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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경부암 백신을 맞아야 하나 묻는 분들이 많습니다. 좀 의외였습니다. 한 번에 10만원이 넘는 백신을 공짜로 맞을 수 있는데 왜 고민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요. 인터넷을 뒤져보고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예상 외로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50만명의 여성이 자궁경부암으로 진단받고 27만명 정도가 죽습니다. 우리나라는 매년 3,000명의 환자가 발생하여 900명 정도가 사망한다니 무서운 병은 틀림없습니다. 예방할 수 있다면 너무나 좋을 텐데 왜 접종을 꺼리는 것일까요. 반대하는 분들의 의견을 추려보았습니다.
암은 바이러스 질환이 아닌데 무슨 백신이 있나?
암은 방사선, 화학물질, 만성염증, 유전 등 여러 가지 원인으로 생깁니다.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암도 있습니다. B형과 C형 간염 바이러스로 인한 간암, 엡스타인 바(Epstein-Barr) 바이러스로 인한 몇 가지 암, 그리고 인유두종 바이러스(HPV)가 일으키는 자궁경부암 등입니다. 이런 암은 바이러스 감염을 막으면 예방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B형 간염에 의한 간암이 많습니다. B형 간염 백신을 맞으면 이러한 간암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인유두종 바이러스 백신을 왜 자궁경부암 백신이라고 하나? 상술 아닌가?
B형과 C형 간염 바이러스가 간암을 일으킨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간암 쪽에서 보면 바이러스와 관련 없이 생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술을 많이 마셔서 간암이 생기기도 하고 독성 물질 때문에 생기기도 합니다. 자궁경부암은 조금 다릅니다. 거의 100% 인유두종 바이러스 때문에 생깁니다. 그래서 인유두종 바이러스 백신을 자궁경부암 백신이라고 불러도 크게 잘못된 표현은 아닙니다.
100% 예방되는 것도 아니라던데?
그렇습니다. 인유두종 바이러스는 150가지가 넘습니다. 너무 많아 번호로 부릅니다. 암을 일으키는 것은 13종 정도입니다. 16번과 18번이 특히 고약합니다. 자궁경부암의 70%가 16번과 18번 때문에 생깁니다. 자궁경부암 백신은 16번과 18번 바이러스를 막아 주는 백신입니다. 그러니 자궁경부암의 70%를 예방한다고 해야겠지요. 암을 70% 예방해주는 백신이 있는데 100% 예방되는 백신이 나올 때까지 맞지 않고 기다려야 할까요?
효과가 겨우 5년 가는 것 아닌가?
어려운 얘기지만 5년이라는 수치는 자연감염 시보다 항체가 높게 유지되는 시점을 보고한 것입니다. 앞으로 그보다 길게 유지되는지 조사한 연구가 계속 나올 겁니다. 백신을 맞으면 몸 속에 기억세포가 생기기 때문에 보호 효과는 훨씬 오래 갑니다. 실제로 저개발국가에서는 백신을 맞고 1-3번의 자궁암 검사만 시행하여 자궁경부암을 일생 동안 예방하는 프로그램을 연구 중입니다.
의약품이 사용 승인을 받으려면 효과가 있는지(유효성)와 안전한지(안전성)를 입증해야 합니다. 자궁경부암 백신의 항체 생성률은 100%입니다. 유효성은 입증된 셈입니다. 문제는 안전성입니다. 일본을 비롯하여 덴마크, 스페인 등지에서 안전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약을 사용한 후 뭔가 문제가 있으면 일단 약 때문이 아닌가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이걸 ‘관련성(correlation)’이 있다고 합니다. 관련성은 매우 폭넓은 개념입니다. 시간적 선후관계만 확실하면, 즉 약을 쓰기 전에 이미 부작용이 생긴 것만 아니면 인정합니다. 관련성이 있다고 약이 원인이란 뜻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어떤 약을 먹은 환자가 다음 날 교통사고를 당해 죽어도 일단 약과 사망 사이의 관련성을 인정하고 약이 직접적인 원인인지 규명에 나섭니다. 약이 확실한 원인으로 밝혀지면 ‘인과성(causality)’이 있다고 합니다. 제약회사들이 나쁜 짓도 많이 하지만 약을 만들고 승인 받는 과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까다롭습니다. 지금까지 자궁경부암 백신의 부작용으로 알려진 것들은 관련성이 있을 뿐, 인과성이 입증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2억회가 넘게 접종되었는데도 그렇습니다.
자궁경부암 백신의 부작용이 가장 많이 보고되고 논란이 된 곳은 일본입니다. 일본은 유난히 사이비 의학에 열광하는 나라입니다. 암에 걸려도 치료하지 말라느니, 고혈압에 소금이 오히려 약이 된다느니, 별 희한한 책이 다 나오고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사회적 스트레스가 많고 권위에 대한 불신도 심하죠(제가 잘 아는 어느 나라와 비슷하네요). 일본에서는 자궁경부암 백신을 학교에서 집단 접종했습니다. 심리적 요인이 의심되는 대목입니다. 유럽에서는 온갖 괴담 수준의 부작용이 보고되었습니다. 너무 희한한 증상이 많아 오히려 믿음이 가질 않습니다. 물론 제조사에서 조사하고 있을 겁니다. 제약회사를 믿는 게 아니라 법과 제도 때문에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일부 언론에서 정부와 제약회사에 빨리 결과를 내놓으라고 다그치듯 기사를 쓰는데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인과성을 입증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고 빨리 되는 것도 아닙니다. 정부는 다른 나라의 문제를 직접 조사할 수 없으니 제조사만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지요. 우리 정부가 직접 조사한다고 그리 믿음직하진 않겠습니다만…
그럼 어쩌란 거냐, 맞고 부작용 생기면 책임질 거냐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원래 의학이란 게 객관적인 사실을 다 말해주고, 의사의 의견을 들려주어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겁니다. 의심이란 무서운 거지요. 그런 점에서 저는 말하기에 조금 편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사지만 지금 병원을 하고 있지 않으므로 독자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이익이나 손해를 볼 것이 없으니까요.
저는 딸만 셋을 두었습니다. 셋 다 맞았습니다. 막내는 2번 맞고 캐나다로 왔는데 여기서 다시 처음부터 3번을 맞았습니다. 총 5번 맞은 거죠.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물론 저희 아이들에게 문제가 없었다고 안전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저도 자식들이 목숨보다 소중합니다.
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2005년 영국 왕립소아과학회의 ‘베이직 스페셜리스트Basic Specialist’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살고 있다. 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의 대표이기도 하다. 옮긴 책으로 《원전, 죽음의 유혹》《살인단백질 이야기》《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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