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가을 무렵이었던 듯합니다. 출간 목록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출판사마다 구력이 쌓이면 쌓인 만큼 미출간 목록이 켜켜이 쌓여 있곤 합니다. 내려고 계획했으나 여차저차 못 내고 있는 책들이지요. 핑계가 없는 건 무덤만이 아닙니다. 그 리스트 가운데 바로 이 책, 『미성숙한 국가』가 있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 쉬즈위안은 들어본 이름이었습니다. 그는 1976년생으로 비교적 젊은 사회비평가입니다. 어디 대학에라도 자리를 잡고 있으려니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그는 뜻밖에도 베이징에서 아주 유명한 인문책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처음 그를 알게 된 건 한국 출판계의 어른으로 꼽히는 한 분이 세계의 책방들을 취재해서 펴낸 책 속에서입니다. 시니컬한 사회비평가이자 작가인데, 베이징의 유명한 인문책방을 운영하다니, 정말 멋지군!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작가의 대표작이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회사의 미출간 목록에 꽂혀 있었습니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출간 우선순위 목록에 당당하게 올렸습니다. 얼른 내야지,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일 어디 맘처럼 되나요? 2016년 연말부터 올 봄까지 시절이 워낙 하수상한 탓에 차일피일 미뤄졌습니다. 원고의 실재와 마주한 건 촛불 들러 나간 어느 토요일이었습니다. 너무 추워 몸을 녹이러 들어간 카페에서 이 원고를 읽기 시작했지요. 다소 댄디한 젊은 중국인이 책도 쓰고 책방도 하는 삶이란 얼마나 멋진가, 하는 동경도 한몫 했습니다. 그런데! 원고를 읽으면서 저는 눈이 번쩍 뜨이는 것 같았습니다.
분명히 중국의 백 년 역사를 통해 중국의 현실을 논하는 그의 글을 읽고 있는데, 자꾸만 한국에 살고 있는 제가 오버랩이 되는 겁니다. 국가라는 시스템은 어지간해서는 대체가 불가능하니, 아무리 맘에 안 들어도 꼼짝없이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입니다. 추운 날 광화문에서 벌벌 떨며 촛불을 들고 서 있던 것도 바꿀 수 없으니 바꿔보자, 이런 심정이었지요.
이런 그다지 신뢰할 수 없는 국가라는 존재에 대해 우리의 감정은 대부분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갑지요. 가열찬 애국심의 호소, 또는 냉소적인 비아냥. 그런데, 그런 태도가 아니어도 국가를 바라보는 다른 시선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이 원고를 보며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역사를 통해 현재를 바라봅니다. 이런 방식은 흔하디흔합니다. 하나도 새롭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는 몇 년에 누가 무슨 일을 했고,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역사=사실의 나열’이라는 공식에서 매우 자유로운 태도를 취합니다. 사실의 채택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역사를 '바라봅니다.' 현재 시점에서 말이지요. 그래서 그를 통해 역사는 지난 어떤 순간이 아니라 오늘, 이 순간까지 이어지는 어엿한 진행형의 과정으로 성큼 다가섭니다.
중국 사람인 쉬즈위안은 자신의 조국, 중국이 영 마땅치가 않은가 봅니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래도 되는 건가 할 정도로 준열하게 자국의 현재를 직시합니다. 한국어판 서문에서는 한술 더 떠서 ‘중국인들은 사드가 뭔지도 모르고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억지 주장을 편다’고 일갈을 해버립니다. 그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는 국가를 향해 ‘미성숙’하다고 날선 비판을 내놓았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 ‘미성숙한 국가’인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쉬즈위안은 문장마다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합니다. 책 만들면서 밑줄 굵게 그어놓고 외우고 싶은 문장들이 많았습니다. 아마도 어느 때보다 뜨겁게 국가란 무엇인가를 고민했기 때문일 겁니다. 중국의 역사를 바라보고 있지만 그의 시선은 비단 중국만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다. 국가라는 선택불가의 시스템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저 같은 ‘국민’이 개인의 관점으로 이 시스템을 바라보고 있자니, 『미성숙한 국가』는 아주 유의미한 참조가 되어주더군요.
책이 나오고 나니 세상이 훌쩍 달라졌습니다. 그렇다고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의 답을 찾은 건 아닙니다. 지금도 자주 이 책을 뒤적입니다. 완성된 책을 보고 있자니, 딴 맘이 듭니다. 이제 사람들이 국가에 대한 생각일랑, 정치 뉴스 찾아보는 것일랑 좀 줄이고, 이 좋은 책을 제발 좀 알아봐줬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대통령 선거 후 ‘대통령님 책’만 인기를 끄는 이 시국은 언제쯤 끝이 날까요.
이현화(이봄에 동선동 편집자)
책 만드는 일을 오래 했다. 그 덕분에 세상에 할 줄 아는 게 책 만드는 것밖에 없다. 일상생활의 미숙함과 책 만드는 익숙함의 불균형이 심각하다. 그런데 이 일이 갈수록 어려워져 고민이다. 그래도 책 만들 때 즐거워 다행이다. 그 다음으로 즐거운 건 여행이다.
jijiopop
2017.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