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섭 “경제민주화는 잘못됐다”
저는 경제민주화가 크게 세 가지-개념 설정, 원인 분석, 대안 제시에서 다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글ㆍ사진 임나리
2016.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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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과의 대화』를 통해 “대우그룹의 해체 과정은 너무 일방적인 시각이 우리 사회를 지배해왔던 것 같다”며 문제를 제기했던 신장섭 교수가 새로운 책을 출간했다. 『경제민주화…일그러진 시대의 화두』다. 저자는 경제민주화가 “한국 경제와 사회를 위해 건설적으로 내놓는 대안도 없이 사회를 분열시키고만 있을 뿐”이라며 “‘경제양극화’를 오히려 악화시킬 가능성도 높다”고 진단한다. 이에 많은 지면을 할애해 미국의 경제민주화 실패 사례를 소개하는 한편, 투자ㆍ고용ㆍ분배의 패러다임을 바꿀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을 역임한 바 있는 신장섭 교수는 1999년 외환위기 이후 IMF 처방 및 구조조정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쓰며 대안을 모색해 왔다. 1999년부터 싱가폴국립대학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지은 책으로 『삼성반도체 세계 일등 비결의 해부』, 『한국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라』, 『금융전쟁 : 한국경제의 기화와 위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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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는 잘못됐다


지금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굵직한 문제들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제일 큰 건 성장 활력 둔화죠. 성장이 둔화되면 아귀다툼이 벌어지거든요. 파이가 커져야 나눠먹을 게 생기는데, 있는 데에서 서로 나눠 먹으려면 갈등이 더 심해집니다. 그 다음이 분배의 문제예요. 똑같이 나누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분배죠. 그런데 지금 (한국의 경제 문제가) 많이 과장되어 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과거보다는 안 좋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성장 활력 둔화와 분배의 문제가 겹치니까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심해지는 거죠. 사실 이 책도 ‘경제 활력 회복과 분배 문제를 개선을 할 수 있는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 근본 원인이 IMF 당시 시행됐던 경제민주화 정책에 있다고 보세요?


그것도 하나이고요. IMF 체제 이전의 한국 시스템이 장단점이 같이 있거든요. 더 나은 미래를 위한다면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줄이는 쪽으로 해야 하는데, 단점을 없앤 게 아니라 장점을 많이 없앴어요. 그러다 보니까 경제 활력이 떨어졌고, 그 이후에 분배도 더 나빠졌습니다. 경제민주화라고 하는 것이 특히 재벌 개혁으로 갔다고 보는데, 저는 이것이 개혁의 목표도 달성 못했고 개혁의 방향 자체도 잘못됐다고 보는 거죠. IMF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저는 경제민주화가 크게 세 가지-개념 설정, 원인 분석, 대안 제시에서 다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개념 설정이 잘못됐다고 판단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면 지금이 경제 독재여야 하잖아요. 그런데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한테 ‘지금이 정말 경제 독재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딱 부러지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요. 처음 경제민주화가 나왔을 때는 일종의 자유화 개념이었거든요. 그런데 그건 1990년대 내내 진행됐고 IMF를 지나면서 거의 미국 수준으로까지 가버렸어요. 그러니까 정부의 독재를 이야기할 만한 상황은 아니죠. 유일하게 남아있는 게 재벌의 독재라고 이야기되는 것들인데, 독재라는 이야기를 하려면 재벌이 사회 전체를 쥐고 흔들어야 되거든요. 그런데 지금 실상을 보면 그렇지 않잖아요.

 

교수님께서 보시기에 ‘실상’은 어떤가요?


케이스포츠 재단, 미르 재단을 설립하면서 (재벌들이) 돈을 많이 뜯겼고, 창조경제센터 하면서 몇 천 억씩 들어갔는데, 쥐고 흔든다기보다는 오히려 열심히 벌어놓은 돈을 뜯기는 경제 주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죠. 그게 국내에서만 뜯기는 게 아니라 외국의 해지펀드들까지 뜯어가려고 해요. 얼마 전에 삼성전자 같은 경우는 엘리엇이 지주회사로 전환을 하면서 30조 원 특별 배당을 하라고, 거의 협박에 가까운 요구를 했잖아요. 그리고 지금 ‘갤노트7’ 사태를 보더라도, 정말 독재를 한다면 무시하고 지나가죠. 그런데 완전히 소비자는 왕이라고 하고 수습을 하잖아요. 이런 재벌들을 보고 어떻게 독재의 주체라고 이야기를 하느냐는 거죠. 그래서 저는 개념이 잘못됐다고 봅니다.

