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산호 “베테랑 번역가도 몰랐던 영단어 사용법”
번역가도 숨어있는 존재 같아요. 작품이 좋으면 원작이 너무 뛰어나다고 하지, 번역을 잘했다고 말하지는 않잖아요(웃음). 반대로 책 내용이 안 좋으면 ‘번역이 이상해서 그런 걸 거야’라고 말할 때가 있죠(웃음).
글ㆍ사진 임나리
2017.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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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나 의리를 저버림’. 배신의 사전적 정의다. 단어가 믿음을 저버리는 순간도 있다. 기존에 알고 있던 뜻으로는 의미가 통하지 않을 때다. 베테랑 번역가도 피해갈 수 없는 이 시간들을 일컬어 박산호 저자는 ‘번역의 배신’이라 명명했다. 그리고 15년 동안 번역을 하며 수집한 “원어민은 자주 사용하지만 한국인은 잘 모르는 단어의 다양한 의미”를 모아 『단어의 배신』에 담아놓았다.

 

배신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로는 ‘Betray’가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단어가 ‘정보나 감정을 무심코 노출시키다’라는 의미로도 쓰인다는 것. 『단어의 배신』은 당신이 철썩 같이 믿었던 의미를 배신하는 동시에, 깊숙이 감춰져 있던 많은 뜻들을 슬며시 드러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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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에 대한 편견이 무서운 것 같아요


번역가로서 『단어의 배신』 같은 책을 기다리셨을 것 같아요.

 

이렇게 따로 정리해 놓은 책은 없었기 때문에, 번역가들이 혼자서 각개전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후배들은 조금 더 편하게 일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고요. 단어의 다른 뜻을 몰라서 오역을 하는 경우도 잦은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번역 아카데미에서 특강을 하면서 관련 리스트를 만들었는데, 그게 이번 책을 쓰는 데 도움이 됐어요. 저도 보면서 오역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됐고요.

 

사전에서 단어를 찾아보면, 사용 빈도가 낮은 뜻풀이는 뒤쪽에 실려 있잖아요. 그런 의미들도 번역에서 많이 쓰이나요?


번역도 그렇고 사실은 회화에서도 많이 쓰이거든요. 한국 사람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 공부를 하는데 비해서 영어를 잘 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단어를 수학 공식처럼 외우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apple=사과’라고 생각하고 그 외에 다른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상상력은 차단하잖아요. 그렇게 하는 게 점수를 따기에는 쉽겠지만, 조금 더 깊이 영어 공부를 하거나 유창하게 현지인과 대화하려고 할 때는 막히는 거죠. 그 점이 굉장히 안타까워요.

 

오역의 사례를 발견하실 때가 있죠?


책의 경우에는 원서까지 대조해서 볼 시간이나 여유가 없어서 잘 모르고요. 드라마나 영화 같은 걸 볼 때 가끔 그런 경우가 있죠. 신문기사에도 오역이 종종 나오잖아요. 아주 드문 경우는 아니죠.

 

기억에 남는 문장도 있을까요?


동업자로서 이야기하면 안 될 것 같은데요(웃음). 예를 들면 ‘treat’라는 단어에 ‘치료하다’라는 의미가 있고 ‘~를 좋게 대우하다, 대접하다’라는 뜻도 있어요. 그런데 번역가가 두 개 뜻을 헷갈린 모양이에요. ‘아픈 아이들을 치료해줘야 합니다’ 하고 호소하는 내용이었는데 ‘아픈 아이들을 좋게 대우해줘야 합니다’라고 번역했더라고요. 영상 번역가들은 워낙 시간에 쫓기면서 번역을 하거든요. 그래서 순간적으로 그렇게 됐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경우가 아니라 하더라도 평소 우리가 단어의 의미에 대해서 갖고 있는 편견이 무서운 것 같아요.

 

오역을 하신 적도 있나요?


