무로 깎아서 바퀴를 만들었기 때문에 덜컹거리는 충격이 다 머리까지 전달이 됐어요. 당시에 던롭의 아들도 매일 자전거를 타고 나면 머리가 아프다고 했죠. 자전거가 계속 덜컹거려서 뇌가 흔들렸던 거예요. 그래서 던롭은 ‘어떻게 하면 바퀴를 개선시킬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충격을 그대로 흡수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냈어요. 그 이전까지는 바퀴의 크기를 키워 충격을 타고 넘으려 했거든요. 바퀴가 클수록 장애물에 잘 걸리지 않고 넘어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흔히 빈폴 자전거라고 이야기하는 앞 바퀴가 엄청 큰 형태의 자전거가 나온 거예요. 그 자전거의 문제점은 넘어질 때 앞으로 고꾸라진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목뼈가 부러져 죽는 사람도 많았고, 별명이 넥브레이커(neck breaker)였죠. 사람들은 ‘바퀴의 크기로 충격을 타고 넘기 위해 어떻게 하면 바퀴를 크게 만들까’라는 질문에 함몰되어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던롭은 ‘충격을 크기로 타고 넘는 것이 아니라 탄력성과 유연성을 통해 흡수해 버리자’라고 생각해서 고무 튜브로 만든 바퀴를 만들어냈죠. 질문이 바뀌니까 아이디어가 나온 거예요.
던롭의 이야기를 경제 상황과도 연결시켜 볼 수 있을까요?
한국 경제도 과거에는 크기를 통해서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러니까 대기업 중심의 운영이 이루어졌던 거예요.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이런 저런 충격을 타고 넘기에는 대기업이 유리하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중소기업, 혁신기업, 젊은 기업들이 나오면서 ‘충격을 타고 넘지 말고 흡수하자’라고 생각하게 됐죠. 충격을 흡수한다는 건 그만큼 다양한 기업이 많아서 한 기업이 무너져도 다른 기업이 보충해 준다는 거잖아요. 던롭의 이야기와 연결해서 생각해 보면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재정의력’과 관련해서 굉장히 흥미로운 상상이 눈에 띄더라고요. ‘예술의 거장들이 조직의 리더라면?’이라는 가정인데요. 에셔, 모네, 세잔, 몬드리안, 미켈란젤로, 피카소, 고흐 등 다양한 스타일의 리더 가운데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유형이 있으세요?
누가 최고라고는 생각할 수는 없는데요. ‘인사가 만사다’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미켈란젤로형 리더가 아닐까 싶어요. 책에는 미켈란젤로의 작품 중에 ‘노예상’이라는 미완성 작품이 소개되어 있는데요. 제가 그 작품을 피렌체의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봤을 때 충격을 받았어요. 작품 안의 노예가 튀어 나올 것 같더라고요. 이미 완성된 조각품이 안에 있고, 미켈란젤로는 회반죽만 털어낸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미켈란젤로는 미리 스케치를 하거나 석고상을 만드는 과정 없이 처음부터 조각을 시작했다고 해요. 제 해석대로라면, 돌 안에 이미 자기가 형상하는 모습이 정확히 들어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불필요한 부분만 쳐냈던 거예요.
위대한 리더와 미켈란젤로의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미켈란젤로형 리더라면 조직의 구성원에게 자기 칼을 들이대서 마음대로 조각하려 들지 않을 거예요. 그 안에 있는 완성품 그대로를 인정해주고 흙만 털어주는 거죠. 그 사람이 가진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거예요. 조직원이 능력 발휘를 못한다면 그건 CEO의 책임이에요. 조직 안에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데, 다양성을 인정해주고 그 사람이 잘하는 걸 발견해 내는 게 경영자의 능력이죠.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에요. CEO도 자신의 목표가 있기 때문에 그와 맞지 않는 사람을 자기 칼로 조각하려고 해요. 그 과정에서 조직의 구성원은 상처를 받죠. 그런 관점에서 보면 미켈란젤로의 노예상처럼 미완성이 완성이라고 생각돼요. 미켈란젤로처럼 있는 모습 그대로를 끄집어내는 리더라면 어떤 조직도 잘 리드할 수 있다고 봅니다.
