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옥 "베를린에서 기념조형물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
과거사에 대한 책을 읽는 것과 박물관에서 역사 유물 및 설명문을 보는 것은 1차적인 정보를 얻는 방법입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19.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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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재개발 이슈가 끊이지 않는 서울은 그만큼 고속 성장하며 역동성을 갖췄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또 잊어버렸다. 과거의 상처와 실패를 보듬거나 성찰할 틈이 없고, 현재의 갈등에 충분한 시간과 자원을 들여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데도 서툴다. 다른 도시들도 사정이 비슷하긴 마찬가지다. 물론 이러한 한국 사회의 체질 개선 시도는 꾸준히 있어왔다. 점차 많은 시민들의 공감대를 얻고 있다.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 은 이 같은 움직임에 구체적인 사례들로 힘을 보태고 훌륭한 안목을 선사하는 책이다.


백종옥 저자는 조형예술을 공부하고 미술 기획자로 활동하면서 공공미술, 특히 기념문화가 성숙한 독일의 수도이자 도시 자체가 ‘기억의 예술관’이라 칭할 만한 베를린의 경우를 2000년대 초부터 꾸준히 탐구해왔다. 낡고 권위적인 형식에 머물러 있는 기념탑, 동상, 공공조형물이 아니라 높은 예술적 완성도, 주변 공간과 조화, 현대적 감각과 소통을 하는 베를린의 기념조형물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그 울림을 사람들과 나누고자 수많은 기념조형물 중에서도 10곳을 선정해 책으로 펴냈다. 도시에 필요한 것은 ‘여백’이라고 말하는 저자에게 ‘역사를 기억하는 가장 예술적인 방법’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물어보았다.

 

한국에서도 점차 많은 사람들이 공공미술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역사적 사건이나 공동체의 기억을 간직한 '기념조형물'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은 이제까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책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2000년대 초 베를린에서 미술을 공부할 때, 공공미술과 건축에도 관심이 많아서 틈틈이 베를린 곳곳을 다녔습니다. 베벨 광장에 설치된 기념조형물을 보았던 것이 계기였습니다. 그곳은 1933년 5월 10일 밤 나치즘을 지지하는 수천 명의 독일 대학생들이 유대인 작가들과 학자들 그리고 나치를 비판한 비유대인 저자들의 책 2만여 권을 불태웠던 장소입니다. 그런 역사적인 장소라면 한국에선 흔히 높은 기념탑이 서 있기 마련인데, 베벨광장 중앙엔 아무것도 세워져 있지 않습니다. 광장 한가운데 바닥에 네모난 유리창이 있고 그 밑으로 텅 빈 하얀 책장들만 있는 직방체 공간이 보입니다.


1994~1995년 이스라엘 출신의 예술가 ‘미하 울만(Micha Ullman)’이 지하에 설치한 「도서관」이라는 작품이에요. 그것을 처음 보았을 때, 불타서 사라진 책들의 부재가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감동적인 충격이었죠. 제가 갖고 있던 기념조형물에 대한 고정관념이 완전히 해체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베를린의 기념조형물들을 찾아다녔고 자료도 모았습니다. 책을 써서 한국에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했고요. 한국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성이 높은 기념조형물들이 생겨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습니다.

 

베를린에서 유학하던 2000년대 초반부터 기념조형물에 관심을 가져왔고, 책을 집필하기 위해 2017년에 또다시 베를린에 방문하셨지요. 어떤 변화를 느꼈거나 새롭게 보이는 것이 있었나요? 변화하는 도시 한곳을 지키고 있는 기념조형물들을 긴 기간에 걸쳐 바라봐온 감상이 궁금합니다.


