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과 파멸의 서사, 빅스
최신 장르와 사운드를 잘 포장해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면서 노래에 빅스를 각인한 프로듀싱과 기승전결 완벽한 트랙 구성은 충분히 소구력을 자극한다.
글ㆍ사진 이즘
2016.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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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르 3부작의 끝이자 처음인 크라토스. 권력과 힘을 상징하는 신을 나타내듯 6인조는 제복을 입고 등장했다. 시간의 흐름 상 스토리의 시작에 해당하는 이번 앨범은 캐릭터 트레일러와 뮤직비디오에서 콘셉트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켄의 시점에서 서술된 영상 속의 멤버들은 죽음의 위기에서 멈춰있으며 여자는 엔을 향해 손을 뻗지만 이내 다른 남자의 손에 잡힌다. 정해진 운명 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신으로서 관조하는 켄의 모습은, 홀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무대 위 마지막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 까지 케르 콘셉트의 스토리는 헬레네를 두고 싸움을 벌이는 트로이 전쟁에서 그 모티브를 따온 듯하다. 운명을 알리는 종소리와 스트링 사운드로 웅장한 시작을 알리는 「Desperate」는 「The closer」와 감성을 공유하며 트랩과 디스코의 8비트를 찍어낸 리듬의 분화로 곡의 서사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이러한 기조는 퓨쳐하우스 스타일의 인트로와 펑키한 일렉기타로 그루브를 선사하는 댄스넘버 「Shooting star」에서도 이어지며 헬레네를 향해 로맨틱한 사랑을 속삭인다. 앨범 내에서 여섯 명의 목소리가 비교적 명확한 곡이다.

 

“몸을 던”져 “멈춰진 시간 속”에서 “운명을 바꾸”려 하지만(「Desperate」) 결국 포기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은 앨범의 마지막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피비알앤비의 몽환적인 신스에 나른한 다운 템포로 마치 없었던 존재처럼 조용히 사라지려는 「Good night & good morning」은 작별 인사를 전하며(‘로맨스는 끝났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긴다.

 

운명과 파멸이라는 거대한 서사 속에서 일년 간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 빅스. 그러나 의도한 콘셉트가 제대로 발현되었는지는 의문이다. 어둡고 압도적인 트레일러와는 달리, 질투의 화신은 귀여운 방해공작과 업비트의 댄스곡으로 묘사되었고, 죽음의 신은 알 수 없는 상징만을 남겨둔 채 스틱스 강을 연상케 하는 장면으로 의미를 겨우 남겨두었다. 크라토스에 와서야 각 멤버들이 의미하는 인물이 공개되었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떡밥”들은 남아있다. 부실한 기획은 타이틀 곡의 선정에서도 알 수 있다. 가사의 내용으로 보면 「Desperate」가 앨범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맞아 떨어지지만, 그들은 단계에 멈춰있는 「The closer」로 활동을 시작했다.

 

장엄한 스케일에 비해 이를 풀어내는 능력은 다소 부족하다. 그러나 앞선 두 앨범에 비해 음반의 질은 높아졌다. 최신 장르와 사운드를 그들만의 음침한, 속칭 “코어 팬”들을 자극할 수 있는 속성으로 잘 포장해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면서 노래에 빅스를 각인한 프로듀싱, 그리고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모두 담아낸 기승전결의 완벽한 트랙 구성은 충분히 소구력을 자극할 만하다. 깔끔한 마무리다.

 

정연경(digikid8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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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스 #Kratos #케르 3부작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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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