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플래쉬
이 글을 시작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왠지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주제이자 과연 내가 그의 빙산의 일각이라도 잘 소개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망설임 때문이었다. 꼭 소개하고 싶은 곡인데, 마치 거대한 숙제를 떠안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어렵사리 컴퓨터를 켜고 글을 쓰기 시작하며, 그저 내가 이 음악을 처음 알게 된 그 순간에 조금 더 집중해보기로 했다.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클래식 좀 좋아한다” 말하는 사람들도 종지부를 찾기 힘들어하는 작곡가. 듣고 또 들어도 그의 음악은 늘 새롭게 빠져들고, 늘 새로운 사색의 숙제를 던져준다. 많고 많은 클래식 음악 작곡가 중에 말러만큼 마니아층이 두텁고 확실한 작곡가가 또 있을까 싶다. ‘말러리즘’, ‘말러리안’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이니 말이다. (말러리안은 특히 말러를 열렬히 추종하는 클래식 애호가들을 지칭한다.) 나와 친분이 두터운 한 말러리안은 스스로 말러리안임에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물론이고, 그의 곡이 연주되는 날에 맞춰 휴가를 쓰고 하루 종일 프로그램을 공부한 후 실황을 ‘영접’하러 가기까지 했다. 이렇게 한번 문을 열고 들어오면 탈출구가 없을 정도로 매력을 넘어 마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말러의 음악이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이 그의 음악을 두고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마치 거대한 철벽을 마주한 듯 어디서부터 뚫고 들어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또 그의 음악을 좋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도무지 좋아지지 않는다고 말이다. 심지어 음대생들 사이에서도 말러를 좋아하는 것이 ‘음악 좀 아는 사람’의 척도가 되곤 한다는 농담 섞인 에피소드도 넘쳐난다.
그런데 나는 말러의 곡이 철학적이고 어렵다는 부담감과 편견을 버리고 그에게 다가가기를 추천한다. (쉽게 생각하지 않으면 절대 친해질 수 없다는 역설을 담고 있기도 하다.) 나 역시 영화 음악이라는 아주 친근한 장르를 통해 말러의 음악을 접했고, 오히려 그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기 때문에 더욱 순수하게 말러의 곡에 빠져들 수 있었다. 여러 할리우드 작곡가는 말러의 곡에 담긴 서사적 요소에 빠져들었다. 영화 음악의 거장 존 윌리엄스 역시 말러의 팬이자 그의 음악은 상당 부분 말러 교향곡과 맞닿아 있다. 영화 <해리 포터>에서 해리 포터가 빗자루에 오르는 장면에 삽입된 곡을 들으며 말러의 「부활 교향곡」을 떠올리고,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말러 교향곡 1번」을 들으며 단번에 영화 <터미널>의 OST가 맴돌았던 것이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실제로 존 윌리엄스의 음악은 장엄하고 서사적인 작곡 스타일로 유명한 구스타프 말러, 리하르트 바그너, 구스타프 홀스트의 계보를 잇고 있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말러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물론 비교적 최근의 작곡가이기 때문에 고전주의 시대의 작곡가들에 비해 보다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기도 하지만, 말러만큼 (그의 모든 행적에 대한) 많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작곡가도 흔치 않을 것이다. 도서관에서 말러에 관련된 서적만 해도 족히 10권은 넘게 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음반의 지휘자인 동시에 평생 동안 말러의 제자이자 친구였던 브루노 발터 역시 『구스타프 말러』 라는 저서를 남겼다. 보헤미아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말러는 매우 철학적이고 때로 자기 부정적인 성향을 지녔다고 알려져 있다. 교향곡을 중점적으로 썼던 그는 “교향곡이란 세계와 같으며, 모든 것을 포괄해야 한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는데, 실제로 말러의 교향곡에는 (그의 성격과 그의 음악에 대한 확고한 가치관처럼)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온갖 고뇌와, 나아가 온 우주를 반영하고 있는 듯한 심오한 철학이 담겨 있다. 말 그대로 그의 교향곡은 또 하나의 ‘세계’인 셈이다. 그는 음악으로 현세를 비판했고, 인간을 대변했으며, 죽음과 영생을 표현했다. 그렇기에 그의 교향곡은 들을수록 새롭고 들을수록 궁금해진다. 음악을 듣고 있다기보단 너무나도 생각이 많았던, 때로는 정리되지 않았던 한 작곡가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 때가 많다.
말러 1번 교향곡은 장 폴 리히터의 『거인』이라는 소설을 바탕으로 작곡된 작품으로, 일부 악장에서는 어린이의 죽음을 이야기하며 ‘장송 행진곡’을 연상시키도록 작곡했다고 전해진다. 이 교향곡의 초연은 대실패로 끝났는데, 이유인즉 청중이 듣기에 거북할 정도로 역설적인 곡이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아름답지 않은 곡”이었다. 느긋하고 진지하다가도 갑자기 음침해지고 또 한순간 갑자기 날카롭고 광분한 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교향곡 1번은 어느 영웅적 인물의 삶과 슬픔, 투쟁과 운명, 좌절, 분노, 죽음을 소개하는 작품이었다고 한다. 또 이 곡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요약하기도 했다. 말러는 이 곡을 통해 얽히고설킨, 도무지 아름다운 멜로디만으로는, 단순한 음으로는 표현해낼 수 없는 인생과 죽음에 대해 말하고 싶었으리라. 이 외에도 이 곡을 설명하는 많은 해석이 있지만, 모든 설명을 제쳐두고 일단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꼭 1번이 아니더라도, 이 음반에 수록된 말러 교향곡들을 들어보라. 그의 곡을 듣는 동안 아마도 마음속 저 바닥에 숨겨졌던 오롯한 나만의 공간으로, 나만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말러의 곡을 처음 접했던 순간만 쉬웠지, 그 이후 그의 곡은 늘 크나큰 사색의 숙제를 던지곤 했다. 실제로 말러 음반을 꺼내 드는 순간의 심리 상태를 생각해보면, 주로 편안하기보다는 불안하고 힘들고 혼란스러운 경우가 많았다. 스스로의 내면으로 더 깊이 빠져들고 싶을 때, 누군가 나를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욕구가 강할 때면 마치 병원을 방문하듯, 말러라는 처방전을 꺼내 들곤 했다. “어찌 인생이 아름다울 수만 있으랴”라고 외치는 듯한 냉소적이고 날카로운 그의 곡은 오히려 내게 위로가 되었고, 그 속에서도 여전히 구원과 해결책을 내놓는 그의 따듯함은 혼란스러운 내 마음을 한결 달래주기도 했다. 어느 한순간도 시시하지 않은 인생의 한 자락에서 이정표가 필요한 당신에게 말러의 곡이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다.
-
Bruno Walter 말러: 교향곡 1번 / 바그너: 파우스트 서곡Music & Arts ㅣ Music & Arts
발터는 말러의 문하생이자 사도였으며 또한 말러가 자신의 교향곡 1번을 지휘하는 것을 직접 들었던 인물이다. 애매한 데가 전혀 없이 확신에 찬 해석이 돋보인다.
윤한(피아니스트, 작곡가)
피아니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 美버클리음악대학 영화음악작곡학 학사. 상명대학교 대학원 뉴미디어음악학 박사. 現 경희대학교 포스트모던음악학과 전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