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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얼마만이야. 그동안 별일 없었어? 내가 먼저 연락했어야 하는 건데. 뭐가 그리 바쁜지 나도 요즘은 정신이 없다니까. 특별한 일이 생긴 건 아니고. 첫째가 올해 고3이잖아. 하긴 그게 특별한 일이긴 하네. 요샌 주말마다 입시설명회 가는 게 일이야. 자기도 애들 초등학교 다닌다고 남일처럼 듣지 말고 일찍부터 준비하는 게 좋아. 우리도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준비가 늦어서 고생했잖아. 다들 중학교 때부터 특목고 준비하거든.
우리 아이? 잘하긴 뭘. 옛날 일이지. 지금은 서울에 있는 대학 정도만 가주면 좋겠어. 건강? 다행히 체력은 좋은 편이긴 한데 작년부턴 안 걸리던 감기도 자주 걸리고 이전보다 힘들어 하는 것 같긴 해. 면역력이 나빠졌나봐. 두고 보기가 안쓰러워 이것저것 지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해 먹이려 하는데 그것도 힘들어. 입맛이 떨어졌는지 뭘 해줘도 심드렁하더라구. 얼굴이 다 핼쑥해졌다니까. 그래서 홍삼 엑기스랑 수험생용 비타민, 그리고 시력에 좋다는 눈 영양제 챙겨 먹이고 있어. 비타민은 합성보다 천연이 좋다길래 좀 비싸긴 하지만 그걸로 골랐구. 오메가3도 같이 먹여볼까 해. 지난번에 방송에 나온 의사가 그러는데 집중력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 머리를 제일 많이 써야 할 때잖아. 도움이 된다면 뭐든 해야지.
애들 아빠야 뭐, 예나 지금이나 일밖에 모르는 양반인걸. 집에 좀 붙어 있어야 애들한테 신경을 쓰지.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챙기지 않으면 집안일이고 애들 문제고 돌아가질 않는다니까. 게다가 회사 사정이 안 좋아졌나봐. 건설 경기가 좋진 않잖아. 그래도 요즘 같은 때에 명예퇴직이니 뭐니 해서 그만두는 이도 많은데, 아직 부장 명함 달고 회사에 남아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지. 요즘은 주말에 안 나가던 예배도 나가고 있어. 목사님 말씀 듣다보면 마음이 편해지더라. 자기도 다시 나와봐.
참, 그 소식 들었어? 윤수 아빠 말이야. 자기도 들었구나. 윤수가 막내라 아빠가 나이가 많은 편이긴 한데, 그래도 예순도 안 된 나이에 암이라니. 남일 같지 않아. 우리 남편도 담배 오래 피웠잖아. 지금은 끊었지만. 그동안 건강에 큰 문제는 없었는데 작년 건강검진에서 혈당이 높다고 해서 깜짝 놀랐지 뭐야. 어머님이 당뇨 합병증으로 고생을 하셨잖아. 그이도 간 기능이 나빠진 건지 맨날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 한약도 몇 첩 먹여봤는데 소용이 없더라. 요즘 운동 시작하고 - 그래 봤자, 동네 헬스클럽이지 뭐 - 좀 나아진 것 같긴 한데 내가 좀 더 챙겨줘야 할 것 같아서 이것저것 먹이고 있어.
가만있자…. 종합 비타민하고 홍삼, 그리고 프로폴리스. 면역력에 좋고 항산화 효과도 있대. 비타민C는 두 알씩 하루 세 번 먹어. 유명한 교수가 쓴 책을 본 적 있는데 그분 가족들은 다 그렇게 먹는다고 하더라고. 자기도 들어봤지? 그분 강의에서 그러는데 당뇨병도 고쳤대. 항암 효과도 있다니깐. 아, 강의는 안 들어봤구나. 내가 카톡으로 보내줄게 한번 들어봐. 우리 그이도 매년 독감 한두 번씩은 치렀는데 비타민C 먹은 뒤부턴 감기에 덜 걸리는 것 같아. 요즘은 유산균도 챙겨주고 있어. 술 많이 먹는 남자들은 유산균 꼭 먹어야 한대. 우리 남편도 술 마신 다음 날 화장실에 자주 가거든. 우리나라에도 대장암 환자가 늘고 있다던데 유산균이 장 건강엔 필수래. 어디서 들었냐고? 방송에 자주 나오는 의사 있잖아. 얼마 전에 그 사람이 홈쇼핑에 나오길래 바로 주문했지. 유산균도 다 같지 않고 성분을 따져 봐야 한다더라고. 그분 이야기는 믿음이 가더라. 그 의사 이름이 뭐더라….
그나저나 요즘은 건망증이 심해져 큰일이야. 사람 이름도 금방 생각이 안 나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도 뭣 땜에 열었는지 잊어버릴 때가 있다니까. 이러다 치매 걸리는 거 아닌가 몰라. 갱년기라서 그런가. 자기는 그런 문제 없어? 괜찮다니 다행이다. 난 식은땀도 자주 나고 가슴도 자주 두근거려. 열이 확 올랐다 내리기도 하고. 아이 입시 준비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어쩔 수 없지 뭐. 요즘 입시는 아이 건강도 중요하지만 엄마들 체력 싸움이기도 하잖아. 다른 때라면 나야 밥 잘 먹고 건강에 문제 없으니 별 신경을 안 쓸 텐데, 지금 같은 때는 내가 잘 버텨야 애들이랑 남편도 챙기지. 그래서 갱년기에 좋다는 영양제 챙겨 먹고 있어. 호르몬제는 아니구. 달맞이꽃이랑 석류에서 추출한 게 부작용도 없고 좋대. 건망증 때문에 오메가3도 같이 먹어. 무릎이 뻐근한 게 뼈가 약해진 것 같아서 칼슘이랑 비타민D도 먹고 있구.
