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에 접근할 방법이 이토록 다양한 것도 실로 오랜만이다. 5년 만에 찾아온 신보는 2016년 흑인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우며 전곡 뮤직비디오 제작으로 거대한 서사와 설득력을 확보했던 비욘세의
전작
여기에 일관되게 적어낸 평등과 차별의 오류를 논하는 가사는 수많은 아웃사이더들을 어루만지기 충분하다. 단 직선적이지 않고 비유와 은유를 덧댐으로써 문학적 아름다움마저 꿰어냈다. 캐나다의 일렉트로닉 뮤지션 그라임스와 함께 한 선 싱글 「Pynk」는 여성의 성기만이 아니라 다양한 것들이 핑크색을 지녔고, 모든 이가 가장 어두운 면에 같은 색을 지님으로써 동등하고 말한다. 다분히 프린스의 영향력이 느껴지는 「Make me feel」은 또 어떤가. 그간 일던 바이섹슈얼 루머에 정면 응수하며 양성애자 콘셉트의 뮤직비디오와 야릇한 가사로 성 소수자의 사랑을 긍정하고, 대표적인 남성 캐릭터 장고와 제임스 본드를 통해 남성 우월주의를 비판하는 「Django jane」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중성적 정장 스타일을 통해 다시 한번 당당한 여성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2개의 인터루드를 제외하고 모든 곡에 이름을 올린 그의 능력만큼이나 근사한 조력자들도 완성도에 한 몫 거든다. 「Dirty computer」와 「Take a byte」에 백 보컬로 참여한 1960년대 서프 뮤직 열풍을 이끈 천재 뮤지션 브라이언 윌슨, 마찬가지로 뒤 곡에 베이스로 힘을 보탠 미국 출신 싱어송라이터 썬더켓과 통통 튀는 사운드가 돋보이는 「I got the juice」의 공동 작곡자이자 피처링에 참여한 퍼렐 윌리엄스. 작고하기 전 전체적인 사운드 메이킹에 도움을 줬다는 프린스에 더불어 미니멀한 일렉트로닉 곡 「Pynk」는 가녀린 그라임스의 보컬과 허스키한 자넬 모네의 목소리가 만나 좋은 시너지를 낸다.
훌륭한 음악 장인들의 아우라를 알맞게 배합하고 방향성 또한 놓치지 않은 덕에 음반은 풍부한 감정적 울림을 제시하고 오밀조밀한 구체적 세계관을 구축해낸다. 전작보다 직접적으로 본능적인 움직임을 자극할 요소는 적어졌지만 그만큼 직접적으로 인권, 성, 자유를 외친 끝에 앨범의 여파는 전에 못지않다. 몇 해 전 흑인에게 가해지는 불평등을 소재로 한 영화 <문라이트>, <히든 피겨스>를 통해 이제는 배우로서도 평등을 위한 개혁에 거침없이 뛰어드는 자넬 모네. 음반이 모든 외면 받는 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그의 인터뷰에 꼭 맞게 앨범은 이번에도 무적 공감을 끌어냈다. 시각, 청각, 가치. 무엇하나 놓치지 않은 미리 예상하는 올해의 음반이다.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