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합니다. 꽉 차지도 않으면서 외롭지도 않은, 그런 숫자라서 말이에요. 아직 무언가가 남아 있을 것 같은 예감도 주잖아요. 사람도 세 번은 만나봐야 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러니까, 세 번째 여러분과 만나는 지금이 무척 설레고 긴장된다는 뜻입니다. 안녕하세요, ‘생선 김동영의 읽는인간’을 진행하는 생선입니다. 벌써 세 번째 시간인데요. 지난 두 번의 방송, 어떠셨는지 궁금하네요. 저도 잘 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만, 주변의 반응이 엇갈리더군요. 오늘은 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인터뷰- 오은 시인 편>
김동영: 라디오 작가를 하던 때가 있었는데요. 그때 DJ가 정다은 아나운서였거든요. 후배시죠? 아침 프로그램이었는데 시를 읽어주는 코너가 있었어요. 그런데 DJ가 계속 오은 시인님 시집을 가져오는 거예요. 그렇게 시인님의 시집도 알게 됐고, 학벌도 굉장히 좋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웃음)
오은: 재수했습니다.(웃음)
김동영: 사실 저는 시인이라면 이병률 시인밖에 몰랐거든요. 그런데 우연히 같이 일했던 DJ 덕분에 『유에서 유』를 알게 됐고요. 두 번째 시집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도 알게 됐죠.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는 시집 제목을 너무 잘 지으셨어요.
오은: 제가 지은 건 아니고요. 편집자이자 시인이기도 하셨던 김민정 시인께서 지어주셨어요. 그 시집 제목이 진짜 어렵게 나왔어요. 인쇄 들어가기 3일 전쯤에 결정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도 원고를 열 번은 읽었는데 시 구절이나 제목에서 도저히 시집 제목을 찾을 수 없더라고요. 그런데 민정 누나가 “은아,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어때?”라고 하셨죠. 저는 처음에는 그런 구절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나중에 다시 보고 이걸 왜 놓치고 지나갔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김동영: 최근 활동이 진짜 많으세요. 먼저 ‘응컴퍼니’라는 문화기획사를 창업하셔서 대표직을 맡고 계시네요?
오은: 네, 공간을 기획하고 설계할 수 있는 건축가 한 명이 있고요. 저는 기획자예요. 행사나 이벤트를 기획하고요. 음악 쪽 전문가가 또 있어요. 어떤 행사가 공간을 꾸미는 데 최적화된 TFT라는 생각이 들어서 올해 중반 의기투합을 해서 만든 회사예요. 얼마 전에는 록페스티벌에서 스테이지 하나를 저희가 기획, 운영하기도 했어요.
김동영: 신생 회사인데 좋은 거 많이 하셨네요.
오은: 그렇지만 뭐, 요즘은 사람들을 만나면 항상 하는 얘기가 “사업하지 마세요.”예요.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아요. 그냥 기획하고, 궁리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인데 세금계산서, 영수증, 이런 것들 때문에 너무 머리가 아픈 거예요. 보통 일이 아니구나, 내가 왜 이런 일을 하겠다고 마음 먹은 거지, 이러면서 하루에도 스무 번씩은 후회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우당탕탕 하면서도, 하고 있습니다.(웃음)
김동영: 또 파스텔뮤직 수석기획자세요. 여기서는 무슨 일을 하세요?
오은: 모든 기획을 총괄하고, 컨펌하는 사람이고요. 아직 오픈은 안 했는데 시인과 뮤지션이 같이 음반을 하나 만들려고 해요. 그런 기획들도 궁리하고 있어요.
김동영: 서점 프렌테를 통해 프로젝트 ‘이씀’도 시작하셨다고 하고요.
오은: ‘이씀’은 책 추천 서비스예요. 주제를 정하는 거죠. 이번 달 주제는 ‘읽기와 쓰기’예요. 읽기와 쓰기에 도움이 되는, 사기를 진작시키는 책들을 저와 유희경 시인, 프렌테 매니저가 각각 스무 권씩 골라서 모아놓은 책장이 있거든요. 매일 어떤 책이 팔렸나 보는데요. 내가 추천한 책이 팔리면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어요. 딱 한 권이 팔려도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김동영: 다음 스토리펀딩 ‘죽이는 글쓰기’에도 참여하고 계시죠.
