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명사, 조사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
내가 쓰는 단어들이 결국 나의 서명과 같이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나를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글ㆍ사진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2017.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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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나눌 때 묘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상대가 특별히 신경에 거슬리는 단어를 사용한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느껴지는 것이다. 내가 그의 아래에 있다는 느낌을 받거나, 혹은 그가 나를 경계하고 있다는 심증을 갖는 것이다.

 

“우리 이러지 맙시다.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사소한 언쟁이 벌어졌을 때 만일 이런 말을 상대가 했다고 치자. 폭언이나 욕설을 한 것도 아닌데 왠지 이런 투의 말을 듣고 나면 괜히 내 마음대로 했다가는 못난 사람이 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왜 그런 것일까?

 

언어 중에서도 ‘인칭 대명사, 지시 대명사, 접속사, 조사’ 등 많이 사용하지만 문장 속에 숨어 있어 눈에 잘 띄지도 않는 단어들을 ‘기능어’라고 칭하면서 이것들의 용례와 사용빈도가 그 사람의 성격, 지위,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는 연구를 한 학자가 있다. 텍사스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인 제임스 W 페니베이커 James W Pennebaker는 『단어의 사생활(What our words say about us)』라는 책에서 전체 어휘에서 0.1%도 안 되는 기능어가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의 60%를 차지하며 이것들의 사용패턴이 나의 성격, 사회적 지위, 관계의 유지 가능성, 현재의 감정 상태를 정확히 예측하고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그걸 대강 느낌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수많은 대통령의 연설문, 일반인의 블로그에 올린 글 분석, 자신이 주고받은 이메일 등을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단어 사용패턴을 정량적으로 분석하여 객관적인 증거들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 것이다.

 

기능어는 ‘나, 당신, 우리’와 같은 인칭대명사, ‘그, 이, 저’같은 지시 대명사, ‘그러나, 그리고’와 같은 접속사, ‘매우, 정말로’와 같은 부사나 ‘은, 는’을 포함한 조사를 포함한다. 이들이 언어에서 갖는 특징은 매우 자주 쓰이고, 단어의 길이가 짧아서 문장을 들을 때에는 감지하기 어렵고, 뇌에서 의미를 갖는 명사와 동사와 같은 내용어와 다르게 처리되고,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12살이 지나면 완전히 익히기 어려운데, 어른이 되어 영어를 배울 때 명사와 동사, 시제 등은 금방 배우지만 예를 들어 a, the의 정확한 사용은 참 정확해지기 어려운 것과 같다. 그만큼 미묘하지만 정확한 사회적 맥락이나 감정을 반영하는 기능을 한다.

 

그는 수많은 사람의 글이나 말의 사용법을 분석해서 ‘나’와 ‘우리’의 사용 빈도가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반영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우리’를 많이 쓰고, 낮은 사람이 ‘나’를 많이 쓴다는 것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명사를 많이 쓰고, ‘나’나‘저’와 같은 단어는 흔히 부탁을 하기 위해 나를 낮출 때 나도 모르게 많이 쓰게 되고, 우울증을 예측하기도 한다. 자살한 시인의 시를 분석해보면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단어보다 ‘나’의 빈도가 더 정확하게 자살 위험을 예측했다.

 

왜냐면 ‘나’란 단어는 자신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사회적 사다리에서 낮은 곳에 지금 자기가 속해 있음을 은연 중에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사람이라도 남의 부탁을 들을 때랑 남에게 부탁을 할 때에는 ‘나’의 단어 빈도가 달라진다. 실제로 저자가 학생이 보낸 면담 요청에 대한 답장에는 ‘나’를 한 단어도 사용하지 않았는데 반해서, 그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수에게 자기가 참여하는 학회에 참석을 부탁하는 메일을 보낼 때에는 ‘나’를 6번이나 사용을 한 것이었다.

