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채널예스>에서 매월 책을 만드는 사람들을 만난다. 열한 번째는 적절한 독자층에게 책이 닿기 위해 발로 뛰는 출판 마케터의 세계다.
예스24 사옥에는 오후마다 책을 소개하기 위해 온 사람들로 빼곡하다. 영업이 판촉활동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면, 마케팅은 판촉활동뿐 아니라 시장 규모와 트렌드를 예측하고 기획 단계에서부터 참여해 책을 같이 만들어나가는 작업을 통칭한다. 마케터는 서점과 편집자, 독자와 기획자 사이에서 줄타기하면서 책의 가치를 찾아 가공해 전달하는 사람이다.
어크로스 출판사 부사장이자 마케팅 담당자인 이상호는 2001년부터 우스갯소리로 ‘출판계의 SKY’라고 할 만한 해냄, 웅진지식하우스, 김영사 등의 대형 출판사에서 단행본 마케팅 업무를 시작했다. 그에게 출판 마케팅은 ‘늘 새롭고 재밌는 일’이다.
출판 일을 시작한 계기가 있나요?
회사를 자주 옮기는 편이었어요. 원래는 대학교재 출판사에서 시작해서 아동 서적 전문 출판사에서도 근무했었고요. 웅진지식하우스에서 근무하면서 지금의 어크로스 대표를 만나 가끔 독립 이야기를 하다가 나와서 따로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쪽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이 일이 늘 저한테는 잘 맞는 일이었어요. 워낙 가만있지 못해서 돌아다니고 이야기하는 게 즐겁고, 또 책 이야기라서 더 즐거웠고요.
출판 마케터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홍보를 중점으로 일하시는 분들, 기획을 중점으로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출판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시장에 대한 올바른 전달이라고 봐요. 편집자나 출판사 내부에서 책을 만드는 사람들 대신 활발하게 시장과 접촉하면서 신간에 대한 피드백을 주고 기획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역할이 중요합니다. 영업에 덧붙여 시장 환경을 기획에 반영되게끔 해주는 역할인 거죠.
일과가 궁금합니다.
출간 전부터 책을 배본하기 위해 거래처와 부수를 협의하거나 서점 담당자와 미팅하면서 책 소개를 해요. 수많은 책 중 우리 책이 더 기억에 남을 수 있게 소개하는 부분이 큰 업무입니다. 출간된 이후에는 책이 오래도록 독자의 관심을 받을 수 있도록 노출이나 진열을 신경 쓰고 적합한 프로모션과 광고 관리를 해 나갑니다. 신간뿐만 아니라 구간도 지속해서 다시 끄집어내는 역할이 이루어져야 하고요. 온라인 서점은 MD와 미팅하면서 시장 자료를 얻는 게 크다면, 오프라인 서점은 매대에 진열된 책을 보면서 트렌드가 어떻게 변하는지 쉽게 보이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루에 최소한 세 개에서 네 개 서점 정도는 방문하는 것 같아요.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서 마케팅 영역이 많이 줄어들었는데요.
예전에는 지금처럼 프로모션이 제한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오프라인 서점에 엠디 구성도 해서 진열해 보고, 이벤트도 이런저런 형태로 다양하게 진행할 수 있었어요. 지금은 도서정가제와 경품 고시 등으로 마케팅의 영역이 많이 줄어들었죠.
SNS 마케팅도 최근 화두입니다. SNS에 중점을 두고 작업하시는 편인가요?
어쩔 수 없는 흐름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이전과 지금은 매체 환경이 많이 바뀌었으니까요. 언론도 주요 일간지에서 작은 채널로 많이 확산되기도 했고요. 저희 출판사는 SNS를 열심히 하는 쪽에 속하는데, 제가 담당하지 않고 담당 편집자가 책이 나오면 각자 책과 관련한 자료를 만들어서 올립니다. 다른 회사에 비해서 장점을 꼽자면 소통을 많이 하는 회사예요. 편집자들이 알고 있는 책의 정보가 판매에 더 강한 무기가 될 때가 있어요. 매일같이 아침마다 모여서 이런 거 해보자, 저런 거 해보자는 편이에요.
기획자와 편집자, 마케터 간 차이가 있다면 뭘까요?