오은: 사실 제가 문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해서 글쓰기에 대한 강의를 어려워했는데요. 너무 전문적인 강의가 아닌 친숙하게 글을 쓸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자고 해서 시작한 거예요. 매주 참여자 분들께서 글을 두 개씩 올려주시면 제가 정성스럽게 ‘어떻게 이 글이 더 나아질 수 있을까’를 코멘트하는 방식인데요. 악플을 잘 못 달겠더라고요. 어떤 분은 ‘이 글은 다 문제인데 이게 더 문제다’라고 쓰신대요.(웃음) 그런데 저는 ‘이 글이 더 좋아지려면 이게 필요할 것 같다, 이 문장을 나눠서 써보면 좋지 않을까요’ 하는 식으로, 조언을 드리는 정도로 하고 있어요. 사실 한 주에 글 두 편을 써서 내는 게 쉽지가 않잖아요. 그 분들도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 자체가 ‘죽이는’ 글쓰기 같은 거죠.
김동영: 아! 그 ‘죽이는 글쓰기’가 그런 의미였군요.
오은: 네, ‘죽여준다’ 할 때의 그 ‘죽이는’인데요. 죽이는 글쓰기를 계속 하면 나중에 자기 자신을 살리는 글쓰기를 하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김동영: 저는 진짜 이렇게 다양한 일을 하고 계신 줄 몰랐고요. 왠지 시인 하면 그런 느낌이 있잖아요. 조용하고, 골방에서 지낼 것 같고 말이죠. 시 한 권을 팔면 육백 원을 벌고, 이런 것처럼요.(웃음)
오은: 폐병 걸리고, 라면에 소주도 마시면서, 원고지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쓰고요.(웃음) 시인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편견이 있는 것 같아요. 가령 소개팅 자리에서 제가 시인이라고 소개하면 상대가 놀라는데요. 그 놀람이 좋은 놀람만은 아니에요. 이상할 것이다, 성격이 예민하고 별날 것이다,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라는 선입견이 있는 것 같거든요. 전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사람들에게 시인에 대한 환상 혹은 편견 같은 것들이 21세기에도 자리잡고 있다는 게 충격적이어서요. 시인으로서의 사명이 생겼어요. 한국을 대표하는 훌륭한 시인이 된다는 건 너무 먼 일이고요. 당장은 시인에 대한 편견을 깨는 시인, 시인도 이렇게 다양한 일을 하고, 밝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시인이 되려고 해요.
김동영: 글쓰기 강의를 하면서 다양한 분들도 많이 만나셨을 것 같아요.
오은: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혼술쓰기’라는 강좌를 열었어요. 그날의 맥주를 마시면서 글을 쓰는 거예요. 첫 번째 쓴 글이 ‘자기소개서’였는데요. 회사에 내는 자기소개서는 나를 과장하잖아요. 내가 좀 낙천적이면 ‘저는 분위기 메이커예요, 누구와 있어도 분위기를 주도할 수 있어요’라고 해요. 여기서는 그런 게 아니라 나의 어두운 면, 나의 흑역사, 이런 것들을 써보았어요. 6월에는 유서까지 썼는데요. 흥미로웠던 게 강좌에 오시는 분들이 20-30대 정도인데 ‘공증’ 혹은 ‘유산’이라는 개념 자체가 희미하더라고요. 게다가 20대 경우에는 정말 줄 게 없어요. 교통카드 충전되어 있는 것, 이런 건 안 되니까요.(웃음) 그런 점에서 어렵긴 했지만 내가 내일 죽는다고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들한테 글을 써보라고 했더니 굉장히 진솔한 글이 나오더라고요. 4월에는 반성문을 썼는데 눈물바다였어요. 강좌를 하면서 남의 글을 들으면서 나와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숭고한 경험인지 다시 한 번 느꼈죠.
김동영: 요즘 가장 즐거울 때는 언제예요?
오은: 글 쓸 때인데요. 예전에는 시간이 많이 났어요. 시간이 날 때는 글을 썼거든요. 그런데 직장에 취직하고, 야근도 많고, 이러면서 시간을 내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더라고요. 시간을 내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매주 일요일은 무조건 글을 쓰는 날로 정해서 쓰고 있어요. 결혼식도 아주 친하지 않은 이상은 가지 않아요. 일요일은 여간해서는 집 밖에 안 나가고,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있으려고 노력합니다. 왜냐하면 결국 글은 앉아 있어야 쓰더라고요. 메모도 많이 하고 그렇더라도 일정 시간 이상을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한 줄이라도 쓰고 글을 하나 완성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동영: 재미 없는 순간은 언제예요?
오은: 사업을 하고 있잖아요. 이제 알겠더라고요. 제가 누구한테 싫은 소리를 못하는 것 같아요. 싫은 소리를 해야 할 때마다 회피하고 싶어요. 싫은 소리를 하는 게 너무 싫고 힘들더라고요. 가능하면 싫은 소리를 안 하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또 그럴 수만은 없어서 참 곤욕스럽습니다.