 

경제민주화 정책이 문제의 원인도 잘못 분석했다고 하셨어요.


재벌 체제가 분배 문제를 나쁘게 한다고 말할 수 없거든요. 재벌 체제라는 건 1970년대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 진행되고 있는데, 재벌 체제가 이루어지는 기간에 경제발전에 성공을 했지만 분배도 꽤 괜찮은 편이었어요. 1990년대에 들어서 재벌 체제가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을 정도로 성공했을 때, 오히려 분배가 더 좋아졌어요. 왜냐하면 이익보다 더 많이, 돈까지 빌려서 또 투자를 했거든요. 그러니까 고용이 늘어나고 임금이 올라가고 분배가 더 좋아졌단 말이에요. 분배가 나빠지기 시작한 건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 구조조정을 하면서예요. 그렇다면 그동안 쭉 있었던 재벌 체제에서 원인을 찾지 말고, 1997년 이후에 어떤 변화가 있었기에 분배가 나빠졌는지를 봐야죠. 그런데 원인을 무조건 재벌 체제에서 찾았으니까 원인이 잘못된 거죠.

 

제대로 된 대안도 내놓지 못했다고 하셨는데, 그 결과는 어땠나요?


지금 대안이라고 내놓은 것이 ‘재벌 주주들의 권한을 축소시키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수단’이라는 거거든요. 그런데 정치판도 그렇지만 기업도 마찬가지로 권력 공백을 만들면 누군가 그 공백을 메웁니다. 공백을 메운 주체는 기관투자자예요. 그런데 기관투자자들은 생산의 주체가 아니에요. 가능한 많이 빼가려고 하는 사람들이거든요. 이 사람들이 전체를 좌지우지하게 된 게 미국이에요. 미국이 그렇게 된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 하면, 어떻게 보면 주주들 간의 민주주의가 제일 발달됐다고 할 수 있는데, 실질적으로는 주주 독재가 됐어요. 그리고 주주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큰 돈을 벌어서 ‘1% 대 99%’의 구도가 생겼죠.

 

미국의 사례를 눈여겨봐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지금 한국의 기관투자자들 중에서 제일 큰 세력이 외국인 기관투자자인데 전체 주식의 35% 넘게 갖고 있거든요. 이 사람들이 미국에서 ‘1% 대 99%’의 구도를 만든 주체예요. 그러면 이 사람들이 한국에서는 그런 구도를 만들지 않을 거라고 자신할 근거가 있나요? 기관투자자들의 힘이 강해질수록 분배는 오히려 더 악화됩니다. 경제민주화는 ‘재벌 주주들의 힘을 약화시키면 당연히 분배도 좋아지고 기업도 좋아진다’고 이상향적인 착각을 하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그럴 근거도 없고 미국의 경우를 봤을 때는 오히려 더 악화됐어요.

 

 

 

재벌 경영은 보편적인 형태


책에서 말씀하시길, 재벌 경영이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형태이고 그에 따라 보편적인 문제도 안고 있다고 하셨어요. 다른 나라들은 이 보편적인 문제를 어떻게 보완하고 있나요?


보편적 문제라는 게, 하나는 기업 집단이라는 부분과 관련되어 있고요. 또 하나는 가족 경영이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기업집단에 있는 회사들과 다른 중소기업들 간의 불공정 경쟁 이야기는 나올 수밖에 없죠. 그리고 주식을 보유한 기업집단 소속의 사람들(인사이더)과 외부인들(아웃사이더) 사이에 갈등의 여지가 있습니다. 인사이더들은 기업 집단을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룹의 성장과 그룹 전체의 이익을 목표함수로 가집니다. 아웃사이더들은 개별 회사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목표 함수가 다르니까 갈등의 여지가 있는 거죠. 가족 경영은 (경영권이) 승계되니까 금수저 흙수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것이고요.

 

‘대기업-중소기업의 불공정 경쟁’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요?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경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도 한단 말이에요.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분쟁을 그렇게 크게 문제 삼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꼭 불공정하다고 볼 수 없는 거예요. 대기업은 작은 기업에서 성장한 것이고 중소기업은 이제 시작을 하는 거니까, 둘을 똑같이 취급할 수 없거든요. 그러니까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경쟁은 원래부터 불공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소기업들이 그것을 극복해야 됩니다. 더 나아가서 중소기업들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시스템, 벤처 캐피탈이라든지 다른 금융 시스템이 있죠.

