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등학생 시절 수학과 물리를 싫어했다. 어려웠고 재미가 없었다. 포기하면 마음이 편해졌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 시절에는 많은 대학이 문과 계열에서도 과학탐구와 수리탐구 성적을 봤기 때문이다. 나 말고도 많은 문과생에게 두 과목은 학업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주범이었다. 이과생도 사정은 비슷해서, 자신의 두뇌에 웬만큼 자신이 있지 않는 한 물리2를 선택과목으로 택하는 학생은 드물었다. 그래서 대부분은 마지못해 공부했던 물리ㆍ수학을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대기권 밖으로 보내버린다.
미국이라고 다를 게 없나 보다. 개그맨을 했어도 대성했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리언 레더먼이 쓴 『신의 입자』에는 과학에 무관심한 대중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다.
한 통계자료에 의하면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 중에서 분자의 정의를 내리거나 현재 살아 있는 과학자의 이름을 하나 이상 댈 수 있는 사람이 전체의 1/3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중략)
몇 년 전, 맨해튼 지하철에서 한 노인이 기초미적분학 문제를 풀던 중 어려운 부분에 막혀서 쩔쩔매다가 옆 좌석에 앉아 있던 생면부지의 승객에게 도움을 청했다. “저, 실례지만 혹시 미적분 할 줄 아십니까?” “아, 네. 조금 할 줄 압니다.” 그 승객은 노인의 문제를 풀어주고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다. 노인이 지하철에서 미적분학 공부를 하는 것도 드문 일이었지만, 그 노인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은 노벨상 수상자인 이론물리학자 리정다오였다.
나도 지하철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데 결말은 사뭇 달랐다. 어느 날 시카고에서 통근열차를 탔는데, 정신병원에서 파견된 한 간호사가 환자 여러 명을 인솔하고 나와 같은 기차를 타게 되었다. 그런데 하필 환자들이 내가 있는 곳으로 모여드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그들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여기까지는 오케이. 그런데 잠시 후 간호사가 다가와 환자의 수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그 다음에 나와 눈이 마주쳤고, 간호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댁은 누구세요?”
“아, 네. 저는 리언 레더먼이라고 합니다. 페르미 연구소의 소장이고 노벨상도 받았지요.”
그녀는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계속 세어나갔다. “물론 그러시겠죠. 넷, 다섯, 여섯……”(663~664쪽)
농담 반 진담 반인 저 이야기에서 시사하는 바는 물리학계 최고 스타라고 해도 일반인에게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인물일 뿐이라는 점이다. 다른 학문이라고 사정이 다르진 않을 테지만 물리학자로서는 억울할 만하다. 현대 문명이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전기, 자동차, 화학 연료 등등은 물리학자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 물리학은 어떤 학문보다도 인간의 일상과 밀접하면서, 우주 탄생의 비밀까지 파헤친다. 입자 물리학에서 천체 물리학까지, 물리학은 처음과 끝, 최소와 최대를 모두 탐구한다. 사정이 이런데 대중은 과학적 지식에 무지하고 무관심하다. 레더먼은 통탄한다.
과학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은 정말 심각한 문제다. 특히 요즘은 인류의 복지가 과학기술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과학은 아직 완성단계에 이르지 못했지만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알면 알수록 단순하다. (664쪽)
무려 735쪽에 달하는 『신의 입자』를 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고 물리학자로서 일반인에게 과학을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은 책 집필을 이끈 힘이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이 책은 우주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 단위를 추적하는 인류의 노력을 다룬다. 시간적으로는 고대 그리스 문명 이후 2,500여 년의 역사를 기술했다. 탈레스가 물질의 기본 요소로 물을 꼽은 뒤, 엠페도클레스는 4원소설을 주장했고 데모크리토스는 아토모스라는 개념을 내세웠다. 이어 뉴턴의 중력, 마이클 패러데이의 전기전하, 러더퍼드의 원자핵과 전자 그리고 현재 표준모형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물리학 거장과 이론을 책에서 다뤘다. 그것도 쉽고 재미있게.
여기서 잠깐. ‘어려운 개념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다’는 표현은 교양서를 표방한 책이라면 무조건 내세우는 장점 아니던가. 실제로 읽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과연 『신의 입자』는 어떨까. 난이도는 독자마다 수준이 다를 테니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없겠는데, 재미만 보자면 이 책은 상당히 웃기다. 개그 욕심이 충만한 저자는 원자의 발견을 둘러싼 역사를 소개하면서 곳곳에 유머를 배치했다. 아마 개그 욕심이 없었다면 이 책의 분량은 500쪽 안이었을 것이다.