김동영: 시는 오은 시인님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오은: 실은 제가 “등단이 뭐예요?”라고 하면서 등단을 했기 때문에 시와 가깝지 않았어요. 등단 후에도 시인의 정체성을 얻기까지는 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고요. 시가 뭔지도 몰랐어요. 그냥 내가 잘하는 건가보다, 그러니까 등단을 했겠지, 라고 생각했는데요. 지금은 시를 쓸 때 가장 행복해요. 게다가 저는 싫증을 굉장히 잘 내서 어떤 일을 십 년 동안 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거든요. 취미도 자주 바뀌고, 사람도 바뀌고, 좋아하는 장르도 바뀌고 그런데요. 15년 넘게 하는 유일한 일이 시 쓰기예요. 이쯤되면 정말 안 하고는 못사는 일 같다는 생각이 들죠. 이런 일이 있다는 게 좋아요. 시는 저를 지탱해주는 느낌이에요.
김동영: ‘김동영의 읽는인간’ 고정 질문이 있어요. 첫 번째 질문, 최근에 구매해놓고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있다면?
오은: 가져오기도 했는데요. 최은미 소설가의 『아홉번째 파도』라는 장편 소설입니다. 최은미 작가님의 첫 장편으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기대를 많이 하고 구매를 했는데 거의 6일 째 가방에 넣어두고 책날개만 네 번 읽은 것 같아요. 빨리 짬을 내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동영: 두 번째, 내 생애 처음 산 책?
오은: 어렸을 때 꿈이 탐정이었어요. 셜록 홈즈를 너무 좋아해서 코난 도일이 쓴 『너도밤나무의 비밀』이라는 추리 소설을 처음 샀죠. 하지만 제가 돈을 벌어서 처음으로 산 책은 『표준국어대사전』입니다. 30만 원, 첫 월급 받아서 샀습니다.
김동영: 가장 좋아하는 책이 사전이라면서요?
오은: 네, 저희가 단어를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하루에 몇 단어 쓰시는 것 같아요?
김동영: 저는 되게 어휘가 약해요. 약 500개?
오은: 네, 대한민국 평균이 500~1000개래요. 저는 상대적으로 좀 더 말을 많이 한다고 느끼는데 그래도 천 단어 정도밖에 안 되겠죠. 그래서 사전에 있는 무수한 단어들 중 내가 안 쓰고 있는 단어가 뭘까 궁금했어요. 또 단어에는 뜻이 굉장히 많은데 우리는 1, 2, 3번 뜻으로만 사용해요. ‘먹다’ 같은 단어도 뜻이 아홉 개인데 1, 2, 3번 뜻만 사용하는 거죠. 그런 단어의 말맛을, 본연의 의미를 찾아주자는 생각으로 시도 쓰고, 소개도 하고 있어요. 찾으면서 기쁘기도 하고요. 최근에 찾은 단어는 ‘팽패롭다’예요. 성미가 까다롭다는 의미래요.
김동영: 단어가 예쁘네요. 시를 쓸 때 그런 단어를 많이 알면 좋을 것 같아요.
오은: 하지만 의외로 저는 시를 쓸 때 삐죽 튀어나온 단어는 잘 안 쓰게 돼요. 어떻게 하면 일상적인 단어의 새로운 면을 보여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죠. 어휘력을 자랑하지는 않는다, 그게 저의 철칙이기도 합니다.
김동영: ‘김동영의 읽는인간’ 고정질문 세 번째인데요. 신작 나오면 꼭 읽어보는 작가가 있으세요?
오은: 한 명을 꼽긴 어렵고요. 첫 시집, 첫 소설을 내는 모든 작가라고 말할 수 있어요. 제 첫 책이 나온 순간이 아직도 기억 나요. 다른 책이 나왔을 때보다 백 배는 기뻤던 것 같아요. 게다가 첫 책은 자기의 좋은 면만 보여줄 수는 없잖아요. 서툰 부분도 있고요. 가장 인간적으로 끌리는 책이 첫 책이어서 모든 작가들의 첫 책을 사랑합니다.
김동영(작가)
김동영이라는 이름 석 자보다는 '생선'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 대학에서 관광경영학을 전공하였고 마스터플랜 클럽에서 허드렛일을 한것이 인연이 되어, 음반사 문 라이즈에서 공연과 앨범 기획을 담당하였다. 델리 스파이스와 이한철, 마이 앤트 메리, 전자양, 재주소년, 스위트 피의 매니저먼트 일을 담당하면서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복고풍 로맨스」, 「항상 엔진을 켜둘게」, 「별빛 속에」, 「붉은 미래」등의 노래를 작사하였다. MBC FM4U [뮤직스트리트], [서현진의 세상을 여는 아침], [K의 즐거운 사생활] 등에서 음악작가로 일했다.『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나만 위로할 것』 두 권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