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은 통금이 있었고, 조금만 남과 달라도 수상한 사람 취급받았고, 붉은색은 무조건 오해받았으며, 제3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뮤지컬 <명동 로망스> 는 2018년, 명동 주민센터에서 근무하는 9급 공무원 ‘선호’가 1956년, 로망스 다방에서 그때 그 사람들을 만나는 이야기다.
마음에 자기만의 세계 품고 사는 사람들
1956년 로망스 다방은 시인 박인환과 수필가이자 번역가인 전혜린, 서양화가 이중섭이 단골로 드나들던 곳이었다. 로망스 다방의 마담 성 여인과 세 명의 예술가들은 벽장에서 갑자기 떨어져 ‘미래에서 왔다’고 이야기하는 선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다시 미래로 돌아갈 방법만 궁리하던 선호는 점점 1956년의 명동을 사랑하게 된다. 만약 되돌아가지 못한다면, 남은 날을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궁리한다. 그러던 중 다가올 대통령 선거를 예언하면 ‘시민증을 주겠다’는 경찰의 제안을 받는다. 선호는 로망스 다방에 모인 예술가들과 성 여인에게 경찰의 제안을 받아들여 시민증을 발급받겠다고 이야기한다.
“한 번 뱉은 말은 절대 사라지지 않고, 세상을 떠다니는 거야. 그리고 자네 마음속에도 자국을 남기지. 그래. 그런 자국이 남아서 그 속이 폐허가 되고, 결국에는 자기 세상 하나 없이 텅 비어버리게 되는 거야. 정신 차려.”
영혼 없는 말, 세상에 해가 되는 말을 할 때 육신은 편안할지 모르지만, 마음에는 해를 끼칠 수밖에 없다는 충고는 버티는 삶 말고는 생각해 본 적 없는 선호의 마음을 울린다.
2018년 수많은 ‘선호’의 마음은 어떤 모습인지 묻는다
뮤지컬 <명동 로망스> 는 2013년 충무아트홀 창작콘텐츠 지원사업에 선정된 작품이다. 2년여의 작품 개발 기간을 거친 후 2015년 초연했다. 벽장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선호를 따라 무대 위에 그려진 60여 년 전 로망스 다방으로 시간을 건너간 느낌이다. 박인환, 전혜린, 이중섭 역을 맡은 세 명의 배우가 실존 인물이었던 세 사람을 이질감 없이 연기했고, 마담 성 여인 역할을 맡은 배우는 감질나는 감초 역할로 단단하게 힘을 실어준다. 다소 비현실적인 시간 이동을 배우들이 채우고 나면, 2018년을 사는 우리를 대표해 시간 여행을 한 선호가 자연스럽게 그곳에 스며든다.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언제나 ‘꿈’과 같은 이상한 말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일을 쳐내기 바쁜 우리에게 그들은 ‘그래도 마음에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두라’고 이야기한다. 과거로 돌아가기 전 선호는 출근하면 점심시간을 기다리고, 점심시간이 되면 퇴근 시간만 기다린다. 매일 견디며 살던 선호에게 1956년은 2018년을 완전히 잊을 수 있는 도피처가 된다. 공무원이 되기 전 선호는 “아무것도 안 하고, 안 먹고, 1분 1초가 아까워 공부”만 했다. “합격한 후에도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월급을 아끼려 친구도 만나지 않았”다. 그런 선호에게 과거에서 하루하루 시간을 꾹꾹 누르며 존재 의미를 탐구하는 사람들과 만남은, 2018년을 사는 우리 마음에도 안부를 전한다. 뮤지컬 <명동 로망스> 는 2019년 1월 6일까지 대학로 씨어터 다소니에서 공연한다.
이수연
재미가 없는 사람이 재미를 찾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