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가득한 지하철에 들어갈 때면 심호흡을 한다. 몸을 장기 쪽으로 붙이겠다는 의지로 숨을 들이마신다. 그때 타인은 아무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목적지와 내가 선 자리, 움츠릴 수 있을 만큼 몸을 움츠리는 실험 같은 것만이 그 안에서 허락된 관심의 범위이다. 뮤지컬 <메리 골드> 는 빽빽한 지하철 어느 칸에서 시작한다. 보기만 해도 괴로운 지하철에서 탄 사람들은 구겨진 얼굴을 하고, 저마다의 세상에 서 있다. 갑자기 멈춘 지하철에서 튀어나온 사람들은 금방 제 길을 가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다시 만난다.
자살을 결심한 특별한 이유
자살 카페의 운영자가 운영하는 대추나무 팬션, 다섯 명이 다시 만난다. 자살 카페 회원인 이들은 빨간 망치, 투명인간, 가시고기, 백마 탄 환자, 마녀는 괴로워라는 닉네임으로 부른다. 다섯 명 모두 죽고 싶은 이유가 있다. 뮤지컬 <메리 골드> 는 대추나무 팬션에서 이들이 가까워지는 과정과 다섯 명 중 한 사람의 과거를 교차해서 보여 준다.
가장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건 투명인간 화니다. 화니는 왕따 피해자다. 같은 반 반장이 따돌림의 주역이다. 어느 날 화니에게도 친구가 다가온다. 친구 덕분에 학교에 다닐 힘을 얻었지만, 죽을 용기도 생겼다. 둘이 있을 때는 친근하게 굴던 친구가 곤경에 처한 순간 화니를 괴롭히는 쪽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가시 고기 정수는 자식의 유학 때문에 기러기 아빠가 된다. 긴 유학 생활 탓에 대화도 서먹해지고, 생활비를 보낼 때에만 연락하는 정도로 관계도 소원해졌다. 힘들게 돈 버는 것도 지겹고, 술만 마시며 사는 것도 한심스럽다. 삶에 더는 미련없는 것이 느껴지니 자살을 결심했다. 백마 탄 환자 건영은 아버지의 폭력에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어머니를 보며 아버지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버지를 꼭 닮은 자신을 발견하고 자살을 결심한다. 마녀는 괴로워의 민아는 평생 외모 평가의 대상이 된다. 생긴 것으로 악평만 받다가 자신의 외모를 칭찬하는 사람을 의심하면서 사랑하게 된다. ‘나같은 사람을 이렇게 멋진 사람이 왜’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주기만 하다가 사기를 당한다. 힘들게 모은 돈을 전부 잃고 사랑도 잃은 민아는 자살말고는 선택지가 보이지 않는다. 빨간 망치 보영은 각성제를 먹어가며 공부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전교 1등한 것만 칭찬하는 엄마를 본다. 평생 엄마를 만족시키지 못 할 거라는 생각에 자살을 결심한다.
서로의 삶에서 어느새 위안받은 자신을 발견한다
지하철 안에서 납작하게 눌려 있던 다섯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조금씩 부풀어 오른다. 그들이 부풀어 오르며 한국 사회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문제들이 명확한 낱말로 떠오른다. 왕따, 기러기 아빠, 가정 폭력의 대물림, 외모 지상주의, 학력 지상주의 등 누구나 피해자이거나 가해자이거나 방관자였을 문제들이다. 전혀 다른듯 닮은 다섯 사람의 상처는 대추나무 팬션에서 조금씩 치유되는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준다는 것과 한 번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입밖으로 꺼내놓은 것이 힘이 되었다. 아마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자란 다섯 사람이 모두 아픔을 겪고 있다는 것도 이들에게는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예상치 못했던 사람일수록 나와 똑같이 아프다는 사실이 어떤 순간,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뮤지컬 <메리골드> 는 극단 비유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학교 순회공연용 뮤지컬을 극장용으로 재연출 한 작품이다. 2012년 초연 후 수차례 공연했다. 메리골드는 바그다드 팬션의 주인장이 그들의 자살을 돕기 전에 건네는 꽃의 이름이다.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라는 꽃말을 지녔다. 동반 자살을 도와줄 사람이 건넨 선물치고는 낭만적이다.
이수연
재미가 없는 사람이 재미를 찾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