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바이올린은 단순히 연주해야 하는 악기가 아니다. 다양한 예술가들을 만나게 하는 다리이자, 그녀에게 영감을 끌어다 주는 존재이다. 자신을 아프게 했지만, 그 아픔을 어루만지는 반창고가 되기도 했다. 조진주는 이 모든 경험과 생각을 관객ㆍ연주자ㆍ후배들과 음악을 통하여 나눈다. 그래서 그녀의 행보는 늘 남다르게 보이고, 연주는 늘 색다르게 들린다. (홈페이지)
최근 근황이 궁금한데요. 연주 활동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몸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바빴어요. 뉴욕 카네기홀의 아이작 스턴 홀에서 협연했고 독주회를 하기도 했어요. 월간 <객석> 칼럼도 쓰고 있고, 미국 클리블랜드에 여름 실내악 캠프인
어떤 계기로 바이올린을 접하고 전공하게 되었나요?
어릴 때 동네에 바이올린, 피아노, 검도, 태권도, 미술 등의 학원이 많았어요. 친구들과 함께 이것저것 배웠는데 바이올린은 남들보다 배우는 속도가 빨랐나 봐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바이올린을 진지하게 배웠어요. 악보를 한동안 못 읽어서 엄마가 거실 바닥에 오선지를 그려놓고 가르쳐주시기도 했고요. 사실 귀로만 듣고 연주를 했었는데 아무도 이 사실을 몰랐었어요.(웃음) 특히 수영과 스피드스케이팅을 좋아해서 바이올린 때문에 그만두었어야 할 때는 많이 울었어요. 정말로 어쩌다 보니 전공을 하게 된 것 같고, “내가 음악가구나!”라는 걸 의식한 것은 중학생 때 미국으로 유학을 오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 때는 바이올린 외에 새롭게 시작된 학교생활에 많은 신경을 써야 했죠.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공부를 꽤 열심히 했던 것이 오히려 바이올린에 대한 확신을 단단히 해주는 데에 더 많은 도움이 됐어요.
음악가는 성장의 기쁨과 슬럼프의 슬픔 속에 사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물론 모든 이들이 기쁨과 슬픔 속에서 살고 있지만 말이죠. 성장하고 있을 때와 잠시 멈췄다고 느꼈을 때가 있었을 텐데요.
글쎄요... 성장 그리고 멈추는 것에 대해서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에요. 지금은 더욱더 그렇죠. 나이와 경험이 쌓이면서 음악은 자연스레 성장하리라는 것을 믿게 된 것 같아요. 연주 테크닉의 발전을 위해서 지금도 노력하지만, 딱히 큰 발전은 없는 것 같아요.(웃음) 성장통을 꽤 겪은 편이라 그런지 이젠 ‘성장=기쁨’ ‘멈춤=슬픔’이라는 공식은 믿지 않으려는 편이에요. 지금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진주가 연주한 슈만(1810~1856)의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
연주 중에 줄이 끊어지거나 악보를 까먹거나 한 경험이 있나요?
악보를 까먹는 거야 비일비재하고, 줄도 잘 끊어진답니다. 연주란 사건 사고의 연속이랄까요? 이젠 대처하는 방법도 늘었고, 늘 함께 하는 피아니스트 김현수 씨가 덜렁거리는 저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에 부품을 준비해놓기도 해요. 예전에 연주 도중에 큰 파리가 바이올린과 피아노에 번갈아가며 날아다녀서 연주를 멈춰야 했던 적도 있었어요. (웃음)
현재 클리블랜드 음악원 교수로 활동합니다. 음악가들은 스승의 영향을 정말 많이 받죠. 조진주 씨가 쓴 「굿바이! 콩쿠르 인생」에도 스승의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이제 스승의 입장이 되어보니 어떤가요?
※ 「굿바이! 콩쿠르 인생」(월간 객석 2014년 12월호)
가르치는 건 어려운 일 같아요. 제 공부는 평생을 바라보며 하기 때문에 조급하진 않은데, 대학에 갓 입학한 학생들은 모든 걸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더욱 성장해야 하니까요. 저의 역할은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서 대학 생활 이후에는 거의 선생님이 필요하지 않은 음악인을 양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책임감을 많이 느껴요. 늘 최선을 다하지만 경험이 부족하죠. 그럴 때마다 학생들과 고민을 공유하고 해결점을 함께 찾곤 해요. 무엇보다 선생으로서 도움을 주려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고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언제나 저의 시간을 충분히 내어주려 노력하죠. 그들의 선택을 믿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려는 자세만으로도 학생들은 소통한다는 것을 느끼며 안정감을 찾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러한 안정이 결과적으로 돌파구를 만드는 데에 기여하는 것 같고요. 선생님으로서의 생활이 개인적으로는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는 것보다 더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제가 누구 말을 듣고 따라가는 것을 참 못하거든요. (웃음)
「굿바이! 콩쿠르 인생」을 보면 2014년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 출전과 우승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됐던 것 같습니다. 만약 원하는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면 지금은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요?