근데 자기도 영양제 이것저것 많이 먹지 않았어? 예전엔 밖에서 만날 때도 챙겨가지고 다니면서 먹었잖아. 나한테 권해주기도 하구. 요즘은 뭐 먹고 있어? 그러지 말고 좋은 정보 있음 나한테도 알려줘. 의사가 그만 먹어도 된다고 했어? 어느 병원에 다니는데? 저녁에만 하는 병원도 있구나. 반딧불이라니, 이상한 이름의 병원도 다 있네. 근데 그 의사는 왜 먹을 필요가 없다고 하는 거래? 좀 특이한 의사인가 봐. 티비에 나오는 의사는 아니지? 그래도 자기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걸 보니 믿을만한 사람인가 보네. 그래서 종합비타민은 안 먹는다는 거구나. 과일이야 챙겨 먹으려고 하지. 근데 충분한지 모르겠어. 방송에선 요즘 과일이나 채소엔 예전만큼 비타민이 안 들어 있어서 비타민제를 따로 먹어야 한다던데. 아, 그렇다고 해도 부족해서 따로 비타민제를 챙겨 먹을 정도는 아니라는 거네?
그럼, 오메가3도 따로 먹을 필요 없다고 해서 안 먹는 거구나. 심혈관 쪽에 병이 없으면 굳이 도움이 안 된다고 그랬어? 하긴 나도 심장에 문제는 없는데. 생선이야 우리 식구들은 잘 먹는 편이지. 건강에 좋은 음식이잖아. 어려서부터 먹는 버릇을 들여서 애들도 잘 먹는 편이고. 비타민C는? 그것도 먹지 말라는 거야? 비타민C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수용성이라 부작용이 없고 소변으로 다 나온다던데. 결석? 정말? 애들 아빠가 몇 년 전에 콩팥에 결석이 생겨서 응급실까지 갔잖아. 그때 얼마나 심하게 아팠는지 지금도 결석이라면 흠칫흠칫 놀란다니까. 나는 비타민C를 먹으면 속이 자꾸 쓰려서 안 먹고 있었지만 결석이 있는 사람들이 조심해야 한다는 건 전혀 몰랐는데.
그나저나 그 의사 말은 요즘 TV에 나오는 의사들 이야기와 달라서 좀 놀랍다. 하긴 TV에 의사들이 많이 나오긴 하는데 가끔은 저 말이 맞나 싶을 때도 있어. 물구나무 서기를 하면 머리에 혈액 순환이 좋아져서 탈모가 치료된다고 하지 않나, 유산균을 먹으면 임신이 된다고 하지 않나. 자기 말을 들으니 나도 그 병원에 가서 물어봐야 할 것 같아. 그 많은 영양제 통을 식탁 옆에 쌓아두고 있으면서도 의사랑 직접 상의할 생각은 못해 봤네. 그 동네 알지. 우리 집에서도 멀진 않잖아. 비타민D는 피 검사를 해서 확인해 보는 게 좋다고 하니 자기 말대로 가서 한번 검사해볼게. 식구들 여러 가지 영양제 챙겨 먹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그러지 않아도 된다니 반갑긴 하지만, 그렇게 아무것도 안 먹어도 되나 싶어 또 불안하기도 하고 그러네. 정말 안 먹어도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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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건강기능식품 생산 규모는 2004년 2,500억에서 2015년 1조 8,000억으로, 10년간 7배 이상 성장했다. 우리나라 1년 의약품 소비량이 5조 원인 것을 고려하면 매우 큰 규모다. 이러한 인기에는 약과 달리 부작용이 없다는 믿음이 큰 영향을 미쳤지만 건강기능식품이라고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고용량의 베타카로틴(비타민A 전구체)이 흡연자에게 오히려 폐암의 위험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으며,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비타민E 보충제가 전립선암의 위험을, 셀레늄은 당뇨의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비타민C의 경우 상한 섭취량인 2그램 미만에서도 요로 결석의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건강한 식습관을 통해 필요한 영양소를 충분히 섭취하고 있다면 대개 추가적인 건강기능식품 복용은 불필요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대인이 먹는 식품은 과거와 달리 비타민 함량이 줄어든 데다가 식생활도 불규칙해서 음식만으로는 영양소를 충분히 얻기 어려우므로 비타민제를 따로 복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 식품들을 수거해 영양소 함량을 분석한 데이터베이스와 주요 음식에 대한 섭취 빈도를 기반으로 매년 발표되는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를 참고하면,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은 음식을 통해 주요 비타민을 권장량 이상 섭취하고 있다.
방송에 출연해 의학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시술이나 제품에 대해서 과장해 이야기하는 의사를 ‘쇼닥터’라고 부른다. 쇼닥터의 등장 배경으로 종편 건강 정보 프로그램들의 성장을 들 수 있다. 의학 지식이 부족한 시청자 입장에서 방송을 통해 건강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의사가 직접 출연해 이야기한다면 그 신뢰도는 더 높아진다. 문제는 의사가 근거가 부족한 정보를 그럴 듯하게 포장해 이야기할 때 생긴다. 건강정보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보다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쇼닥터 문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규제 필요성에 대한 주장도 커지고 있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최근 대한의사협회가 의사의 방송 출연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등 자정 노력을 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2016년 대한의사협회는 방송에서 자신이 만든 제품을 발모 효과가 있다고 홍보한 모 의사에게 의사의 품위 훼손을 사유로 회원 권리 정지 2년 및 위반금 2,000만 원의 징계를 내렸다.
오승원(서울대병원 강남센터 가정의학과 교수)
가정의학과 의사입니다. 만성 질환 예방과 건강 증진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환자를 만나고 그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에세이 <반딧불 의원>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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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