베를린에서 제가 유학하던 시기에 기념조형물들을 찾는 방문객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 곳들은 대체로 한적한 분위기였죠. 앞서 소개한 베벨광장도 붐비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2017년 10월에 베벨광장을 다시 가보니 관광객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프랑크 틸(Frank Thiel)의 「빛상자들」이 서 있는 ‘체크포인트 찰리’ 주변은 원래 유명한 곳이었기 때문에 관광객이 많은 편이었지만 이젠 완전히 시끌벅적한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2000년대 초에는 공사 시작 단계였던 피터 아이젠먼(Peter Eisenman)의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추모비」도 완성되었고, 낙서로 훼손되었던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의 벽화들도 말끔히 보수되어 있었습니다. 인터넷상에서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세상이기 때문에 이젠 더 많은 사람들이 베를린의 기념조형물들을 보러 갈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예술성 높은 기념조형물들을 감상하고 그와 관련된 역사를 되새기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한편으론 기념조형물들이 손상되지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아무튼 변함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기념조형물들을 보는 것은 역시 기쁜 일이었습니다. 

 

역사를 접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박물관에 갈 수도 있고, 책을 찾아볼 수도 있고, 온라인상으로도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잖아요. 그에 비해 직접적인 설명이 적고 추상적인 기념조형물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역사를 예술적으로 기억하는 방법'만의 의미나 장점을 알고 싶습니다.


과거사에 대한 책을 읽는 것과 박물관에서 역사 유물 및 설명문을 보는 것은 1차적인 정보를 얻는 방법입니다. 그런 내용을 기념조형물로 표현하려면 글처럼 설명적으로 나열할 수도 없고 나열해서도 안 됩니다. 내용을 함축적으로 보여주어야겠죠. 그런데 여기에도 여러 방식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앞서 소개했던 베벨광장 중앙에 분서 사건을 상기시키는 기념조형물을 설치한다고 상상해볼게요. 단순히 분서 사건을 설명하는 글과 기록사진만 있는 표지판을 세울 수 있습니다. 또는 책들이 불타는 형상을 사실적으로 조각한 작품을 만들고 좌대 위에 올려 놓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높은 콘크리트탑을 세우고 ‘나치의 분서 행위를 기억하자’는 문구를 크게 새겨넣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얼마나 진부할까요? 너무 직설적이고 1차원적이라서 전혀 감동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분서 사건의 핵심 의미도 전달하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미하 울만은 책들이 모두 사라져버린 빈 책장만 있는 도서관을 우리에게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지상에 높이 솟아 있지 않고 베벨광장에 깊이 새겨진 상처처럼, 책들의 무덤처럼 지하에 웅크리고 있습니다. 이런 상징적인 공간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단순히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 우리에게 책의 존재란 무엇인지 깊이 사유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습니다. 사람들의 뇌리에도 강하게 각인될 뿐 아니라 감성을 깊이 자극하죠. 설명적인 정보 전달의 차원을 넘어 은유와 상징, 개념과 추상 형식을 잘 승화시킨 기념조형물들은 방문객들에게 한 가지 시각만 강요하지 않습니다. 방문객들에게 열린 시각을 가지도록, 기념조형물의 의미를 풍요롭게 만들도록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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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 조형물을 경험한다는 것은 미적인 체험과 더불어 역사에 대한 이해 그리고 역사 속의 인간들이 겪었던 아픔까지 공감하는 행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경험을 직접 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특히 추천할 만한 기념조형물을 말씀해주시겠어요?


베벨광장의 「도서관」 외에 두 곳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이곳의 기념 조형물들은 역사적인 장소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장소이기도 하고요. 우선 ‘4장 죽음으로 가는 역에 각인된 역사’에서 소개하는 「17번 선로」입니다. 도시고속전철역 ‘그루네발트’에 있습니다. 1941~1945년에 그루네발트역은 수많은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 등 죽음의 수용소로 실어 나르는 데 큰 몫을 담당했어요. 강제 수송에 동원된 기차들이 출발했던 곳이 바로 ‘17번 선로’입니다.

 

선로 양쪽 승강장 바닥 전체에 강철판으로 제작된 기념조형물이 깔려 있어요. 186개의 강철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철판마다 수송 날짜, 수송된 유대인 수, 행선지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루네발트역을 비롯해 베를린의 3개 기차역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실을 문자와 숫자로 압축해놓은 것이지요. 침묵만이 남은 그 승강장을 강철판을 들여다보며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면 ‘인간 화물열차’가 죽음을 향해 떠난 날들을 되새기게 됩니다.