2014-2015년 시즌이 국제 콩쿠르 도전의 마지막 해라고 생각했어요. 인디애나폴리스ㆍ퀸 엘리자베스ㆍ차이콥스키 콩쿠르 같은 굵직한 콩쿠르가 많은 시즌이었기 때문에 세 콩쿠르 도전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에서 입상하지 못했다면 계획대로 퀸 엘리자베스와 차이콥스키에 참가했겠죠. 그 이후에는 박사 공부를 시작하려 했고요. 그렇지만 인생의 전환점은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 이전부터였던 것 같아요. ‘누가 뭐라 하든지 나는 내 연주를 좋아해 주자!’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었거든요. 그래서 큰 욕심 없이 참가에 의의를 두고 나갔었어요. 인터뷰라서 하는 말이 아니고 진짜로요(웃음) 인디애나폴리스에서 덜컥 1등을 하길래 이때다 싶어 콩쿠르는 끝이라고 선언했죠. (1982년 시작된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는 ‘바이올린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세계적 권위의 콩쿠르로 4년에 한 번씩 열린다.)
2015년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 선정돼 지난 1월을 시작으로 네 차례의 리사이틀을 통해 ‘시작’ ‘청춘’ ‘방황’ ‘추억’이라는 주제로 베토벤(1770~1827)에서 차이콥스키(1840~1893), 아이브스(1874~1954), 프로코피예프(1891~1953)까지 다양한 곡을 연주했습니다. 공연마다 제목에 걸맞는 레퍼토리를 직접 선곡하고, 그 음악을 통해 젊은 인생에 관해 이야기하는 듯한 시간이었어요. 이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1월에 선보인 ‘시작’ 공연이에요. 역시 힘든 연주가 가장 기억에 남나 봐요. 상주음악가 시리즈를 시작하는 참이라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만, 감사하게도 객석이 가득 차서 기분이 좋았죠. 특히 아이브스가 작곡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4번 ‘캠프모임의 어린이 날’을 정말 재밌게 연주한 기억이 나네요. (찰스 아이브스는 미국의 작곡가로, ‘캠프모임의 어린이날’은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는 작품이다)
찰스 아이브스가 작곡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4번 ‘캠프모임의 어린이 날’ 중 일부
신선하고 새로운 산소로 가득 찬 아마존처럼 늘 새로운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들려주고 있습니다. 선곡 작업도 연주하는 것 못지않게 많은 영감이 필요하죠. 선곡할 때 어떤 기준이 있는 궁금합니다.
잘 연주되지 않는 곡들을 관객에게 들려주는 것은 늘 흥미로워요. 독주회 선곡은 저와 늘 함께 하는 피아니스트 김현수 씨와 함께합니다. 유튜브나 스포티파이를 통해 예전엔 알 수 없던 레퍼토리를 많이 접하는 것 같아요. 21세기 문명이 주는 아름다움이겠죠? 학교 도서관에서 악보를 잔뜩 빌려 맥주 한잔 하며 쭉 읽어보기도 하고요.
2015년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가 되었을 때, 기자회견장에서 “사진작가 강영호가 작업한 광고 음악을 녹음했다”고, 또 “무라카미 하루키, 은희경, 밀란 쿤데라의 작품들을 읽고 서태지와 자우림, 인디밴드 검정치마에 열광하는 20대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아무래도 클래식이 보수적인 장르이다 보니 이런 점들이 조진주 씨의 이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최근에 관심 있는 음악가나 작가, 혹은 재밌게 읽은 책이 있나요?
정말로 지난 한 해는 너무 바빠서 음악도 소설도 거의 접하지 못했어요. 텔레비전 보는 걸 정말 좋아하는데 이번 여름은 ‘무한도전’도 못 봤고요. 연말에 나온다는 ‘셜록’ 시즌4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러시아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의 음반을 많이 듣고, 더 위켄드 음악에 춤추고, 예술 관련 비영리 재단 운영에 관한 서적을 주로 찾아 읽어요. 미술가 빌 비올라나 랜디 쿠퍼의 작품을 좋아해서 전시를 보러 가기도 하고요. 생각해 보면 여러모로 괴롭던 20대 초반만큼 열심히 다른 장르와 여러 문화를 찾아다니고 접하던 시절이 다시 올까 싶어요. 그래서인지 안무가로 활동 중인 차진엽 언니를 만날 때마다 만은 자극을 받고는 해요. 멈추지 않고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는 모습이 너무 멋지거든요.