많이 했죠. 특히 초기에는요. 번역가는 프리랜서이니까 일이 많이 들어와도 거절하기 힘들잖아요. 할 수 있는 한 많이 일을 맡다 보면 시간과의 싸움이 되고, 그러면 단어 체크를 못하고 ‘이 단어는 이런 의미겠지’ 하고 넘어갔다가 오역하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초기에는 몰라서 오역할 때도 있었고요. 미처 바로잡지 못하고 출간이 되면 다음 쇄를 찍을 때 교정을 하죠.

 

‘단어의 배신’을 맛볼 수 있는 예들이 많았어요. 그 중에 하나가 ‘I work in-house’라는 표현인데요. ‘회사에 출근해서 근무한다’라는 뜻이라고요.


‘house’가 원래 집이라는 뜻이잖아요. 그 집이라는 의미와 차별화를 두기 위해서 책에는 ‘in-house’라고 표기를 했어요. ‘passion’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는데, 우리가 주로 알고 있는 뜻은 열정, 격정이죠. 그런데 종교적으로 ‘예수의 수난’이라는 뜻도 있거든요. 그럴 때는 대문자를 써서 ‘Passion of Christ’라고 표기를 해줘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열정, 격정이라는 뜻과 구분이 안 되니까요. 종교적인 뜻이 들어간 단어는 대문자로 표기해 주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I’ll give you a ring tonight’라는 문장은 정말 오해할 법해요. ‘반지를 준다고? 청혼하는 건가?’ 하고요(웃음).


저도 한 번 겪었던 일이에요(웃음). 뉴질랜드에서 어학연수를 했는데, 그때 외국인 남자친구가 똑같은 말을 했었어요. 그래서 ‘반지를 준다고?’하고 혼자 김칫국을 마셨는데, 알고 보니 전화를 한다는 뜻이더라고요(웃음). 그때는 저도 영어를 잘하지 못했던 때라서 ‘ring’이라고 하면 반지만 생각했던 거예요. 그런데 뉴질랜드는 영국과 관계가 깊다 보니까 전화를 한다고 할 때 ‘call’보다 ‘ring’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쓰거든요. 그냥 ‘I’ll ring you’라고도 많이 써요. 사실 그때부터 언어에 대한 감각을 많이 키우려고 했던 것 같아요. 영미인들이 쓰는 영어랑 우리가 쓰는 영어가 많이 다르다고 할까요. 그래서 우리가 회화를 할 때 더 많이 긴장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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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책 = blue magazine?


‘black’에는 ‘보이콧을 하다’, ‘고도의 군사 기밀’, ‘그로테스크하다’라는 뜻도 있다고 하셔서 놀랐어요.


저는 오히려 ‘blue’가 놀라웠어요. 우리는 흔히 야하다고 하면 ‘red’를 떠올리잖아요. 홍등가라는 단어도 있듯이요. 그래서 야하거나 음란한 걸 이야기할 때는 당연히 ‘red’를 쓸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야한 영화는 ‘a blue video’, 도색 잡지는 ‘blue magazine’이라고 해서 놀랐어요. 또 ‘blue’에는 ‘귀족의, 고귀한’이라는 상반된 의미도 있거든요.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책을 쓰는 계기가 된 단어가 있었나요?


『단어의 배신』이라는 제목을 짓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단어는 ‘betray’였어요. 번역 중인 소설에서 여주인공의 행동을 묘사하는 문장 중에 ‘betray’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배신하다’라는 의미로는 도저히 해석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뜻이지?’ 하고 생각했는데 ‘숨겨져 있던 감정이 나오다, 무심코 드러내다’라는 뜻이 있더라고요. 단어는 정말 배신을 하는 구나 싶어서 놀랐고, 이런 단어들을 모아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전혀 다른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들은 외우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기억하세요?

