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발생한 살인 사건, 진범은 누구인가?
막이 내리자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무대를 향해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토록 강렬하게 그들을 매료시킨 것이 무엇인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2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무대 위에는 서늘한 진실과 그 뒤를 쫓는 뜨거운 몸짓이 한 데 뒤엉켰다. 숨가쁜 추적을 보기 좋게 따돌리듯, 진실은 좀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관객은 애가 탔다. 참을 수 없는 호기심만큼이나 뿌리칠 수 없는 두려움이 따라붙었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앞에 둔 것처럼. ‘진실을 감당할 수 있는가’ 뮤지컬 <인터뷰>는 묻는 듯했다. 그리고 이야기 깊숙한 곳으로 관객을 끌어당겼다.
2001년, 런던. 추리소설 작가 유진 킴의 사무실에 노크 소리가 울려 퍼진다. 문 밖에 선 청년 싱클레어는 보조 작가가 되기 위해 찾아왔다 말한다. 유진 킴은 싱클레어에게 한 장의 종이를 건넨다. 지난 밤 자살을 기도했던 연쇄살인범의 유서다. 읽어 보고 이야기를 만들어 보라는 유진 킴의 주문에, 싱클레어는 한 아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랑 받고 싶었지만 늘 외면당했던 아이는 아픈 엄마로부터 ‘너는 내 불행의 씨앗’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란다. 아니, 방치된다. 친구가 고팠던 그의 앞에 ‘노네임’이란 인물이 나타나고, 아이는 그가 이끄는 대로 엄마의 가슴을 깊이 찌른다.
소년 같은 앳된 얼굴로 섬뜩한 이야기를 들려준 싱클레어는 누구나 마음속에 감춰둔 어두운 감정이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 유진 킴은 ‘원래 모든 이야기는 평범한 내 자신에게서 시작되는 것’이라는 말로 답한다. 그리고 보조 작가 채용 여부는 추후 통보하겠다며 싱클레어를 돌려보낸다. 현관문을 향해 걸어가던 싱클레어는 돌연 몸을 돌려 유진 킴을 향해 묻는다. 10년 전 발생한 살인 사건의 진범, ‘오필리어 살인범’이라 불리는 인물이 사실은 당신이 아니냐고.
10년 전 발생한 살인 사건 속에는 희생된 열여덟 살의 소녀 ‘조안 시니어’가 있다. 그녀는 유진 킴의 소설 ‘인형의 죽음’에 등장하는 희생자와 닮아있으며, 소설이 출간된 후 다수의 여성들이 그녀와 같은 방법으로 살해됐다. 이를 근거로 싱클레어는 유진 킴이 진짜 ‘오필리어 살인범’이라 지목한다. 이제 그만 진실을 털어 놓으라 압박하는 그에게 유진 킴은 묻는다. ‘넌 누구야!’ 그를 진짜 범인이라 믿는 싱클레어조차 유진 킴을 향해 묻는다. ‘그러는 너는 누구야!’
뜨거운 호흡으로 가득 찬 작품
뮤지컬 <인터뷰>는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진실을 쫓는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조안 시니어와 당신은 무슨 관계였는지’ 묻는다. 두 남자의 정체는 진실과 함께 수면 아래 잠들어있다. 사건은 반전을 거듭하며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그 속을 헤매는 인물들의 몸짓은 팽팽한 긴장감에 싸여있다.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진실을 추적하는 동안 관객 역시 쉴 틈 없이 달려간다. 서로를 추격하는 두 남자, 그들과 함께 진실을 향해 달려가는 관객, 그 모두의 뜨거운 호흡으로 꽉 차있는 작품이다.
지난 5월 관객과 처음 만난 창작 뮤지컬 <인터뷰>는 초연 2주 만에 뉴욕과 도쿄로의 진출이 확정된 놀라운 작품이다. 9월의 교토 공연을 시작으로, 내년 1월과 2월에는 각각 도쿄와 오프 브로드웨이 진출을 앞두고 있다. 짧은 시간 안에 국내외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은 만큼 재공연 요청이 뒤따랐고, 4개월 만에 한국 관객들과 재회하게 됐다.
배우 김수로와 김민종이 프로듀서로 참여해 공연 전부터 화제가 됐던 뮤지컬 <인터뷰>는 추정화 연출과 허수연 음악감독이 합류하며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탄생했다. 빈틈없는 스토리와 다양한 색깔로 긴장감을 높이는 넘버들의 조화가 매끄럽다. 무엇보다 뜨겁게 꿈틀대는 에너지를 쉴 새 없이 쏟아내는 배우들의 열연이 눈부시다. 유진 킴 역의 배우 이건명과 민영기, 이선근, 임병근, 싱클레어 역의 김수용, 김경수, 조상웅, 이용규, 고은성, 조안 시니어 역의 문진아와 한서윤, 김주연과 전예지가 선보이는 연기는 쉽게 떨칠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뮤지컬 <인터뷰>는 11월 27일까지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 공연된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