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여행의 기억이 좋기만 할까요?
여행을 떠나는 우리는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도시에서 낭만적인 추억 하나쯤 만들고 싶어 합니다. 고민 고민해서 선택한 도시가 최고의 여행지가 되어주면 좋겠지만 간혹 자신이 기대한 것과 맞지 않는 경우도 생깁니다.
글ㆍ사진 백종민/김은덕
201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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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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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토바이도 타 보고, 치마도 입어 보고, 타나카도 발라봤지만 그들의 삶에 닿을 수 없었어요

 

우리가 어떤 여행을 하고 있는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종종 있습니다. 그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질문은 ‘여행한 곳 중에서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인데요. ‘한 달씩 머물다 보면 정이 들지 않는 도시가 없어서 한 도시만 꼽자면 다른 도시들에게 미안해집니다’라고 대답하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 질문 안에 ‘당신들의 수많은 여행을 바탕으로 내가 가서 후회하지 않을 딱 한 군데를 추천해 주십시오’란 숨은 뜻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분들의 취향을 알 수 없으니 다짜고짜 내가 좋았던 도시를 추천할 수 없지요. 그러나 질문을 조금만 바꾸면 그 여자도 저도 할 이야기가 참 많아요.

 

모든 여행의 기억이 좋기만 할까요? 사실 비행기 표를 쥐여주고 다시 가라고 한다면 한숨부터 낼 쉴 도시가 몇 곳 있습니다. 미얀마 북부에 만달레이란 도시 이름을 많이 들어보셨을 텐데요. 영국 식민 시절 조지 오웰이 식민 경찰로 머물면서 쓴 『버마 시절』이란 책의 배경이기도 하고, 석가모니가 제자 아난존자(阿難尊者)와 함께 다녀간 전설을 품은 곳이기도 합니다. 석가모니는 만달레이 언덕에 올라 도시를 굽어보며 2500년 뒤에 위대한 도시가 세워질 거라는 성스러운 예언을 하기도 했죠. 요즘 유럽과 북미에서 힙한 종교로 통하는 불교의 문화를 볼 수 있는 파고다가 가득하고 도시 전체에 강렬한 오리엔탈리즘의 이미지를 품고 있기도 해서 수많은 여행자가 찾아옵니다.

 

도시 역사와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문화의 향기가 궁금했습니다. 그 여자와 함께 만달레이에 머물기로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고, 다른 이들이 엄지손을 추켜세우는 여행지이니 우리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겨 줄 거라 믿었죠.

 

하지만 우리는 약속했던 일정을 채우지 못하고 도망치듯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많은 도시를 여행하고 다녔지만 일정을 틀면서까지 빨리 떠나고 싶은 도시는 만달레이가 처음이었습니다. 사건 사고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오해는 마십시오. 그 사건들 때문에 만달레이를 떠난 것도, 다시 가기 힘든 것도 아닙니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여행 중 마주했던 고생스러운 순간들까지도 추억이란 이름으로 각색되기 마련입니다. 그 여자와 저는 만달레이에서 머문 기억들을 떠올려 보면 아련하고 그립기도 하지만 다시 한번 그 기억을 현실에서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그곳에 가기 전 그렸던 모습과 현실에서 마주한 도시의 풍경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그 간극에 놀랐던 것일까요? 아니면 그때 입은 마음의 상처들이 아직 아물지 않은 것일까요?

 

여행을 떠나는 우리는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도시에서 낭만적인 추억 하나쯤 만들고 싶어 합니다. 고민 고민해서 선택한 도시가 최고의 여행지가 되어주면 좋겠지만 간혹 자신이 기대한 것과 맞지 않는 경우도 생깁니다. 하지만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와 ‘이번 여행은 만족스럽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건 쉽지 않아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할수록 더욱 그렇죠. 그래서 별로였던 여행의 추억도 아름답게 포장하곤 합니다. 별로인 여행지는 그냥 별로라고 말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요?

 

여행의 실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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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뻬인 다리의 노을 풍경. 사진 너머로 무엇이 보이나요?

