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모습으로 책방이 골목골목 자리 잡기 시작하자 여러 곳에서 유행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책만큼 오래된 유행이 있을까. 독서 인구 감소, 출판시장 불황 등 많은 위기론 속에서도 꾸준히 책이 나오고 어떤 책은 읽힌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오래되고, 새로운 책을 찾아다니는 중이다.
금호동에 위치한 책방 ‘프루스트의 서재’ 책방지기이자 『되찾은 시간』의 저자 박성민. 그는 2015년 1월 1일에 책방을 열며 매일 일기를 쓰겠다고 다짐했다. 『되찾은 시간』은 ‘프루스트의 서재’의 서점 일기다. “일 년 동안 일기를 쓰면 그 후에 동네에서 책방을 한다는 의미를 되짚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기록한 것을 저자가 독립출판물로 200부를 제작했었다. 이후 출판사를 통해 『되찾은 시간』이라는 제목을 달고 정식출간을 하게 되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 늦은 날, 경의선 책거리 공간산책 2층에서 박성민 저자의 강연이 진행되었다. 이날 강연은 책방 준비 과정, 책방 운영의 구체적인 내용과 실질적인 어려움 등을 솔직하게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이천십오년 칠월 이일
언젠가 한 번은 들어올 사람들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해서 처음에 들어올 땐 잘 몰랐는데 자세히 보면 낯이 익다. 대부분은 짧은 시간에 책만 구입하기 때문에 별다른 대화가 없지만 이렇게 다시 찾아주면 반갑다.마지막에 온 손님 한 분은 지나가면서 꼭 한 번은 들르고 싶었다고 말씀해주셔서 기뻤다. 그냥 무심코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닌 언젠가 한 번은 오고 싶은 마음으로 지나치고 있다고 생각하면 조급해하지 않고 책방을 할 수 있겠다.(146쪽)
질리지 않아야
“전역 후 처음 일하게 된 곳이 헌책방이었어요. 제가 책방을 시작하게 된 것도 이것이 익숙하기 때문에 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책방 준비에 이 년 정도의 시간을 들였다는 저자는 자신이 “보고 싶은 책들 위주로 책방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이었다고 했다. 이 년 중 일 년은 책방의 위치를 알아보는 데 공을 들였다. 서촌, 연남동 등 관심 두는 지역은 많았지만 결국 그런 곳에서는 책방을 “오래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한 곳이 “우리 동네”였다.
“지금 책방은 원래 옷가게였어요. 우연치 않게 돌아다니다가 발견했는데요. 문을 잘 열지 않더라고요. 금방 자리가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웃음) 일주일 정도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임대’ 표시가 붙어서 계약을 했습니다.”
오래 하고자 했으므로 책방 준비에 드는 호흡도 길었다. 돈을 많이 들이지도 않았다. 옷가게에서 사용했던 레일전등도 그대로 사용했다. 원래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천여 권의 책으로 시작했고, 중고 서가를 저렴하게 들이는 등 책방 내부 역시 화려하게 꾸미려고 애쓰지 않았다. “질리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원래는 간판도 없이 시작을 했다가 간판을 달았어요. 사실 비용도 들지 않았고요. 아버지가 간판 만드는 일을 하셨기 때문에 직접 만들어주셨어요. 제게는 정말 소중하죠. 이것을 로고처럼 상징적인 의미로 쓰고 있어요. 처음부터 꾸미려고 하지 않았어요. 제가 마음이 편하면 될 것 같았어요. 책방이라는 것이 오래 봐도 질리지 않아야 하니까요. 제가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이잖아요. 급하지 않게 조금씩 위치도 바꿔가면서 마음에 드는 공간을 구성하기 시작했어요.”
무엇보다 가장 좋은 인테리어는 ‘책’이었다. 비어 있던 곳에 책을 올려놓으니 “기분 좋은 공간”이 되었다. 책방의 본질을 생각하게 하는 말이었다.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종종 지나가시는 동네 분들이 여기서 하는 모임 같은 것이 있는지 물어보시더라고요. 생각을 해보니 동네 분들도 같이 이곳을 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민을 했어요. 독서 모임은 책을 읽고 와야 하는 것이라 좀 부담스러워서 낭독 모임을 생각했어요. 읽지 않아도 와서 읽으면 되는 거니까요. 무엇보다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낭독 모임은 자리를 잡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1년 운영한 모임은 현재 약 열 명가량이 참여하고 있다. 모임 공지를 한 지 두 달이 지날 동안 참여하는 사람이 없어 책방 방문자를 섭외한 결과다. 낭독 모임은 책을 한 권 선정해 함께 읽고, 책을 다 읽고 나면 간단한 파티를 한다. “영화도 한 편 보고, 각자 가져온 음식을 먹으면서” 조촐하게 완독을 기념한다. 소박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문화에 분명 특별함이 있을 것이다. 사진전 역시 그렇게 진행하게 되었다.
“한 워크샵에서 알게 된 분이 사진집을 내셨더라고요. 저희 책방에 방문해주셨는데 알던 분이기도 하고 부담도 없을 것 같아 사진전을 제안했어요. 마침 그 분도 좋아하셔서 처음으로 사진전을 하게 되었어요.”