그 외에도 「추방된 배를린 유대인을 위한 경고의 기념조형물」이 바로 근처에 있습니다. 그 작품 역시 매우 감동적인데요, 콘크리트벽에 거칠게 음각된 인간들의 형상에서 강제로 끌려간 유대인들의 불안과 슬픔을 깊이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6장 히틀러에 대한 저항을 기억하라’에서 소개한 독일저항기념관 안마당에는 「기념비 1944년 7월 20일」이 있습니다. 히틀러를 암살하려다 실패한 후 그 안마당에서 사살된 슈타우펜베르크 대령과 동료들을 기린 기념조형물이에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느냐 하면, 수직으로 세워진 남자 조각상과 수평으로 깔린 추상적인 청동조각이 서로 거리를 두고 설치돼 있습니다. 이 두 가지 형태의 조각들이 조화로운 긴장감을 일으키며 역사적인 현장을 상기시켜줍니다. 독일저항기념관은 목숨을 걸고 히틀러에 저항한 독일인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책에서 다룬 10가지 베를린 기념 조형물들의 공통된 특징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공통점 또는 특징이라면 대부분 역사적인 장소에 밀착된 느낌을 주면서도 일상적인 풍경과도 단절되지 않도록 설치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기념조형물들은 광장 바닥, 버스 정류장, 기차 승강장, 광고판, 보도블록, 공원, 관광지 같은 도시의 일상을 구성하는 요소처럼 거기에 있습니다. 시민들이 쉽게 접근하고 머무를 수 있는 곳이죠. 일상과 동떨어진 성역의 느낌을 주거나 과도하게 선전적이지 않습니다. 저는 이런 방식을 ‘도시의 피부에 스며드는 형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도시들은 베를린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바뀌어왔습니다. 수많은 건축물, 장소 들이 사라지기도 하고요. 이런 한국 도시들의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선 베를린의 사례에서 어떤 점을 참조해야 할까요?


한국의 도시들은 빠른 속도로 바뀌기도 했지만 너무 맥락 없이 변하기도 하죠. 거리는 번잡하고 각종 표지판, 광고판, 간판 등으로 인해 시각 공해가 심한 것도 특징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선 아무리 중요한 기념조형물이라도 존재감을 발휘하기 무척 힘듭니다. 한국의 도시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기억을 간직한 기념공간이나 기념조형물이 자리 잡으려면 무엇인가 크게 만들어 ‘덧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기념조형물의 주변을 함께 ‘비워내는 방식’으로 조성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베를린 기념조형물들이 보여주는 장식적이지 않고 단순하면서 예술성이 높은 형식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베를린으로 여행을 떠나는 분들에게 도시 곳곳의 기념조형물들을 감상하는 방법, 베를린의 예술을 제대로 경험하기 위한 팁이 있다면 알려주시겠어요?


일반적인 베를린 관광을 목적으로 가시더라도 몇몇 기념조형물들은 유명한 관광지 주변에서 쉽게 만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기념조형물들은 대부분 나치 시대 또는 동서 분단의 역사와 관련된 곳입니다. 역사적 배경을 알고 보면 그 장소들이 다르게 보일 겁니다. 그만큼 아픈 역사의 흔적이 베를린 곳곳에 새겨져 있습니다. 관광지 주변 외에 보다 적극적으로 베를린의 기념조형물들을 찾아다니려는 분들께는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 이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요?(웃음) 베를린의 많은 기념조형물들 중에서도 중요하고 예술성이 높은 것들을 선택했고, 책 앞쪽에 기념조형물의 위치가 표시된 지도도 있으니까요. 그 밖에 베를린 국립회화관, 신국립미술관, 함부르거반호프처럼 큰 규모의 미술관에서는 르네상스부터 근현대 미술까지 보실 수 있고, 동시대 미술에 관심이 있다면 미테(Mitte) 지역에서 많은 갤러리들을 둘러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베를린, 기억의 예술관백종옥 저 | 반비
베를린의 공공미술을 찾아다니며 작품과 설치 장소의 맥락, 그곳을 찾는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관찰하고, 느끼고, 경험했다. 기념조형물들이 주변 환경과 방문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 의미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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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