책에서 세 번째로 꼽으신 힘은 ‘원형력’입니다. 레고의 사례를 보면 기업이 원형, 즉 본질을 간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레고의 본질은 확장가능성과 분리가능성이라고 볼 수 있어요. 또 다른 레고 제품을 사더라도 기존 제품과 얼마든지 확장해서 연결시킬 수도 있고 반대로 분리시킬 수도 있는 거죠. 그런데 컴퓨터가 보편화되고 컴퓨터 게임과 경쟁자에 밀려서 기업이 어려워지니까 레고는 그 본질을 버리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의 마음을 뺏을 수 있고 제품이 팔리기만 한다면 기존에 샀던 제품과 연결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 거죠. 그게 바로 기업을 지켜왔던 뿌리, 즉 ‘레고스러움’을 버린 거예요. 그렇게 하다 보니까 기존에 있었던 디자이너들도 해고했죠. 그들은 레고를 좋아하고 레고에 몰두해 있던 사람들이었는데, 그들 대신 레고뿐만 아니라 완구를 잘 모르는 디자이너들을 채용했어요. 그 결과 새로 만든 제품은 기존 제품과 연결도 안 되고, 부품은 자꾸 늘어나게 된 거예요. 판매가 부진하니까 재고 관리 비용도 늘어났고요.
위기에 빠진 레고를 구한 건 외르겐 비크 크누트슈토르프였죠. 책에서도 그를 ‘구원투수’라고 이야기하셨어요.
외르겐 비크 크누트슈토르프가 CEO가 된 후에 혁신을 이루었죠. 제가 볼 때 그가 한 일은 ‘레고스러움’을 회복한 거예요. 원형을 회복한 거죠. 어렸을 때 레고를 가지고 놀아본 적이 있고 레고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디자이너로 채용했고요. 기존 제품과 확장이 안 됐던 제품들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확장가능성이란 원형 속에서 혁신을 시도했어요. 혁신은 혁신이되 과다혁신이 아닌 ‘관리된 혁신’을 추구한 것이죠. 그렇게 원형을 되찾으면서 경영 상태를 회복시켰죠. 원형이라는 건 고리타분함이 아니라 미래를 창출해 내는 뿌리예요. 뿌리에서 출발해서 다양성을 펴 나가는 거죠. 뿌리 없는 다양성은 사상누각이라는 거예요. 레고는 원형을 잃으면서 실패했고 원형을 회복함으로써 복귀한 대표적인 기업이죠.
그렇다면 한국 경제의 원형은 무엇일까요?
요즘 그런 이야기들 많이 하죠. 수출 중심의 한국 산업은 죽었으니까 소비 중심 성장모델로 전환해야 한다고요. 제가 생각할 때, 우리나라는 소비 중심 성장이 될 수 없는 나라예요. 일본이나 미국 정도는 경제규모가 돼야 소비중심으로 돌아갈 수 있죠.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경제) 원형인 수출을 지켜야 해요. 다만 수출은 수출이되 지나친 상품 중심의 수출모델에서 벗어나 서비스 수출, 자본수출 쪽으로 다변화하는 게 맞는 방향이고요. 소비 중심 모델로 바꾸자는 건 한국경제의 원형을 잃는 거예요. ‘한국스러운’ 걸 잃는 거죠. 기업이든 국가경제든 원형을 잃으면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뤼 꼬르뷔제가 건축한 롱샹성당이 신비롭게도 ‘오래된 미래’를 보여주듯, 경제도 미래지향적이되 원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한국 경제에 필요한 힘은 ‘재정의력’
‘생명력’을 보여주는 기업으로 GE를 꼽으셨는데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생명력이라는 건 계속 살아나갈 수 있는 힘이잖아요. 책에서 정의하길 ‘영원히 살기 위해서 스스로를 죽임으로써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힘’이라고 했는데요. GE의 전설적인 CEO인 잭 웰치는 항상 직원들한테 ‘우리 기업이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는지’ 레포트를 내라고 했어요. 그는 영원히 사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거죠.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자신감이 없고 리더십이 없는 조직이었다면 그런 지시를 못 내렸을 텐데 잭 웰치는 해낸 거예요. 그런 점에서 존경스럽죠. 어떻게 하면 죽게 되는지 알고 있으니까 어떻게든 살아남을 방법을 강구한 거예요. 문제를 재정의했다고 볼 수도 있죠. 보이지 않는 적은, 말 그대로 보이지 않게 접근하기 때문에, 성공한 과거의 자신한테만 몰두하면 이런 적에게 대응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GE처럼 자신을 죽이는 방법을 생각해야 되는 거죠. GE는 처음 다우존스 주가지수가 출범하면서 포함됐던 우량기업 중에서 현재까지 유일하게 남아있는 기업이에요. 그 비결을 생각해 보면, 계속 죽고 새롭게 태어났기 때문이죠.
