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드업 코미디와 콩트와 마임과 끝장토론과 낭독회와 음악 공연으로 북적이는 서점이 있습니다. 이름부터 ‘이것은 서점이 아니다’(이하 이서점)인데, 사실 이서점은 누구보다 서가를 알차게 꾸리는 데 진심입니다. 책과 행동을 연결시키며 매번 우리를 재밌고 낯설고 이상한 세계로 초대하는 이서점의 한채원 공동 대표를 서면으로 만났습니다.
ⓒ 이것은 서점이 아니다
대학 시절 도서관 활동으로 만난 박수민 공동 대표와 의기투합해 연고 없는 광주에 자리를 잡고 이서점을 차리셨어요. 이서점의 공식 소개 문구는 “재미와 정의를 추구하는 초소형 문화기획사”입니다. 정의보다 재미가 먼저 등장한다는 점에 눈길이 가요.
멋지고, 대단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모든 일에 다 참여하는 것은 어렵고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희는 결국 사람들에게 참여와 소비를 끌어내야만 하기에, 이를 추동시킬 힘을 찾아 사용해야 하는데요. 사람들에게 산뜻한 자발성을 독려하고 이를 지속시킬 가장 강력한 수단이 무엇인가 하면 그건 바로 ‘재미’인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저는 ‘재미’와 ‘정의’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재미있게 살기 위해서는 정의가 필요하고, 정의롭게 살기 위해서는 재미가 필요한 것 같거든요. 그래서 이서점의 모든 기획을 만들 때는 ‘세상의 지옥 같은 면을 똑바로 마주하기’, ‘부정의와 불의에 적극적으로 딴지 걸기’, ‘그 모든 과정 안에서 웃음 만들기’ 이 세 가지를 반드시 염두에 둡니다. 앞으로도 이서점은 재미와 정의가 조화롭게 얽혀있는 기획을 계속해 나가는 공간이 되고 싶어요.
이서점 운영 3년 차를 앞두고 올해 4월 공간을 확장하셨습니다. 이번 공간을 꾸리며 새롭게 품거나 떠나보낸 마음이 있으실까요? 오픈 기념 행사였던 ‘빚잔치’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도 궁금합니다.
먼저 공간 확장을 하며 떠나보낸 것이 있다면 ‘망해도 된다’, ‘비장해지지 말자’라고 생각했던 ‘초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아끼고 좋아하는 마음이 쿨하고 깨끗하기만 할 수가 없다는 것, 그리고 좋아하는 일에 전력을 다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공간에 대한 불안, 집착, 열등감을 시원하게 인정하고, 망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새롭게 품은 마음은 ‘사이좋게 지내기’입니다. 이서점은 저와 수민, 두 명의 서점지기가 함께 운영하고 있어요. 저희는 좋아하는 작가도, 취미도, 생활 습관과 사고방식까지도 모두 극과 극입니다. 이서점은 운영자들의 상호 보완성에 기대어 굴러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확장 공사를 시작하며, 사업에 대한 부담감이 커지면서부터는 의견 충돌이 잦아져서 정말 힘들었어요. 둘의 관계가 틀어지니 일이 조금도 진행되지 않더라고요. 그때 확실히 알았습니다. 이서점을 위해서는 사이가 좋아야겠구나. 이제 되게 급하고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평소보다 훨씬 상냥하게 살려고 노력합니다.
이서점 확장 기념 빚잔치 가라오케에서는 2PM의 <기다리다 지친다>를 불렀습니다. 제목 그대로 기다리다 지치는 것이 서점의 주요한 업무이자 임무이기 때문입니다. “너를 기다리다 지쳐 미치고… 또 하루하루 매일같이 일 년이 같고…”
책 외에도 음악 공연, 마임, 콩트 특강, 스탠드업 코미디 등 행사의 외연을 적극적으로 넓혀오고 계십니다. 이서점의 변곡점처럼 기억되는 행사들이 있다면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것은 서점이 아니다’라고 이름 붙이고 시작한 공간인 만큼, 힘껏 굴곡지고 울퉁불퉁한 곳이 되고 싶었어요. 그렇기에 진행했던 모든 행사가 빠짐없이 저희의 소중한 변곡점이 되어준 것 같습니다. 2025년에 특히 애정을 갖고 기획한 행사는 <극장-되기> 프로젝트와 <콩트 커뮤니티>입니다.
