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이 저주가 될 거야
남편이 떠났다. 헌신적인 아내와 사랑스러운 두 아들을 남겨둔 채, 권력자의 딸과 결혼하겠다고 말한다. 아내는 지독한 고통 속에 버려졌다. 그를 위해 모든 것을 내던졌던 날들을 떠올리며 애끊는 비명을 토해낸다. 남겨진 선택은 많지 않다.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며 슬픔 속에 시들어가거나, 자신을 배신한 남편을 향해 처절한 복수를 감행하거나. 아내는 후자를 택했다. 남편을 상처 입히기 위해, 그녀는 두 아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기에 이른다.
한 번쯤 신문의 사회면에서 봤을 법한 이 이야기는 2천 년 전, 그리스의 작가 에우리피데스가 쓴 희곡 <메디아>다.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와 함께 ‘그리스 비극의 3대 작가’로 손꼽히는 그는 신보다 인간의 일상에 집중하면서 인간사에 대한 본질적 문제를 제기한 ‘가장 현대적이며 진보적인’ 작가였다. 에우리피데스는 <메디아> 안에서 사랑과 배신과 복수, 그 기저에 흐르는 강렬한 ‘욕망’에 대해 이야기했다. 물론, 지금의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유의미한 주제다. 어쩌면 모든 시대의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이 아닐까. 그런 까닭에 <메디아>는 어떤 그리스 비극보다 자주 공연되고 있는 작품이다.
메디아는 콜키스의 공주로 이아손을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이올코스의 왕자로 태어나 삼촌(펠리아스)에게 권력을 뺏긴 이아손은 황금양털을 차지하기 위해 콜키스를 찾아온 것이었다. 메디아는 이아손과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부모를 배신하고, 형제를 죽이고, 조국까지 버렸다. 이아손이 가진 권력욕을 실현시켜 주기 위해 펠리아스 왕도 살해했다. 그러나 이아손은 왕좌를 차지하지 못했고, 두 사람은 이올코스의 시민들에 의해 추방당해 코린토스에 다다른다.
코린토스의 왕 크레온은 이아손을 사위로 맞기 위해 딸 크레우사와의 혼인을 제안한다. 권력을 욕망했던 이아손은 신 앞에 맹세했던 마음을 저버리고 메디아의 희생을 외면한다. 사랑을 욕망했던 메디아는 가눌 수 없는 분노에 빠져버린다. 그러나 그녀는 영민하고 강인한 여성이다. 원망과 탄식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도 잠시일 뿐, 무서울 만큼 냉정하고 침착한 태도로 복수의 계획을 세운다. 자신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긴 이아손과 크레온과 그 딸에게 똑같이 고통을 돌려주기로 결심한다. 그것이 비록 자신조차 파멸에 이르는 길이라 하더라도.
놓쳐서는 안 될 ‘빈 틈 없이 채워진 작품’
국립극단은 2017년의 첫 신작으로 <메디아>를 선택했다. 연출가 로버트 알폴리는 “현대 관객들이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각색하는 데 초점을 맞추며 고전 <메디아>를 동시대적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헝가리의 중견 연출가인 그는 지난해 셰익스피어의 <겨울이야기>를 감각적으로 재해석해 선보인 바 있다. 로버트 알폴리는 “격렬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자 “남성들을 위해 만들어진 사회규칙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여성의 이야기”로써 <메디아>를 소개했다. 그리고 “그 사람밖에 안 보이는, 그런 대상에게 버림받았을 때는 그 사람이 강박적인 감정이 될 수도” 있음을 지적하며 “이 감정에는 어두운 면도 있겠지만 사람을 놀랍게 하는 힘도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메디아라는 여성이 보여주는 극단적인 선택을 이해하는 데 단서가 되어준다. ‘메디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복수를 위해 친자 살인까지 마다하지 않는 여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메디아>의 관객들은 적지 않은 혼란을 경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로버트 알폴리가 상기시켜 주듯, 메디아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지켜낸 사랑으로부터 버림받았다. 그 결과 강박적인 감정에 사로잡힌 한 인간이, 다시 한 번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상대를 가장 깊이 찌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다. 어쩌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고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욕망이다. 메디아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켰고, 그녀를 이해할 수 없는 이들은 자신의 욕망을 잠재웠을 뿐이다.
작품은 메디아의 상황과 감정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 부분에서 연극 <메디아>는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만약 철저하게 메디아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그녀의 감정을 호소하는 데 치중했다면, 관객은 혼란을 넘어 거부감을 경험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메디아>에서 관객의 시선은 메디아라는 인물 안에 갇혀있지 않다. 오히려 무대 위에서 그녀를 지켜보는 코러스들의 시선에 더 가깝다.
원작에 비해 역할이 더 확대된 코러스는 때로는 메디아를 동정하고 또 때로는 비난하면서 사건을 관망한다. 관객이 무대 위의 메디아를 바라보는 것처럼 코러스는 드라마 속 인물을 보듯 메디아를 지켜보는 것이다. 관객은 그들의 눈을 통해 메디아와의 ‘적당한 거리 두기’가 가능해진다. 이러한 객관적인 관찰은 작품의 긴장감이 절정에 이르는 시기, 즉 메디아가 자신의 손으로 두 아들을 살해하는 장면에 이르러 극대화된다. 그리고 막이 내린 뒤에도 이 참혹한 서사를 이성적으로 곱씹어보게 만든다.
배우에게 있어 메디아는 결코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인물일 것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극단으로 치닫는 감정을 보여줘야 하는 데다, 빠르고 미묘하게 변하는 감정을 연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배우 이혜영은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메디아를 완성시켰다고 할 수 있다. 단출한 무대 위에서 그녀가 뿜어내는 카리스마는 모든 여백을 채우고도 남는다. 감정을 폭발시켰다가도 금세 가라앉히기를 반복하면서, 극의 흐름을 자유자재로 주무르고 관객을 압도한다.
연극 <메디아>는 뛰어난 원작과 탁월한 연출, 탄탄한 연기로 빈 틈 없이 채워진 작품이다. 한 번쯤 보면 좋은 작품이 아니라 꼭 한 번은 봐야 할 작품이라고,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 4월 2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상연된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