‘예술과 경제를 움직이는’ 다섯 번째 힘은 ‘중력과 반중력’입니다. 경제 혹은 경영에 있어서 이 둘 사이에 균형을 맞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중력과 반중력은 예술이나 경제와는 전혀 관련 없는 물리학적인 용어 같지만, 그림에도 가벼운 그림이 있고 무거운 그림이 있듯이, 경제에도 중력 반중력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중력이라는 게 단순히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경제적인 힘, 정치외교적인 힘일 수도 있고요. 잡아끈다는 의미에서 사람 관계에서 매력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정상과 비정상, 균형과 비균형의 개념을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균형이라고 하는 건 흔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에요. 아주 예외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죠.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비균형 상태에서 살고 있는 거죠. 책에 썼듯이, 균형은 우리의 목표이기는 하지만 현실의 출발점은 아닌 거죠. 균형이 항상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건 잘못된 것 같아요. 너무 거기에 매여 있으면, 안정적인 환경에서는 좋을 수 있지만, 틀을 깨고 나가지 못하게 돼요. 무거워야 될 때는 무겁게, 가벼워야 될 때는 가볍게 잘 맞추는 것이 중력과 반중력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는 방법이겠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나 그랩의 돌쌓기는 절묘한 군형과 조화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마그리트의 그림 중에는 중력에 저항하는 그림이 많죠.
책에서 꼽으신 다섯 가지 힘 가운데, 현재 한국의 경제 상황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힘은 무엇일까요?
‘재정의력’이죠.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첫 번째 단계는 기존의 틀 속에서 개선과 발전을 모색하는 건데, 제가 볼 때 한국은 경제 성장 모델에 관한 한 최소한 이 단계는 넘어섰어요. 이제는 틀을 바꿀 때이고, 틀을 바꾸기 위해서는 한국 경제에 관한 문제를 새롭게 재정의해야 하죠. 앞서 이야기한 대로 새롭게 정의해야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고 기발한 새 답도 나오니까요. 한국 경제도 근본적인 재정의가 모색이 되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무엇이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한 정의부터 새롭게 해야 한다고 봐요. 과연 우리가 맹신하고 있는 국내총생산(GDP)이 높으면 잘 사는 것인지, 질문해 봐야 할 때죠. 물건이 모자라서 생산만 하면 전부 팔리던, 그렇게 수요가 넘쳐나던 시절에는 GDP로 측정된 생산이 높으면 잘 사는 것이었죠. 하지만 이제는 수요가 부족하잖아요. 그리고 GDP를 개발한 쿠즈네츠 교수가 경고했었어요. GDP는 잘 살고 행복해져야 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요. 그런데 목표가 되어버린 거예요. 그런 점에서 잘 사는 것에 대한 정의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경제 문제를 해결해줄 방법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도 맞다고 생각해요.
‘가난에 대한 재정의’도 기억해둘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가난에서 빠져나오려면, 경제적 여유뿐 아니라 뇌와 정신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하셨죠.
지금까지는 가난한 이들에게 돈을 보조해주고 재취업 프로그램을 제공해줬잖아요. 그런데 최근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는 연구자들은, 가난이 단순한 경제적 빈곤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뇌의 빈곤이라고 이야기해요. 가난한데 부양해야 할 가족이 많은 사람들은 아이들 돌보고, 아픈 부모 병수발 들고, 직장에서 일할 때도 집에서 부모님이 쓰러지셨다고 연락이 오고, 퇴근해서 집에 가면 공과금 청구서가 와있고, 아이들은 등록금을 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그런 상황이란 말이에요. 그렇게 뇌의 연료가 소진된 사람이 어떻게 직장에서 집중해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빈곤 문제는 단순히 돈을 많이 주는 문제가 아니라 그들 뇌의 여유를 회복시켜주는 문제예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도 마찬가지죠. 비정규직에게 정규직만큼 돈을 더 주겠다고 하는데,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문제라니까요.
독자들에게 『예술과 경제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이 어떤 의미를 가지면 좋을까요?
예술가의 고민을 많이 같이 곱씹어 봄으로써 우리의 마음뿐만 아니라 뇌를 촉촉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술적 시각에서 경제를 바라볼 뿐 아니라, 경제적인 시각에서 예술을 바라보는 일도 있었으면 좋겠고요. 이 책이 조그만 징검다리가 되어서 경제와 예술 사이에 교류가 많이 이루어지고, 서로가 상대방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특히 경제에서도, 예술처럼, 아름답다, 자연스럽다, 기발하다,따뜻하다는 말이 많이 사용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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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경제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김형태 저 | 문학동네
미술, 건축, 문학 등 예술과 경제, 금융, 경영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야를 접목해 새로운 인사이트를 제시하는 김형태 조지워싱턴대 교수. 자본시장연구원 원장을 역임한 ‘경제 전문가’답게 어렵고 복잡한 경제와 금융을 누구라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