2023년 <침묵하는 것만이 그를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게 분하다>(매머드머메이드), 2024년 <구멍난 밤 바느질>(배선희) 1인극 공연을 통해 서점이 얼마나 멋진 극장이 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발견했었는데요. <극장-되기>는 이러한 가능성을 믿고 좀 더 나아가 본 프로젝트입니다.
올해는 서점 운영자인 제가 직접 연출 및 각색을 맡아 제작한 <박참새 모놀로그: G.H.에 따른 수난>, 공연예술가 배소현의 텍스트 씨어터 <출현하는 텍스트: 치르는 몸>, 마임이스트 고은결이 이끄는 <마임 워크숍: 뭉툭하게 마임하기>를 진행하였는데요. ‘서점’과 ‘극장’, ‘연극’과 ‘독서’를 향유하는 기존의 고정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그 경계를 흐림으로써, 사이 공간을 두텁게 해볼 수 있었습니다.
<콩트 커뮤니티>는 콩트라는 형식을 빌려 ‘웃기면 웃긴 대로, 안 웃기면 안 웃긴 대로 웃길 것이다’를 모토로 내걸고 진행했던 글쓰기 소모임이었는데요. 덕분에 ‘잘 쓴 글’의 기준을 허물면서 이서점의 색깔을 잘 드러내는 모임을 만들고 진행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일회성 행사가 아닌, 장기적이고 주기적인 모임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커뮤니티가 서점 운영에 얼마나 큰 동력을 가져다주는지를 깨달았어요.

<박참새 모놀로그: G.H.에 따른 수난>, 공연예술가 배소현의 <출현하는 텍스트: 치르는 몸> ⓒ 이것은 서점이 아니다
이서점을 운영하며 경험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방향이나 태도가 있을까요? ‘이쪽으로는 가지 않겠어’ 혹은 ‘저쪽으로 가보고 싶어’라는 매 순간의 선택이 쌓여 만들어지고 있는 이서점의 구체적인 테두리랄까요.
이서점이 누구를 위한 공간인지 생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책인 『엄살원』(안담, 한유리, 곽예인 저, 위고, 2023)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엄살원은 ‘우리’ ‘모두’를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엄살원은 우리로부터 쫓겨난 모두를 위한 시공간이다. 일찍이 우리에서 탈락된 우리에게 바치는 만찬이 열리는 곳이다. 기존의 ‘우리'를 구성하는 조건에 의문을 제시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람들, 약하다는 이유로 우리가 될 수 없었으며, 그런 협소한 우리를 받아들이길 거부하면서 우리의 삼엄한 경계를 쪼아대는 우리가 오가는 식당이다.” (6쪽)
서점을 운영하다 보면 종종 ‘모두’를 만족시켜야만 한다는 이상한 압박감이 들 때가 있는데요. (주로 매출이 너무 저조할 때) 그런 생각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자주 곱씹는 문장입니다. ‘모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우리가 될 수 없는 우리’가 즐길 수 있는 문화에 기여하고 있는가?”를 운영하며 맞닥뜨리는 모든 선택의 기준으로 삼고자 합니다.
유무형의 공간을 꾸려 나가는 일은 실무적인 어려움과 우연한 즐거움의 연속이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든 많은 에너지가 드는 일이죠. 에너지의 총량은 정해져 있는데…어떻게 대처하고 계신가요?
한계를 인정하고 ‘이건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었어’라고 외칩니다. 지역의 작은 서점은 흔히 연상되는 느긋함, 여유와는 반대로 가혹하리만치 치열하게 굴러가는 것 같습니다. 책을 팔고 매대를 관리하는 일을 넘어, 지역의 문화 공간으로서 복합적인 수많은 일을 해내야만 살아남기 때문이겠죠. 저희도 일단 그 치열함에 동참해서 온갖 일을 하는데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더는 못 하겠다는 마음이 따라붙습니다. 그럴 땐 저희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일을 얼른 끝마칩니다. 더 잘할 수는 없었다고 다독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조금 더 힘내볼 수 있게 하는 건 언제나 칭찬인 것 같습니다. 저희 서점 어떤가요? 늘 궁금합니다.