책방을 오래 하겠다는 처음의 생각은 자연스럽게 지역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동네 마을도서관 행사에도 참여하고, 인근에 개관한 미술관과 협력해 바자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미술관에서 낭독회를 진행한 것도 이런 우연한 작용이었다.
무엇보다 이러한 활동이 책방 한 곳의 의지로는 한계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저자는 책방이 정착하고 오래 지속되려면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작은 동네 서점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마을 도서관들이 동네에 있는 책방을 이용해야만 이런 동네 책방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은 책방이 생기는 것뿐 아니라 도서관 또한 동네에 많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연의 마지막 순서는 참석자들과 함께 책 매입 가격 책정하기 워크샵이었다. 각자가 책방 주인이 되어 중고책을 매입해보자는 제안이었다. 저자가 가지고 온 책 몇 권을 참석자들이 직접 매입 가격을 매겨보았다. 만 원에서 삼만 원 이상까지, 금액은 다양하게 책정되었다. 그렇다면 실제로 책방지기는 이 책들을 얼마에 살까?
“이 책을 팔겠다고 저희 책방에 가져오신다면 저는 0원을 드릴 거예요. 중고책이라는 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필요 없는 책을 안사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효용가치가 거의 없는 유행이 지난 책, 전집의 일부인 책, 교재처럼 나온 책, 잡지류 등은 사지 않아요. 아주 유명한 책도 유명했기 때문에 중고책 시장에 굉장히 많이 나오거든요. 판매가가 거의 천 원, 이천 원일 거예요. 이런 책들은 판매가 잘 되지 않고, 그런 책이 쌓이다보면 결국 서가만 채우고 그 공간이 버려지게 되는 거예요.”
질의응답
참석자 대부분은 책방 운영에 큰 관심을 보였다. 월세부터 도서 매입처까지 구체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저자는 모든 내용에 솔직하게 답했다.
책방은 잘 되나요?
박성민: 잘 된다는 게 어디까지를 보고 말하는 것인지 솔직히 모르겠어요. 인건비도 안 나오는 게 현실이거든요. 그런데도 제가 이 생활에 만족하기 때문에 잘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돈을 생각했다면 하기 힘든 것이 책방이라 생각해요. 작은 것에 만족하면 생활에는 문제없습니다.(웃음)
SNS 마케팅 비법이 있나요?
박성민: 그런 것 없어요. 홈페이지 운영만 하려고 했는데 잘 안 됐어요. 홍보의 중요성을 느끼고 여러 가지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중에 ‘인스타그램’이 좋다고 들었어요. 조금씩 꾸준하게 올린 게 알려지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매입하지 못한 헌책은 별도로 어떻게 구하나요?
박성민: 판매하러 오시는 분들이 많지는 않아요. 그런 어려움이 있는데요. 저도 그냥 헌책방에서 구입할 때도 있어요. 요즘은 헌책방도 온라인을 많이 하시기 때문에 가격이 이미 공개되어 있어요. 좋은 값에 헌책을 구입하긴 어렵죠. 그래서 저는 온라인을 안 하는 작은 헌책방을 찾아다니면서 괜찮은 책을 구해오죠. 청계천, 황학동 쪽에 가시면 온라인으로 안 하고 저렴하게 책을 판매하시는 분들이 있거든요. 그곳에서 책을 구해 서가를 구성하기도 합니다.
책을 구하는 기준이 있나요?
박성민: 대형서점에서 일을 할 때 인문학 파트를 담당했었어요. 인문학이 좋은 게 헌책으로 봤을 때도 가치가 잘 변하지 않거든요. 오래 두고 볼 수 있는 책이 인문학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주로 그런 책들을 구입해옵니다. 그런 책들이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안 읽던 사람이 책을 갑자기 읽는 경우가 많이 없는데요. 동네책방이 안 읽던 사람에게 책을 읽게 한 경우가 있었나요?
박성민: 저는 그걸 경험하게 되었어요. 책을 안 읽던 분이 책방이 생긴 것을 알고 책을 읽고 싶다고 해서 오신 경우가 꽤 있거든요. 그러면서 책을 추천해달라고도 하시고요. 그럴 때는 무조건 쉬운 책으로 권해드리기도 합니다. 또 그 분이 그걸로 시작해 다른 책도 보고 싶다고 오시는 경우도 꽤 돼요.
책이 들어왔는데 정말 팔기 싫은 책일 때는 어떻게 하나요?
박성민: 그런 경우 물론 있고요. 그럴 때는 제목이 안 보이게 놓기도 하고요. 집에서 책방으로 못 가지고 온 책이 엄청나게 많기도 합니다. 나중에 정말 어려워질 때(웃음) 가지고 나오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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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찾은:시간박성민 저 | 책읽는고양이
책이 좋아서 시작한 책방이지만 밥벌이의 지겨움이 느껴질 때를 위해 딴짓을 꾸민다. 언제든 여행을 떠날 수 있게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채우고, 책을 내고 싶은 마음에 틈틈이 글을 쓴다.
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