 

팩트를 검증하는 것으로 거짓말을 잡아낼 수 있지만 기능어의 사용패턴을 보는 것도 거짓말을 알아보는데 도움이 된다. 저자는 “실수가 저질러졌어”와 같은 수동적 표현을 하고, 질문에 즉답을 회피하고, ‘맹세컨대’, ‘약속하건대’와 같은 수행적 표현을 써서 직접적으로 말을 하는 게 아닌 것이 되도록 수사적 기술을 이용하는 경우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였다.

 

반면 진실을 말하거나 솔직한 표현을 하는 기능어 패턴은 어떤지 대학에서 학생 선발에 받아서 보는 추천서의 내용을 분석해서 나중에 실제 학생과 비교해서 알아보았다. 그랬더니 솔직한 내용을 담고 진정한 추천을 하는 추천서들은 문장이 길고,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고 자세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추천서를 읽을 사람에게는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반면, 다소 취약한 학생이라 추천서를 읽는 사람이 신경을 써주기를 바란다면 “지원자의 이력서를 보면 아시겠지만”과 같은 어구가 포함되는 것이 흔했다.

 

감정 상태도 기능어의 분석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행복할 때는 구체적 명사를, 슬픔/분노에는 인지적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또 긍정적 경험에 '우리'를 많이 사용하고, 시간과 장소를 적시한 구체적 글을 쓴다. 함께 그 감정을 공유하고 싶은 욕구가 있고, 그 기억을 오래 남기고 싶어 구체적인 시공간을 태깅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서 슬픔을 경험하고 있을 때에는 전반적인 관심이 내면을 향하므로, ‘나'를 더 많이 사용하고, 현재가 아닌 과거나 미래 시제 동사를 많이 사용하는 게 특징적이었다. 이런 특징을 분석한 후 저자는 ’부정적 감정은 생각이 깊어지게 하고, 긍정적 감정은 우리를 행복한 바보로 만든다‘라고 결론을 내리는 데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부분이었다.

 

기능어는 관계의 유지 가능성도 추정할 수 있었다. 제 3자에게 커플이 자신들이 겪은 일을 얘기할 때 '우리'를 사용하는 것은 관계가 만족스러운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요새 운동을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우리는 이사하려고 알아보는 중이에요.”

 

반면,

“당신 일요일에 놀러 간다고 했지?”
“당신은 케이크 먹는 거 좋아하잖아.”

 

라는 식으로 ‘너’나 ‘당신’을 사용하면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서로의 결점을 헐뜯는 뉘앙스가 예기치 않게 포함돼있기 쉽다. 또 대명사를 서로 사용하는 빈도가 높은 것은 관계의 이해도가 높은 것을 의미한다. ‘그, 그것, 저거’와 같은 애매한 단어를 써도 그게 무엇인지 서로 잘 알거나 바로 알아차린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 대화는 훨씬 잘 흘러가고, 관계도 만족스럽게 잘 수월하게 이어질 수 있다. 프로이트와 융이 주고받은 메일에서 대명사의 사용패턴을 분석한 결과 실제로 둘의 사이가 좋을 때와 달리 둘이 불화를 겪던 시기에는 언어스타일에서 기능어의 일치도가 떨어지는 것이 관찰됐다.

 

이렇게 저자는 다양하게 기능어의 사용에 집중을 하여서 우리의 기능어 사용패턴이 결국 ‘나’라는 사람의 현재의 심리, 정체성, 사회적 지위뿐 아니라 중요한 관계를 맺는 상대와의 관계의 안정성을 반영해주는 일종의 심리적 거울이라고 말한다. 의미를 갖는 명사나 동사에 주로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이 상식적인 소통의 방법이다. 이 책에서 밝혀낸 동사의 시제, 나나 우리, 너와 같은 지시대명사의 빈도, 단어의 난이도와 같은 미묘한 사용법의 패턴 변화로 사람의 특징을 잘 읽어낼 수 있다면 나 자신뿐 아니라 사람을 파악하고 이해하는데 유용한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쓰는 단어들이 결국 나의 서명과 같이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나를 드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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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