이서점의 다양한 행사들 ⓒ이것은 서점이 아니다
이서점은 독자뿐 아니라 광주여성영화제, 광주비건탐식단, 앨라이 도서전 등 다른 공동체와의 교류에도 애정을 쏟고 계십니다. 독자나 공동체와 연결되는 경험은 이서점에게 어떻게 같고 다르게 중요한가요?
같은 결의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책 속의 이야기와 책을 덮고도 이어지는 현실의 삶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서점의 안과 밖을 두루 살핍니다.
얼마 전 이반지하, 이연숙 작가님을 초청해 “동료 시민과의 공존은 가능한가”라는 끝장토론 행사를 주최하셨습니다. 이 질문을 언제부터 품게 되셨는지, 그리고 여기에 대한 두 분의 생각도 궁금합니다.
해당 기획은 질문이 아닌 인물, ‘이연숙(리타)님과 이반지하 님 두 분을 한 번에 모시고 무언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일단 두 분이 함께하는 자리라면 어떤 주제와 형식이든 무조건 재미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거든요. 토론 질문은 섭외가 확정되고 난 뒤, 두 작가님께서 먼저 제안해 주셨습니다. 온라인 공론장의 윤리와 계엄 이후의 정치적 상황 등 우리가 당면한 많은 위기에 대해 함께 고찰해 볼 수 있는 굉장히 시의적절한 주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반응도 아주 뜨거웠고요.
서점을 운영하다 보면 불특정 다수가 오가는 공간이기에 자연스럽게 공존의 어려움을 느끼는 순간이 자주 찾아옵니다. 이럴 때 대응할 수 있는 뾰족하고 명쾌한 답은 찾지 못했지만, 서점이 어떤 ‘연습’의 공간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동료 시민과의 공존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뒤집어보면 공존 불가하다고 여겨지는 존재도 결국 동료 시민으로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함의를 지니게 됩니다. 저는 점점 온라인상에서 익명화되고 단편적인 관계들로만 삶이 구성되는 가운데, 나와 전혀 다른 사람과 우연히 만나보기도, 생각을 교류해 보기도 할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의 역할이 너무나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서점이 고정된 ‘우리’의 틀을 건드려 볼 자리, 혹은 ‘우리’ 내부의 차이를 감각하고 견디는 체험의 공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독자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다른 출판사나 서점의 활동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서점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도 부쩍 줄고, 매출도 저조한데요.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점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출판사나 지역공동체의 활동은 서점에서 꾸준히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평소 소개할 일이 없는 다른 서점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온 마음을 다해 추천할 곳은 경주 원도심 골목에 위치한 서점 ‘너른벽’입니다. 사회문제에 대한 인식과 감각을 확장해 주는 도서 큐레이션, ‘북정로 소식지’ 발간과 같은 지역사회에 녹아든 문화 기획, 이주 배경 청소년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성매매 집결지 실태조사를 하는 등의 활발한 연대 활동까지… 너른벽은 이서점이 깊이 존경하는 최고의 동료 서점입니다.
세상의 높고 단단한 불의와 차별, 혐오와 편견 앞에서 무력하고 슬퍼지는 순간이 찾아오면 매일 크고 작은 벽과 문턱을 허물고 있는 서점, 당신의 서점, 너른벽으로 가보세요. (책도 꼭 사주세요.)
요즘 독서 생활 탐구
우리는 요즘 책을 통해 어떻게 만나고 있을까요? 온갖 종류의 콘텐츠가 범람하는 오늘날 변함없이 책을 읽고, 책을 통해 연결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유한 방식으로 독자를 만나고 있는 뉴스레터, SNS, 출판사와 서점, 북페어 운영자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엄살원
출판사 | 위고
박소미
뒷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 쉽게 눈을 떼지 못하고 저장해 둡니다. 그 사람들...어떤 얼굴 하고 있을까요? 그래서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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