 

우리나라와 비교해 보면 어떤가요?


현재 우리나라처럼 대기업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중소기업의 영역을 지정한 나라는, 제가 보기에는 한국 이외에는 별로 없어요. 대부분은 중소기업들을 육성하는 정책만 있을 뿐이죠. ‘대기업은 이것을 하지 마라’ 하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재벌에게 재단을 통한 승계가 가능하도록” 허용하자고 제안하셨는데요.


상속 부분에 대해서는 세계적으로 보면 크게 세 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상속세가 아예 없거나 아주 낮은 나라들이에요. 상속받는 돈은 이미 소득세 같은 세금을 낸 거니까 이중 과세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거죠. 그리고 상속세를 높이 책정하는 대신 기업들이 재단을 통해서 경영권을 승계하는 걸 인정해주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처음 출발할 때부터 너무 불균형하니까 세금을 많이 받는 건데요. 어차피 재단은 개인 돈이 아니거든요. 공공 용도에 쓰면서 기업이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에요.

 

우리나라는 두 가지 경우에 해당되지 않죠?


재단을 통해서 상속도 안 되고 상속세율도 무지 높은 나라는 한국밖에 없어요. 전 세계에서 유일해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지금의 방식으로 하면 한국에서 가족경영은 씨가 마르는 거거든요. 65% 상속세를 내면 2대도 제대로 못 넘어갑니다. 그런데 한국의 가족 경영을 없앤다고 해서 한국 경제가 좋아진다는 보장이 없어요. 그렇다면 유일하게 남아있는 대안은 재단을 통한 승계를 허용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세 가지 중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거죠.

 

대안의 하나로 ‘1-2부 리그 시스템’을 제시하기도 하셨어요. 어떤 내용인가요?


재단에는 사회공익사업에 써야 할 돈이 있지 않습니까? 그 돈하고 재단에 있는 자산을 기반으로 해서 2부 리그 기업군을 만들자는 거예요. 그리고 2부 리그 기업군은 기업 활동의 목표함수를 다르게 하는 거죠. 1부 리그 기업들의 목표가 이익 극대화라면 2부 리그 기업은 적당한 이익을 추구하되 고용 확대와 분배 개선을 목표로 하는 겁니다. 의외로 이런 기업이 꽤 있습니다. 책에서 예로 든 코스트코가 대표적이죠. 제가 이런 방식이 좋다고 보는 이유는, 고용만큼 좋은 복지가 없기 때문이에요. 65%의 상속세를 부과해서 그냥 복지에 나눠주는 것보다 훨씬 더 질이 좋은 복지가 된다는 거죠. 양적으로도 (상속세) 65%는 한 번 나눠주면 끝인데, 이건 회사가 계속 굴러가거든요. 그러다 보면 65%보다 훨씬 더 큰 복지가 된다는 거죠.

 

‘경영권을 승계 받는 사람이 꼭 가족이어야 할까’ 싶기도 한데요. 가족 경영만의 장점이 있다고요.


가족경영의 가장 큰 장점은 20~30년을 바라보면서 투자를 생각할 수 있다는 거예요. 승계까지 생각한다면 50~60년 바라보고 투자할 수 있겠죠. 3대까지 바라본다면 100년을 보고 투자를 할 수 있는 거예요. 2~3년 바라보고 투자를 하려는 사람하고 100년을 바라보고 투자하는 사람은 투자 건수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어요. 100년을 바라보면 투자를 훨씬 더 많이 하는 거죠. 그런 회사들이 많아질수록 나라 경제의 활력은 더 커지는 거고요. 미래를 보고 투자를 많이 하는 기업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가족경영이 장점이 있어요.

 

가족 경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들도 있는데요.


제가 볼 때 가장 큰 이유는 불공평하게 비교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잘못된 가족 경영과 잘 된 전문 경영과 비교를 하는 거죠. 한진과 애플을 비교하는 것처럼요. 그런데 미국에서도 전문 경영을 해서 잘못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미국 내에서 비교해 봐도 평균적으로는 가족 경영이 전문 경영보다 더 잘한 걸로 나와요. 매출 증대뿐만 아니라 이익에서도 더 좋은 걸로 나오거든요.

