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이혼 가정의 이야기를 다룬다. 미란다와 다니엘은 오랜 결혼 생활 끝에 각자의 삶을 선택하고, 세 아이는 보다 안정적인 환경을 마련할 수 있는 엄마 미란다와 함께 지낸다. 일주일에 한 번의 만남만이 허락된 다니엘은 ‘미세스 다웃파이어’라는 허구의 유모로 변장한 채 아이들과의 시간을 보낸다. 작품은 다니엘의 변장을 둘러싼 해프닝을 유쾌하게 풀어낸다. 그러나 모든 사건을 아이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면, 코미디는 호러가 된다. 아이들이 겪어내는 불안과 두려움, 상실의 공포 때문이다.
부모의 잦은 다툼은 아이들의 불안을 끝없이 자극한다. 그러나 그 혼란 속에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특히 첫째 리디아가 짊어진 무게는 그 누구보다 크다. 그는 스스로에게 ‘엄마의 조력자’라는 역할을 부여해, 엄마의 기분을 예민하게 읽어내고 동생들을 돌본다. 마치 철이 들어야만 이 가족이 유지될 수 있는 것처럼. 그러니 자신의 감정은 언제나 후순위다. 리디아의 노력에도 부모는 이혼을 결정하고, 아빠의 빈자리는 ‘다웃파이어’라는 낯선 유모로 대체된다. 힘겹게 지켜온 가족의 형태가 흔들리자, 리디아는 알게 된다. 부모의 이혼과 양육자, 새로운 보호자의 등장까지 자신의 삶을 뒤흔드는 모든 과정에 선택권이 없다는 사실을.
다니엘은 어린이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요즘 아이들은 무시당하는 걸 싫어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말은 정작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닿지 못한다. 이혼이 어른의 영역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은 어른들로부터 소외된다. 이별의 정확한 이유를 들은 적 없는 아이들은 종종 그 책임을 자신에게 돌린다. 엄마와 아빠 사이를 고민하며 죄책감과 혼란을 느껴도, 주양육자는 법원에 의해 결정된다. 아이들의 상처는 이혼이라는 사건 때문이 아니다. 부모의 선택 과정에서 아이들이 경험한 배제와 묵살의 결과다. 그러나 리디아는 상처에 위축되는 대신 더 이상 참지 않겠다고 노래한다. 자책하는 동생들에게는 잘못은 우리가 아닌 엄마 아빠에게 있다고 정확하게 알려주고, 자신의 불안과 분노를 솔직한 방식으로 표출하기 시작한다. 리디아는 아이에게 미치는 부모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인물로, 그의 성장은 <미세스 다웃파이어>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리디아는 다웃파이어의 보호 아래 서서히 삶의 균형을 회복한다. 그리고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마음을 다웃파이어에게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자신의 무례함이 잘못되었다고, 이혼만 떠올리면 아직도 화가 난다고, 엄마를 웃게 해줘서 고맙다고. 제 안의 감정을 발견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그는 포기했던 무용을 다시 시작한다. 그렇게 그는 ‘엄마의 조력자’가 아닌, 열다섯의 ‘리디아’로 돌아온다. 현실에 눈 돌리지 않고, 잃어버린 자신을 찾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가족을 사랑하는 용감한 인물로. 하지만 다웃파이어가 아빠였다는 사실에 리디아는 또 한 번의 상처를 입는다. 여전히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다니엘에게 리디아는 묻는다. “아빠는 아들, 딸들이랑 같이 있는 거지만, 우린 아니잖아. 그게 아빠한테 좋은 거지 우리한테 뭐가 좋아.” 이 질문은 어른들이 놓쳐버린 관점을 정확하게 찌른다. 다니엘은 리디아를 통해 비로소 자기중심적이었던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고, 책임과 배려의 의미를 되찾아간다.
결국 리디아는 <미세스 다웃파이어>에서 ‘어른의 조건’을 묻는 인물이다. 주어진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상대를 하나의 인격으로 존중하고,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 섬세하게 배려하는 것. 그가 발견한 ‘어른다움’이다. 리디아 역시 깨진 가족을 억지로 붙이려 하기보다는, 사랑이 있다면 어떤 형태든 가족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그도 진짜 어른에 한발짝 더 가까이 다가간다.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리디아를 통해 말한다. 가족의 변화 앞에서 아이들은 주변 인물이 아니며, 그들의 감정과 목소리를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가족이 지속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임을. 소중함을 잊지 않고 지켜내는 사람이 비로소 어른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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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진(공연 칼럼니스트)
엔터테인먼트 웹매거진 <매거진t>와 <텐아시아>, <아이즈>에서 10년 동안 콘텐츠 프로듀서와 공연 담당 기자로 일했다. 공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무형의 생각을 무대라는 유형의 것으로 표현해내는 공연예술과 관객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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