출판사가 직접 책을 팔지 않고 서점을 통해서 판매하기 때문에 마케터에게 일차 고객은 서점이라고 보는 편이거든요. 기획자는 저자 중심으로 글 쓰는 분을 예민하게 포착하면서 어떤 종류의 책을 내면 좋겠다고 기획한다면, 마케터는 책의 콘셉트나 형태, 외형적인 모습에 조금 더 민감하죠. 편집자와 이야기하다 보면 마케터는 책을 모른다고 하고, 마케터는 또 편집자들이 많이 팔릴만한 책을 모른다고 서로 말하는 게 있어요. 상호 간의 신뢰가 중요할 것 같아요. 편집자와 마케터가 서로 신뢰하고 믿을 수 있으면 시너지가 생겨요.
편집자와 서점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하는 역할로 봐도 될까요?
가끔 후배들에게 멋있게 말할 때는 마케터는 ‘출판의 허브’라고 말합니다. 독자와 판매처, 제작부서와 모두 소통하는 직종인 거죠.
책을 잘 소개하는 방법이 있나요?
개인적으로 MD와 얘기할 때는 보도자료를 안 읽으려고 해요. 보도자료가 거의 비슷한 느낌이라 담당 MD 눈에 띄기 쉽지 않아서 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떻게 기획해서 어떤 사람에게 어필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이력을 많이 이야기하는 편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회사에서 직책이 높다 보니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편안하게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요(웃음).
마음에 남았던 책을 소개해주세요.
운이 좋아서 국내에서 크다는 출판사를 다녀 보고, 베스트셀러를 많이 담당했습니다. 그동안은 조직의 힘을 빌려 잘 된 책이 많이 나왔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책은 아무래도 어크로스에서 처음 낸 『쿨하게 사과하라』는 책이에요. 첫 책이니까 잊을 수가 없죠. 회사 사무실로 출근하고 4, 5개월 만에 책이 나왔으니 애도 많이 탔고요. 개인과 새로 시작하는 출판사의 한계를 느낀 책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첫 책이라고 여기저기에서 많이 도움을 주셔서 판매가 잘 됐고, 그런 면에서 고마운 책이에요.
아쉬웠던 책은요?
너무 많죠. 베스트셀러를 만들고 싶기보다 출간된 책 하나하나가 초판을 넘기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그래서 초판을 못 넘긴 책은 항상 편집자에게도, 작가에게도 미안하고 마음이 아파요. 책을 얼마나 어렵게 썼고 얼마나 어렵게 제작이 되는지 알기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알아줬으면 해요. 잘 되는 책 하나가 안 되는 책 아홉 종을 먹여 살리는 구조의 회사가 많은데, 그게 틀리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기왕이면 모든 책에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는 꿈을 꾸죠.
어크로스 출판사에서 앞으로 나올 책을 소개해주세요.
5월 중순쯤 『일상기술연구소』라는 책이 나옵니다. 이제까지 나온 책 중에 『음식의 언어』라든지 『문구의 모험』 같은 독특한 소재의 입문서가 사랑을 받았어요. 어떻게 보면 저희랑 가장 잘 맞는 원고인 것 같아요. 요새 강의가 넘쳐나고 큰 사람들의 큰 그림 이야기가 넘쳐나잖아요. 그런 큰 이야기가 피로감을 주는 시대가 아닌가 싶기도 해요. 일상의 소소한 고수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이라 재밌을 거예요.
출판 마케터를 꿈꾸는 분에게 한 마디 부탁드려요.
처음 가족 친척분들이 모인 자리에서 출판 영업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책을 몇 권 사주면 되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예전 방문판매를 생각하신 거죠. 지금은 기존의 영업 방식보다 많이 달라졌어요. 하지만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건 출판 마케터도 편집자 못지않게 책을 좋아해야 한다고 봐요. 영업을 잘하는 기술, 홍보를 잘하는 기술만 가지고서는 오래갈 수 없어요. 또 하나는 출판 마케팅을 홍보와 판매에만 국한해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좋은 책이 기왕이면 조금 더 사랑받을 수 있도록 시장에 더 관심을 가지고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요건이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회사에서도 마케터를 홍보하는 사람, 광고하는 사람 정도로만 보지 말고 기획 단계에서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게끔 자리를 조성해줘야 하겠죠.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seeva
2017.05.11
진정한 이 시대의 마케터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