 

IMF 금융위기 이후에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진 데에는 ‘IMF 프로그램’의 영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IMF 프로그램은 크게 두 가지가 축이거든요. 하나는 긴축 정책이에요. 고금리를 하고 재정도 줄이는 거죠. 또 하나는 구조 조정, 구조 개혁이에요. IMF는 제일 처음에 중남미에서 시작이 됐는데, 중남미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되면서 금융위기가 왔거든요. 그러니까 물가가 올라가는 걸 막기 위해서 고금리를 한 거예요. 구조 개혁은 그간의 심각한 문제를 고쳐야 한다는 거였고요. 그런데 한국의 경우에는 긴축 처방이 맞지 않는 거였어요. 한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국가들은 인플레가 없었거든요.

 

구조조정의 경우는 어땠나요?


그때 한국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제일 크게 이야기했던 것이 ‘지나치게 차입 위주의 경영이라서 과잉 투자를 했다’, ‘그래서 금융 시스템이 위험해지고 위기가 왔다’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지나고 나서 보면 제 생각에는 한국은 과잉투자가 아니었거든요. 신흥시장이 21세기에 클 것을 바라보고 한 투자였어요. 한보철강도 중국 시장에 수출하려고 공장을 세웠던 건데, 실제로 2000년대에 중국이 전 세계 철강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돼버렸잖아요. 그러면 과잉투자가 아니라는 이야기죠. 선투자를 한 것이었는데 그때 유동성의 문제가 생겼을 뿐이죠. 그러니까 구조조정을 할 필요가 별로 없었던 거예요. 유동성 문제만 해결해 주면 되는 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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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시장 유연화, 재벌이 한 거 아니거든요


의아한 것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 당시 미국은 IMF 프로그램을 적용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2008년에 선진국에서 비슷한 금융위기를 겪었는데, 이 프로그램이랑 완전히 반대로 갔거든요. 금리를 0%까지 낮추고, 양적 완화해서 돈 풀고, 구조조정은 하나도 안 했어요. 미국에서 GM이 문제가 됐었는데 정부가 국유화시켜서 살리고, 기업들한테 제발 근로자들을 자르지 말라고 했어요. 한국에서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해서 직원들을 자르게 만들었는데, 그때 우리나라 비정규직이 시작됐잖아요. 그런데 (미국은) 정부에서 돈을 지원해주면서 제발 자르지 말라고 했죠.

 

왜 그랬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일반 경제논리가 아니라 정치경제 논리로밖에는 설명이 안 되는 거예요. ‘내 이익’이라는 단일 잣대가 적용됐다는 이야기죠. 그 당시 스티글리츠 교수는 선진국들이 이중 잣대를 적용한다고 비판했어요. 그것도 맞는 이야기이지만 저는 오히려 ‘내 이익’이라는 관점에서는 단일 잣대라고 봐요. 문제는 서방 선진국의 정책 담당자들은 최소한 자기네 국익에는 충실했는데, 한국의 정책 담당자들은 그게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 큰소리를 친다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우리가 성공했다고 이야기하고 지금도 그걸 더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그때 잘못됐다는 걸 인정을 하고 전반적인 프로그램, 시스템을 다시 생각해 봐야 된다는 거죠. 그 맥락에서 한국현대경제사도 다시 써야 되고요. 그런 점에서는 제가 『금융전쟁 : 한국경제의 기화와 위험』, 『김우중과의 대화』를 쓴 것도 같은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책에서 ‘정서법’에 대해 이야기하셨는데요. 대기업에 우호적이지 않은 정서는 왜 생겨났다고 보세요?


거기에는 기본적으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심리가 있는 것 같은데, 그건 어느 나라건 다 있는 겁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라는 건 그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어요. 상대적인 박탈감은 항상 있을 수밖에 없죠. 그런데 ‘사람들이 그것을 어느 정도까지 용인하고 받아들이느냐’, ‘정치인들이 그것을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이자고 할 것이냐, 아니면 그건 정말 잘못된 거니까 바꿔보자고 하면서 갈등을 부추길 것이냐’ 하는 건 나라마다 다른데요. 제가 볼 때는 한국에서는 이 부분이 정치적으로 굉장히 많이 이용된 것 같아요. 원인 분석을 제대로 해보면 재벌한테 (원인을) 돌리기 어려운 부분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분배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것은 원인은 재벌 독재가 아니라는 말씀이군요.