 
지금도 계속 단어를 외워요. 얼마 전에 특강을 하면서 영어 공부법을 정리해 드린 적이 있는데, 어떤 분께서 암기 말고 다른 방법이 없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정도 기초가 쌓이면 다른 방법으로 공부할 수 있는데, 처음에는 계속 외워야 됩니다’ 했더니 굉장히 좌절하셨어요(웃음).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으시잖아요. 그럴 때 알려주시는 비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기초를 쌓는 훈련을 많이 해야 돼요.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는 건, 기본 1형식부터 5형식까지 문장을 완벽하게 외우면 기본적인 문장 구조가 체화될 거라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쉬운 텍스트를 가지고 공부하시는 게 좋은데요. 자신이 하는 일과 관계가 있거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책을 쉬운 것부터 읽으시는 거예요. 많이들 오해하시는 게, 영어 공부를 하려면 당장 <코리아헤럴드>나 <타임>를 읽어야 할 것처럼 생각하시는 건데요. 처음부터 그렇게 할 수는 없잖아요. 저도 뉴질랜드에 처음 갔을 때 길거리 표지판을 보고 단어 암기를 시작했어요. 맥도날드에서 쟁반에 깔려 있는 종이에 쓰여 있는 단어들도 외우고요. 그러면서 점차 단어 수준을 올렸거든요. 제가 볼 때는 그런 방법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외국어는 오랜 기간 꾸준히 공부해야 하니까, 시작부터 부담이 되기도 해요.


짧은 시간에 실력을 늘리려면 하루 종일 하면 될 것 같아요. 10년 동안 하루 한 시간 공부하는 것보다 6개월 동안 하루에 6~7시간씩 공부하는 게 효과가 확실히 빠르거든요. 그냥 외국인 친구들과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수준을 원하시면 다를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 영어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으시다면 적어도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하루 종일 영어를 공부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영어에도 신조어, 줄임말이 많죠?


그렇죠. 작년쯤에 현대 소설을 번역하는데 ‘R.I.P’이라는 단어가 나왔어요. ‘rest in peace’의 줄임말인데, 그때만 해도 그 의미를 몰랐어요. 그래서 그냥 ‘R.I.P’로 남겨놓은 채로 출판사에 초고를 보냈는데, 편집자 분께서 ‘rest in peace’라는 뜻인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때 반성을 했죠(웃음). 따로 공부가 필요하구나, 하고요. 한국어도 마찬가지이지만 요즘은 영어도 약자로 많이 쓰니까요.

 

번역가는 계속 공부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제 딸이 중3인데, 나중에 절대 번역가는 되지 않겠다고 해요(웃음). 엄마처럼 나이 들어서도 공부하고 싶지 않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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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는 숨어있는 존재


영어만큼이나 한국어에 대한 감각도 중요할 텐데요. 이런 감각은 어떻게 키우세요?


번역 초기에는 책도 많이 읽었고요. 문장을 유려하게 쓰기 위해서 드라마도 굉장히 많이 봤어요. 보면서 대사를 받아썼죠. 옛날 소설들을 보면 다 문어체로 되어있더라고요. 저는 그게 너무 지루해서 ‘나는 그렇게 번역하고 싶지 않아’라는 생각을 했어요. 묘사 같은 부분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인물들의 말은 스크립트에 있는 것처럼 재밌게 쓰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까 제가 구어체를 잘 쓸 수 있을지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아침드라마부터 시작해서 미니시리즈까지 다 보고 좋은 대사가 나올 때마다 받아썼죠. 그게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됐어요. 시를 읽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됐고요.  
 
작품은 번역을 거치면서 재창작된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에 비해 번역가가 주목 받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극소수의 번역가를 빼놓고는 그렇죠. 그나마 조금 희망적인 건 옛날보다 독자들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거예요. 그만큼 번역에 대한 요구치도 높아졌지만, 동시에 번역을 음미하면서 읽는 분들도 많아지셨거든요. ‘믿고 보는 번역가’에 대한 이야기도 하시고요. 제가 번역한 작품이 출간되면 리뷰를 찾아서 보기도 하는데, 가끔 ‘박산호 번역가가 번역해서 믿고 본다’고 하시면 너무 뿌듯한 거예요. ‘나름 고생한 게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느낌이 들죠.

 

‘숨은 조력자’처럼 여겨져서 힘들 때는 없으세요?


