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는 승자가 있고 패자가 있습니다. 굳이 입 아프게 말할 것도 없이(너무 빤하지 않습니까?), 승자보다 거기에는 패자가 훨씬 더 많습니다. 제가 편지를 쓰는 지금, 열리고 있는 투르 드 프랑스에서 출발하는 사람들은 2백 명쯤 되지만, 그중 한 사람만 승자가 되고 199명은 패자가 될 것입니다. 그들이 어떤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더라도 패자입니다.
우리 중 대다수는 이기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스포츠는 우리에게 이기는 것보다 지는 것에 관해 가르칩니다. 무엇보다, 져도 괜찮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진다고 세상이 끝나지는 않습니다. (『디어 존, 디어 폴』 , 2010년 7월 19일 존 쿳시의 편지 일부)
존 쿳시와 폴 오스터, 두 작가의 서간집 『디어 존, 디어 폴』 에 실린 존 쿳시의 편지 한 부분입니다. 저는 이번 평창 올림픽을 보면서 이 말이 떠올랐어요. 스포츠. 져도 괜찮다는 것을 가르쳐준다고 했던 작가의 말 말이죠. 한동안 우리를 들뜨게 만든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났습니다. 저는 동계올림픽 경기에 대해서는 잘 몰랐는데요. 거기에도 승자와 패자가 있더라고요. 0.01초 차이로 승부가 나고 말이죠. 잔인한 사실이에요. 더구나 선수들은 그 시간을 준비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까요. 저는 상상도 못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승자가 되지 못하더라도 진짜 멋있는 사람이 되셨으면 합니다.
<인터뷰- 김은덕 백종민 작가 편>
김동영 : 비혼주의자였으나 서로에게 희망을 발견해 결혼한 7년 차 부부. 가장 친한 친구. 2년 동안 한 달에 한 도시를 여행한 여행가. 도시빈민. 그러나 시간 부자. 그러니까 욜로, 미니멀라이프 실천 중. 무엇보다 사랑해서 싸우는 사람들. 김은덕 백종민 부부를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은덕, 백종민 : 네, 안녕하세요.
김동영 : 책 제목에 ‘왜’가 들어가죠. 책을 읽고 ‘이런 게 사랑이구나’라고 느꼈어요. 자신을 지켜가면서 사랑하는 걸 보면서 새롭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명절이었잖아요. 어떻게 보내셨어요?
김은덕 : 이번 설에는 저희 집에 갔어요. 종민 씨 부모님께서 시골로 은퇴를 하셔서요. 설날에는 저희 집에 있고, 다음 추석 때는 종민 씨 집에만 있고, 이런 식으로 나눠서 가기로 했어요.
백종민 : 명절이 추석과 설, 두 번이잖아요. 이 두 번을 현명하게 잘 이용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명절이 두 번인 이유는 두 곳으로 나눠 가라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거죠. 한 번은 처가에, 한 번은 시가에. 저희는 ‘시댁’이라는 표현도 안 써요. 한쪽만 높여서 부르는 의미잖아요. ‘처댁’이라고는 안 하니까요. 표현도 신경 써서 쓰고 있고요. 저희는 가부장제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하고 있고, 그 해결책을 찾고 있어서 그런지 명절이 그렇게 어렵진 않아요.
김동영 : 평등한 관계를 선언한 결혼, 이제 7년 차인데요. 그렇다면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하셨다고 생각하세요?
김은덕 : 저희는 작은 결혼식을 했어요. 홍대 근처 인도 레스토랑을 빌려서 했는데요. 결혼선언문 1항에 ‘우리는 남편과 아내이기 이전에 독립된 개체로서 평등한 관계로 살아갈 것입니다’라고 했어요. 이미 7년 전에 하객들 앞에 그렇게 선언하고 결혼을 한 거고요. 그것도 10개의 항목 중 1번으로 올렸다는 것은 저희 결혼 생활에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부분 중 하나였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어요.
백종민 : 그래서 평등한 관계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고비를 하나 넘으면 평등한 관계가 될 줄 알았는데요. 또 다른 고비가 나타나는 거예요. 계속 끊임없이 고비의 언덕을 넘어가는 일 같아요.
김동영 : 최근에도 여행을 다녀오셨잖아요. 여행 가서 싸우진 않으세요?
김은덕 : 사실 우리는 여행만 할 때는 잘 안 싸워요. 여행을 가면 가사노동에서 해방이 되거든요. 부엌에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이죠. 여행지에서는 여행만 하느라 싸울 일이 없어요.
김동영 : 저희 팟캐스트에 나오신 이유가 있잖아요. 책 팔려고 나오신 거죠. 우리, 책 팔아야 합니다.(웃음) 책 얼마나 힘들게 써서 나온 것이겠어요.