 하루는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를 구경하다 각기 다른 세 명의 경찰관에게 벌금을 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교통 체계에 당황하고 실수해서 경찰에게 딱지를 받고, 다른 경찰에게는 ‘교통 법규를 어겼으니 딱지를 떼어야 하는데 뒷돈을 좀 주면 그냥 넘어갈게’라는 요구를 받았습니다. 정식으로 벌금 고지서를 발급하려면 서류 과정이 복잡해지니 현장에서 경찰관이 적정한 선에서 처리하려고 뒷돈을 요구했던 거죠. 하루에 경찰관 세 명을 만났더니 우리 주머니에는 점심 먹을 돈도, 오토바이 주유비도 남지 않았죠.

 

만달레이에 사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입담배 ‘꽁야’를 씹어요. 그 입에는 빨간 침이 시도 때도 없이 나와서 얼핏 보면 시체를 뜯어먹다 고개를 든 좀비들처럼 보이죠. 꽁야에는 각성 성분 이외도 이를 상하게 하는 성분도 들어있어서 듬성듬성 검게 삭은 이가 드러나요. 그런데도 씹는 건 강력한 각성 작용이 피로와 졸음을 막아주거든요. 육체노동을 해야 하는 서민들이 꽁야를 많이 씹는 이유이죠.

 

유명한 관광지인 우뻬인 다리 사진을 본 적 있나요? 1806개의 티크 나무로 만들어진 다리의 길이는 1.2km나 되고 일몰 시간이 되면 호수에 비치는 다리의 풍경이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하지만 운치 있는 풍경 뒤에는 썩은 오물 냄새로 코를 막아야 하고 죽은 돼지들의 사체가 둥둥 떠다니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죠. 엽서 속 더없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우뻬인 다리는 감정 없는 카메라의 눈이었을 뿐이죠.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을 ‘동양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서양의 지식’이라고 간명하게 정의 내린 바 있죠. 만달레이는 서양인들이 동양에서 보고 싶어 하는 이미지들의 총체를 모아 놓은 도시입니다. 19세기 영국군에게 점령당한 미얀마 마지막 왕조의 수도로써 오리엔탈리즘을 매력을 한껏 볼 수 있는 곳으로 말이죠. 우리가 만달레이에 가기 전, 보고 싶어 했던 모습 또한 이와 다를 바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금빛으로 뒤덮인 불교 유적의 평화로운 이미지, 때 묻지 않은 순박한 사람들, 우뻬인 다리의 목가적인 풍경 말이죠. 겸허한 분위기 속에서 아침마다 이루어지는 탁발 공양도 그 이미지를 만드는 데 한몫하고요.

 

그 남자와 제가 만달레이와 친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폭이 넓은 천으로 롱 치마처럼 입는 이들의 전통 의상인 ‘론지’를 입고 불편하게 오토바이크를 타기도 했고요. 천연 선크림인 황토 빛의 ‘타나카’를 연지 곤지처럼 바르고 길거리를 돌아다니기도 했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디서도 석가모니가 예견했다던 위대한 도시로서의 만달레이는 만나지 못하고 도망치듯 이곳을 떠났어요. 우리의 편견과 실재의 만달레이 그 사이에서 오는 괴리를 넘을 수 없었던 거죠. 그렇게 이 도시는 여전히 다시 가고 싶지 않은 도시로 쓸쓸하게 우리 맘에 묻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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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만달레이 #여행 #버마 시절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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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ight486

2017.11.13

정말 보기 드문 진솔한 글 감사합니다.
두 작가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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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민/김은덕

두 사람은 늘 함께 하는 부부작가이다. 파리, 뉴욕, 런던, 도쿄, 타이베이 등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도시를 찾아다니며 한 달씩 머무는 삶을 살고 있고 여행자인 듯, 생활자인 듯한 이야기를 담아 『한 달에 한 도시』 시리즈를 썼다. 끊임없이 글을 쓰면서 일상을 여행하듯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