조력자도 아니고 그냥 숨은 사람, 얼굴 없는 사람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영화 <히든 피겨스 Hidden Figures>를 보면서 제목을 너무 잘 지었다고 생각했어요. ‘figure’가 숫자라는 의미도 있지만 사람이라는 뜻도 있잖아요. 사람과 숫자를 다루면서 거기에 숨어있는 걸 밝혀내는 이야기인데, 제목을 정말 잘 지은 것 같아요.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너무 공감했어요. 어쨌든 번역가도 숨어있는 존재잖아요. 작품이 좋으면 원작이 너무 뛰어나다고 하지, 번역을 잘했다고 말하지는 않잖아요(웃음). 반대로 책 내용이 안 좋으면 ‘번역이 이상해서 그런 걸 거야’라고 말할 때가 있죠(웃음). 『대리사회』를 읽었을 때도 번역가는 정말 대리기사와 똑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을 계속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번역의 즐거움’은 무엇일까요?


제일 첫 번째는 저의 생계 수단이라는 거죠. 아시겠지만 여자가 나이 들어서도 계속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잖아요. 번역은 체력이 허락하고 독자들과 출판사가 받아주는 한 계속 할 수 있어서 굉장히 좋은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책을 너무 좋아하기도 하고요. 번역을 하기 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책을 실컷 읽으면서 돈도 받다니, 이런 환상적인 직업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을 해보니까 실제로 그런 것 같아요.

 

SNS에서 손목 통증을 호소하시는 걸 봤어요(웃음).


컴퓨터를 오래하는 일들이 다 그렇듯이 육체적인 직업병은 있죠(웃음). 이제 운동도 좀 해야 될 것 같고요. 같은 출판 업계에서도 번역가는 가리워진 존재 같으니까, 그런 게 조금 안타깝죠. 가장 중요한 건 인공번역이 나와서 떨고 있는 거예요(웃음).

 

컴퓨터가 단어의 뜻을 빠르게 찾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많은 의미 중에서 딱 맞는 하나를 고를 수 있을까요?


실용서처럼 정해진 틀 안의 이야기는 번역기에게 넘어가고 문학이나 시, 철학 같은 경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런데 실용서나 자기계발서 같은 비교적 쉬운 일을 할 때도 있어야 되잖아요. 사람이 항상 어렵고 까다롭고 힘든 일만 할 수는 없는데 ‘그건 기계가 하니까 너희들은 어려운 것만 해’라고 하면 정말 곤란해지는 거죠. 게다가 번역료가 그렇게 높지 않거든요. 책이 많이 팔리지 않는 상황이니까요. 들이는 노력이나 품에 비하면, 3D 업종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큰 대가를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죠.

 

번역가들의 처우가 좋은 편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도 저는 굉장히 운이 좋은 극소수에 포함되어서 자리를 잡았지만, 자리를 잡기도 굉장히 힘들어요. 오히려 영상 번역 같은 경우는 단가가 계속 떨어지고 있어요. 제가 영상 번역으로 번역 일을 시작했는데, 그때가 15년 전이거든요. 그때보다도 단가가 더 낮아지고 있다고 해요.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있는데 말이죠. 어떤 분들은 하루키처럼 다른 번역가들도 외국에 가서 일하는 줄 아시지만 그렇지 않아요(웃음). 그리고 저도 외국에 가서 일한 경우가 많았지만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은 놀러 왔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일하는 게 사실은 조금 슬퍼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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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다독가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취미도 일이 되면 쳐다보기 싫을 때가 있는데, 번역가님은 쉬실 때도 책을 읽으시더라고요. 


워낙 책 읽는 걸 좋아하다 보니까 번역 일을 하게 된 것도 있고요. 약간의 강박관념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번역가들에게는 오역을 한다는 것도 큰 상처이지만, 문장이 자연스럽지 않거나 잘 안 읽힌다는 평가를 받아도 상처가 되거든요. 그래서 책을 읽기도 하죠. 책 읽기가 재밌기도 하지만 일의 연장선상에서 문장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서 읽기도 하는 거예요. 저도 독자로서 외국 소설을 읽을 때 의아하게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 있었거든요. 그때는 번역가가 된다는 생각을 전혀 안 하고 있을 때였는데, 번역을 시작한 후에는 ‘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문장에 치중하게 됐고, 그러려면 많이 읽는 수밖에 없죠.

