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타오르는 한 여름 밤
마치 클럽 같이 어두컴컴한 조명 속에서 관객들은 연신 주변을 둘러보며 공연을 기다린다. 무대는 관객들의 정면을 시작으로 옆이 되기도 하고, 뒤가 되기도 하고, 나아가 공중으로 확대된다. 언제 어디서 배우들이 나타날지 모르는 다이나믹 한 쇼 <푸에르자부르타 웨이라>는 쉴 새 없이 휘몰아치며 관객들의 정신을 쏙 빼 놓는다.
푸에르자부르타 웨이라는 지난 2005년 아르헨티나에서 초연 된 이후 전 세계 34개국 58개 도시에서 공연되었다. 5년 전인 2013년 한국에 처음 내한한 당시 3만 명의 관객을 불러모으며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21회 ‘대한민국 문화 연예 대상’ 외국작품상을 수상하며 국내에서도 그 작품성을 인정 받았으며 올 여름 5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스페인어로 ‘잔혹한 힘’을 뜻하는 <푸에르자부르타 웨이라>는 인생을 주제로 복잡하고 어지러운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의 스트레스를 다양한 형태로 표현해낸다. 퍼포먼스, 설치미술, 라이브 음악, 디제잉 등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한 볼거리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언제 어디서 배우들이 등장할지 몰라 긴장감을 늦출 수 없고, 배우들의 등장과 동시에 관객 역시 무대의 일부가 되어 함께 공연을 만들어나간다. 공중 수조가 내려오면 손을 뻗어 배우와 함께 교감하고, 흰 천이 머리 위로 지나가면 배우와 함께 천을 옮긴다. 관객들 또한 함께 공연을 만들어나가면서 더 깊게 몰입하고 열광하며 작품의 메시지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줄에 매달려 런닝머신 위를 걷는 한 남자 앞엔 많은 사람들이 무표정하게 스쳐 지나가고, 테이블과 의자, 휴지 조각이 끊임없이 등장하며 그의 앞길을 방해한다. 남자는 무덤덤하게 걸어가는 중에 총을 맞아 붉은 피로 옷이 물들고, 거대한 벽에 부딪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묵묵히 앞만 응시하며 걷고 또 걷는다. 암전 속에 사라진 남자는 공연 후반부에 다시 등장한다. 이번엔 전혀 다른 표정으로 공중에서 바람을 맞고, 흰 천에 뚫린 구멍 사이로 관객들을 내려다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이전 상처는 모두 잊었다는 듯. 황홀해 보이기까지 하는 남자의 모습을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남자의 모습은 순환되는 인생 그 자체를 표현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슬픔과 고통 그리고 다시 행복과 환희, 그 반복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모든 이들의 ‘인생’에 대한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남자의 존재는 공연 중 가장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 밖에 투명 수영장 속에서 여성 배우들이 몸동작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밀라르’, 열광적이고 역동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무르가’ 등 다양한 퍼포먼스를 선사한다. 조금 더 역동적이었으면 하는 아쉬운 포인트도 있지만, 1시간 남짓한 공연은 말 그대로 ‘환상적’이다. 특히 공연 막바지에 배우와 관객이 함께 음악에 리듬을 맡긴 채 춤을 추고, 머리 위에서는 물이 뿌려지며 분위기를 최고조로 만들어준다.
<푸에르자부르타 웨이브>를 더 즐기기 위해서는 입장과 동시에 부끄러움과 눈치는 내려 놓아야한다. 옆 사람의 눈치를 보다 보면 이 열광적인 쇼를 제대로 즐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그 순간 내가 느끼는 감정 그대로 소리 높여 환호하는 배우들과 함께 어울리다 보면 뜨거운 한 여름 밤,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임수빈
현실과 몽상 그 중간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