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오콘실리오성의 1월 벽화
중세 화가들은 눈 덮인 풍경을 크게 매력적이라고 보지 않았다. 이런 풍경은 그 후 몇 세기가 지나야 아주 황홀한 매력을 갖게 된다. 영문학자 브리짓 헤니쉬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인상적으로 이야기했다. “중세 시대에 겨울은 사람들이 너무나 싫어하는 계절이었다. 잔뜩 물기를 머금은 하늘을 배경으로 한 헐벗은 나뭇가지의 모습이나 검은색과 회색과 흰색의 조합을 사람들은 아주 싫어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야말로 여전히 발견되길 기다리고 있던 중세의 아름다움이었다”
우리가 알기로 유럽에서 가장 최초로 그려진 눈(雪) 그림은 이탈리아 북부 산악지대인 티롤 지방의 부온콘실리오성의 벽화이다. 순환하는 열두 달을 묘사한 이 벽화에는 눈 내린 풍경이 그려진 1월이 있는데, 신기한 방식으로 눈을 예술에 도입했다. 즉 근엄해 보이는 귀족들이 두 무리로 나뉘어 격렬하게 눈싸움을 하는 장면으로 눈을 묘사한 것이다. 눈 내린 겨울 풍경이 본격적으로 그림 속에 등장하는 것은 1400년대부터인데 어찌 보면 상당히 늦은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벽화를 그린 화가는 눈 자체보다는 눈의 미적인 효과를 활용해 이론가들과 경험주의자들 간의 싸움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훨씬 흥미가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15세기에 들어와서는 필사본 삽화가들도 겨울 풍경을 즐겨 그리기 시작했다. 중세 후반기에 독일과 플랑드르(벨기에 북부 지방) ‘성무 일과 기도서’에는 푸른빛으로 반짝거리는 눈이 그려져 있다. 또 16세기 초 플랑드르 기도서에도 함박눈이 펄펄 내리는 가운데 아이들이 눈싸움하는 장면이 나온다. 유명한 필사본 기도서인 『풍요로운 날들(Tres Riches Heures)』(1414)에는 겨울의 실내 풍경과 바깥 풍경이 모두 등장한다. 야외에는 벌집이나 건초 시렁 그리고 장작더미 위에 두껍게 쌓인 눈의 풍경이 보인다. 이것은 12월에는 포도주로 건배하며 크리스마스 파티나 새해를 축하하고 2월에는 따스한 난롯불을 묘사하는 영국의 확고한 전통을 생각하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다. 이런 실내 이미지는 앵글로색슨 시기에 연회가 벌어지던 연회장의 안락함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중세 시대의 이미지들은 이전 앵글로색슨 시기의 예술에서 표현된 것들과는 아주 다르다. 이를테면 중세 시대에 그려진 장면들은 집안일이나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일들을 묘사할 때가 많다. 또 일을 끝내고 저녁에 집에 돌아온 사람들이 신발을 벗으면서 느꼈던 감정, 온갖 의무에서 해방된 감정이 들어있다.
그레고리-후드 기록문서보관소에서 나온 14세기 중반의 2월 달력 그림
실제로 신발이 자주 눈에 띈다. 2월의 인물은 벗은 장화 한 짝을 불에 말리며 발가락을 불에 쬐고 있다. 중세 시대의 장화는 밑창을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들었는데 물이 금방 스며들어서 자주 말려야 했다. 돈깨나 있는 사람도 진흙 길을 걸을 때면 나막신을 신었다. 그렇지만 농민이나 일꾼들 대부분은 축축하게 젖은 형편없는 장화를 온종일 신어야 했다. 윌리엄 랭랜드는 자신의 시 『농부 피어스(Piers Plowman)』 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발과 연관해서 압축적으로 이야기했다. 즉 농부 피어스가 빵도 없이 먹는 여름날의 저녁 식사는 아주 형편없었고 “겨울은 더 나빴다. 왜냐하면 축축하게 젖은 장화를 신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몹시 가난한 사람들은 장화를 말릴 불조차 피울 수 없었을 것이다. 나무가 심긴 땅이 지주의 소유여서 땔감도 지주의 허락을 받아야 벨 수 있었다. 그런데 열두 달 노동을 묘사하는 그림들에는 당시 사람들이 실제로 겪었던 온갖 어려움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꽃이 즐겁게 타오르고, 요리 솥이 불 위에서 끓고 있는 모습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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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이 사랑한 날씨알렉산드라 해리스 저/강도은 역 | 펄북스
아무도 밖을 쳐다보며 자기가 본 것을 기록하진 않았던 중세에 홀로 날씨를 기록한 최초의 사람 윌리엄 머를이나 17세기 일기 기록자 존 이블린의 기록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알렉산드라 해리스(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