 

일하는 시간과 그 외의 시간이 구별되지 않는 것 같기도 해요. 힘들지 않으세요?


그건 아니에요. 이 일이 밥벌이이기도 하고, 저도 아이가 있고 가장이다 보니까 다른 분들이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만큼 해야 되는 거죠. 그런 점에서 여자 번역가에 대한 편견이 있는데, 남편이 돈을 벌어오니까 적당히 일해도 되지 않냐는 거예요. 적당히 품위 유지비 정도만 벌면 되지 않냐고요. 그런데 저는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아빠들이 일하는 만큼 하고 있는 거고, 그 정도의 책임감도 갖고 있어요. 오래 일하고 싶으니까요. 그렇지만 말씀하신 대로 번역을 끝내고 나서도 책을 읽으니까, 쉬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은 있어요.

 

머리를 비우고 싶으실 때는 어떻게 하세요?


영화를 보는데요. 문제는 영화를 봐도 ‘저거 오역인데?’ 싶은 순간이 있다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일본 영화를 봐요. 아무 생각 없이 즐기면서 볼 수 있거든요. 일본 드라마도 보고요.

 

『단어의 배신』에서 인문학적 지식을 얻는 즐거움도 컸습니다. 단어의 유래와 그 결과 파생된 의미를 따라가다 보면 역사와 문화까지 알게 되더라고요.


단어 하나를 보더라도 다양한 각도에서 보면 상상력이 커지는 것 같아요. ‘black’이라는 단어를 봤을 때도 ‘왜 보이콧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거지? 보이콧과 black은 어떤 이미지가 있지?’ 하고 생각할 수 있고 ‘왜 야한 잡지를 blue magazine이라고 했을까?’ 하고 생각하다 보면 상상의 여지가 많아지죠. 그러면서 생각이 깊어지고 넓어지고요. 그러지 않고 단어를 공식이라는 틀에 가두니까 제한적이고 틀에 박힌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단어의 변천사를 보면 재밌는 단어가 굉장히 많아요.

 

번역가를 꿈꾸는 분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책이 될 것 같아요. 저자님께도 그런 책이 있었나요?


있어요. 『번역의 탄생』이라고, 저희 번역가들에게는 성경과 같은 책이에요. 제가 학생들한테 항상 추천하는 책이기도 하고요. 예비 번역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너무 유명한 책이에요. 사실 번역에 대한 책이 거의 없거든요. 별로 길잡이가 없었죠. 그런데 『번역의 탄생』이 나와서 다들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고 굉장히 좋은 책이라고 이야기해요. 실제로도 도움이 많이 됐고요. 번역에 대한 이론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어떻게 해야 되는지 너무 정리를 잘 해준 책이에요.

 

번역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건 무엇인가요?


두 가지인 것 같아요. 하나는 원작자가 원하는 의도를 잘 옮기는 거고요. 또 하나는 의도를 잘 옮기되 독자가 즐겁게 읽을 수 있도록 번역하는 거예요. 그게 저의 모토예요.


 

 

단어의 배신박산호 저 | 유유
우리는 처음 세상에 태어나서 낯선 단어를 어떻게 배우고 익혔을까? 한 입 깨물면 아삭 소리가 나는 빨갛고 동그란 것을 가리키며 누군가 ‘사과’라고 알려 주었다. 우리는 이렇게 단어를 일대일 공식처럼 외우다가 점차 다채로운 말들의 풍경과 소리를 채집하면서 단어의 맛을 알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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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산호 #단어의 배신 #번역가 #단어
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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껌정드레스

2017.05.28

믿고 읽는 박산호님 번역서와 저서,
믿고 읽는 임나리님 인터뷰 기사,
믿고 읽는 유유 출판사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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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moog

2017.05.26

아릉다우시네요.
무척 궁금했어요.^^
내용도 간결하고 읽기도 편하고.
번창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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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