IMF 체제 이후에 분배 문제가 나빠졌는데 사람들은 정서적으로는 (원인이) 재벌이라고 하고 많은 정치인이나 이런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실제로 보면 그때 제일 나쁘게 된 건 비정규직을 도입한 거거든요. 그런데 그거 재벌이 한 거 아니거든요. 노동시장 유연화는 IMF 프로그램의 일환이었고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한 겁니다. 임금 격차도 그때 더 벌어진 거죠. 그 전에는 전반적인 임금 구조가 하후상박(下厚上薄)이었어요. 미국 기업이나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하는 데는 거꾸로인데, 그런 것이 글로벌 스탠다드니까 우리는 받아들여야 된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리고 외국 기업들이 많이 진출하다 보니까 대기업이나 금융기관들 임원들의 연봉이 왕창 올라가버렸어요. 그러다 보니까 임금격차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거죠.

 

또 다른 원인도 있었나요?


그리고 벤처 기업들을 육성한다고 했는데, 벤처 기업을 육성해서 좋은 점도 있지만, 벤처라고 하는 건 기본적으로 성공한 곳은 완전 대박이지만 나머지는 쫄딱 망하는 겁니다. 네이버라든지 카카오 같은 좋은 기업이 나올 수 있는 토양은 됐지만 분배에서는 마이너스인 거예요. 실리콘밸리 모델이야 말로 승자독식 체제인데, 그것을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하고 그렇게 해야만 한국 경제의 활력이 회복된다고 했으니까, 여기에서 사실 얼마나 많은 실패자들이 나왔습니까? 이 실패자들은 벤처를 육성할 때 어쩔 수 없는 건데 이상하게 국내 정치인들은 그게 재벌들이 힘이 세서 성장하지 못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거든요. 그게 아니라 실패자를 많이 양산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당시 한국의 대기업이 처한 상황은 어땠나요?


1997년 이전에는 번 것보다 더 많이 투자했고 고용을 늘렸어요. 그런데 이후에는 그만큼 투자를 안 했고, 투자를 하더라도 국내 투자보다 해외 투자가 더 많았죠. 제가 보기에는 그것도 IMF 프로그램하고 관련이 있어요. 그때 재벌들의 상호출자, 순환출자가 문제라고 하다 보니까 대기업 주주들이 지분을 늘릴 수가 없었거든요. 오히려 팔게 됐죠. 그리고 불과 2년 만에 한국 주요 대기업의 최대 주주 그룹은 외국인 기관투자자들이 됐어요. 게다가 공정거래법이 굉장히 강화됐죠. 대주주들이 외국인 투자자인데 어떤 비판이 나올지 모르니까 옛날만큼 투자를 못하고 공정거래법에 의해서 개별 기업 내에서만 투자를 해야 했죠.

 

중소, 중견 기업에 미친 영향도 있었겠죠?


투자할 곳이 훨씬 적어지니까 중소기업이 먹고 살 곳도 옛날보다 적어진 거죠. 기업들의 운영 방식도 투자라든지 성장 위주가 아니라 이익 위주가 되니까 고용창출력도 약해졌고요. 해외 투자가 늘어나니까 국내에서 중소기업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더 줄어들었어요. 대기업-중소기업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대기업들이 중소기업들을 착취한 부분들이 물론 있죠. 그런데 그건 어디든지 다 조금씩은 있는 거거든요. 제가 보기에는 그 부분보다도 중소기업들이 제대로 못 큰 제일 큰 원인은 대기업들이 국내에 옛날만큼 투자를 안 했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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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 협력이 잘 돼야 경제가 잘 됩니다


한국에서 대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중소, 중견 기업과 불평등한 관계를 맺었고 그로 인해 피해를 떠넘기는 경우가 있었다고 생각하세요?


