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난민』 은 인천 공항 근처 난민 캠프를 배경으로 버려진 한국 아이 ‘민’과 여러 난민들의 사연을 촘촘히 펼쳐 내는 소설이다. 전작 『오프로드 다이어리』 , 『하우스 메이트』 등을 통해 도시의 소외된 이들을 그려 온 표명희 작가는 『어느 날 난민』 에서 ‘먼 데서 온 낯선 이웃’인 난민에게로 관심의 테두리를 확장한다. 특히 난민 캠프에 모인 이들이 서로 조금씩 비밀을 드러내고 이해하게 되는 구성을 택해 세계의 어둡고 아픈 현실을 비추면서도 새싹 같은 희망의 기운을 전한다. 난민이라는 사회적 주제를 토대로 이 시대 우리가 견지해야 할 인권과 존중의 가치를 가슴 시리게 그려 내 청소년과 성인 모두가 인상 깊게 읽을 수 있다.
국제 뉴스를 통해 간혹 난민 문제를 접하기는 했지만, 한국에도 난민이 이렇게 많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작가님은 어떻게 난민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삼십 년 서울 생활을 하다가 낯선 곳으로 이사해 살면서 우연히 접하게 된 문제였습니다. 그 지역에 난민센터가 들어서서 개원을 앞두고 있었는데 주민들의 반대가 심하더군요. 서울이었으면 아마 그냥 지나쳤을 것 같아요. 작은 섬도시여서인지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이상하게 ‘나의 일’인 것처럼 피부에 와 닿더라고요. 이 작품 이전의 제 소설들은 사회 문제보다는 개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특별한 환경에 처하면서 작가 의식도 좀 변한 것 같습니다.
소설의 첫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독자를 외딴 섬, 쓸쓸한 풍경 속으로 훅 데려다 놓는 듯 흡인력이 있어서 이야기에 금세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개펄을 바라보며 서 있는 해나와 민’의 모습으로 소설을 시작한 이유가 있나요?
그들이 처한 상황이 개펄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누구든 개펄을 제대로 한번 체험해 보면 그 강렬함을 떨치기 힘들 거예요. 저 밑바닥까지 드러내 보여 주는 바다의 적나라한 민낯이라고 할까요. 바다도 육지도 아닌 무채색의 개펄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면 처음엔 그 황량하고 막막한 느낌이 너무도 낯설 거예요. 하지만 시선을 조금만 더 가라앉히고 깊이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온갖 생명이 살아 숨 쉬고 있는 또 하나의 세계라는 걸 알게 되죠. 슬픔과 기쁨,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면서 이루어지는 우리의 인생살이와 닮았다는 점에서 개펄은 괜찮은 상징 같았어요.
다양한 국가에서 온, 다양한 사연을 지닌 난민들이 작품에 등장합니다. 이 인물들은 어떻게 구상하신 건가요? 직접 취재한 인물들인가요?
예술인복지재단에서 매년 하는 예술인 파견 사업이 있습니다. 음악이나 미술ㆍ영화ㆍ문학 등 여러 분야의 창작자들을 회사나 공공 기관에 파견해 예술 관련 일을 하도록 하면서 우리 사회 곳곳을 예술적 분위기로 만들기 위한 그런 사업인데요, 제가 그 파견 사업 작가로 난민센터에 들어가서 일할 합법적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센터 측에서는 제 취재 의도를 알아채고는 저를 달가워하지 않더라고요. 난민들 신분 보장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취재는 당연히 제한당했고요, 급기야 파견 사업 작가로 활동하는 것조차 동의해 주지 않더라고요.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어서 저도 다른 방법을 강구했습니다. 다른 파견 작가를 보조하는 도우미 역할로 계속 그곳을 드나들었죠. 구체적인 사례나 자료는 기사나 관련 자료들을 통해 얻었고 그곳에서는 센터 분위기를 파악하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어요. 『어느 날 난민』 은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해서 소설화한 것입니다. 10퍼센트 팩트에 90퍼센트 상상력, 그 정도 비율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등장인물 중 허진수 경사는 보조적인 역할임에도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번듯한 직업에 좋은 집이 있는 그의 삶은 언뜻 안정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삶에도 쓸쓸함과 공허함이 자리하고 있어서, 마음 한쪽이 저려 왔습니다. 허진수 경사를 포함해 여러 등장인물 중 작가님이 특별히 아끼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그 이유는요?