내가 해봐서 잘 아는데, 50여 명의 대학원생들을 가르치고 감독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이 써온 논문을 평가하는 데만도 엄청난 시간이 소요된다. 게다가 그 논문이 “이 분야는 거의 미개척 분야여서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말을 들여놓은 적이 없으며……” 라는 식으로 장황하게 시작되면 지도교수의 스트레스는 최고조에 이른다. (284쪽)
과학자의 성공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엇일까? 실력? 배경? 연줄? 다 아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운’이다. 운이 따르지 않는다고 생각된다면 더 늦기 전에 다른 직업을 찾는 게 좋다. (285쪽)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물리학은 종교가 아니다. 만일 물리학이 종교였다면 연구비를 모금하기가 훨씬 쉬웠을 것이다. (360쪽)
나는 감지기에서 날아온 신호의 분석절차를 확인하기 위해 두툼한 노트를 꺼내들었다. 그 노트에는 다른 사람들이 휘날겨놓은 낙서가 곳곳에 남아 있었는데, 예를 들면 “이런 젠장!”, “대체 누가 커피주전자 켜놨어?” “니 마누라한테 전화 왔음. 몹시 화났음. 나라면 전화하지 않겠음” 등이었다. (477쪽)
이렇듯 『신의 입자』는 물질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를 찾아가는 과정을 알아가는 지적인 쾌감과 함께 과학자로서 삶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즐거움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아내가 몹시 화나서 전화로 남편을 찾은 이유는 책 속에 나온다. 과학자는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실험 물리학자 말이다.
물리학은 크게 이론 물리학과 실험 물리학으로 나뉘는데, 책의 저자인 리언 레더먼은 실험 물리학자다. 저자의 증언대로라면 그래도 이론 물리학자는 집에 들어갈 수 있단다. 실험 물리학자는 실험실에서 살다시피 한다. 가족도, 친구도, 돈도, 사랑도, 술도, 담배도 멀리 하고 오직 실험에만 매진하는 데는 우주의 신비를 밝히겠다는 과학자의 열망 덕분. 『신의 입자』에서 이야기한 꼭대기쿼크와 힉스입자가 실험에서 차례로 밝혀진 데는 이러한 과학자가 있기에 가능했다.
이 책은 1993년에 나왔다. 20년이 넘어 한국에 번역되었는데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나온 『신의 입자』를 굳이 지금 읽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망설이는 독자가 있다면 안심하라. 책 출판 뒤 20년 동안 이론상으로는 큰 변화가 없다. 즉 이 책 한 권만 읽어도 레더먼이 표현한 것처럼 ‘과학교양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책은 실험 물리학자가 썼다. 이론 물리학자가 쓴 책에는 없는 매력이 있다. 연구소 풍경과 실험 과정을 묘사하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6장과 7장 사이에 위치한 ‘막간 C’에는 파이온 붕괴에서 반전성이 위배되는 현상을 확인하는 실험을 묘사한다. 20시간 동안 잠도 안 자고 밥 먹을 힘조차 없는 상황에서 새벽 세 시에 실험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연구실로 들어서는 저자의 모습을 읽어나가자니, 물리에 무지한 나조차 손바닥에 땀이 맺혔다.
재밌긴 한데, 개인적으로는 『신의 입자』가 쉽지는 않다. 저자가 공언한 대로, 수학 없이 물리를 설명함으로써 뇌에 쥐나는 빈도를 줄이긴 했지만, 수많은 고유명사가 등장한다. 인명, 지명, 이론명 등 수많은 고유명사를 읽다 보면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이 책은 뭐지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이 책은 교양서다. 물리학과 대학원생이 읽으면 더 많은 걸 보겠지만 고등학교 물리 시간에 졸지 않았다면 이 책을 읽어나가는 데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고유명사를 고유명사인 체로 둔다면 말이다. 무엇보다, 앞서도 썼듯 이 책에는 복잡한 수학 방정식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레더먼의 교육 원리처럼 “처음 봤을 때 97퍼센트를 이해하지 못했다 해도, 두 번째로 볼 때는 매우 친숙하게 느껴질(577쪽)” 테니까.
더 읽는다면…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저 | 을유문화사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는 6개의 쿼크와 6개의 렙톤과 반입자이고 여기에 전자기력, 강력, 양력, 중력이라는 4가지 힘이 작용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떨까. 1976년에 출간된 뒤 아직까지도 꾸준히 읽히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리처드 도킨스는 유전자에 초점을 맞춘다. 무신론자이자 진화론자인 그는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 아니라 유전자에 명령에 따라 자연 진화해온 존재라고 밝힌다. 도킨스 이론의 특징이라면 진화론이 주로 집단 차원에서 논의되었다면, 그의 분석 범위는 유전자 단위라는 사실. 환원주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이기적 유전자』는 물질의 최소 단위를 찾기 위한 『신의 입자』와 비슷하다. 또 하나 비슷한 점은 『신의 입자』처럼 비 과학 전공자가 읽기에 그리 어렵지 않다는 사실.
잠 안 오는 밤에 읽는 우주 토픽
이광식 저 | 들메나무
쿼크와 렙톤, 유전자 등이 극소한 존재라면 반대 편에는 광활한 우주가 있다. 『잠 안 오는 밤에 읽는 우주 토픽』은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미래를 다룬 과학 교양서다. 『천문학 콘서트』로 인기 대중 저술가의 반열에 오른 이광식 저자가 쓴 책이다. 제목의 의도는 중의적인데, 잠 안 오는 밤에 읽으면 푹 잘 수 있다는 의미인지 정말 재밌어서 밤을 새고 만다는 의미인지는 알 수 없다. 나는 후자였다. 역시나 비 과학 전공자가 읽어도 괜찮은 책. 광활한 밤 하늘을 이해한다는 의미 자체가 문학적이지 않은가.
이금주(서점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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