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청소년들이 책 읽기는 지루하고 고통스럽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학교 현장에서는 ‘책따’, 책을 읽는 아이를 따돌리는 일까지 벌어진다. 입시 목적이 아닌 책은 읽지 않고, 독서 자체를 경시하는 태도는 우리 사회의 미래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위기의 징후도 보인다.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들의 문서 독해 능력에서 한국은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차지했다. 물론, 강요된 책 읽기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역시 독서의 즐거움을 스스로 깨치는 것밖에 없다.
초등학교 6학년 때 6년 동안 부은 적금을 들고 서점으로 달려가 셜록 홈즈 전집을 통 크게 지를 만큼, 애서가의 면모를 일찍부터 보였던 박현희 저자는 여전히 책 속에 길이 있다고, 독서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책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인문학적 메시지는 재미 그 이상이다. 고등학교 현직 교사이기도 한 저자가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로, 근본적인 삶의 방향과 태도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독서 유발 인문학 강독’이라는 부제가 눈에 띕니다. 독서를 일으키는 강독이라는 컨셉이 재밌는데, 인문학 강독이란 정확히 무엇입니까?
인문학에 대한 정의는 다양합니다만, 간단히 말하면 자연과학과 대비되는 영역으로서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독서 유발 인문학 강독’은 인간의 가치, 삶의 진실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깊은 사색을 하도록 도와주는 책들을 꼼꼼하게 짚어나가면서 함께 그 뜻을 풀어 읽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수강생들과 함께 그 책들을 한 줄 한 줄 읽어나가는 것이 옳겠지만,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해서 책의 주요 부분들을 발췌해서 그 부분을 중심으로 집중해서 읽을 수 있도록 강의를 구성했습니다.
책을 한 줄씩 함께 읽어보면 확실히 책의 맛을 느끼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강독 도서를 선정하시는 데에도 많이 고심하셨을 것 같은데요.
독서의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게 하자는 의도를 도서 선정의 제1원칙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가급적 다양한 시대, 다양한 난이도, 다양한 형식의 책을 선정하려고 애썼지요. 다만,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너무 어렵다면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라면』을 읽고 나서 해당 도서를 펼쳐 들었을 때 오히려 절망감이나 무력감에 휩싸일 수도 있을 것이기에, 읽고자 마음을 먹는다면 어쨌든 읽어낼 수 있는 책 가운데에서 선정하자고 생각했지요.
『오이디푸스 왕』, 『총, 균, 쇠』, 『헬프』... 이런 책들이 고심 끝에 선정된 도서들이군요. 우리가 꼭 인문서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지금 『오이디푸스 왕』을 읽는 것은 실용적인 측면에서 아무런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쓸모와 효용으로 모든 것의 가치를 판단하는 이 시대에, 쓸모와 효용 이외에도 우리 삶에는 정말 중요한 가치들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삶의 근원적인 문제들을 깊이 있게 생각하다 보면 진짜 좋은 삶에 대한 비전도 생겨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강 『오이디푸스 왕』 편에서 아테네 사람들은 2,500년 전에 이미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상대를 포용해야 한다는 정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말씀이 인상 깊었는데요, 앞서 하신 말씀이 이 부분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결핍된 존재이고 한계에 직면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것이야 말로 큰 힘이 됩니다. 이 깨달음은 스스로가 ‘더 계발되어야 하는 존재’, ‘더 쓸모 있어져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해줄 것입니다. 또한 타인의 결핍과 부족, 다름과 한계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겠지요. 이게 진짜 힘입니다. 우리는 결핍된 존재들이고, 바로 그러하기에 함께 살아갑니다.
책을 읽는 다양한 방법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프롤로그에 쓰셨는데, 책은 그냥 주욱 읽어내려가는 게 아닌가요? 책 읽기에 방법이 따로 있나요?
책이 쓰인 배경을 생각하며 읽기, 이야기 속의 구조를 파악하며 읽기,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며 읽기... 책을 읽는 방법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리고 독자마다, 책마다 서로 다른 방식의 읽기가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책 속의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서 내가 그 책을 잘못 읽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불필요한 절망감이 책 읽기를 방해합니다. 저는 10대 때 읽은 책들을 40대에 다시 읽으면서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만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10대 때 보지 못한 것을 지금 제가 볼 수 있다고 해서 과거의 책 읽기가 잘못된 것은 아니며, 제가 책을 잘못 읽은 것도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책은 독자가 읽을 때마다 새롭게 탄생합니다. 당신의 책 읽기는 언제나 옳습니다.
한국 작가의 책이 없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만약 국내 저자의 책을 소개한다면 어떤 책을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너무 많아서 특정한 한두 권을 꼽기는 어렵네요. 다음에 쓸 책에는 꼭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다루고 싶습니다. 작가가 되려는 꿈을 키우며 그 책을 필사하던 시절이 있었거든요.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라면』을 어떤 사람에게 권하고 싶으세요?
책을 읽고 싶으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를 몰라 두리번거리고 있을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찬찬히 읽으면 좋을 책들의 목록을 만날 수도 있고,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 단서를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당장 책이 읽고 싶어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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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재미있는 책이라면박현희 저 | 북하우스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라면』은 ‘독서 유발 인문학 강독회’라는 주제로 이루어진 여덟 번의 강독회를 묶은 책이다. 책을 읽어야 하는 당위를 주장하는 대신 한 권의 책을 깊이 읽고, 함께 읽는 시간을 통해 책의 재미를 맛보게 하자는 취지이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