저는 이 책에 ‘세상의 모든 난민’을 부제로 붙이고 싶었어요. 허진수 경사는 성적 소수자로 역할 매김을 한 인물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성적 소수자나 미혼모도 주류로 발붙이기 힘든 일종의 난민인 셈이죠. 이 소설에도 핵심 인물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저는 가능한 한 모든 등장인물을 똑같이 주인공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현실에서는 늘 영웅이나 스타를 원하고, 그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죠. 그 빛에서 벗어나 있는 이들이 훨씬 많지만 대중들은 그들에게는 시선을 잘 주지 않아요.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주연, 조연, 엑스트라까지 인물들의 서열이 있게 마련이고요. 어쩌면 그런 서열화가 우리 속에 무의식적으로 내면화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소설적으로 효과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 작가적 의도는 인물 하나하나에 색깔은 달라도 똑같이 중요한 존재감을 불어넣는 것이었어요.
‘작가의 말’을 통해 “글을 쓰면서 내가 그들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얘기를 풀어놓고 있다는 착각이 들 때가 많았다.”라고 하셨는데요, 작가님도 자신이 ‘난민’ 같다는 기분을 느껴 본 적이 있나요?
많죠(웃음). 저는 문단이라는 세계에서 작가로서 난민 의식을 떨치기 힘들었어요. 늦게 데뷔한 이유가 크겠지만 신인 때부터 문단에 친구가 없었어요. 거의 고립된 채 작가 생활을 해 왔어요. 지금은 네 번째 소설집 출간을 바라볼 정도로 십수 년 동안 단편소설도 꾸준히 발표해 왔고 이번 작품까지 해서 모두 6권의 작품을 냈지만 문단에서의 입지를 생각하면 아직 뿌리조차 못 내리고 있는 것 같아요. 여러 직업군 중에서도 아마 창작하는 사람들이 난민 정서를 가장 많이 느끼지 않을까 싶네요.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때마다 작가들은 얼음판 위에 서는 기분일 거예요. 작품과 운명을 같이 하는 존재니까요. 이번 작품을 내놓고도 저는 계속 조마조마해하고 있습니다.
“난민 유전자를 나눈 사람들의 미세한 연대로 이루어진 게 인류 아닐까요.”라는 대사가 책장을 덮고 나서도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이보다 더 절묘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한편으로 더 강력한 결속력이나 유대를 강조하실 수도 있었을 텐데, 이처럼 “미세한 연대”라고 표현해 주신 까닭이 있을까요?
미세하다는 건, 입자가 작아서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그것들이 모이면 아주 촘촘하다는 의미도 되지요. 액션이 크다는 건 순간적으로 힘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지속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저는 큰 목소리보다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 작은 목소리에 주목하는 편이에요. ‘난민’이라는 용어도 무게감이 커서 자칫 먼 곳의 일로 느끼거나 우리 마음속에 벽을 쌓게 만들 수 있지요. 하지만 실제로 난민 정서는 우리 속에 아주 보편적이고 뿌리 깊게 내재돼 있다고 생각해요. 취업 난민이니, 전세 난민이니 하는 용어만 봐도 우리 일상과 밀접한 정서거든요. 그런 내 속의 난민 정서를 인정한다면 현실의 난민에 대한 벽이나 경계심은 자연히 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정서적 공감이 결국 그들과 내가 다르지 않은, 이 지구별에 깃들어 살고 있는 이웃이라는 생각이 들 거고요, 그 이웃의 의미를 조금씩 넓혀 나가면 ‘인류’가 되겠지요.
마지막으로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 책이 창비청소년문학 시리즈로 나오긴 했지만, 저는 ‘어른이 읽는 청소년 소설’로 봐주셨으면 해요. 청소년 소설을 저는 근본적으로 ‘성장 소설’로 이해하는데요, 내면의 성장은 나이에 상관없이 지속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기성세대들은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책임이 커서 그런지 가능성을 의도적으로 차단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령, 앞날을 꿈꾸거나 원대한 희망을 갖는 것을 주로 청소년이나 청년기의 특권으로 생각하거든요. 어른들도 끊임없이 앞날에 대한 꿈과 가능성을 열어두고 살아간다면 훨씬 더 삶이 역동적이지 않을까요. 인종과 국적이 다른 인물부터 우리 사회의 난민까지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문제와 닿아 있어서 남녀노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특히 청소년들에게는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이 변화해 가는 과정을 눈여겨 봐주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덧붙이겠습니다. 질문에 답을 하다 보니 제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생각하게 되었어요. 좋은 질문으로 저를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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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난민표명희 저 | 창비
실제 난민들을 만나고 취재한 경험을 바탕으로 예리한 리얼리즘적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해 한국의 난민 문제를 깊숙이 파고든다. 세계의 어둡고 아픈 현실을 비추면서도 새싹 같은 희망의 기운을 전한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