어디든 있습니다. 경쟁을 하다 보면 어떤 경우에는 아웃소싱 할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내가 만들어야 되는 경우도 생긴단 말입니다. 중소기업한테 다 줄 수가 없어요. 그러면 중소기업은 망하니까, 그쪽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공정하죠. 그런데 힘이 없으니까 어떻게 합니까. 그것이 자본주의 시장에서의 경쟁이니까, 저는 그런 부분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꽤 많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착취라는 이야기를 할 때 ‘중소기업한테 단가 인하 압력을 넣었다, 기술을 빼갔다’고 하는데 개별적인 차원에서는 그런 일이 있겠죠. 그런데 단가 인하 부분은 대기업들도 (그들의) 고객이 힘이 세서 하라고 하면 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들 밑에서 들어오는 사람들 보고 인하할 부분은 인하하라고 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 부분이 얼마나 합리적으로 되어 있느냐, 완전히 상대를 망하게 할 정도로 쥐어짜는 거냐, 하는 건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봐야죠.

 

앞서 케이스포츠 재단, 미르 재단에 대해서 언급하셨는데요. 일부에서는 ‘기업들이 이권을 보장 받고 기금을 건넨 것 아니겠냐’고 추론하기도 합니다.


그건 정말 잘못된 추론이라고 봐요. 한국이 지금 정부가 기업을 잘 되게 할 수 있는 데에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기업을 못 되거나 망하게 하는 것은 되게 쉬워요. 세금 조사 들어간다든지 작은 것 가지고 검찰이 다 뒤진다든지, 여러 가지 부정적으로 하려면 할 수 있는 힘은 굉장히 강하거든요. (기업들은) 그런 것들을 두려워하는 것이 기본이죠. 그걸 해서 특별하게 얻어낼 것이 뭐가 있겠어요. 일반적으로는 정부에서 강하게 요구하면 기업들은 가능한 들어주는 척 해야죠.

 

그것 역시 보편적인 현상일까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데에도 비슷합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것 좀 합시다’ 하면 기업들이 가능하면 들어주려고 하죠. 왜냐하면 기업도 나중에 가서 정부에 부탁할 일이 있을 텐데, 뭐든지 다 기브 앤 테이크 아닙니까. 제가 보기에는 각 기업들이 돈을 낼 때 그만큼 개별적인 사안이 있었겠지만, 그런 게 아니라 만약 지금 거절을 했다가 나중에 (돌아올) 후환이 두려운 거죠.

 

정부 차원에서 기업을 육성할 수 있는 방안도 있지 않을까요? 세제 혜택을 줄 수도 있고, 국가 발전 계획을 대기업 위주로 세울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쩌면 반 대기업 정서는 정경유착 때문에 생긴 것 아닐까요?


저는 아주 다른 생각을 갖고 있어요. 어느 나라건 정경유착이 아니라 정경협력이 잘 돼야 경제가 잘 됩니다. 정부가 사사건건 틀어버리기 시작하면 될 것도 안 되어 버려요. 그러면 정경협력이라는 것이 대기업만 정권에 협력해서 중소기업을 무시하는 시스템이냐, 저는 지금 한국의 시스템이 그렇지 않다고 봐요. 대기업들이 미르스포츠에 몇 십억 원 정도 내서 중소기업청 없애달라거나 하도급제를 개혁해달라는 부탁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할 수 없이 따라가는 걸로 봐야지, 적극적으로 대기업 위주의 시스템으로 바꾸기 위해서 했다고 보는 건 지금 시점에는 아니에요.

 

최근에는 ‘낙수효과는 없다’는 이야기들도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가 보기에는 낙수효과가 없다고 하는 분들도 대안이 없어요. 대안을 가지고 이야기하려면 단순히 낙수효과가 없다고 하지 말고 ‘낙수효과가 없으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까지 이야기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낙수효과 없다고 하는 분들은 대부분 ‘저성장은 받아들여야 되고, 낙수효과 없는 거 받아들이고, 그러니까 대기업은 더 두들겨 패야 된다’라는 쪽으로 가거든요. 대기업이 낙수효과 없는 쪽으로만 자꾸 투자를 한다는 식이에요. 일단 낙수효과가 있으면, 낙수효과가 가능하면 많이 있도록 하는 건 정부의 책임입니다. 가능한 낙수효과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되고요. 또 자동화가 진전되면 낙수효과가 쉽게 떨어질 수 있거든요.