백종민 : ‘왜 시작했나’ 하는 고민을 할 정도로 이 이야기를 쓰려고 힘이 들었어요. 시작한 이유는 간단했거든요. 저희는 가벼운 말다툼을 하면 글을 써서 상황을 복기해요. 그렇게 쌓아둔 원고가 있었는데요. 책을 만드는 과정을 겪으면서 어려워졌던 거죠.
김은덕 : 가부장제 얘기도 꺼내야 하고, 남녀 간 임금 격차 얘기도 꺼내야 하고, 결혼 문화에 대해서도 얘기를 해야 하고(웃음) 그랬어요. 여자라는 이유로, 남자라는 이유로 의문을 갖지 않고 했던 행태들을 모두다 건드려야 했기 때문에요. 그래서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김동영 : 여러분, 제목은 『사랑한다면 왜』 입니다. 눈에 확 띄는 책이죠. 서로의 글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은 뭐였어요?
백종민 : 총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네 번째 장 첫 번째 글을 은덕 씨가 썼어요. ‘나의 최고의 자아’라는 글이에요. 저는 그 글이 제일 좋아요. 은덕 씨가 보통 대외적으로 사랑고백을 잘 안 해요. 부끄러워하는데요. 본인의 최고의 자아를 끌어내는 상대가 저라는 말을 써놨거든요.
김은덕 : 자기를 칭송해줘서 좋았던 것 같아요.(웃음) 저는 가장 첫 번째 글 ‘그럭저럭 좋아 보이는 두 사람’이 제일 좋아요. 흔히 ‘쇼윈도 부부’라고들 하죠. 그럭저럭 좋아 보이고, 사이도 좋아 보이는데 저희는 그런 관계를 원치 않아요.
백종민 : 치열하더라도 제대로 된 관계를 만들고 싶어요. 싸우는 횟수가 줄기는 했지만요. 같이 살면서 다툼이 없다는 것은 오히려 애정이 없다고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은덕 : 저희는 겉으로 보기에는 맨날 싸우는 것 같아 보이거든요. 그럭저럭 지내는 관계를 거부하자고 생각을 한 거고요. 종민 씨의 이 글은 책을 관통하는 이야기를 잘 담은 것 같아요. 보면 ‘은덕과 내가 둘 다 만족스럽게 살아가려면 한평생 사회적 기득권자로 살아온 내가 훨씬 더 많이 변화해야 한다는 사실이다.’(19쪽)라고 표현했거든요. 저는 이 문장이야말로 이 책의 의미를 함축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영 : 잊기 전에, 저희 ‘김동영의 읽는인간’ 고정 질문을 할게요. 최근에 구매해놓고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있다면?
백종민 : 『매일 읽겠습니다』 라는 책인데요. 한 독서가의 생각을 담은 글과 다이어리가 같이 구성된 책이에요. 다이어리를 쓰면서 다음 글을 읽어나가야 하는데 그걸 못해서 못 읽고 있어요.
김동영 : 사람마다 취향이 있잖아요. 두 분은 책을 사서 바꿔 읽기도 하나요?
백종민 : 주로 상대가 읽은 책을 궁금해서 읽어봐요. 책에 있는 이야기를 계속 나눠야 하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읽기도 하고요.
김동영 : 고정 질문 두 번째입니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에게 꼭 선물하고 싶은 책은?
김은덕 : 『기록되지 않은 노동』 이라는 책인데요. 여성노동글쓰기모임에서 만난 13명이 인터뷰를 한 인터뷰 기록집이에요. 그 인터뷰에는 여성 계약직 노동자, 장애인 노동자 등의 인터뷰가 실려 있거든요. 예를 들면 야쿠르트 판매원, 보육교사, 마트 직원,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 같은 분들의 이야기들을 인터뷰해서 썼는데요. 이 책을 그 13명 중 한 분에게 선물을 받았어요. 정말 재미있게 읽어서요. 저도 좋아하는 친구에게 권해주는 책이에요.
백종민 : 『기록되지 않은 노동』 이라는 책을 통해 젠더 감수성, 비주류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은덕 씨가 주변에 많이 권하는 책이에요.
김동영 : 『사랑한다면 왜』 가 브런치에 연재를 했었잖아요. 댓글이 화려했다고 들었어요. 기억에 남는 댓글 있으세요?
김은덕 : 공개 외에 비공개 댓글 창구를 하나 더 마련했었어요. 내용이 내용이니만큼 속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 분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만들었죠. 공개 댓글이야 욕도 있고, 이상한 말도 많았지만요. 비공개 댓글은 사실 저희도 보면서 내내 놀라웠어요.
