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으면 일주일에 책 한 권 읽기가 쉽지 않다. 두 시간이면 몇 백 페이지쯤 읽어내는 속독가들도 있지만, 집중할 수 있는 두 시간 만들기가 어디 쉬운가? (술만 잘 먹더라는 주변의 타박이 들린다.) 파스넷을 들고 스케치북에 엎드린 아이는 십 분만에 색종이를 달라한다. 단체 대화창은 쉼 없이 휴대 전화를 울리고 투자한 코인은 내렸는지 어쨌는지 불안하다. 주차된 차량을 빼달라 전화가 오고, 분리수거는 꼭 수요일에만 해야 하는 그런 일이 누구의 삶에나 넘쳐난다.
그러니 책을 읽기 위해서는 이런 저런 자투리 시간을 모아 조각보를 만들듯 한 권씩 읽어가는 수밖에 없다. 내 경우에 버스보다 지하철을 타는 것에는 멀미 없이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 읽기는 꽤 이런저런 일과 함께 할 수 있어 범용성이 좋은 활동이다. 먹으면서 마시면서 심지어 화장실에 앉아서도 책 보기는 가능하다. 심지어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서도 책을 들고 앉는 독서가들이 종종 있다. 혼자 앉아 작은 접시를 두고 맥주를 한잔 따라 책을 펴면 세상 천국이 따로 없다. 그러나 독서를 하기에 가장 적합하지 않은 행동은 걷기이다. 유감스럽게도.
독서만이 아니라 책과 관련된 거의 모든 일은 걸으면서 하기가 도무지 어렵다. 걸으면서 글을 어떻게 쓸 것이며, 교정교열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디자인은 물론 MD도 걸으면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 보니 책을 둘러싼 사람들은 하나같이 운동부족에 각종 디스크를 앓고 있다. (사무직이 다 그렇다고 하면 하기야 할 말이 없다.)
한때 무릎과 허리가 너무 아파 물속에서 일하는 방법을 연구해본 적이 있다. 사무실에 커다란 아크릴 수조가 있고, 그 위에는 책상이 있어서 수중에서 물장구를 치며 일하는 식이다.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할 지 그 부분이 문제긴 한데…
걷기와 독서를 함께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걷기에 대한 책은 꽤 많다. 책과 산책은 라임도 맞고 제법 잘 어울리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조금 걷다 만난 벤치에서 책을 보다 다시 걷는 것은 두 번째 천국쯤 되겠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으면서 걷기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미술관 산책, 생물학 산책, 프랑스사 산책 등 다양한 책이 제목만 걷고 있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산책은 42% 정도 스트레스를 날린다고 하며 6분간의 독서는 68%의 스트레스를 날린다고 하니 걷고 읽으면 10% 정도 기분이 좋아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레베카 솔닛의 『걷기의 인문학』, 꽤 옛날 책 중에는 『걷기 예찬』 등 걷기에 관한 책들은 깊이 있는 사색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런 ‘걷는 책’을 보면 일단 사놓는 버릇이 있는데 역시 운동부족에 대한 무의식적 부채감일 거다. ‘자전거’ 하면 김훈 작가가 떠오르듯 ‘산책’하면 김연수 작가가 떠오른다. 『달리기와 존재하기』라는 책을 번역하기도 했고 『소설가의 일』 예약판매 때 준 『소설가의 산책』이라는 작은 산문집을 쓰기도 했다. 달리기라면 하루키를 빼놓을 수가 없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제목의 에세이는 물론, 여러 에세이 곳곳에서도 마라톤 대회에 참여했다 공중목욕탕에 들린 얘기, 유명 스포츠 브랜드의 초청을 받아 아름다운 도로를 달려본 이야기들로 미소 짓게 한다. 부지런한 글과 걷기를 어떻게 함께 할 수 있는지 경이롭다. 혹시 소설가라서 가능한 건 아닐까?
그러나 달리기는커녕 산책도 나가기 힘든 미세먼지 가득한 날씨 속에서는 역시 독서밖에 방법이 없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읽고 나면 밤새 사방을 돌아다닌 듯한 기분이 되는 것처럼 ‘걷는 책’들을 읽으며 은근슬쩍 ‘간접 걷기’로 뇌를 속여보기로 한다. 그 뒤 맥주 캔을 따면 운동 후 음주로 뇌는 더욱 금방 지치겠지요.
고여주
'그래, 난 취했는지도 몰라'라는 변명 아래 책과 전자책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작년부터 알코올 알러지를 앓고 있는데 개가 똥 알러지 같은 소리라는 핀잔만 듣고 있습니다. 고양이 4마리, 개 1마리와 살며 책에 관한 온갖 일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