 

다시 낙수효과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똑같은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 옛날보다 투자를 더 많이 해야 됩니다. 그러면 투자를 더 많이 하는 방법을 또 찾아야 될 거 아닙니까? 그것이 대안을 찾는 방법이죠. 투자할 방법도 안 찾고 낙수효과를 높일 방법도 안 찾으면서 재벌만 두드려 패면 대안이 되는 게 아니죠. 낙수효과가 실제로 어느 부분에서 떨어졌고 어느 부분을 올릴 여지가 있는지, 올릴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아야죠. 학자라면 그걸 찾으려고 하고, 정책 담당자도 그 일을 해야 되고, 정치인들도 그렇게 해야 돼요. 정서법은 ‘이 놈 때문에 다 나빠졌다’고 해서 되죠. 그런데 건설적 대안이라는 것은 그 이상을 훨씬 더 많이 해야 돼요. 그런데 정서법 말하는 사람은 그것까지 생각하기 싫은 거예요.

 

경제 정책과 관련해서 우리나라가 싱가포르로부터 배워야 할 부분이 있을까요?


첫 번째 배워야 될 건 제조업 육성입니다. 싱가포르가 지금 1인당 국민소득 5만 불이 넘는 나라거든요. 그런데 전체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2~23%입니다. 싱가포르 정부가 제조업을 육성하는 이유는 제조업 자체가 중요한 산업이기 때문이에요. 싱가포르가 도시국가라서 서비스업을 많이 하지만 그 중에서 제조업과 연관된 서비스가 굉장히 많거든요. 서비스업이 발전하려고 해도 제조업 기반이 어느 정도 있어야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같은 주변국과 관계가 썩 좋지 않아요. 그러니까 독자적으로 제조업을 상당 부분 유지해야겠다고 판단한 거죠.

 

한국도 제조업을 육성해야 할까요?


그 필요가 훨씬 더 커요. 한국에서 지금 서비스만 가지고 어떻게 좋은 일자리를 유지하겠습니까? 서비스에서 좋은 일자리라고는 극히 일부분이에요. 그러니까 제조업이 상당 부분 있고, 그리고 제조업이 아직까지도 기술 발전의 핵심이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특히 IMF 구조조정하면서 자꾸 서비스 산업을 육성하고 제조업은 끝났다고 하는데, 제조업으로 한국이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이 많아요. 미래를 봤을 때 중국, 인도, 아프리카의 성장은 계속 지속될 거예요. 그쪽에서 경제 성장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한국이 공급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게 우리가 그동안 쌓은 중화학 산업이나 소재 산업에서의 경쟁력인데, 그걸 계속 끌고 가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서비스만 가지고 국가 안보를 유지하겠어요? 말이 안 되죠.


 

 

경제민주화…일그러진 시대의 화두신장섭 저 | 나남
경제민주화는 일그러진 시대의 화두이다. 한국사회를 위해 건설적으로 내놓는 대안도 없이 사회를 분열시키고만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해결목표라고 내세우는 ‘경제양극화’를 오히려 악화시킬 가능성도 높다.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는 정치와 정책의 담론에서 추방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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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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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섭

기업과 금융, 경제가 결합된 경제학에 천착하며 독보적 영역을 개척해왔으며, 기업론 분야에서 가장 신뢰받는 경제학자다. 그로 인해 재계는 물론, 정관계 및 언론계에서 가장 많이 호출받고 등장하는 경제학자이기도 하다. 캐치업(catch-up)에 관한 국제 비교 연구와 반도체산업과 철강산업에 관한 사례 연구를 했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기업구조조정에 관한 글을 쓰고 대안을 모색해왔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때에는 국제금융시장을 이해하기 위한 ‘5대 금융명제’를 내놓고 정책 제안들을 내놓았다. 최근에는 기업지배구조와 헤지펀드 행동주의에 대한 국제 연구를 진행해왔고 『매일경제신문』에 ‘기업과 경제’라는 정기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한국현대경제사에 관한 국제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기획재정부 장관 자문관, ‘한국경제비전21’의 금융 및 산업정책부문 위원을 역임했다. 『매일경제신문』에서 경제부 차장, 논설위원 등을 거쳤다. 1999년부터 싱가포르 국립대학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KDI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 금융연구원 초빙연구위원으로 활동했다. 주요 저서로는 Predatory Value Extraction(2020 공저), 『경제민주화… 일그러진 시대의 화두』(2016), The Global Financial Crisis and the Korean Economy(2014), 『김우중과의 대화』(2014), 『금융전쟁, 한국경제의 기회와 위험』(2009), 『한국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라』(2008), 『삼성 반도체 세계 일등 비결의 해부』(2006), Restructuring Korea Inc.(2003 공저), The Economics of the Latecomers(199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