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의 맛』 원고를 처음 읽었을 때 ‘어떻게 글을 이렇게 쓰실까?’ 생각했습니다. 글에서 전해지는 느낌이 독특해서 인상에 깊이 남았죠. 『이모부의 서재』를 지은 분과 동일인물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 책을 찾아 읽었습니다. 여전했습니다. 김정선 선생님의 글에는 선생님만의 정서가 있습니다. 글을 가만가만 읽고 있으면 어느새 마음이 촉촉해집니다.
이번 원고를 받고 읽으면서 어쩐지 글의 정서가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확하게 무엇이라고 찍어서 말씀 드리기는 어렵습니다만 이전 글과 달랐습니다. 편집에 들어가 다시 읽으면서 나름대로 이모저모 생각해 봤습니다. 무얼까.
그렇지만 타인의 삶과 사고를 어떻게, 얼마나 알 수 있겠습니까.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고 금기지요. 무엇보다 선생님의 글을 좋아하는 저는 우선 그저 기쁘게 읽었습니다. 게다가 소설의 첫 문장이 이렇게나 모여 있습니다. 읽은 소설도 있고 읽지 않은 소설도 있고, 사실 존재조차 모른 소설도 있습니다. 덕분에 제 호기심은 아주 천정부지로 솟아올랐습니다.
이 책을 저는 세 갈래로 읽었습니다. 첫째 갈래는 소설의 첫 문장 모음입니다. 이 첫 문장을 목록으로 만들면서 즐거웠습니다. 그냥, 정말 소설의 첫 문장만 모은 것뿐이고 저는 그걸 읽어 가며 목록을 만드는 것일 뿐인데도 문장을 읽어 가며 만들면서도, 만들고 나서 다시 읽으면서도 너무 좋았습니다. 읽고 싶은 소설도 늘었습니다, 물론, 당연히.
둘째 갈래는 선생님의 글입니다. 선생님의 글은 소설의 첫 문장으로 소설의 내부를 분석하기도 하고, 소설의 전체를 훑어 내리기도 하고, 소설의 첫 문장만 빌려 당신의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어릴 때의 이야기부터 지금 당장 여기에서 느끼는 감정까지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한 글이, 당신의 삶의 궤적을 보여 줍니다. 산을 오르다 잠깐 멈추고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을 가늠하며 숨을 돌리듯, 그리고 새로 발을 떼듯이.
셋째 갈래는 『소설의 첫 문장』이라는 책입니다. 소설의 첫 문장과 선생님의 글은 각자 자기의 몫을 합니다. 그렇더라도 이 둘을 나란히 놓고(네, 그렇게 읽으시도록 편집하였습니다!) 읽으면 첫 문장과 선생님의 글이 또 서로 하나처럼 엉깁니다. 첫 문장끼리도 미묘하게 서로 밀어내기도 하고 끌어당기기도 하는데, 첫 문장과 선생님의 글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해서 온전한 한 권의 책을 완성한다고 할까요.
책을 만들면서 읽으면서, 이런저런 상념이 많았습니다. 지금이 연말연시라는 까닭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딜 가나 북적이는 시기지만, 사실 마음도 북적이는 시기죠. 그래서 아마 저는 이 연말연시의 어느 밤에 조용히 혼자 술을 홀짝거리며 이 책을 넘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왠지 그런 책이에요.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읽으시려나요. 궁금해집니다.
이경민(유유 편집자)
유유 출판사에서 책을 만든다. 노는 게 제일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