백종민 : 정말 거짓말이 아닐까, 라고 생각할 정도로 충격적인 이야기가 많았어요. 남성의 폭력으로 인해 이혼을 결심한 사연도 있었고요.
김은덕 : 시가의 가부장적 행태를 나열하면서 3년 전 이혼을 했지만 지금은 종민 씨 같은 젠더감수성 풍부한 남자를 만나 지금은 행복하다는 이야기도 있었죠. 이혼 이야기가 굉장히 많았고요. 또 놀라웠던 건 60대 어르신들의 댓글이었어요. 부모님 세대시잖아요. 저희 글은 사실 굉장히 가치전복적인 이야기고, ‘저런 발칙한 애들이 다 있나’ 할 수 있을 정도의 내용인데요. 의외로 이 분들이 너희들의 삶을 응원한다고 하시는 거죠. 나도 앞으로 며느리를 맞이하겠지만 며느리라는 호칭을 쓰지 않겠다, 그렇다면 어떤 호칭이 좋을까, 라고 오히려 묻기도 하시고요.
김동영 : 며느리라는 말은 어떤 이유에서요?
김은덕 : 정설은 없는데요. 몇 가지 학설을 찾아봤어요. 며느리라는 말에는 ‘남의 집에 기생하는 아이’라는 뜻이 있다고 해요. 남자(아들)에게 기생하는 아이라는 뜻이 있고요. 밥을 뜻하는 ‘매’와 ‘나르는 아이’라는 의미에서 ‘며늘아이’가 며느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백종민 : 어쨌든 이 호칭이 남성중심의 사고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거니까요.
김동영 : 종민 씨는 페미니즘에 대해 원래 관심이 있으셨던 건가요? 아니면 은덕 씨를 만나서 관심이 생기신 건지 궁금해요.
백종민 : 은덕 씨한테 얘기를 들어보니까 제가 보통의 남자보다 젠더감수성은 많았대요. 그런데 그게 학습된 예의였던 거죠. 은덕 씨는 저한테 끊임없이 ‘왜?’라고 물었어요. 제가 배워온 대로, 학습된 대로 하니까 은덕 씨가 계속 다시 문제를 제기해줬거든요. 그러면서 남자와 여자를 떠나 인간으로서, 평등한 관계로 다시 한 번 관계를 정리해보게 된 거죠.
김동영 : 방송에 나갈지 잘 모르겠는데요. 어떻게 한 사람과 평생 살죠?
백종민 : 저희는 서로에게 다른 이성이 찾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거든요. 이혼이라는 상황이 다가올 수도 있다고 생각은 하는데요. 저희는 그게 제일 행복해요. 침대에 같이 누워서 같은 천장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을 때 이 사람이 옆에 있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거든요.
김동영 : 진짜 아름답네요.(웃음) 두 분은 각자 작업을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으세요?
김은덕 : 혼자 쓰고 싶은 책, 종민 씨도 없죠?(백종민: 네.) 지금 <채널예스>에 ‘남녀여행사정’이라는 칼럼을 연재 중인데요. 이 칼럼도 한 사람이 전개를 맡고 다른 한 사람이 결말을 쓰는, 미니시리즈처럼 이어가는 글이에요. 이런 원고를 늘 썼고, 책도 항상 공동저자로 들어가다보니까 한 번도 각자 써봐야지, 하는 생각을 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김동영 : 독자에게 하고 싶으신 말 마지막으로 들려주세요.
백종민 : 저희로서는 이제 막 결혼하신 분들보다 3-4년 차 정도 된, 눈에서 콩깍지가 벗겨진 후에 진짜 현실을 마주하는 분들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 『사랑한다면 왜』 를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김은덕 : 명절이 얼마 전이었잖아요. 아마 갈등이 최고조에 달해 있을 거예요. 그때 어느 한 쪽은 분명히 울음을 꾹 참고 있을 수 있거든요. 그런 분들이 한 번 읽어보시면 좋겠고요. 읽고, 남편에게도 권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김동영(작가)
김동영이라는 이름 석 자보다는 '생선'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린다. 대학에서 관광경영학을 전공하였고 마스터플랜 클럽에서 허드렛일을 한것이 인연이 되어, 음반사 문 라이즈에서 공연과 앨범 기획을 담당하였다. 델리 스파이스와 이한철, 마이 앤트 메리, 전자양, 재주소년, 스위트 피의 매니저먼트 일을 담당하면서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복고풍 로맨스」, 「항상 엔진을 켜둘게」, 「별빛 속에」, 「붉은 미래」등의 노래를 작사하였다. MBC FM4U [뮤직스트리트], [서현진의 세상을 여는 아침], [K의 즐거운 사생활] 등에서 음악작가로 일했다.『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나만 위로할 것』 두 권의 책을 썼다.
iuiu22
2018.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