조진주가 녹음한 광고음악 영상
개인적으로 ‘조진주’ 하면 ‘탐구’와 ‘고백’이라는 단어가 떠올라요. 탐구는 월간 ‘객석’에 연재 중인 ‘The Art of Practice’ 시리즈에서 인터뷰이의 예술세계를 세밀히 관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서 떠오르는 것 같고요. 고백은 연주로나 글로 심정과 예술에 대한 생각을 진솔하게 풀어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연주도 고백의 일종이잖아요. “오늘 온 관객을 위해 연습을 얼마만큼 했다”라는. 그리고 고백에는 ‘용기’가 필요하기도 하고요.
※ 조진주는 2015년부터 다양한 예술가들을 인터뷰하여 월간 <객석>에 ‘The Art of Practice’를 연재 중이다. 그동안 은희경(소설가), 차진엽(현대무용가), 송창식ㆍ이상은(가수), 김선욱(피아니스트) 등을 직접 인터뷰하여 직접 글을 썼다.
글쓰기는 저의 로망이에요. 어릴 때는 소설가를 꿈꾸기도 했어요. 부끄럽지만 주위 사람들이 주는 피드백이 제 글쓰기 훈련의 전부예요. 만약에 고백이라고 생각했으면 거창하게 느껴져서 진솔하게 쓰지 못할 거예요. 용기보다는 책임감에서 비롯되어 부끄러운 이야기, 실패한 이야기, 어려웠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제 글이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좋겠고요. 또 예술에 대해 부모님과의 대화, 친구들과의 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네요. 은희경 선생님이 예전에 “글은 날 서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면서 숨고 싶더라도 ‘이러면 안 되지’하고는 힘을 내서 씁니다.
이상적인 음악가 그리고 예술가의 모습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어릴 적부터 예술의 역할에 대해 많이 고민했어요. 어찌 보면 예술이란 쓸모없는 것이잖아요? 생존을 위한 필수는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가가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여러 가지 이해관계와 사회적 규범에 묶일 수밖에 없는 사회인들이 표출할 수 없는 것들을 대신 표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특히 현대사회는 인간의 본능을 누르고 살아야 하는 부분이 많으니까요. 저와 같은 직업을 가진 이들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대신 그들에게 현실에서 탈출하는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거죠.
만약 바이올리니스트 이브리 기틀리스처럼 90세가 넘어서도 무대에 선다면, 그 때는 어떤 곡들을 연주하겠어요?
계속해서 배우는 존재가 음악가이고, 한때는 계속해서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육체적으로 만족스러운 연주를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더라고요.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후배들에게 무대를 물려주는 게 선배로서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해요.
8월부터 12월까지 조진주를 만날 수 있다. 8월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첼리스트 이상 앤더스, 피아니스트 김혜진과 함께 피아노 3중주의 무대를 갖는다. 피아노 3중주는 피아노ㆍ바이올린ㆍ첼로가 함께 하는 형식이다. 연주할 곡은 쇼스타코비치(1906~1975)의 피아노 3중주 1번과 2번, 멘델스존(1809~1847)의 피아노 3중주 2번. 특히 쇼스타코비치의 두 곡은 한 작곡가에게서 나온 곡이지만 그 맛은 전혀 다르다. 조진주도 세 곡이 지닌 “각각의 맛을 즐기면 좋을 것 같다”고 한다. 9월 25일에는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성시연(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이 지휘하는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과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다. 그리고 10월(대전 문화예술의전당), 11월(천안 예술의전당), 12월(서울 금호아트홀)로 그녀의 내한 공연이 이어진다. 여름, 가을, 겨울을 수놓을 그녀의 바이올린과 특유의 감수성을 가득찬 무대를 기대해보자.
조진주가 연주한 차이콥스키(1840~1893)의 바이올린 협주곡 영상
송현민
음악평론가로 음악 듣고, 글 쓰고, 음악가들을 만나며 책상과 객석을 오고간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했고, ‘한반도의 르네상스’를 주장했던 음악평론가 박용구론으로 제13회 객석예술평론상을 수상했다. 월간 <객석>을 중심으로 취재 및 집필 활동을, KBS 1FM에서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책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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